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otball/Writing

잡소리 127 (맨체스터 시티 이야기)

다스다스 2019. 12. 9. 05:10



펩은 조금 아쉬운 게 자신의 야심찬 시도나 시즌의 승부수가 안 먹힐 때 기용 방식이 경직되거나 축구 내적인 것들이 고집스러운 모습으로 이어지는 게 있어요. 뮌헨을 거치고 시티에 오면서 감독으로서의 모습이 정말 노련해지고 달라지긴 했는데 이런 건 처음 퍼스트 팀 감독을 했던 바르셀로나 시절과 비교했을 때도 하나도 안 변했음.




일단 이 얘기를 하려면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시즌을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 축구 내외적으로 바르셀로나의 최적의 카드로 기대를 받으면서 입성한 세스크의 기용 방식이 실패했다는 걸 몇 개월을 인정을 안 하다가 결국 중요한 순간에 2연타를 맞고 리가는 마드리드에게 준우승 확정 선고를 받고 챔스에선 첼시한테 물을 먹었었죠. 진작에 인정하고 변화를 한 번 더 가져갈 기회가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는 건 저 시즌 전에 3년 간 보여온 펩의 모습을 생각해봤을 때 되게 아쉬운 행보였어요. 물론 인정과 변화를 한다고 리가 역전에 성공하고 챔스 우승을 했을 거라는 얘긴 아닙니다. 그냥 그런 시도 자체가 없었다는 게 아쉽다는 뜻이에요.



그 때 1월 즈음부터 세스크의 동선이 이니에스타와 메시의 효율을 망가뜨리고 있다는 걸 웬만한 전문가들이나 팬들은 다 지적하고 있었는데 펩은 4월까지 그걸 포기를 못했었어요. 내부를 훤히 들여다보고 있는 감독의 입장에선 한끗 차이로 안 되고 있다는 그 생각이 엄청 크게 다가왔을 수도 있겠지만 세스크가 넘나드는 그 동선은 그 시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 포함된 동선이었고 그 지점에서 반드시 해줘야 할 역할을 세스크가 못해주니까 측면 (+이니에스타, 챠비) 의 책임감은 전 시즌에 비해서 단순 몇 미터를 더 전진했다는 걸 넘어서서 과도할 정도로 올라가 있었고 결국 그 측면의 부담을 줄이려고 메시 의존증은 다시 올라가는 아이러니함을 마주하고 있었죠.




지금 시티는 저 시절 바르셀로나처럼 인정을 안 하거나 고집을 부린다는 쪽보단 펩이 상황을 계속 타협해가다가 결국엔 그걸 어느 정도는 포기하고 스쿼드 내에 곧 죽어도 믿을만한 선수들을 기용하는 쪽으로 기용 방식이 경직되고 있는 쪽에 가깝습니다. 뭘 해도 생각대로 잘 안 되니까요. 굳이 끼워맞추자면 로베리의 이탈을 뭔 짓을 해도 막을 수 없었던 뮌헨 시절과 조금 더 유사하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전 이번 시즌 펩이 승부수를 던진 시즌에 가깝다고 보는데 이게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사실 그 동안 바르셀로나나 뮌헨에서 보여온 펩의 행보를 봐보면 3년차는 늘 이론적으로 시도하던 모든 것들을 현실적으로 판단하고 승부수를 던진 시즌이었거든요. 전 그래서 시즌 전부터 시티는 조금 기대를 한 편이었습니다. 펩은 감독으로서 분명 변하긴 했지만 원칙주의자 같은 모습은 여전하다고 보기에 이런 큰 틀에서의 판단은 바르셀로나나 뮌헨에서 보여온 행보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진 않았거든요.



이번 시즌 펩은 측면 풀백들의 책임감은 크게 주지 않되 양 센터백에게 넓은 공간을 커버하고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을 지시하면서 양 측면 포워드들을 역발로 배치하면서 측면도 잡고 가면서 데 브라이너를 비롯한 미드필드들의 능력을 더 활용하기 좋은 배치를 적극 활용하려는 모습을 시즌 초에 보여줬는데 라포르테는 누워버렸고 로드리는 몸 상태가 아슬아슬한 상태고 기막힌 모습을 보여주던 베르나르도 실바와 스털링은 그 모습에 비해서 확실히 내려온 상태죠. (이게 관리의 실패인 지 아니면 다른 변수들이 있는 지는 제가 시티 사정을 절반도 몰라서 굳이 얘기 안 하겠습니다.)



그래서 펩은 마레즈 (측면) 와 귄도간 (미드필드) 등을 포리바렌테로 기용하면서 이 선수들이 선발이나 교체로 들어갈 때 나머지 선수들의 동선이나 배치 변화로 인한 전술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데 이 마저도 잘 안 되고 있습니다. 이러면서 중간중간 기존 전술까지 끼워넣고 있는데 다 잘 안 되고 있어요. 오히려 개인 기량으로 해결해나가는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죠. 온 더 볼 비중이 팀 내에서 높았던 선수들은 평소보다 더 높아지고 있고 평소에 받아야 할 책임감에 비해 더 많은 책임감을 받고 뛰는 선수들 역시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게 공수 양면에서 다 보이고 있어요. 그 와중에 제수스 같은 선수들은 재능의 크기가 분명히 기대하던 정도의 크기는 아니라는 게 까면 깔수록 드러나고 있고.



시티는 저번에도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이 팀의 공수 양면에서의 핵심은 측면을 얼마나 상대를 뒤로 밀리게 하면서 제압하고 동시에 어느 지역에서든 우리가 얼마나 수적 우위를 점하냐 (압도적이면 압도적일수록 좋음) 입니다. 지금 이게 안 되면서 동시에 간격이 어느 쪽은 지나치게 좁고 어느 쪽은 지나치게 넓고 대형은 깨져있는 경우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어요. 데 브라이너 같은 경우는 요즘 경기 보면 진짜 말도 안 되는 수준으로 종횡을 넓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런 하나하나를 잘 들여다보면 공수 양면에서 흔들리는 게 예사롭지는 않은데 펩이라면 분명히 계속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긴 할 거고 어떤 식으로든 정비가 되는 시기가 오긴 올텐데 그 시기가 이른 시기에 오지 않는다면 꽤나 위험할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좌 - 이번 맨유 전 데 브라이너 패스맵. 우 - 이번 맨유 전 데 브라이너 히트맵. 초록색 - 패스 성공, 빨간색 - 패스 미스. 노란색 - 어시스트 및 키패스)



뭐 바르셀로나 팬이 시티 걱정하는 게 웃기긴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재밌게 보고 있었던 팀이라서 한 번 얘기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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