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소리 33 (유베 v 알레띠 적당한 감상평)
알레띠는 필리페 루이스랑 토마스 파티가 없는 게 굉장히 티가 나긴 났네요. 로테이션 (전 경기 로테 돌렸다고 하는데 사울, 그리즈만 말고 하나도 안 돌렸습니다. 그냥 쓸 선수가 없었던 거라 로테 돌린 것처럼 보인 거임...) 을 별로 돌리지 않고 최대한 선수들의 체력 리듬을 끌어올려서 거기에 의존하는 편인 시메오네를 봤을 때 기존 선수들의 기량을 믿고 최대한 땜빵식으로 할 가능성이 높아보이긴 했는데 생각보다 그게 잘 되지 않았다는 게 첫 번째 패배 요인.
두 번째 패배 요인은 선수들이 부상이든 경고 누적이든 뭐든 일단 너무 없어서 교체 카드 자체가 너무 뻔했다는 것도 있겠지만 위에서 얘기한 플랜 자체가 꼬였다는 걸 너무 늦게 인정했어요. 대처 자체가 너무 늦었죠. 오늘 유벤투스가 알레띠의 측면이 평소랑 다르다는 걸 정말 잘 이용했는데 그냥 늘상 해오던 그대로 계속 했습니다. 측면으로 볼을 유도해서 1대1, 2대1, 2대2 를 강요하고 크로스를 유도하고 박스에서는 유베가 3명 밀어넣으면 5명, 4명 밀어넣으면 6명 이런 알레띠가 늘상 해오던 대처 그대로. 그게 잘 안 되고 있다는 걸 눈으로 본 순간부터 뭔가 좀 과감한 조치가 바로 들어갔어야 했는데 결과론에 가깝겠지만 너무 늦었던 것 같아요.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들어갈 선수가 너무 뻔해서 망설였다고 볼 수도 있긴 하지만 대형 자체라도 바꿔보던가. 동선이라도 정리해주던가 했어야하는데 그런 것도 없었고 장지현 해설이 두 팀 다 연장 가는 걸 원하지 않는다고 하시던데 제가 보기에 알레띠는 연장을 원했습니다. 의도한 방향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는다고 했을 때 시메오네가 늘 택하는 게 에너지 레벨로 싸우면 우리가 이긴다인데 정작 유베가 오늘 에너지 레벨에서도 90분 동안 밀린 적이 한 번도 없음. 순간적으로 오버 페이스로 땡길 때도 앞섰고 조절할 때도 앞섰음. 오히려 알레띠는 평소보다 더 못 뛰었죠.
세 번째는 두 번째 패배 요인을 알면서도 냅둔 시메오네를 꼽고 싶음. 심지어 첫 번째 패배 요인도 결국 감독의 실책에서 따라오는 부분이었으니까. 제가 봤을 때 알레띠는 충분히 좋은 팀이지만 중요한 순간에 자신의 팀 컬러가 아닌 다른 무언가를 잘 못해요. 오히려 평소보다 더 수비적인 방향성으로 풀어나가다가 한 방 얻어맞으면 자멸하거나 뭐하는 건가 싶을 정도로 엉망진창이 되버립니다. 오늘 경기도 딱 이거 그 자체였음. 개인적으로는 15-16 시즌 챔스 결승 다시 보는 것 같았네요.
네 번째는 르마, 코레아, 로드리, 모라타인데 책임을 나열해보면 코레아 > 모라타 > 르마 > 로드리 정도? 코레아는 뭐 머리통이 빈 게 아닌가 싶은 반칙을 했으니 말할 것도 없고. 이 중 모라타는 진짜 얘가 아직도 빅 클럽에 있는 게 신기한 게 경합 자체를 피하거나 해도 잘 못 이깁니다. 성향 자체가 그런 몸싸움을 싫어하는 건지 뭔지 모르겠는데 아무리 봐도 좋은 선수가 아니에요. 오늘은 더해서 키엘리니의 쓸데없는 도발에 지 혼자 넘어가서 한창 공격 전개 중인데 소유권 넘겨주고 별 짓 다 하던데... 제가 감독이었으면 진짜 축구화로 싸대기 한 대 후렸을 것 같음. 게다가 바르셀로나와 겨울에 루머날 때도 전술적 제한이 엄청 많은 포워드라고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알레띠는 나머지가 못할 때 다른 팀들보다 훨씬 더 포워드들이 기를 쓰고 경기를 붙잡고 가야하는 팀이라는 건데 안 풀릴 때는 이만큼 안 맞는 선수도 찾기 힘들 것 같네요.
로드리는 왜 부스케츠랑 닮았다고 하는 지 잘 몰랐는데 오늘 경기로 확실하게 알았음. 할 게 많아지니까 부스케츠가 못할 때랑 굉장히 유사하네요. 그리즈만도 다 좋은데 안 풀릴 때는 뭔가 반전시켜주기보다는 한없이 못할 때가 가끔 있는데 그게 오늘이었음.
개인적으로 변수가 많아지든 적어지든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우승 후보로 봤는데 여러 가지 요소들이 올라갈만한 팀은 아니었다는 걸 여실히 보여준 셈.
반대로 유베의 승리 요인을 살펴보면 이런 알레띠의 측면이 분명히 1차전과 다르게 고장이 났을 것이라는 알레그리의 진단이 완벽하게 먹혀들어갔죠. 오늘 유베가 크로스를 거의 40번 가까이 갈겼는데 성공률이 30퍼 정도 됐습니다. 그만큼 잘 갈겼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1차적인 불확실한 볼에 대한 경합 능력이 좋았다는 거고 2차적으로 루즈볼 경합도 좋았죠. 슈팅 자체를 많이 했으니까요. 볼 자체도 빠르게 돌았고 횡으로도 방향 전환이 되게 잘 됐습니다.
거기다 동선 정리가 꼬일 때마다 알레그리가 기가 막히게 바로바로 다 잡아줬음. 준비성 자체가 남달랐다는 소리고 알레띠를 굉장히 잘 분석했다는 느낌을 받았네요. 그에 맞춰서 선수 기용 자체가 너무 좋았어요.
두 번째는 피야니치를 꼽고 싶습니다. 피야니치가 오늘 그렇게 패스 성공률이 좋은 편은 아니었는데 왜 바르셀로나가 로마에 있을 때부터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하고 노렸는 지를 알 수 있을 정도로 볼의 방향 전환을 잘해줬습니다. 심지어 롱패스나 크로스 자체가 시도가 많았어요. 근데 성공률도 엄청 좋은 편이었고 구성 자체가 어색한 편이었던 알레띠를 곤란하게 만드는 데 있어서 거의 일등 공신이었다고 확신합니다. 볼을 발에 붙여서 전진을 한다던가 이런 건 별로 못하는데 판단력 자체는 기가 막히다 싶은 게 많았네요.
(피야니치 이번 경기 패스맵. 빨간색 - 패스 미스, 초록색 - 패스 성공, 노란색 - 키패스)
세 번째는 호날두죠 뭐. 확실히 대단한 선수는 대단한 선수입니다. 경기 집중력도 남다르고 발 쓰는 건 이전에 비해서 확실히 많이 내려왔고 활동 범위 자체도 메시와 비슷하게 종횡으로 넓은 범위를 움직이던 과거에 비해 엄청 좁아졌는데 헤딩 타점이나 포지셔닝은 여전하고 다른 것보다 볼의 흐름을 보는 것 자체는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것 같네요. 그래서 선수 자체가 조금 더 효율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알레그리가 써먹는 거 보면 오히려 페레즈나 레알 마드리드가 조금 이른 판단을 한 게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음.
오늘 경기를 통해서 가지기 시작한 희망은 그리즈만이 한계를 느끼고 떠날 마음을 가질 수도 있겠다라는 거. 뭐 그리즈만이 오늘 잘한 것도 아니고 자책할 수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알레띠 팬들은 원하지 않는 시나리오겠지만 바르셀로나가 좋은 성적을 낸다고 한다면 마냥 가능성 없는 얘기는 아닐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시점이 흔들기 딱 좋은 시점이기도 하구요. 알레띠 팬분들에겐 욕먹기 딱 좋은 소리긴 하지만 팬심 살짝 담아서 다시 희망 좀 가져보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