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인 방향성을 필드 위에 선보이며 현대 축구가 가야할 길을 제시한 대표적인 유럽 팀들)
현대 축구라는 걸 쉽게 정의하면 누가 더 팀으로서의 유기적인 구조와 체력 리듬을 90분 내내 동일하게 또는 일정 시간 동안 순간적으로 오버 페이스를 해도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게 조절해낼 수 있느냐의 싸움임과 동시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싸움입니다. 결국 이것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이론이 토탈 풋볼이라는 이론이니까 현대 축구는 크루이프와 사키의 영향력을 안 받을 수가 없다는 뜻이구요.
상대의 공간을 내 공간으로 만들기 가장 좋은 곳은? 양 측면. 그러니까 측면이 중요하다고 얘기하는 것이구요.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순수한 정발 윙어들의 가치가 떡상하고 있는 건 절대 우연이 아님.
60년대부터 얘기하자면 너무 길어지니까 아리고 사키가 등장했던 80년대 후반부터 얘기를 해볼게요. 그래도 길어질 것 같은데 아무튼 70년대에 등장한 아약스나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은 분명히 전 세계를 경악하게 할만큼 낭만적인 이론이었지만 굉장히 무질서하고 아무나 할 수 없는 전술이었습니다. 네덜란드 조차도 아약스 선수들이 아니면 힘들어했을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80년대 당시 최고의 수준과 인기를 자랑하던 이탈리아는 여전히 카테나치오를 위시로 한 수동적인 수비 방식의 축구가 여전했고 이걸 깨뜨린 건 다름 아닌 신발 공장에서 일하던 그저 축구를 즐기던 아마추어에 불과했던 한 이론가였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아리고 사키죠.
사키가 축구계에 던진 해답은 이거였습니다.
(그림 죄송...)
모두가 간격을 유지하고 대형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자신의 구역에 대한 역할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질서있게 압박을 할 수 있으며, 수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다는 거였죠. 그래서 사키는 당시 유행하던 3-5-2 라는 포메이션보다는 4-4-2 가 훨씬 더 좋은 포메이션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압박이란 건 사실 굉장히 범위가 커보이지만 상대에게 공간이나 시간적으로 여유를 주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게 하는 수비 방식입니다. 근데 그걸 높은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전환해서 할 수 있고 볼을 되찾아왔을 때 그대로 박스 근처나 박스를 공략할 수 있다면?
그래서 사키는 필드 위에서 넓게 훈련을 하기보다는 좁은 방을 제작해서 하거나 필드를 일부러 선을 그어 좁게 만들어서 선수들의 간격과 포지셔닝에 대한 훈련을 굉장히 많이 했습니다. 미니 게임 역시 다른 감독들은 생각도 못해본 특이한 방식으로 공수를 구분해서 하기도 했었죠. 게다가 그는 지나칠 정도로 독단적이고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성격 덕에 선수들의 간격을 맞추기 위해 밧줄로 묶어서 대형 유지에 대한 훈련까지 할 정도였죠.
이런 사키가 감독으로 커리어를 보낼 때 제일 강조하던 건 볼을 높은 지점에서 소유하고 상대 박스 근처까지 최대한 빠르게 전진하고 공격을 하라였습니다. (하프 라인을 기준점으로 놓고 봤을 때 우리 라인이 아니라 상대의 라인을 독점하라) 상대의 박스 근처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우리가 수비에 성공했을 때 공격적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으며, 골을 넣기도 더 쉬울 것이라는 결론이었죠. 사키는 이 단거리 역습의 중요성을 엄청나게 강조하던 사람이었음.
사키가 성공을 거둔 시기와 살짝 겹쳐있었던 크루이프의 바르셀로나는 큰 틀에서는 비슷했지만 살짝 달랐습니다. 크루이프는 사키와 동일하게 볼을 잃었을 시에 최대한 빨리 볼을 되찾아와야하고 지속적으로 높은 라인을 유지하면서 경기를 지배해야한다는 틀을 갖고 있었지만 그는 선수들이 종으로 많이 움직이는 상황보다는 볼을 최대한 빠르게 돌릴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볼은 백날 뛰어다니는 사람보다 빠르며, 그렇게 볼을 쫒아다니다보면 상대는 자연스럽게 지치게 되고 공간은 만들어진다는 거였죠. 그래서 그는 포메이션상 수비형 미드필드 (피보테) 라고 불리는 선수와 공격형 미드필드 (메디아푼타) 라고 불리는 선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했으며 그 당시 여기에 해당되는 선수가 바로 펩 과르디올라와 바케로 (or 라우드럽) 였습니다.
(그림 죄송... 2)
축구는 로봇이 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하는 거기 때문에 90분 동안 상대보다 효율적으로 체력을 쓰고 능동적으로 축구를 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하는 거였죠. 그래서 그는 선수들이 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전진하기 가장 용이한 포메이션을 3-3-1-3 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이 둘의 이론은 분명히 아름답고 화제가 되기 충분했지만 꽤나 높은 수준의 스쿼드를 구성하지 못한다면 할 수가 없는 축구였습니다. 남미에서 비슷한 시기에 쓰리백을 들고 나타난 비엘사의 아이들이 화제가 되긴 했지만 계속해서 좋은 선수들이 들어오고 나가야하고 보강에 대한 안일함이 작용하거나 실패로 돌아갔을 때 타격이 굉장히 크게 돌아오는 편이었죠. 그래서 아리고 사키의 후임으로 부임했던 파비오 카펠로는 비슷한 선수 구성으로 틀을 살짝 바꿉니다. 경기를 지배한다는 건 반대로 봤을 때 그만큼 상대가 압박을 강하게 했을 때 우리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뜻 (역습에 한 방에 당할 수도 있으니까) 이며 그런 위험성을 줄이고 실리적으로 경기를 풀어나갈 필요성이 있다는 거였죠. 그리고 AC 밀란이나 바르셀로나 같은 그것도 앞으로도 쭉 회자될 선수들이 있지 않은 한 그걸 한 시즌 내내 할 수 있다는 게 오히려 더 말이 안 된다는 뜻이기도 했죠.
그래서 카펠로는 볼을 빨리 되찾아와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볼을 계속해서 소유해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사키가 강조하던 최대한 상대 박스 근처에 가까운 곳에서 볼을 탈환해서 상대 박스 근처까지 달리라고 하던 단거리 역습을 강조했죠. 그래서 카펠로는 모두가 많이 뛰는 팀을 만듭니다. 때로는 우리 박스 근처에서 수비도 하지만 기본적인 마인드 자체는 최대한 상대 박스를 빠르고 짧게 공략하자는 거였죠.
우리가 영원히 잊지 못할 2002년 월드컵 한국 국가대표팀도 여기에 해당하는 팀이었습니다. 기술적 수준이 떨어지는 팀이 경기에 대한 지배력을 일정 부분 가지거나 상대의 박스를 효과적으로 여러 차례 공략을 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꽤나 높은 수준으로 계속해서 압박을 할 필요성이 있었고 그게 효율의 측면에서 훨씬 더 앞서있었다는 거였습니다.
반 할, 레이카르트 등은 사키와 크루이프의 이론을 잘 조합해서 잘 써먹던 감독들이었고 이들 외에도 전술의 흐름은 저 셋이 제시한 그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허나 이런 전술의 공방 속에서 바비 롭슨의 통역관에 불과했던 한 양반이 포르투갈에서 등장해서 세상을 놀래킵니다. 무링요는 크루이프의 이론에 일정 부분 동의하면서도 그와 동시에 두 가지를 강조했습니다. 바로 '효율' 과 '밸런스' 였죠. 수적 우위를 언제 어디서든 가져갈 수 있어야하며 수비 시에는 쓰리톱의 두 명이 내려와서 미드필드 지역에서부터 강하게 압박을 해 볼을 되찾아와 빠르게 상대 박스 근처로 달려야한다고 주장했죠. 그걸 하기 가장 좋은 지역은 측면이며 그래서 무링요는 윙어와 이런 윙어를 공수 양면에서 지원할 수 있는 미드필드 그리고 센터 포워드를 지독하게 신뢰하는 감독이었습니다. (데코, 램파드, 슈나이더, 드록바, 밀리토 등등)
그래서 그는 세분화 시키거나 축구와는 전혀 상관 없는 훈련을 하는 등 비효율적인 훈련 방식에 대한 거부감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반 할과 바르셀로나의 영향력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트레이닝론을 만들어내죠. 무링요는 또한 당시 대세를 이루던 4-4-2 보다 4-3-3 이 수적 우위와 공수 전환에 있어서 훨씬 더 좋은 포메이션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런 무링요를 본 칼럼니스트나 이론가들은 그의 전술을 보고 4-1-4-1 이나 4-5-1 또는 4-1-2-3 이라고 얘기하기도 했었죠.
게다가 무링요는 당시 상대팀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상대 팀의 습관이나 주요한 세부 전술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핵심을 노려서 박살내는 걸 정말 잘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그가 어떤 팀을 만나든 동일하게 강조한 건 마찬가지로 딱 두 가지였습니다. 상대의 양 측면과 미드필드 지역을 수적 우위로 틀어막고 볼을 되찾아왔을 때 빠른 공수 전환으로 우리가 공격을 빠르게 할 수 있다면 효율과 밸런스를 잃지 않다는 거였습니다. 그리스가 이걸 쏙쏙 빼먹어서 잘 써먹었죠.
이런 수동적인 준비를 크루이프는 당연히 굉장히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 무링요가 바르셀로나의 영향을 받은 감독이었음에도 악평을 했던 거고 크루이프와 비슷하지만 살짝 달랐던 사키는 오히려 이런 무링요의 준비성에 대해 칭찬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레이카르트의 바르셀로나는 이런 무링요의 첼시에게 굉장히 고전하고 선수들의 개인 능력과 일시적인 대응책으로 극복을 한 편이었는데 펩 과르디올라 역시 이런 무링요의 vs 바르셀로나 대응책에 극찬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피보테를 중심으로 (때로는 중앙 수비수들을 통해) 하프 라인 아래에서 볼이 핵심적으로 나가는 빈도 수가 굉장히 높았고 측면 포워드들에게 착착 넘어가던 롱패스를 수적 우위로 조여버려서 뺏어버리면 그 전에 뺏어낼 수도 있다는 거였죠. 실제로 04-05 시즌과 06-07 시즌에는 오히려 바르셀로나가 밀렸던 게 좋은 예입니다.
어쨌든 바르셀로나 선수들 컨디션이 좋을 때는 막을 수 없다는 게 증명이 되버렸으니 다른 방법이 필요했는데 퍼거슨은 여기서 신박하게 최대한 자기 박스 가까운 곳에서 볼을 주지 않고 주더라도 최대한 자세를 못 잡게 불편하게 만들자였습니다. 우리가 알던 텐백의 시작입니다. 이런 터치의 세밀함에서 기복이 무진장 심했던 에투는 당연히 아무 것도 못 해봤고 유일한 희망이었던 메시 역시 하나를 뚫으면 또 하나가 와서 막고 그게 안 되면 협력으로 붙어서 막아버리니까 쪽도 못 쓰고 무기력하게 떨어지고 말았죠. (잠브로타. 난 아직 잊지 않았다.)
이후 후임 감독으로 왔던 펩이 부임 후 팀에서 시도한 건 바르셀로나가 계속해서 행해오던 작업에서 하나를 더 추가하고 기존보다 더 능동적인 팀을 만들고 그 상황에서 많이 뛰자는 거였습니다. 그 기초는 피보테가 경기 운영을 직접하기보다는 더 높은 지역에서 볼을 소유하거나 전진을 할 수 있는 이니에스타와 챠비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거였습니다.
- 부스케츠는 볼을 잡고 내주고 다시 내려가서 풀백이 자연스레 올라갈 수 있는 대형을 만들어주고
- 풀백은 체력을 (가능하다면 기술적 우위까지) 앞세워서 측면을 중심으로 어느 지역에서든 수적 우위와 대형을 만들어주고
- 챠비와 이니에스타는 하프 라인을 넘어선 지점에서 볼을 소유하고 내보내고 전진하고
- 그로 인해 그만큼 하프 라인 위에서 점유율 (지배력) 이 올라가고 상대의 박스에 가까운 지점에서 볼이 돌아가니까 공수 전환의 과정에서 센터백이나 팀이 수비 자세를 갖추기 위한 여유가 훨씬 늘어났고 (틀이 완성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체력 리듬이 살짝 깨져도 위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었던 이유)
- 이러한 작업이 완성에 근접했던 09-10 시즌 후반기와 10-11 시즌 그리고 11-12 시즌 일부 경기에서의 바르셀로나는 당연히 압도적이라는 느낌을 줄 수밖에 없었고 (09-10 시즌 챔스 8강 1차전, 10-11 시즌 챔스 조별 예선 파나티나이코스 전, 10-11 시즌 챔스 16강 2차전 등등등등등~~~)
- 쓰리톱은 이런 미드필드와 측면을 공수 양면에서 지원하면서 득점에 치중하고 (쓰리톱의 득점 비율이 압도적으로 올라간 시기가 펩 과르디올라 때부터)
- 펩의 마지막 시즌에 넘어왔던 세스크는 이런 챠비와 이니에스타보다 더 박스 근처에 위치해서 좌중우를 가리지 않고 최대한 빠르게 패스를 내보낼 수 있을 거라는 중요한 역할을 가진 선수였고 (허나 그는 그런 선수가 아니었다...)
- 좁은 지역이나 여러 명이 달라붙는 경합에서 자연스럽게 이겨버리거나 하프 라인을 넘어선 지점에서도 실책성 플레이 없이 발로 패스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챠비, 이니에스타, 메시라는 특이한 선수들이 있었던 감독이라면 한 번쯤은 꿈꿀만하고 이상론에 도전해볼만한 미친 전술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웬만한 사람 머릿 속에선 떠오르지도 않을 미친 전술.
(펩의 마지막 시즌이었던 11-12 시즌 바르셀로나의 3-3-1-3 의 선수들의 평균적인 위치를 나타내는 그림)
무링요는 이런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의 극의 측면 투자가 완성형에 근접하기 시작했을 때 쪽도 못 쓰고 박살나버리는데 퍼거슨이 시도하던 vs 바르셀로나의 대응책이었던 텐백을 조금 더 거칠고 조금 더 많이 뛰게 만들고 그와 동시에 몇몇 선수들의 의존도 (슈나이더, 마이콘, 밀리토 등) 를 극으로 활용하던 게 인테르 시절이었다면 마드리드에 넘어와서는 총 세 가지 방법을 시도합니다.
- 페페를 피보테로 기용해 그를 폭 넓게 움직이게 만들어서 메시가 중앙에 위치할 때 대형이 깨지거나 그를 프리로 놔두게 되는 현상을 방지하거나
(중앙에 위치하는 메시를 계속 놓치거나 포백이 뭘 해야할 지를 몰라서 그야말로 개박살난 10-11 시즌 전반기 레알 마드리드의 수비 모습. 이런 실책을 만회하고 종횡으로 방향 전환이 너무 잘 되던 바르셀로나를 제어하기 위한 기용의 첫 번째가 페페를 피보테로 기용하는 방식이었다.)
- 최대한 박스 근처에 수비를 많이 둬서 (중앙에 가깝게) 바르셀로나가 수적 우위를 점하는 상황을 최소화시켜서 바르셀로나가 볼을 느리게 돌게 만들거나 U자로 돌게 만들거나
- 전반 초반부터 발데스, 아비달, 피케 중 한 명이 볼을 잡았을 때 수적 우위로 순간적으로 몰아붙여서 패스길을 의도적으로 한 방향으로 향하게 하거나
(아직 블로그에 살아있길래 가져온 전 시즌과 전혀 다른 차원으로 변한 11-12 시즌 레알 마드리드의 전반기 vs 바르셀로나 대응책. 그림 1은 2명이 순간적으로 발데스에게 달려들어 패스길을 의도적으로 유도하는 거고 그림 2은 그런 레알 마드리드의 유도가 성공했을 때 자연스레 바르셀로나의 진영에서 수적 우위를 가져간 장면. 이 시즌 후반기에 레알 마드리드는 그 전 두 가지 역시 다 전 시즌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활용했다.)
결국 펩과 티토의 바르셀로나였던 11~13 시즌의 바르셀로나는 좌우 밸런스가 무너지고 측면 퀄리티가 조금씩 내려감과 동시에 마지막 시즌에 선수들의 체력 리듬이 박살나버리면서 사이클이 내려가게 되고 바르셀로나의 하락세와 동시에 한 번의 챔스 준우승과 트레블을 이룩한 바이에른 뮌헨은 메시가 없는 대신 로벤, 리베리라는 양 측면에서 기술적인 우위를 90분 내내 가져갈 수 있던 선수들을 보유한 팀이었고 바르셀로나와 비슷해보이면서도 살짝 반대되는 개념의 팀이었습니다. 대부분의 국면에서 펩의 바르셀로나와 유사해보이면서도 살짝 달랐는데 (볼 소유, 측면을 활용한 박스 근처까지의 빠른 전진 등은 비슷했지만) 로벤, 리베리, 뮐러라는 각각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던 선수들을 측면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해 필드를 최대한 넓게 활용하며 그를 기반으로 경기를 풀어나가는 팀이었습니다.
신체적으로 좋은 조건의 선수들이 많은데 바르셀로나보다 더 많이 뛰면서 경기를 지배한다면 의도적으로 필드를 넓게 벌려서 써먹어도 좋은 축구를 할 수 있다는 거였죠.
이 시기에 라이벌이었던 레알 마드리드, 도르트문트 그리고 바르셀로나 등과 같은 팀들의 상승과 하락을 통해 알 수 있던 사실은 현대 축구는 90분 간 상대 팀에게 절대 밀리지 않는 체력 (에너지 레벨) 과 측면 투자 (공수 양면) 가 이뤄지지 않으면 절대로 챔피언스 리그 우승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이 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수비적인 방향성의 축구들이 일시적인 해결책은 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결국 완전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무렵 비엘사의 제자 중 한 명이라는 타이틀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축구를 시도하는 한 명이 나타납니다. 바로 두 줄 수비라는 개념을 가장 완성도있게 필드 위에 선보인 디에고 시메오네입니다.
(자연스레 측면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미 박스 안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고 불확실한 볼에 대한 경합을 의도적으로 유도하고 있는 상황)
(모두가 왼쪽 측면에 위치한 필리페 루이스를 쳐다보면서 전진하고 있는 모습)
시메오네는 측면을 중심으로 공격을 시도하고 혹여나 막히더라도 공수 전환을 기존보다 훨씬 더 빠르게 이뤄낸다면 (더 많이 뛴다면) 중앙에서 볼을 뺏기는 것보다 훨씬 더 안정적으로 수비적인 탄탄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증명해냅니다. 게다가 상대적 강팀을 마주할 때 중앙을 최대한 틀어막고 비엘사의 상징과도 같은 맨투맨 수비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의도적으로 상대의 볼 흐름을 측면으로 몰리게 유도해 평소보다 더 많은 크로스 시도를 하게 만들고 박스 안에 최대한 많은 인원을 밀어넣어서 수적 우위를 점하고 경합에서 우위를 가져가며 루즈볼 싸움에서 승리를 이끌어내며 역습 축구를 다시 유행시키기 시작하죠. 수 많은 훈련과 괴물 같은 체력 그리고 철저한 실력제를 바탕으로 한 기용 방식으로 몇 년 간 공격적인 방향성을 유지하던 팀들을 차례대로 박살을 내버리는 모습까지 보여줍니다. (흔히 말하는 레바뮌이 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 고전하거나 최소 한 번씩은 박살납니다. 물론 마드리드는 결승전에서만큼은 늘 이겼지만...)
바르셀로나가 하락세를 타고 있을 때 루이스 엔리케는 펩 과르디올라가 만들어 놓은 틀을 정반대로 뒤집으면서 MSN 이라는 사기적인 쓰리톱을 앞세워 전 세계를 다시 호령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기존의 바르셀로나의 틀을 유지할 필요성은 분명히 있지만 그걸 그대로 계속 쓰기에는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판단했고 현실적으로 바르셀로나의 스쿼드를 판단할 필요성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효율적인 수비와 효율적인 공격의 필요성을 어필했으며 레이카르트가 자주 하던 측면 포워드들의 개인 기량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들의 수비적인 부담을 사실상 제로로 만드는 특이한 축구를 선보입니다.
- 쓰리톱을 제외한 전원 (이니에스타도 포함) 이 종횡으로 더 넓은 범위를 수비하게 지시하고
- 자연스럽게 미드필드 라인을 한 단계 더 거치며 전진하던 방식보다 측면을 중심으로 확 올라가는 속도에 더 집중하게 되고 (미드필드들에게 조금 더 측면으로 빠져서 속도에 지원할 것을 지시. 그런 작업을 조금 더 자연스럽게 하기 용이한 양발 잡이나 반대발 미드필드 기용을 조금 더 선호하게 되고)
- 볼을 잃었을 때 바로 달려들어서 뺏기보다는 살짝 물러나서 일단 대형을 잡고 다시 측면을 중심으로 전진하는 기존보다 조금 더 소극적인 압박 방식을 지시하고 (원정에서 루쵸셀로나가 펩셀로나보다 결과물 자체는 더 좋았던 이유)
- 챠비가 필드 위에 있을 때는 기존의 틀과 조금 유사한 모습을 보이고
- 쓰리톱은 전보다 수비 가담을 덜하고 최대한 공격에서 힘을 쏟고
결국 챠비가 나가고
투란이 실패하고
하피냐가 부상 당하고
알베스가 나가고
비달이 실패하고
감독이 동기 부여를 잃으면서 저물었지만 어쨌든 바르셀로나 축구가 가야할 방향성은 딱 하나라는 고정 관념을 깨기엔 충분했습니다.
근래 가장 토너먼트에서 성공을 거두었던 저번 시즌까지의 레알 마드리드는 현대 축구가 강조하는 측면을 가장 잘 활용하고 잘 써먹었던 팀이었습니다. 약간 막축구처럼 보이는 조잡함이 없지 않아 있는데 그럼에도 그들이 대단했던 건
- 수비적으로 정말 광대한 범위를 커버할 수 있는 피보테와 센터백들을 배치하고 (카세미루, 라모스 등)
- 어느 위치에서나 안정적으로 횡패스를 내보낼 수 있으며 필요하면 전진하거나 대각선 패스를 꽤나 높은 성공률로 해낼 수 있는 미드필드들을 중앙에 배치하고 (크로스, 모드리치)
- 중앙 중심적인 형태를 벗어나고 풀백들을 엔드 라인 근처까지 올라갈 것을 지시해 사실상 수비보다 공격에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둔 윙어에 가깝게 활용하고 (마르셀로, 카르바할)
- 아틀레티코 마드리드가 유행시킨 두 줄 수비의 맹점은 상대를 측면으로 유도하면서 뻔한 공격 패턴을 강제하는 거였는데 마드리드는 이것을 오히려 활용해서 측면에서의 2대2나 2대1을 강제하던 이 수비 패턴을 파고 들어 더 많은 인원들을 측면과 상대 박스 근처에 밀어넣어서 마구잡이로 로빙 쓰루와 크로스를 갈기고
- 효율성을 끌어올리기 위해 오프 더 볼이 좋거나 경합이 좋은 선수들을 최대한 박스에 가깝게 하거나 자연스럽게 지원할 수 있게 동선을 정리해주고 (BBC 등)
(마드리드는 이런 기이한 대형을 그대로 전진해서 잘 활용했다.)
사실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 역시 선수 구성상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한 건데 어쩌다보니까 아다리가 잘 맞았던 쪽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선수들의 컨디션이나 이탈이 일어나자마자 이런 사이클의 하락세를 드러낼 수밖에 없었던 거였습니다. 이런 변수 대응에 가장 좋은 해결책은 사실 냉정하게 봤을 때 보강을 매년 그 전보다 더 빡세게한다는 건데 성공을 하는 순간 알을 박기 시작하는 주전 선수들을 시기상 필요가 없어질 때를 판단하는 게 쉬운 일도 아니고 팬들이 그런 과감한 정책을 매년 반길 가능성도 제로에 수렴할테고 무엇보다 그런 선수들이 필요할 때마다 딱딱 맞춰서 튀어나올 가능성이 없는 게 가장 크겠죠.
이 글이 말하고자 하는 건 순서대로 짚어보면서 A전술이 B전술에게 강하고 B전술은 C전술에게 강하다는 논리라기보다는 시대적인 흐름에 맞춰서 선수 구성상 맞는 그에 맞는 전술을 쓸 줄 아는 감독의 필요성과 팀의 사이클이 최대치로 올라갈 수 있다고 판단될 때 그걸 겁대가리 없이 할 수 있는 감독의 필요성을 조금 더 얘기하는 글입니다. 더 나아가면 팀이나 감독이 추구하는 철학에 맞게 선수 구성을 현실적으로 할 줄 알고 판단할 줄 아는 감독의 필요성도 있을테구요. 이미 어느 정도 자리잡은 현대 축구의 이론이 크게 바뀌는 일은 없겠지만 여전히 세세하게 디테일을 잡아줄만한 부분은 많이 있다고 보고 선수를 키우는 방식이나 기용하는 방식 역시 기존에 비해서 조금씩 변하고 있는 것처럼요.
사실 어느 전술이 킹왕짱이고 그런 논리는 별로 동의하지 않음.
크루이프는 카펠로의 밀란에게 외부적인 요인이 있었지만 잘 돌아갈 때 가장 완성도가 높았다고 평가받던 시즌에 어쨌든 처참하게 박살났고
사키는 밀란을 제외한 그 어떤 곳에서도 자신의 이론에 어울리는 축구를 필드 위에 선보이지 못했었고
카펠로는 마드리드에서 과정을 생략하는 거지같은 축구를 한다고 리가 우승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했음에도 두 번 다 경질을 당한 감독이었고
베니테즈는 체력 리듬을 누구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이었지만 주류에서 멀어지자마자 3년도 안 되서 흐름을 못 따라가서 훅 가버린 감독이었고
무링요는 이런 측면의 중요성을 약 15년 전부터 어필하며 현대 축구에서 명장 소리를 듣는 감독들에게 많은 영감을 줬지만 시대에 뒤쳐진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벵거는 필드 위에서 너무 축구 내적인 면만 강조하다가 어느 순간 무너진 모습을 보였고
펩 과르디올라는 상대의 대응책을 자신만의 방법론으로 깨부수며 성공을 이룩했지만 반대로 점점 강해지는 상대들의 대응책에 자신만의 방법론의 한계를 여실히 느끼기도 했고
클롭은 늘 한끗이 모자라 결실을 맺지 못하거나 그가 떠나는 시즌 팀의 체력 리듬이 깨지는 걸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줬고
그래서 이번 시즌을 봤을 때 저번 시즌보다 더더욱 측면에서의 경쟁력과 각 팀이 가진 측면 퀄리티 그리고 에너지 레벨이란 게 더 강조되고 있습니다. 오히려 스쿼드 구성 자체는 훨씬 좋아진 리버풀이 체력 리듬이 박살나자마자 개판을 치고 있는 게 그 증거고 저번 시즌까지 토너먼트에서 변수 대응과 구성이 가장 좋았던 마드리드 역시 호날두 이탈, 마르셀로, 카르바할의 부진 등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쳐서 떨어졌는데 가장 큰 건 애송이에 불과한 비니시우스에 의존하는 약해진 측면 퀄리티였구요. 네이마르가 이탈한 파리의 탈락 역시 이런 부분을 무시할 수는 없을 겁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아약스나 포르투, 맨체스터 시티, 언제나 후반기만 되면 귀신같이 에너지 레벨하면 밀리지 않는 팀이 되는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등을 보면 더 확연하게 보이고 있는 부분이구요.
개인적으로 지금 바르셀로나는 한계가 너무 뚜렷해서 별로 높게 평가하지 않는데 혹여나 그들이 우승을 차지한다면 그들이 트렌드를 잘 따라갔고 가장 앞서갔기 때문이라는 평가보다는 메시빨을 필요한 시기에 딱딱 그 어떤 시즌보다 많이 받아서 가능했다고 표현할 것 같음. 그만큼 토너먼트 안에서 발생하는 변수라는 건 단순히 축구를 잘한다고 해서만 대응이 가능한 게 아니라는 거고 물론 쿠티뉴나 뎀벨레가 지금보다 한 두 배는 더 잘하면 저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말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생각이 크게 바뀌지는 않을 것 같아요.
발베르데라는 감독의 가장 큰 장점과 단점을 얘기해보라고 한다면 너무 현실적인데 그 현실에 대한 타협이 너무 능하다라고 할 것 같아요.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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