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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Writing

마인드 문제가

by 다스다스 2023. 11. 9.

 
 
 
 
정말 중요한 문제라는 걸 일깨워준 사람이 마르셀로 비엘사임. 단순히 만년 중위권 클럽의 성적과 위상을 끌어올리고 90년대에 우승권 팀들과 대등한 업적을 몇 번 이룩했다고 경기장 이름을 에스타디오 마르셀로 비엘사라고 헌정한 게 아니라 팀을 완전히 바꿔버리고 남미 언론들이 축구 역사는 물론 세부적으로 전술사를 얘기할 때도 언급을 안 할 수가 없는 팀으로 만들어 버린 게 비엘사라서 그런 거.




조나단 윌슨 같은 사람들도 90년대 얘기할 때 뜬금포로 남미 끌고 오면 상 파울루의 첫 리베르타도레스 우승을 이끈 텔레 산타나 (사실 그 이전 세대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긴 합니다.) 보다 비엘사를 먼저 얘기하죠. 그 정도로 충격적이고 영향력이 큰 일이었음.




똑같은 뉴웰스 출신에 87-88 에 우승을 시킨 호세 유디카는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을 거임. 이 감독도 리그 우승 후에 1988년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까지 이끈 감독인데도 뉴웰스 팬이나 아르헨티나 축구에 정통한 사람이 아닌 이상 그렇게 많이 알려지진 않았죠. 많은 분들이 아실 가브리엘 바티스투타가 이때 뉴웰스 선수였음.
 
 
 
 
비엘사는 선수 시절에도 뉴웰스 출신이었지만 실력이 그리 뛰어나지는 않아서 선수 커리어를 빨리 접고 스카우터를 하던 사람이었는데 87-88 시즌 우승을 했던 일부 선수들을 바탕으로 한 스쿼드 전원의 마인드 문제를 대놓고 지적하며 (펩이 에투, 딩요, 데코가 필요 없다고 했던 걸 보고 이게 떠오른다 했던 아저씨들도 있었는데 뭐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스쿼드를 다 갈아버림.




거의 3분의 1 정도를 내보내고 스쿼드 인원 자체를 축소하는 컴팩트한 스쿼드를 목표로 얘기하고 자신이 스카우터 시절 봐뒀던 어린 선수들을 대거 콜업시켜버리죠. 선수가 가진 위상, 그동안 보여준 실력, 성과 등은 싹 다 무시하고 일단 자기랑 맞냐 안 맞냐를 따지고 안 맞다 싶으면 그냥 다 보내버렸음. 원래 주장이었던 마르티노가 임대 (레돈도가 있던 테네리페) 를 다녀왔음에도 다시 주장을 준 것도 감독인 비엘사의 결정. 만약에 마르티노도 문제가 있었다면 그냥 바로 버렸을 정도로 비엘사는 정상은 아니었음.




87-88 시즌 우승과 1988 리베르타도레스 준우승 후 열정이 폭발하고 그 이후 성적 부진으로 불만이 쌓인 팬들은 물론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난리가 나지만 그런 건 애초에 신경도 안 쓰는 성격이었으니 씨알도 안 먹혔음.
 
 
 

근데 비엘사는 부임하자마자 전기, 후기리그로 바뀐 아르헨티나 리그에서 전기 리그 우승을 바로 해버리죠. (후기 리그는 그대로 갖다박았음) 그러고 비결을 묻는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선수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명령하고 지시하는 것보다 그냥 알아서 그렇게 하도록 영감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죠. 그걸 깨달은 선수들에게 기계적인 플레이를 요구하는 게 비엘사의 전술관임.




그리고 무엇보다 1대0 승리나 0대0 무승부를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성향을 온갖 방법으로 거침없이 드러내는 사람이었음. 많은 사람들에게 이 모습이 각인된 건 칠레 대표팀과 퍼거슨의 맨유를 잡아내던 빌바오 시절이겠지만 그가 엘 로꼬라는 별명으로 언론들이 기사를 쓰며 미치광이로 불린 건 이미 20년도 더 지난 상황이었다는 거.
 
 
 
 
당시에 비엘사의 가르침을 받은 애들이 바로 유명한 포체티노를 비롯해 베리조, 감보아 등임. 노장이나 중견 선수로 유명한 선수들은 주장이자 뉴웰스의 또 다른 상징적인 인물 마르티노, 스코포니, 요프, 파우타소 (타타 사단 그놈 맞음) 등이 있었죠. 이 중 마르티노, 요프, 스코포니만 꾸준하게 선발로 기용되고 살아남았음.




무엇보다 당시 비엘사의 나이는 30대였음. 선수 생활을 5-6년 정도만 하고 바로 스카우터를 하면서 자신의 이론을 가다듬고 선수 보는 눈을 키우고 트레이닝론을 만들고 했던 터라 엄청 젊은 감독이었죠.




가끔 한두 번 언급했던 거 같은데 1992년 리베르타도레스 결승이 상징적인 대회 중 하나인 건 브라질의 전설 텔레 산타나와의 맞대결이었기 때문임. 이겼다면 비엘사의 커리어는 까다로운 조건, 압도적인 권한 보장, 미친 성격 등이라는 특이사항을 무시하고 유럽으로 이어졌겠지만 지면서 유럽 축구라는 주류에 뛰어드는 건 많이 늦어졌죠.




비엘사가 사실 지금의 펩, 과거 사키, 크루이프, 퍼거슨 등과 같은 감독들과 엮기엔 커리어가 엄청 부족함에도 뛰어난 트레이닝론, 철학, 관념 등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선수들은 옛날부터 많았음. 펩도 그중 하나고. 시메오네도 그중 한 명. 연관성이 그리 깊지 않은 시메오네를 비엘사의 제자라는 타이틀로 붙여둔 것만 해도 알 수 있죠.




이번에 토트넘 얘기 쓰면서 반응들을 살펴봤는데 가끔씩 한두 번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걸 타협할 수도 있는 거라고 얘기하지만 마인드를 바꾸는 건 그만큼 단호함도 필요하다고 얘기하고 싶었음. 그 글에서 얘기한 것들도 상황이 달라도 결국 본질은 똑같다라는 걸 얘기하는 거고. 여기서 얘기한 비엘사의 사례도 감독이 선수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심어주냐가 과정과 성적에 어떻게 나타나는 지를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죠.




저번 시즌에 토트넘 얘기하면서 마인드 문제를 1순위로 지적했던 것도 틈만 나면 수동적으로 변하는 선수들의 자세도 문제지만 선제골을 먹히거나 따라갈 법한데도 선수들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들이 단순히 기량 부족의 문제보단 마인드의 문제가 우선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음.




토트넘을 쭉 팔로우 할 예정도 없긴 하지만 (시티도 봐야 하고 파리도 봐야 하고 밀려있는 게 많음... 다시 보기 빨리 다 치워야 함. 무엇보다 원하시는 분들도 없을 것 같구요.) 좋은 감독이라면 아마 앞으로 더 향상시킬 거고 그렇지 않다면 이상향을 추구하다 고꾸라진 감독이 되겠지만 적어도 제일 정답에 가까운 게 뭔지 확인 아닌 확인을 했다는 건 중요한 거임. 무슨 본머스, 번리 이런 애들 만나서 그런 것도 아니고 첼시라는 팀을 만나서 그랬다는 거도 분명히 크다고 생각하구요.




아리고 사키가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를 극찬했던 가장 큰 이유는 펩을 위시로 한 바르셀로나의 문화였던 걸 생각해 본다면 그걸 갖춰나가는 과정을 보는 건 분명히 또 다른 재미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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