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시의 컨디션이 평상시를 넘어서는 수준이면 바르셀로나가 약우위일 거라고 경기 전에도 얘기했었는데 그 말대로 됐네요. 경기 초반에 움직이는 것만 보고 아르헨티나에서 독을 품고 뛰던 그 느낌이 살짝 들어서 컨디션 자체는 굉장히 좋다고 봤는데 느낌대로 되서 다행입니다.
두 팀 다 선발 라인업 자체가 양 팀의 측면을 의식 (리버풀은 메시까지 의식) 하고 나온 라인업이라고 봤는데 바르셀로나는 리버풀이 올 시즌 보여줬던 모습을 생각하고 노골적으로 측면이 공략당하면 안 된다는 마인드로 준비를 해온 느낌이고 반대로 리버풀은 피르미누가 후반전에 잠깐 나와서 뛴 것만 봐도 제가 보기엔 경기를 뛰면 안 되는 컨디션이었던 것 같은데 그걸 고려하고 바르셀로나의 측면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부분을 의식한 변형 전술을 준비해왔는데 생각보다 잘 안 먹힌 것 같음. 경기 초반에 4-4-2 다이아몬드를 기점으로 대형이 시시각각으로 엄청 자주 변하는 거 보고 얼마나 분석을 해왔길래 저러는 건가 싶어서 좀 놀랐는데 제가 보기엔 메시를 지나칠 정도로 의식하고 나왔거나 아니면 바르셀로나의 측면 퀄리티가 생각 이상으로 너무 떨어진다고 판단했거나 둘 중 하나인 것 같은데 (전자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싶습니다.) 그게 결국 측면 공간을 너무 열어줘서 알바가 평소답지않게 과감하게 허를 찌른 게 한 방 크게 작용했던 것 같네요. 제가 경기 전에도 말씀드렸던 것처럼 측면에서 어떻게 되냐에 따라 경기 결과가 갈리는 팀들의 맞대결이기 때문에 양 측면이 중요할 수밖에 없었어요. 한 가지 의문은 클롭이 왜 아놀드를 쓰지 않았을까인데 경기 끝까지 좀 많이 의아했네요. 이것도 결국 메시 때문이었던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마네와 아놀드의 가치가 피르미누가 필드 위에 없을 때는 상대적으로 내려간다고 판단해서 아놀드가 아닌 다른 선수를 쓴 거 같기도 하고.
바르셀로나의 오늘 경기 컨셉은 너무 확실했습니다. 발베르데가 리버풀을 저보다도 더 고평가하고 준비를 한 것 같은데 라키티치와 비달이 종횡으로 평소보다 더 길게 커버하고 이 둘이 볼을 잡았을 때는 최대한 측면을 바라보고 길게 내주거나 또는 메시를 향해 내주면서 부스케츠와 양 풀백을 보조해주고 부스케츠는 평소보다 하프 라인을 최대한 넘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볼을 내보내고 메시는 중앙에서 볼을 잡으면 최대한 속도를 내주고. 이건 메시가 없으면 절대로 할 수 없는 건데 뭐 메시의 컨디션이 아무리 봐도 굉장히 좋은 수준이었으니 메시 의존증을 한 번 극으로 끌어올려보자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평소에 비해서 최대한 하프 라인 아래 지점에서 볼을 내보낸 부스케츠. 빨간색 - 패스 미스, 초록색 - 패스 성공)
(평소보다 횡패스 일변도가 적고 롱볼의 비중이 높았던 둘. 왼쪽 - 라키티치, 오른쪽 - 비달. 빨간색 - 패스 미스, 초록색 - 패스 성공, 노란색 - 키패스)
첫 골 먹히기 전과 골 먹히고 나서 리버풀의 포백 라인의 간격의 차이도 좀 크게 눈에 들어왔는데 간격이 벌어지자마자 메시가 자신이 평소에 움직이던 동선으로 자리를 다시 잡아서 우측면 하프 스페이스를 기점으로 움직이더군요. 이것도 발베르데가 계산해둔 게 아닌가 싶었음.
일전에도 몇 번 언급한 적이 있는데 바르셀로나는 이번 시즌 틀을 만드는 작업을 아주 이른 시기에 포기했고 메시와 수아레즈가 90분 내내 측면 수비는 물론이고 팀의 수비에 기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동일한 틀로 90분 내내 경기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공수 양면에서 몇몇 선수들의 개인 기량을 조금 더 강조하는 모양새가 강하다는 뜻이구요. 오늘도 그런 모습이 많았죠. 결국 얼마나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넣어서 상대 팀의 대응책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내느냐가 전부고 그게 우선입니다. 발베르데의 모든 경기 중 대응이 여기에 달려있어요. 위험한 순간순간을 넘어가지 못하고 그게 실점으로 이어졌으면 로마 전처럼 결과도 분명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을 거고 욕을 아주 시원하게 먹었을 건데 그러진 않았으니까요.
리버풀은 제가 이번 시즌 본 리버풀 경기들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못 뛰었다고 보는데 전 경기 여파와 다음 경기에 대한 우려 둘 다 있었던 게 아닐런지. 앞서말했듯이 아놀드 안 쓴 이유가 궁금한데 결국 클롭도 메시를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다는 게 굉장한 변수로 작용한 것 같네요. 케이타가 예상치 못한 변수로 이른 시간에 나가버린 것도 좀 컸을 것 같음.
수아레즈는 오늘 경기는 평소보다는 나았다고 보는데 여전히 그냥 존재 자체가 변수라고 봅니다. 골 넣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그러려니 하면 됩니다. 근데 심판한테 과하게 항의하는 건 정도껏 했으면 좋겠음.
비달은 지금 발베르데의 모든 변형 전술에 메시를 제외하고 라키티치 다음으로 기여를 하고 있는 선수. 순간적으로 수비수가 되기도 하고 미드필드 본연의 역할도 성실히 하고 포워드가 되어야할 땐 포워드가 되고. 몇 달 전부터 제가 괜히 강조한 게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만족스러운 경기는 아닌데 뭐 진 것도 아니고 그렇게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싶진 않네요. 이렇게 하는 이유도 제가 직접 말해왔었고 발베르데가 굉장히 현실적인 감독이라고 시즌 내내 얘기해왔는데 결승전에 한 걸음 내딛은 경기에 굳이 했던 얘기를 또 하면서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보이거든요. 다음 시즌엔 재밌는 축구 하겠죠. 그 생각하면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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