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두 팀 다 다음 시즌엔 변화가 많을 예정 (한쪽은 감독 교체, 한쪽은 전술적 중심 이탈) 이라 그 얘기들까지 함께 다룰 생각은 없고 질문도 안 받을 겁니다.
순전히 이 시리즈에 관한 얘기와 파생되는 얘기들을 할 거고 시즌에 관한 얘기들은 이 경기를 본 지금도 딱히 덧붙일 것이 없어서 이전 글들을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양쪽 다 생각이 바뀔 만큼의 요소들은 보이지 않았음.
큰 전제를 이해하고 보면 조금 더 보기 쉬울 것 같아서 그 부분을 확실하게 하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음.
챠비는 전력이 비슷하거나 상대적 강팀에 대한 기본적인 대응책은 최대한 맞춤 전술전략을 들고 나와 그것의 이점을 살려 최대한 빨리 골을 넣고 양상을 바르셀로나가 원하는 데로 이끌어 내는 것이고.
루쵸의 토너먼트 대응책은 상대가 뭘 하냐와 그것을 어떻게 제어하냐보단 우리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실리적이면서도 효율적인 전술전략이 무엇이냐에 초점을 맞추는 쪽에 가까움. 루쵸가 감독 커리어가 짧은 편은 아님에도 토너먼트 전적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닌데 그 적은 표본에서도 이것을 크게 벗어난 적은 없는 감독임.
바르셀로나부터 짚어보면 바르셀로나는 4-3-3 을 가장한 4-4-2 변형으로 포백 라인은 서로 간격을 최대한 좁힐 수 있으면 좁히는 과정에서 앞선의 미드필드들과 포워드들은 서로 위치가 바뀌더라도 최대한 2~4명 정도는 양 측면 공간에 빠르게 대응이 가능한 지점에서 협력 수비를 하는 쪽으로 대응책을 짜갖고 왔음.
이건 하키미가 나오지 않는 것과 동시에 파리가 리그앙과 챔스를 가리지 않고 모든 경기에서 중앙을 써도 절대 주가 되지 않고 좌우 측면을 극단적으로 쓴다는 점에서 굳이 미드필드 싸움을 가져가며 중앙에 힘을 주기보단 위험 지점들을 내주지 않으면서 음바페를 협력으로 잡는 것만 성실하게 해내도 잡아낼 수 있다는 판단이었을 거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도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보구요.
파리는 하키미가 빠진 1차전은 음바페를 중앙에 두고 좌우 측면을 쓴다는 전제가 성립이 되지 않으니 (좌우 풀백이 과감하게 동시에 못 올라오니) 사실상 정발 윙어처럼 뛰는 뎀벨레를 평소보다 조금 뒤에서 움직이거나 볼을 받는 빈도 수를 늘리고 더 긴 거리를 공략하게 만들고.
반대발 포워드로도 기능할 수 있는 이강인과 발의 방향을 덜 가리는 아센시오를 중앙과 애매한 위치에 끼워 넣어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시선을 분산시키고 기존의 좌우 활용을 어느 정도 절충하는 것을 선택했음. 동시에 이건 동선을 종으로 길게 주고 평상시 역할까지 유지시켰다가 허벅지 붙잡고 뻗은 전적이 있던 뎀벨레 역시 어느 정도 고려한 판단이었겠죠.
그리고 선수들의 성장세가 어느 정도 나타나고 있어도 챔피언스 리그 무대에서 선수 구성상 위치 변화를 경기 중에 시시각각으로 계속 요구하고 가져갈 수 있을 정도의 상황 (발의 방향, 시야 문제, 가변성 등등) 은 아니니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이었다고 봄.
문제는 챠비가 뎀벨레를 잘 알고 있는 감독이고 본인이 제일 그릇을 오판해서 많이 밀어줬던 선수인지라 약점도 그만큼 안다는 거.
뎀벨레는 기본적으로 양 발을 잘 쓰는 데도 불구하고 드리블 자체는 동작을 크게 넣거나 페이크를 넣어서 수비수를 속이고 속도로 제끼거나 그 사이에 생기는 넓은 공간을 쓰는 선수지. 순간적으로 다수가 붙거나 공간을 좁혔을 때 대응이 좋은 선수는 아님. 볼이 발에 잘 안 붙고 퍼스트 터치는 물론이고 터치가 기복이 심해서 이 부분은 오히려 약점이죠.
그러니 자신이 파고들 공간이 넓지 않으면 바깥에서 맴돌죠. 혹여나 파고들어도 동작의 연속이나 터치의 연속이 길게 이뤄지면 스스로 밸런스가 무너져서 정확도가 박살 나는 선수임. 사실상 가속을 못 붙이거나 안 속으면 정발 윙어의 모습을 하고 있죠. 가진 것 대비 진짜 효율 안 나오는 선수임. 그러니 전술적 중심으로선 적합하지 않다 하는 거고.
결국 안 풀리고 계속 막히는 시점에서 선수들이 무리하게 올라가 있는 과정 (특히 마르퀴뇨스. 뒤지게 올라가 놓고 뒤지게 늦게 내려옴. 얘 덕에 대형 유지 하려고 내려가있던 비티냐가 중앙을 비워버리니 바르셀로나는 더 과감하게 원 터치로 빨리빨리 가버림) 에서 첫 번째 실점이 나왔음. 하피냐는 그냥 야말 전진 속도에 맞춰서 들어간 게 전부인데 루즈볼을 그냥 공짜로 주워 먹었죠.
바르셀로나는 이전까지 크리스텐센을 피보테에 두고 그를 미끼로 써서 여러 가지를 얻으려 했지만 그걸 큰 범위로 좁혀보면 두 가지를 취하려 했음.
필드 위에서 온 더 볼 상황에서 제일 멍청한 아라우호가 볼을 잡았을 때 볼 소유권을 손쉽게 헌납하거나 무의미한 패스질을 최대한 줄여보겠다는 거고 (실제로 크리스텐센을 미끼로 쓸 때 아라우호는 과감하고 빠르게 패스를 넣어버림. 크리스텐센한테 넣는 척 다른 데 주는 게 목적이니 그 선수만 보면 그만이니)
항상 최후방과 두 명의 미드필드 사이에 껴서 동선 낭비를 줄여주는 선수의 존재감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하는 바르셀로나의 기초적인 형태를 챠비가 고집하는 거처럼 보이게 했죠.
이미 읽혀버린 전술전략이기 때문에 챠비가 고민해서 들고 나온 건 측면 싸움을 걸고 간결하게 갈 수 있을 땐 레반도프스키나 귄도간, 데 용이 넓게 돌아다니면서 원 터치 플레이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 세르지도 다른 건 몰라도 원 터치 플레이는 밥값은 하니까. 그리고 전개가 여의치 않거나 답답한 양상이거나 볼이 느리게 돌아갈 때의 1원칙은 여전히 어떻게든 야말한테 보낼 것.
결국 파리가 꼬여서 선제골은 바르셀로나가 넣었는데 루쵸가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교체를 하면서 선수들의 위치를 바꿨는데 여기서 챠비가 멍 때림. 45분 써야 할 전술전략을 또 괜히 최대한 이득을 챙겨보겠다는 헛짓거리를 한 덕에 흐름을 그대로 내줄 뻔했다는 거.
풀백으로서 포지셔닝이 엉망이었던 마르퀴뇨스를 그냥 원래 위치로 빼버리고 루카가 오른쪽 풀백. 이건 아예 반대발로 배치해 여차하면 다이렉트로 루카의 롱패스를 살려 반대편을 공략하겠단 의도기도 하죠.
중앙에 서서 애매한 위치들을 오가며 바르셀로나 수비수들에게 혼란을 주고 대형을 깼어야 하는 아센시오는 유의미한 장면을 딱 한 번 만들어냈으니 그대로 빼고 음바페가 중앙으로. 좌우는 바르콜라, 뎀벨레가 들어가지만 평상시랑 다르게 좌우를 바꿨죠.
왼쪽에 가면 또 반대로 지독하게 안으로 들어오거나 중앙에서 놀려고 하는 뎀벨레의 성향과 직선적일 때 더 나은 바르콜라는 오른발 잡이니까 양 쪽에서 누누와 이강인과 상호 작용하라고 이렇게 둔 거라고 봅니다.
이 빠른 대응책에 약 15분 정도 손을 놔버린 챠비의 늦은 대응책이 흐름을 그대로 내주고 경기를 망칠 뻔했는데 운이 살짝 따라줘서 페드리가 들어가고 얼마 안 돼서 빠른 동점골이 나오고 반대로 파리는 추가 골을 다시 빠르게 뽑아내지 못하면서 경기 양상이 진흙탕으로 흘러갔다고 봅니다.
이후에는 그냥 바르셀로나가 템포 죽이는 걸 잘하진 못했지만 최대한 하려 하고 중앙을 틀어막으면서 음바페를 막는데 신경 쓴 게 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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