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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Writing

펩-바르셀로나

by 다스다스 2024. 6. 11.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펩과 당시 의장 산드로 로셀. 웃긴 얘기지만 로셀은 펩의 형제인 페레 과르디올라를 끌어준 사람.)


 
 
 
챔스 결승 후기는 쓰려했었는데 시기를 놓쳐서 건너뛰어버렸고. 친선 경기들은 힘 빼는 게 너무 눈에 보여서 얘기할 것들도 없고 그러다 보니 이슈를 찾으러 다니곤 있는데 딱히 쓸만한 떡밥은 없는 것 같았는데 펩 얘기가 또 나왔음.
 
 
 
 

이 블로그 자체가 바르셀로나 팬분들, 시티 팬분들 아니면 바르셀로나나 펩과 1%의 연관성이라도 있는 인물들이 있는 팀들의 팬분들이 많이 오시는 곳이다 보니까 예전부터 펩-바르셀로나 재회에 대한 질문들은 참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하고 있음.





그때마다 기를 쓰고 다시 올 일 없으니까 (어떤 분들한테는 때론 너무 강하게 얘기한 적도 있고) 괜한 기대 하지 말라고 했던 건 펩이 결국 로셀이 제안한 재계약을 끝까지 거부하고 떠날 때 내비친 의사가 너무 기억에 남아 있어서였음. 그리고 무엇보다 바르셀로나는 제가 봤을 땐 그때부터 변함없이 정치적인 행보가 판을 치는 클럽이구요.
 
 
 
 

바르셀로나에서 펩은 철저하게 1년 재계약에 맞춰 움직이던 사람. 바르셀로나가 어떤 성적을 내냐보다 (어차피 6관왕 이후 펩은 건드리면 큰일 나는 존재였음. 라포르타는 그걸 알고 로셀 엿 먹으라고 깽판 쳐놓고 간 거고) 다음 시즌 향상에 대한 가능성이 있고 본인 동기 부여 (더 나아가면 선수들의 동기 부여) 가 떨어지지 않았냐를 철저하게 따지면서 재계약하던 사람이었음.





사실 당시 유스 출신 선수들의 아이돌이었고 카탈란들이 미치는 존재에다가 한 시즌도 트로피를 못 딴 적이 없는 감독치고는 말도 안 되는 짓인데 장기 계약하면 보드진한테 휘둘릴 수도 있다는 그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려는 게 컸죠. 바르셀로나는 정치인들이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이용하는 클럽이니까.
 
 
 
 

장기 계약을 하게 되면 암묵적으로 보드진의 행보에 동의한다는 소리기도 하면서 보드진이 뭔 짓거리를 해도 과감하게 움직일 수 없는 게 컸죠.





예를 들어 라포르타 때 장기 계약을 하면 얘를 죽이려고 벼르고 있던 로셀이 올 게 뻔한데 로셀과는 더 껄끄러운 공존이 되는 그런 그림이 이뤄졌겠죠. 실제로 라포르타는 틈만 나면 로셀은 펩의 성공을 좋게 보지 않을 것이다라면서 저격을 했고.





로셀과 크루이프의 마찰은 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였는데 (크루이프 재단, 크루이프가 엘 페리오디코나 라 방과르디아에 쓰던 칼럼들과의 문제가 전부였음) 그걸 펩과의 문제로 엮으면서 언론들에게 이상한 떡밥을 흘리고 그랬죠. 로셀은 결국 펩의 추천 아래 티토를 또 다른 펩으로 만드려고 말도 안 되는 권한을 밀어줬다가 바르셀로나의 사이클을 망가뜨렸음.
 
 
 

 
지금 시티에서 소리아노가 하고 있는 시티 풋볼 그룹의 아이디어도 바르셀로나의 유스 세계화에서 어느 정도 따온 아이디어임. 로셀이 의장 취임하면서 하고 싶었던 게 이거였죠.





예전부터 이 카탈란 운동권 세대들이 가스파르트 몰아내면서 바르셀로나의 세계화를 생각하면서 지들끼리 짜놓은 아이디어의 일부였음. 라포르타도 한때 이거 내걸고 그랬죠. 근데 로셀은 정치적으로 계속 내몰리니 이런 건 다 백지화 시키고 세스크, 네이마르 영입에 목숨을 걸었던 거임. 나름 야심차게 보얀 아부지 다시 데려오고 그랬었는데 싹 다 의미 없는 짓이 돼버렸죠.
 
 
 
 

반대로 로셀 때 장기 계약을 하면 로셀은 더더욱 과감하게 뒷돈 마련할 구멍을 찾았을 거구요. 펩을 잡아놓으면 작품 만들고 펩이 원하는 영입들을 동시에 하는 게 연임의 길이었을 테니까요. 이 세 가지 다 돈이 없으면 못하는 거임.





무링요가 마드리드 감독되고 나서 내가 보드진이면 펩에게 10년 계약을 제시하고 묶어버린다 했던 것도 펩의 성격과 바르셀로나 보드진의 정치적인 모습들을 아는 무링요의 농담이었다고 봐야겠죠.
 
 
 
 

문제는 저렇게 펩이 대놓고 자신만의 길을 가면서 간을 보는 데도 바르셀로나는 늘 의사 결정이 빠르게 이뤄진 적이 없고 보드진들은 항상 정치적인 이득을 저울에 올려놓고 간을 보고 있었다는 거.





마트 가면 애들이 엄마, 아빠 모르게 과자 같은 거 카트에 담고 그러는 것처럼. 팀이 너무 잘 나가니까 얘네들이 정신을 못 차리고 있던 거임. 펩은 항상 순식간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있었으니 늘 두려워하고 쫓기듯이 일했던 거고.
 
 
 
 

대표적인 게 라포르타가 즐라탄 문제를 임기 끝까지 언론에 절대 퍼뜨리지 않고 입을 닫고 있다가 3월에 비야를 사려고 다음 시즌 예산을 끌어와 써버리고 런친 것 (벤제마 틀어지고 선택지가 얘밖에 없었음) 과 로셀이 돈이 없으니 치그린스키 바로 팔아버린 것 (펩이 실망한 자원이었던 것과 별개로 펩 의사를 아예 물어보지도 않고 바로 팔아버림) 과 즐라탄 이탈에 따른 포워드 영입 (마타, 호빙요) 은 무시하고 세스크 실패하면 필요 없다는 미드필드 자원 (마스체라노) 을 이름값보다 훨씬 싸게 살 수 있다는 유혹에 그대로 질러버린 것.
 
 
 
 

보드진이 바뀌었는 데도 내부 사정은 변한 게 없었음. 의장들은 펩의 성공 아래 자신들의 작품을 껴놓고 싶어 했고. 이게 재계약 과정에서도 반영이 되면서 라포르타는 연봉을 뒤지게 퍼줬고. 로셀은 알베스를 비롯한 라포르타 시기에 영입된 선수들의 가치를 저평가했죠.





심지어 로셀은 오고 얼마 안 돼서 네이마르한테 전화해 달라는 소리도 하고 그랬죠. 아마 펩이 산체스 영입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았다면 그때 왔던 것도 네이마르였을 거임.





세스크야 뭐 라포르타나 로셀이나 카탈란들이나 모두가 다 미쳐있던 매물이었으니 별개로 치고. 실제로 바르셀로나는 펩 떠나고 1년 만에 경쟁력을 잃었음. 이것도 13년 3월에 사키가 대놓고 엘 파이스에서 저격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메시, 이니에스타, 챠비 있는데 뭔 소리야. 우리 이미 리가도 우승했는데? 하고 있었겠죠.
 
 
 
 

이건 얘기들의 일부분일 뿐임. 펩이 레이카르트에게 인수인계를 일부분 거절했던 것도 자기 스승인 크루이프의 행보와 감독으로서 많은 가르침을 줬던 반 할의 행보를 봤고 모든 책임자가 되어서 욕이란 욕은 다 먹던 레이카르트를 봤기 때문.





왜냐면 자기 스승인 크루이프가 장기 계약 (당시 기준) 하면서 당시 보드진이었던 누네스가 슬슬 크루이프 말을 잘 안 들어주기 시작했던 걸 봤으니까. (업적을 나눠먹는 게 아니라 크루이프가 다 먹으니깐) 반 할은 아예 누네스가 모셔오려고 1년을 기다릴 정도로 미쳐있던 감독이었고 누네스가 꽤 위험한 순간에 있었으니 원하는 데로 다 해줬죠. 레이카르트는 라포르타를 비롯한 모두가 그대로 숨어버려서 늘 혼자서 외롭게 싸워나갔음.
 
 
 
 

펩은 바르셀로나에선 자기가 항상 칼자루를 쥐고 있어야 보드진들의 정치적인 행보를 어느 정도 제동할 수 있다는 걸 시작부터 알고 있던 사람임.





보드진들은 그 칼자루를 주길 싫어하니 항상 성적과 계약 기간으로 쇼부를 봐야 하는 게 감독이 해야 하는 일 중 하나였구요. 무링요도 그래서 까였죠.





시험해 보고 진짜 엄청 잘하면 몰아주려 했는데 초장부터 그렇게 나오니까. 그러니까 펩 이후에도 내부 인사였던 루쵸도 그렇고 챠비도 그렇고 넘어올 땐 조건을 걸었던 거죠. 내 사람들 확실하게 보장해 줘라. 이적 시장에서의 권한을 달라. 누군 필요 없다. 누군 필요하다. 등등등등
 
 
 
 

그래서 펩은 떠나는 게 공식화되고 나서 바르셀로나를 이루고 있는 협동 조합과는 정반대의 환경을 겪어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었죠.





그래서 선택한 게 가장 정반대의 환경을 갖고 있는 바이에른 뮌헨이었던 거임. 선수 출신들이 한 자리씩 자리하고 있고. 축구를 모르는 사람들이 축구에 영향력을 끼칠 수 없는 환경.





근데 여기서 많이 부딪힌 의료진 문제 덕에 펩은 모든 자리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있는 게 최선이다란 판단을 하고 시티 행을 선택했다고 제 개인적으론 느꼈었음. 시티에서 행복하다는 말을 자주 하는 것도 그냥 간단하죠. 본인이 무엇을 요구하면 그게 막힘없이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니까. 혹여나 그게 되지 않을 때도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이유들을 대니까.
 
 
 
 

바르셀로나는 선수 시절 펩이 떠날 때도 그렇고. B팀 감독으로서 펩이 올 때도, 떠날 때도, 지금도 그냥 하나도 변하지 않은 클럽임. 그 증거 중 하나가 라포르타란 놈이 들어올 때 로셀과 바르토메우와는 다르다는 소리를 들으면서 왔던 거고. 제가 이 얘기했다고 욕먹은 적이 있어서 알고 있음.





전 펩이 떠나고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 바르셀로나가 조금은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면 많은 분들처럼 펩이 다시 바르셀로나에 오려할 수도 있다란 얘기를 했을 수도 있겠지만 후임 감독이었던 티토 때부터 그런 가능성이 아예 안 보였으니 확언을 했던 것.
 
 
 

 
이 팀 팬이 된 걸 후회하진 않지만 지금 마드리드 정도로 사이클을 길게 이어나갈 수 있는 기회들이 최소 3번은 있었다 생각하는데 그걸 정치인들이 다 날려먹었다는 사실은 아마 축구를 보는 동안은 쭉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음.





펩도 아무리 못해도 1년. 길게는 2년은 더 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들구요. 전 가끔씩 말씀드리지만 바르셀로나한테서 일반적인 모습들을 기대할 거면 다른 팀 찾는 게 낫다고 봅니다. 그들은 일반적이지 않음. 대신 그것을 넘어서는 일관성이 축구로 나타났을 때 최고의 축구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있으니까 보는 거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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