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소리 32 (판단력이란 무엇?)
너무 긴 글만 쓴 것 같아서 저나 방문해주시는 분들 모두 피곤함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냥 짧은 글 오랜만에 한 번 써봅니다.
공간을 만든다라는 걸 가장 눈에 보이기 쉬우면서 가장 효과적인 건 당연히 어떤 선수가 볼을 잡고 자신의 개인 능력으로 강제로 공간을 만드는 것인데 그걸 할 수 없다고 한다면 그냥 별 거 아닌 횡패스나 대각선 패스 또는 누가 받을 지도 모르는 크로스를 하든 하는 그런 사소한 것들이 결국 필드 플레이어 10명 중 누군가는 프리한 상황에 놓일 수 있게 만드는 작업 중 하나고 일부인데 이걸 유의미하게 만들 수 있는 게 바로 판단력입니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하고, 어디로 볼을 내보내야하고, 내보내고 다시 어디에 있어야하는 지 등등...
그렇다면 바르셀로나는 맨날 저렇게 하는데 왜 이렇게 답답하고 발베르데는 왜 맨날 수동적으로 수비를 할까요? 그건 당연히 쓸데없이 볼이 돌아가고 있는 비율이 높다는 거고 지금 바르셀로나에 이런 판단력이 좋은 선수들이 기존에 비해 적어졌다는 뜻이겠죠?
그럼 반대로 이런 판단이 좋아서 볼이 어디에 있어야 하는 지를 잘 아는 선수가 일정 숫자를 넘어서서 필드 위에 있다면 당연히 스쿼드 구성이 조금 떨어지더라도 분명히 이런 답답함이 덜하겠죠. 이니에스타가 없을 때 한쪽에 엄청 쏠려있는 바르셀로나의 측면 투자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기복의 폭을 챠비를 위시로 해 알베스, 메시가 어떻게든 줄여줬던 것처럼.
활동량도 똑같아요. 무작정 많이 뛰는 게 장땡이 아니고 판단력이 조금 떨어지거나 월드 클래스가 아니라면 점점 강해지는 대응책을 마주했을 때 쪽도 못 쓰고 질테니까 당연히 그만큼을 더 뛴다에 가깝습니다. 그만큼 더 뛰면서 팀의 동선을 효율적으로 잡아주는 건 감독이 할 일이구요. 근데 저런 판단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은 팀이 뛰기도 많이 뛰면 훨씬 더 압도적이겠죠. 우리가 기억하는 역대급 팀들처럼.
그래서 왜 경기보다보면 똑같이 11km를 뛰어도 어떤 선수를 보고는 쟤가 저 정도나 뛰었다고? 헛소리하고 있네라고 하게 되고 또 다른 어떤 선수를 보고는 11km밖에 안 뛰었다고? 더 뛴 것 같은데라고 하게 되는 거죠.
왜 세스크는 바르셀로나로 넘어온 이후 맨날 10.5km 전후로 뛰어댕겼는데 정작 팬들이 보면 쟨 대체 왜 안 보이는 거야? 하는 경기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그가 나가고 들어온 라키티치는 10km도 안 뛴 경기가 있어도 대부분의 팬들이 대부분의 경기에서 진짜 심장이 터질 정도로 뛰어다니네 하잖아요.
메시도 그냥 맨날 7~8km 뛰는데 어느 날은 아예 있는 지도 모를 정도로 부진한 경기가 있는 것처럼요.
다른 거 다 떠나서 지금 바르셀로나의 구성 자체가 위에서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런 판단력을 필드 위에서 시시각각 최대한 실수 없이 하면서 볼을 상대 박스에 가깝게 돌게 만들면서 상대 수비 대형을 움직이게 만드는 선수가 지금 바르셀로나에는 별로 없어요. 그래서 굉장히 뻔한 팀이라는 거고 점점 레벨이 올라가는 토너먼트로 접어들면 더 강한 대응책을 마주하게 될텐데 그래서 한계가 있다는 거구요. 이걸 가장 빠르게 해결하기 좋은 건 메시와 반대되는 위치에서 개인 능력으로 강제로 공간을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쿠티뉴와 뎀벨레를 왼쪽에 쓰는 거죠. 근데 지금 바르셀로나에는 이 뻔함을 뻔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선수가 딱 한 명 있어요. 그게 메시입니다. 분명히 이걸 할 것 같으면서도 어쩌다 다른 걸 하는데 그 다지선다를 걸어대는 선수가 메시니까 진짜 그것밖에 할 게 없을텐데 하다가도 갑자기 당하는 거죠.
발베르데가 현실적이라는 소리를 듣는 건 이름값을 배제하고 스쿼드를 냉철하게 판단해 한계를 이미 그어놓고 전혀 바르셀로나스럽지 않은 축구를 한다는 뜻이구요. 유일하게 갖고 있는 메시의 공간을 보장해주는데 그 어떤 감독보다 심혈을 기울이는 것만 봐도 그는 쫄보나 중위권 감독의 마인드를 가진 감독이 아니라 눈썰미 자체는 좋다는 뜻이겠죠. 대신 바르셀로나 정도 되는 팀을 응원하는 팬들이 원하는 기대치를 일정 부분 만족시켜주면서 하지 못하는 게 문제일테구요.
그가 펩과 닮아있다는 건 이런 부분이고 이걸 통해서 드러나는 기용 방식 (말콤이나 보아텡만 봐도 알 수 있음) 에 있어요. 대신 차이점이라면 펩은 그래도 팀의 한계를 절대로 선을 긋지 않는다는 건데 발베르데는 펩과 반대로 그 판단 자체가 너무 이르거나 현실적이라는데 있겠죠. 그가 좋은 스쿼드를 물려받았다면 오히려 펩과 가장 유사한 모습을 보였을 수도 있겠다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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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도 아니고 까는 것도 아님~ 막상 쓰고보니 그렇게 짧은 글은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