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대가 맞아떨어져서 보긴 했는데 오늘 경기로 투헬한테 뭔가 얘기하기엔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구요. 아무리 부임 전에 비디오 분석하고 머릿 속에 뭔가 그려봤어도 오늘 경기에서 나타나기엔 시간 자체가 없었다고 봅니다. 그냥 오늘 경기는 몇 가지 짚어보는 정도로 글을 써볼까 하고 몇 경기 더 보고 기회 되면 한 번 더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울버햄튼 먼저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전 이 팀 볼 때마다 느껴지는 게 감독이 수동적인 축구에 알맞는 스쿼드를 원하는 것 같고 선수들도 그에 맞게 동선이나 역할이 고정되어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물론 제가 이 팀 경기를 본 횟수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 확신은 못하겠는데 볼 때마다 이 느낌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앞선에는 빠릿빠릿하게 움직일 수 있으며 때로는 개인 기량으로 혼자서 아니면 많아봐야 두세명이서 해결할 수 있는 선수들을 깔아놓고 (전방에서부터 뛰어야할 땐 빠르게 뛰어줄 수도 있고) 측면에는 경합에 강하며 직선이나 열려있는 공간으로 냅다 뛰어갈 수 있는 선수들을 깔아놓고 후방이나 중앙에는 신체 능력이 좋거나 몸 자체가 단단한 선수들을 많이 박아두고. 뭔가 적정선을 찾아서 조절하면 꽤나 효율적이고 까다로운 팀이 될 것 같은데 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긴 하겠죠.
위험 지역 (보통 박스 근처 가까운 지점부터 위험 지역이라고 판단하겠죠. 두 줄 수비를 예시로 하면 앞에 줄 사이사이에서 볼이 움직일 때) 에서 볼이 돌아가는 게 아니면 강한 압박 자체를 안하는데 더 나아가서 상대 선수들 중 온 더 볼이 좋거나 수비수들 사이사이에서 볼을 받아서 바로 처리할 수 있는 선수가 있는 게 아니면 패스 방향을 유도하는 압박 이상의 압박은 하지 않습니다. 근데 이게 어느 한 방향으로 몰아서 거기서 볼 탈취를 하기 위한 그런 유도라기보단 위험하지 않은 지역에서 볼이 돌아가게끔 하는 그런 압박이랄까. 첼시가 전반전에 볼을 네 배도 넘게 더 굴렸는데도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았던 게 하프 라인을 살짝 넘어간 지점에서만 볼이 계속 돌았죠.
이제 첼시를 보죠. 첼시는 스쿼드 내에 있는 선수들 대다수가 죄다 오프 더 볼이 중간에 섞이거나 오프 더 볼이 훨씬 많아야 합니다. 지독한 온 더 볼 성향은 커녕 온 더 볼 비중을 높게 가져가는 선수 자체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퍼스트 터치가 엄청 좋거나 양 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선수가 있는 것도 아니죠. 그래서 상대가 내려앉아버리면 답답해질 수밖에 없어요. 사실상 지금 낼 수 있는 해결책은 누군가가 중심축이 되어서 패스가 한 쪽 방향으로 쏠리더라도 최대한 빠르게 돌아가야한다는 건데 전반전에 이게 잠깐 보였죠.
지예흐가 이번 경기에선 사실상 저 중심축이었다고 보는데 지예흐는 주발 의존도가 너무 심해서 쓸데없이 많이 뜁니다. 계속 두리번 거리면서 자신이 왼발로 플레이하기 편한 곳으로 움직이는데 굳이 안 움직여도 될 것 같다고 생각될 때도 그냥 계속 움직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되게 영리한 건데 또 어떻게 보면 비효율적인 거죠. 중요한 건 매 경기 이렇게 뛸 순 없습니다. 그리고 이게 때론 독이 되서 오히려 속도를 죽이거나 간격이나 대형을 깨버리는 경우도 있다고 보구요.
지금 가장 앞선에서 뛰는 지루나 타미도 한 명은 넓게 움직이면 하나의 플레이 이후 다음에 아예 관여를 못하고 한 명은 넓게 움직일 순 있는데 엄청 헤맵니다. 코바치치나 조르지뉴도 이런 쪽으로 도움이 되는 선수들이라고 보기엔 무리라고 보고 (실제로 얘네 둘이 포지셔닝 이상하게 잡아서 중앙이 텅 비어있는 경우도 있었죠.) 다음 경기부턴 마운트를 적극적으로 쓰려고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 이 선수가 지금 첼시가 가진 미드필드 중 가장 넓게 뛸 수 있으면서 동료들을 보조하는데 적합한 선수라고 보거든요.
하베르츠는 몇 번을 보고 생각해봐도 모든 플레이를 투터치 안에 해결할 수 있는 판을 만들어줘야할 것 같아요. 레버쿠젠 때 어떻게 뛰는 지는 본 적이 없어서 모르겠는데 첼시 오고나서 본 경기들을 보면 터치가 길어지면 볼이 발이랑 무조건 떨어집니다. 아무리 봐도 이걸로 슈팅과 패스란 이지선다로 페이크를 넣으면서 뛰는 거 같은데 지금 같이 상대가 좌우 간격이 좁고 중앙에 다 박혀있으면 사실 패스를 넣을 기회가 별로 없죠. 넣어도 어디로 줄 지가 뻔하기도 할테구요.
오도이는 개인적으로 지금 구성에선 전술적 변형의 일환으로 쓰이는 게 맞다고 보는데 그럼 아마 선수 본인이 불만이 나오겠죠. 결국 교체로 뛰거나 선발로 뛰는 비중은 적다는 소리니까요.
투헬이 앞으로 훈련을 하면서 선수들을 파악해나갈텐데 감독이 그림을 어떻게 그리느냐에 따라서 좀 달라질 여지는 있다고 봅니다. 대략적으로 어떻게 해야하는 지는 전반전에 잠깐이나마 보였다고 봅니다. 모두가 볼을 만지되 최대한 터치 수를 줄이는 쪽으로 하면서 동선 정리를 해야겠죠.
글 마무리 하는 도중에 바르셀로나가 라요한테 먹혔네요.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