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09-10 시즌 챔스 4강이 아쉬울만한 게 결승전이 열리는 장소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였습니다. 1차전 화산재 여파로 박살나고나서 (버스만 13시간인가 14시간 탔을 거에요. 가물가물하네요. 이것도 벌써 10년이 넘었음.) 2차전 전에 바르셀로나 공식 홈페이지에서 이메일도 돌리고 글까지 쓰고 그랬었습니다. 와서 응원해주고 선수들에게 힘을 달라고.
2차전 하기 전 경기가 아마 엄청 약팀하고의 경기였을 건데 평소보다 더 많은 관중들이 와서 응원도 장난 아니게 하고 그랬어요. 선수들도 그 경기 후에 챔스 결승에 대한 열망을 관중들에게 보여줬었고.
바르셀로나 팬들에게 산티아고 베르나베우가 가지는 의미는 상당하죠. 특히 현지 팬들 입장에선 단순히 축구로만 끝나는 문제가 아니기도 하구요. 96-97 시즌 바비 롭슨이 감독으로 있을 때, 호돈 있을 때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 베티스 꺾고 우승했을 때 경기장이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였는데 우승 후 셀레브레이션에서 사람들이 미친 듯이 좋아하죠. 이 때 무링요의 기가 막힌 발언도 있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뭐 이딴 놈이 있나 싶긴 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언제나 내 마음은 바르싸와 함께할 것입니다.' (이거 말고도 99-00 시즌 챔스 8강 첼시랑 할 때 골 넣으니까 진짜 미친놈처럼 좋아하는 것도 있음.)
코파 델 레이는 핑계를 대면 벗어날 수 있는데 (실제로 콘서트 일정이 잡혔다. 공사해야한다. 등등으로 바르셀로나 요청을 다 벗어났죠.) 챔스는 결승 장소로 정해지면 바뀔 일이 없으니까 절호의 기회인데 한끗 차이로 떨어졌으니 제일 아쉬울 수밖에요. 무링요가 베르나베우에 대한 집착이 탈락 요인 중 하나라고 그런 것까지 하면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이 시기에 챙겨보신 분들은 다 이 때 떨어진 걸 1순위로 꼽을 거에요. 보얀 골 들어갔을 때 진짜 이니에스타가 첼시 전 골 넣었을 때처럼 미친듯이 소리 질렀는데 핸드볼 파울로 취소 되고 돌아버리는 줄 알았음.
루쵸도 예전에 그랬죠. 자신한테 온갖 쌍욕을 하고 쓰레기, 오물 같은 거 던지는 경기장에서 이기는 것만큼 기분 좋은 게 없다고. 바르셀로나 선수로서 가장 흥분되는 경기라고도 했었죠. 뭐 지금은 그 정도로 격하진 않지만 어쨌든 여전히 베르나베우와 엘 클라시코는 바르셀로나에겐 남다른 의미가 있죠.
2. 페드리를 어떤 과정으로 스카우팅 했는 지는 모르겠지만 포워드도 파티가 나왔다고 안심할 게 아니라 (파티 역시 지금 부상 여부를 떠나서 재능의 크기를 판단하기엔 적절한 기용 방식 아래에서 더 많은 경기를 뛰어야한다고 봅니다.) 몇 가지 가이드 라인을 정해놓고 파봤으면 좋겠네요. 개인적으로 뎀벨레를 지금도 별로 높게 안 보는 게 큰 틀에서 보면 세 가진데 (지금 얘기하는 것보다 조금 더 세세하게 얘기한 건 검색으로 찾으시면 됩니다.)
첫째는 퍼스트 터치의 기복입니다. 단순 퍼스트 터치뿐만 아니라 과정 속에서 터치도 기복이 심한 편이에요. 바르셀로나 같은 경우는 웬만한 팀들보다 더 공간이 안 나기 때문에 첫 터치가 기복이 있으면 볼을 많이 만지면 안 됩니다. 쿠만이 왼쪽 시험을 최대한 미루는 것도 이런 이유가 없을 수가 없죠. 그리즈만도 이거 때문에 전술적 중심으로선 한계가 뚜렷하다고 봅니다.
둘째는 상대의 패싱 방향을 예측하고 움직이는 포지셔닝 (그리즈만이 잘합니다. 신체 능력 멀쩡할 때 메시나 수아레즈도 엄청 잘했고 바르셀로나 시절 산체스도 잘했죠. 지금의 메시는 무조건 방향이 고정되어있을 때만 움직입니다.) 이나 반대로 원투 터치 안에 패스가 나갈 때 정확도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거죠. 요즘에 좀 나아지긴 했는데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구요. 그렇다고 볼을 받고 잡고 지키면서 본인이 속도를 내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웬만하면 멈춰버리거나 스스로 고립되려는 선택지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죠.
셋째는 오프 더 볼이 너무 구려요. 아무리 온 더 볼이 좋은 선수여도 (뎀벨레는 심지어 온 더 볼 좋은 편 아닙니다.) 주변 동료들과 동선이 겹치지 않거나 주변 선수들이 움직이는 것에 따라서 본인이 그에 맞게 움직여줘야 하는 순간이 있는데 그런 게 안 되니까 수비수들을 끌고 다니는 게 생각보다 잘 안 됩니다.
그럼 이제 앞으로 와야될 것 같은 포워드는 딱 그림이 그려지죠. 개인적으로 그리즈만이 있는 동안에는 퍼스트 터치가 좋은 편이어서 다음 동작이 자연스러운 선수가 오는 게 맞다고 봅니다. 파티도 좋은 터치 이후에는 다음 동작이 빠른 편이고 자연스럽죠. 그 덕에 슈팅 타이밍도 상대가 예측하지 못한 타이밍에 나오기도 하고. 여기서 더 나아가서 볼이 발에 붙으면 대박을 칠 확률이 높은데 (여기에 동선까지 측면과 중앙을 넘나들 수 있으면 네이마르 생각 안 나겠죠.) 그런 애 찾는 게 쉬운 일은 아니겠죠. 뭐 근데 이런 애들 남들보다 먼저 찾으라고 돈 받는 거니까요.
3. 바르셀로나의 유스 시스템은 위대하지만 전 이거 철썩같이 믿는 건 되게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바르셀로나 팬들이라면 유스에 미칠 수밖에 없을 텐데 예전에도 한 번 꼬맹이들인가 세르지인가 얘기하면서 썼던 적이 있는데 바르셀로나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가르치는 게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재능의 크기가 큰 선수가 나오는 경우 (심지어 살짝 크기가 애매한 선수도 잘 안 나옴) 보단 밋밋한 선수들이 나오는 경우가 훨씬 높다고 보구요. (오히려 이런 하위 카테고리 코칭은 아약스가 더 잘하는 것 같음.) B팀까지 올라왔을 때 뭔가 특출나보이는 애들도 막상 퍼스트 팀 오면 뽀록나는 케이스도 많습니다. (근래에 아레냐 (지독한 주발 의존도), 푸츠 (지나칠 정도로 장단을 의식한 플레이) 가 대표적이겠죠.) 다른 팀들보다 유독 이런 면이 심한 건 이질적인 면이 강해도 너무 강하기 때문이겠죠.
가만 보면 B팀까지는 기대받다가 퍼스트 팀에서 크게 막혀서 꺾이는 선수들은 다 비슷해요. 매크로 (플레이 패턴) 가 보는 사람 돌아버릴 정도로 심하다던가. 단점이 진짜 몇 경기 안 봐도 바로 보일 정도로 뻔하다던가. 이거 진짜 몇 년이 지나도 그대로임. 이런 과정 속에서 어렸을 때부터 조정을 받거나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면 다른 성장세를 보였을 가능성이 있는 선수도 있었겠죠. 보통 이 과정을 아예 건너뛰는 선수들은 재능의 크기 자체가 얘들하고는 어렸을 때부터 좀 많이 차이가 나는 케이스들이고 그런 선수들은 다 살아남죠. 단점으로 지적되는 것도 저기에 포함되어있는 애들하고는 궤가 다르구요.
개인적으로 퍼스트 팀과 B팀 감독이 멀쩡하다는 가정 하에 B팀 성적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관점이 전 더 맞는 관점이라 생각하고. 오히려 포리바렌테로서의 가능성을 굉장히 이른 시기에 시험해보는 걸 도입하는 게 어린 선수들이 퍼스트 팀에 정착하는데 꽤나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현대 축구의 흐름 자체가 한 명의 전술적 중심 + 특이한 걸 가진 몇 명과 대부분의 보조자 (or 올 보조자) 로 구성되는 형태긴 하고 그렇다면 지금 유스 시스템이 오히려 유리한 부분도 있습니다만 또 외부로 보면 현재 시장 분위기가 재능이 보이면 이른 시기에 돈으로 채가는 쪽에 가까워서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거기다가 바르셀로나는 이런 흔히 말하는 크랙에 가까우면서도 보조자 역할을 성실히 이행하는 선수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본인들이 추구하는 축구에 가까워질 수 있으니까요.
이런 점에서 반 할의 영향을 많이 받은 쿠만이 1년 정도 더했으면 하는 바람이구요. 반 할 같은 경우도 퍼스트 팀에서 올라와서 뛰는 어린 애들한테는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라고 했던 편이죠. 포지션 가리지 않고 바르셀로나, 뮌헨, 맨유에서 다 그랬음. 쿠만은 반 할만큼은 아니지만 비슷한 면은 분명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