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 구트만 (60-61, 61-62 시즌 벤피카의 2연속 유러피언 컵 (챔피언스 리그의 전신) 우승을 이끈 감독, 4-2-4를 널리 퍼뜨린 선구자이기도 함.) 이 했던 말 중에는 이런 말이 있다.
"3년차는 가장 중대한 시즌이다. 3년차는 성공이 아닌 실패를 부른다."
그는 이 말대로 한 클럽에서 3시즌 이상을 보낸 적이 없다. 물론 불화로 인해 쫒겨나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그는 절대로 한 팀에서 3년 이상 보내지 않았다. (물론 3년차는 실패를 부른다는 말은 벨라 구트만이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말한 것이다. 그것이 축구계의 절대적인 진리는 아니다.)
이 정도 얘기를 한다면 뭐? 저 사람이랑 뭔가 비슷한 사람이 있는 거 같은데? 하면서 당신의 머릿 속에 확 떠오르는 사람이 하나 있을 거다. 그렇다. 현재 마드리드를 이끌고 있는 호세 무링요다. 무링요는 감독 커리어를 시작한 이후 3년 이상 한 클럽에 지내본 적이 레알 마드리드 이전까지 첼시 딱 한 클럽이었다. (포르투에선 2년 반을 보냈었다. 3년차의 챔스 우승을 차지했다고 하는데 2년차에 우승을 차지했다고 보는 게 더 바람직한 관점이라고 본다.)
첼시에서도 3년차에는 1, 2년차에 비해 저조한 성적을 거뒀었다. 압도적으로 라이벌 팀들과의 차이를 벌이며 리그 타이틀을 차지하고 승승장구하던 04-05 시즌과 05-06 시즌에 비해 06-07 시즌은 그렇지 못했다. (실제로 첼시는 06-07 시즌 마지막 다섯 번의 리그 경기에서 5연속 무승부를 거두는 성적을 냈었다.) 이후 무링요는 07-08 시즌 중 구단주와의 불화로 경질된다. 인테르에서는 트레블을 이룬 2년차를 마치고, 자신을 선임하지 않았던 바르셀로나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마드리드로 넘어왔다. 그의 행보는 한 팀에 오래 머무르지 않았던 벨라 구트만의 이동과 굉장히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데 3년차 무링요의 마드리드는 첼시 시절의 3년차와 현재까지는 굉장히 비슷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거다. (해당 클럽의 팬들이나 보드진, 구단주 등의 기대치에 비해 낮은 성적을 거두는 것 또는 이전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내고 있다는 걸 의미) 그렇다면 마드리드는 지금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 이전과 같은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는 걸까?
이제부터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1. 베스트 일레븐의 체력 저하
무링요의 마드리드는 10-11 시즌을 시작으로 이번 시즌 전반기가 끝나가는 현 시점까지 기간으로 계산해보자면 두 시즌 반동안 특정 상황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베스트 일레븐을 주구장창 돌렸다. 아무리 선수 관리에 능하다는 무링요라도 인간의 체력적인 한계가 다가오는 건 막을 수 없는 법이다. 게다가 마드리드의 축구는 무지막지하게 많이 뛰면서 압박하고 속도를 살리는 축구다. 누적이란 게 무서운 이유는 그것이 쉽게 회복되지 못하기 떄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자각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갑작스럽게 눈덩이처럼 쌓여 찾아오기 때문이다.
마르셀로가 장기부상을 끊었다, 알론소가 예전같아 보이지 않고 지쳐보인다, 벤제마와 이구아인이 부상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라모스가 부상을 달고 뛰고 있다. 모드리치가 적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호날두는 슬프다. 페페는 또라이다. 등등
최근 마드리드의 소식에는 좋은 소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부상이라는 단어가 웬만해서는 빠지지 않는다. 이 부상들이 연이어 줄줄이 소세지처럼 끊기지 않고 터지고 있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바로 체력이다.
2.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
베스트 일레븐의 체력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 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다. 현재 마드리드만큼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심한 빅클럽은 없을 거라고 단언한다. 벤제마와 이구아인이 빠지자 호날두를 원톱으로 세울만큼 마땅한 대체자가 없는 게 현 마드리드의 실정이다. (무링요는 마드리드에서의 첫 시즌부터 3명의 스트라이커를 두는 것이 팀에게 있어서 가장 이상적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핵심 선수 5~6명이 아웃된다면 마드리드가 아니라 그 어떤 클럽이라도 흔들릴 수밖에 없지만, 마드리드는 그 폭이 다른 클럽들에 비해 더 크다.
주전과 비주전의 격차가 심한 클럽들의 공통점은 핵심 선수들의 체력 관리가 원활하게 되지 못하고, 리스크를 감수하게 되는 경우의 수가 상대적으로 격차가 적은 클럽들에 비해 많아지게 된다. 전자의 예시가 현재의 레알 마드리드라면, 후자의 예시로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티토 빌라노바의 이번 시즌 바르셀로나를 들 수 있겠다.
최근의 경기들을 살펴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카르발료는 더 이상 그 예전의 카르발료가 아니고, 카카는 이미 한참 전부터 상대적 약팀, 여유가 있는 상황 때만 투입되는 선수다. 카예혼은 차이를 만들어낼 수 없는 선수고, 모드리치는 주전과 비주전을 오가지만 아직도 적응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했다. 에시앙은 알게모르게 해주고 있지만, 한 명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주전들의 빈 자리를 잘 메워주던 라쓰와 그라네로는 떠났다.
이것이 현재 마드리드의 현실이다. 베스트 일레븐의 파괴력은 바르셀로나를 고전하게 만들 정도로 강하지만, 그 베스트 일레븐이 무너지면 마드리드는 그 어떤 팀을 상대로 하든지 상관없이 불안한 팀이 되버린다.
3. 똑같은 패턴과 변화를 시도할 수 없게끔 만드는 것들
베티스의 감독인 페페 멜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무링요의 마드리드를 상대로 할 때 경기를 지배하고 볼을 소유하겠다는 마인드로 경기에 임하게 되면 갑작스러운 마드리드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된다. 3명의 선수만이 역습에 참여하는데 그들은 그런 방식으로 여섯 번의 찬스를 만들어냈다."
"마드리드는 공간이 많이 나는 상황에서는 굉장히 위협적이고, 또 그러한 스타일의 축구가 마드리드에게 굉장히 잘 맞는 거 같다. 그들은 그러한 방식의 축구를 해낼 수 있는 상황일 떄는 아무런 문제도 보이지 않는다. 왜냐면 마드리드는 그들이 그러한 방식을 행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는 것을 알고 있기 떄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드리드가 볼을 최대한 많이 소유하게끔 경기의 흐름을 이끌어갔다."
베티스와의 경기에서 마드리드는 67%의 점유율을 기록했음에도 승리를 기록하지 못하고 끝내 패배했었다. 베티스와의 경기뿐만이 아니다. 발렌시아, 헤타페, 세비야, 바르셀로나, 에스파뇰.. 지난 시즌 38경기 동안 4무 2패만을 한 레알 마드리드가 벌써 3무 3패를 기록 중이다. 라이벌인 바르셀로나는 15승 1무다. 승점차는 전반기가 끝나가는 시점인데도, 5개월이 더 남은 시점인데도 13점차다.
그렇다면 마드리드는 왜 갑자기 이러한 하락 곡선을 그리고 있는 걸까. 마드리드는 벌써 두 시즌 반동안 4-2-3-1 포메이션을 기본 바탕으로 역습과 지공을 겸하는 전술/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웬만한 팀들은 이제 마드리드의 패턴을 꿰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시즌의 몇 번 효과적으로 먹혔었던 수비수를 한 명 줄이고, 공격수를 한 명 더 투입해 4명의 공격수를 기용해 역전이나, 득점을 노리는 전술도 이번 시즌에는 단 한 번도 먹힌 적이 없다는 게 이것을 증명해주고 있다.
뻔하디뻔한 축구를 계속해서 하고 있다는 소리다. 그럼 무링요라는 명장이 자신의 팀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왜 현재 이러한 상황을 겪고 있는지 모르고 있을까? 아니다. 그도 분명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현실은 FM이 아니다. 자신의 원하는대로 모든 것을 순간순간 바꿔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변화는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발판이 있어야 시도할 수 있는 거다. 마드리드에게는 현재 그러한 발판이 없다.
왜 마드리드가 이번 시즌 에시앙과 모드리치 보강만을 성공하고 이적시장 문을 닫았을까? 그들이 원하던 영입이 애초에 그 둘이었을까? 대답은 확실하게 말하건데 NO다.
그 둘밖에 영입할 수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카카와 라쓰 그리고 카르발료다. 고액 주급자를 내보내지 않고 계속해서 팀의 새로운 스타를 영입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그러한 무리한 이적 정책으로 파산까지 또는 파산 직전까지 가는 클럽들을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수도 없이 봐왔다. 리즈가 그러했고, 도르트문트가 그러했으며 그리고 라치오도 그러했다. 마드리드 또한 그들과 비슷한 결말을 맞이할 거라는 것은 아니지만 어쩄든 계속해서 불어나는 이적료 거품을 감당해내기 위해서는 자금을 마련하는 게 우선 임무다. 파이낸셜 페어 플레이가 의도한 것이 그거고, 마드리드는 더 이상 갈락티코 때처럼 무리하게 이적료를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기 위해서 마드리드는 일차적으로 카카라는 고액 주급 대상자를 정리해야 했는데 그들은 이번 이적시장에서도 카카를 처리해내지 못했다.
또한 카르발료는 영입이 아닌 임대를 원하는 클럽들이 대다수였으며, 에시앙의 임대는 라쓰가 막바지에 나가버리는 바람에 이뤄진 뜬금 임대였다. 무링요가 온 이후로 이전과 다르게 효과적인 영입만을 실행해왔던 마드리드의 이적 시장 행보들을 봐본다면 이번 시즌 이적시장은 그들의 의도대로 풀렸던 이적시장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는 이적시장이었다.
결국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던 기회는 변화를 주기 전에 우선적으로 처리해야할 잉여 자원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하지 못한 덕분에 날아가버렸다.
4. 몇몇 선수들의 기복과 부진
외질과 디 마리아가 가장 대표적인 선수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시즌 초반 외질의 부진은 마드리드가 승점을 잃어나갔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고, 현 시점에 핵심선수들의 줄부상 이어지는 판국에 더더욱 흔들리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는 디 마리아의 부진이다. 물론 이 둘만 못하고 있다는 소리는 아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현재 마드리드는 호날두를 제외한 나머지가 다 못하고 있다고 본다.
바르셀로나가 메시 원맨팀이 아니듯이, 마드리드 또한 호날두 원맨팀이 아니다. 그를 받쳐줄 수 있는 선수들이 부상으로 인해 빠지기 시작하고, 부상이 아닌 선수들은 기복이나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로 부진하니 팀이 제대로 돌아갈 리 만무하다.
5. 세트피스에서의 계속되는 실점
말할 필요도 없다. 지난 시즌부터 지적되어온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실점은 이번 시즌에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의 실점만 따로 기록해도 마드리드는 꽤나 높은 실점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한다. 기자들도 무링요에게 계속해서 이와 관련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링요는 이 부분에 관하여 대답하지 않는다. 항상.)
6. 결론
마드리드는 현재 핵심선수들의 줄부상과 몇몇 선수들의 기복과 체력 문제, 정형화된 패턴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들로 좋지 않은 흐름을 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벨라 구트만이 말했었던 '3년차는 성공이 아닌 실패를 부른다.' 라는 것은 현재의 마드리드에게 적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정도로 마드리드는 기대치에 어울리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현재 25경기에서 15승 5무 5패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것은 지지난 시즌과 지난 시즌 이 맘때쯤의 성적과 비교해보면 처참할 정도다.
08-09 시즌 마드리드는 슈스터 아래에서 바르셀로나와의 승점차가 12점차까지 벌어졌었던 적이 있었다. (슈스터는 당시 엘 클라시코를 앞두고 레알 마드리드가 진 거나 다름없다는 뉘앙스를 뿜다가 경질 당했었다.) 슈스터의 후임으로 임명되었었던 후안데 라모스는 지독하게 쫒아 4점차까지 차이를 줄였었다. 물론 엘 클라시코에서의 2-6 패배로 그들은 해당 시즌에 리그 우승을 거머쥐지 못했었다. 반대로 지난 시즌에는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가 이러했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바르셀로나가 리그 우승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은 누가 봐도 확연하게 보이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 그들은 일반적인 상황에서 리그 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라는 팀을 상대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여긴 프리미어 리그도 아니고, 분데스리가도 아니다. 한두 경기만 져도 리그 우승을 날라갔다고 팬들이 불안해하기 시작하는 라 리가다. 08-09 시즌부터 이어져온 두 팀간의 기이한 경쟁은 후반기 엘 클라시코가 핵심이었고 우승을 사실상 확정짓는 경기였다.
바르셀로나는 최소한 그 때까지는 마드리드와의 차이를 계속해서 벌리려고 노력해야한다. 아무리 앞서있다해도 말이다. 또, 마드리드가 그 때까지 바르셀로나를 얼마나 쫒아올 수 있을 지 예상하고 지켜보는 것도 라 리가의 우승 경쟁을 지켜보는 또 다른 재미로 작용하지 않을까?
──
'Football >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라면 머리 형님의 인터뷰 (0) | 2013.01.03 |
---|---|
티토 빌라노바 (0) | 2012.12.19 |
왜 위대한 팀들은 종말을 고하는 것일까? (0) | 2012.12.15 |
이니에스타 "축구는 과학이 아니다." - Part 2 (0) | 2012.11.12 |
이니에스타 "축구는 과학이 아니다." - Part 1 (0) | 2012.1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