오늘만큼은 칭찬을
1. 09-10 시즌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깜노우에서의 인테르와의 경기가 생각날 정도로 메시의 부재를 여러 방면에서 잘 막은 편이었던 경기였고 (심지어 스코어도 똑같) 발베르데의 포워드 기용 성향을 어느 정도는 알 수 있었던 경기기도 했다.
2. 하피냐의 오른쪽 측면 포워드 기용은 사실 왼발잡이에다가 볼을 발에 붙이고 속도를 내거나 강제로 공간을 만드는 플레이를 중앙 미드필드로서 어린 시절부터 높은 수준으로 해내던 하피냐의 가능성을 봤을 때 그가 측면에서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라는 루쵸의 판단 아래 시도된 기용이었다. 이런 루쵸의 포워드 기용 방식과 비슷하게 발베르데의 포워드 기용 방식도 뎀벨레가 아닌 쿠티뉴를 왼쪽 포워드로 점찍고 변화를 주지 않는 것이나 오늘 메시의 부재를 바탕으로 한 하피냐의 깜짝 기용 역시도 결국 측면에서 강제적으로 공간을 만들면서 필드 전체에서 영향력을 넓게 가져갈 수 있는 선수의 가치를 최고로 본다는 쪽에 가깝다고 보는 게 맞다.
3. 유벤투스를 제외하고 (정확히는 알레그리) 세리에에 관해서 요 근래 좋게 평가한 적이 없는데 그게 잘 드러난 경기기도 했다. 확실히 유벤투스를 제외한 세리에 팀들은 현대 축구의 흐름과는 멀리 있다. 그런 팀들 중 한 팀에게 8강에서 대굴욕을 당한 바르셀로나도 할 말은 없지만 말이다.
4. 네이마르가 바르셀로나에서 가졌던 가장 큰 장점은 90분 동안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 (팀의 박스 근처까지의 전진 속도를 책임지는) 을 큰 기복 없이 해낼 수 있으며 그 와중에 수비 가담에도 적극적으로 임한다는 것이었다. 온 더 볼 성향을 바탕으로 한 브라질 리그에서의 성장으로 인해 생겼던 고정관념에 비해서 그는 하나의 톱니바퀴로서 굉장히 좋은 자원이었는데 쿠티뉴 역시 클롭 아래에서 뛴 경험 덕분인 지 바르셀로나에 녹아드면 들수록 전체적인 면에서 좋은 선수라는 걸 본인이 직접 잘 증명하고 있다. 경기를 보면 볼수록 잘 샀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
5. 아르투르는 사실 지금 손해를 보면서 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도 불구하고 경기력 자체가 굉장히 좋다. 거기다 의외로 에너지 레벨 또한 최상위권. 물론 이러한 탑 레벨에서 연전이나 많은 경기를 뛰어본 게 아니라 그게 어느 정도나 이어질 지는 확신할 수 없겠지만 바르셀로나에 넘어온 이후 경직된 기용 방식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는 발베르데가 기용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만 봐도 그는 이미 팀 내에서 꽤나 괜찮은 입지를 가진 것 같다. 늘 말하지만 오른쪽에서 뛴다면 아마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거다.
6. 세르지는 더 이상 미드필드 자원이 아니라 그냥 오른쪽 측면에서의 포리바렌테 성향의 선수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오늘 경기로 확실하게 느낀 건 발베르데가 수비적인 교체라는 허울 하에 세르지를 억지로 미드필드에 적응시키려는 모습은 더 이상 안 봤으면 좋겠다.
7. 사실 메시가 빠진 상황에서 경기력을 논하는 건 별로 의미가 없다. 그의 부재를 어떤 방식으로 메꾸려고 했는 지를 중점적으로 보는 게 더 알맞은 시선이랄까. 적어도 저번 시즌만큼 메시 의존증을 지워내지 못하고 무너지는 모습은 아니었고 하피냐의 기용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기도 했지만 발베르데의 성향을 조금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했다. 이런 면들을 종합해봤을 때 오늘은 발베르데에게 좋은 점수를 줄만한 경기였다고 본다. 게다가 교체가 저번 경기를 기점으로 한 15~20분 정도 땡겨진 느낌인데 여유가 생긴 건지 뭔지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엘 클라시코 이전에 분위기는 잘 만들어낸 것 같다고 봐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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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 생업이 바빠져서 글의 깊이가 조금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경기 자체도 90분 풀 집중이 아니라 조금만 재미가 떨어지면 졸립네요. 허나 글을 못 쓰는 일은 없도록 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