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한테 배웠거나 펩이랑 일해본 사람들을 시티나 바르셀로나가 아닌 다른 팀들이 데려가는 가장 큰 이유는 검증된 사람이라는 게 크다 생각하는 편임.
펩은 감독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부터 본인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일을 해온 사람. 바르셀로나 B팀으로 가고 나서 사람 하나하나 뽑을 때도 다른 사람들보단 본인의 통찰력을 믿은 사람이고. 퍼스트 팀 부임할 때도 당시 보드진하고는 철저하게 선을 긋고 시작했음. 레이카르트의 인수인계를 일부분 거절한 것 (보드진과 관련된 부분에서 펩이 먼저 다 거절함) 도 유명한 일화 중 하나.
그리고 겸손함이 성공의 덕목 중 하나라고 믿는 사람이라 그것을 갖추지 못한 사람하고는 일을 하지 않음. 선수도 마찬가지.
펩과 일하면서 불화 없이 나갔고 긍정적인 멘트를 받았다는 건 적어도 그 사람이 인격적으로 잘못된 사람일 가능성이 극단적으로 적다는 건 합리적으로 내놓을 수 있다는 뜻. (반대로 성격이 매우 단호하고 도라이 기질이 다분하다는 뜻일 수도 있죠.)
근데 어느 정도 걸러들을 필요는 있는 게 펩은 선수 시절부터 남을 흉보는 타입의 사람이 아니었음. 물론 감독되고 나서 불화나 변수를 다루는 방식은 당연히 더 극단적으로 변했다고 보지만 (이건 반 할한테 많이 배웠다고 개인적으로 느낌. 반 할이 좀 더 공격적이고 적이 많고 실언이 많긴 하지만.) 원래 선수 시절부터 본인을 비롯한 내부에는 매우 엄격하지만 또 웬만한 것들은 다 피해 가는 류의 사람임.
2년 연속 파벌 논란은 물론이고. 의장 교체, 피구 런, 쁘띠의 폭탄 발언, 히바우두의 주제넘는 행동 등이 2년 동안 연달아 터지면서 펩은 팀에는 새로운 선수들이 자리를 잡아 다시 나아가야 하고 자신은 새로운 도전이 필요하다면서 떠났을 때도 카탈루냐 기자들이 확실한 이유를 알고 싶어서 이탈리아까지 쫒아가고 그랬었음.
그런 그들에게 펩은 세계 어디에도 바르셀로나처럼 축구하는 곳은 없다면서 새로운 경험도 좋지만 난 아직도 매일매일 깜노우에 가고 싶어 죽겠다면서 카탈루냐 기자들에게 어떠한 힌트도 안 줬죠.
당시 바르셀로나는 짤막한 동영상으로 기가 막힌 패스 워크-골이 종종 나오던 팀이지만 막상 경기 보면 그런 거 1년에 10번도 겨우 나오는 시력이 나빠질 정도의 경기력을 보이던 공수 밸런스 엉망의 팀이었음. 루쵸, 히바우두와 오렌지들이 온갖 욕을 다 먹으며 버텨주던 시절.
넷플릭스 다큐에도 나오지만 피구 런할 때도 펩은 피구에 관해서 절대 흉을 안 봤음. 무링요도 오히려 계속 칭찬만 하다가 (첼시 1기 시절에 크루이프랑 설전을 벌일 때도 유일하게 무링요의 전술전략을 칭찬하던 바르셀로나 사람) 마드리드 때 판정이랑 일정 갖고 하도 걸고넘어지니 한 번 들이받았던 거죠.
관계자로서 펩에게 검증받았다는 건 판단 요소의 일부 정도라고 생각하는 편임. 펩 감독 커리어 다 따라다닌 사람 이제 몇 명 없을 건데 막 이게 유의미한 지표가 되기엔 부족하다고 봅니다. 걸러서 볼 필요가 있음. 잘 될 사람들은 펩을 만나서 가속이 붙고 좋은 기회를 빨리 얻었을 뿐임.
옛날로 치면 퍼거슨과 함께 일한 코치들이 전술전략적 역량은 확실하다 인정받은 그런 거랑 비슷한 느낌이랄까. 근데 걔네들 막상 감독하면 퍼거슨 발끝은 커녕 웬만한 중위권 감독들 발끝도 못 따라간 게 꼭 능력 부족만을 얘기하는 건 아니니까.
더해서 펩이 팀을 만들어 가는 방식이 사실 이론적으로 봤을 때 이성적이라고 느껴지니 (언어, 라커룸 문화, 프로페셔널함 등등등) 그런 걸 감독으로서 똑같이 실행할 수 있고 사이사이 발생하는 문제들을 다루는 걸 직접 본 사람들을 선호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펩이 이번 시즌 그릴리쉬 문제를 다룬 것만 해도 진짜 능구렁이 다 됐다고 느껴짐. 옛날 같았음 이렇게 안 다뤘을 거임.
펩 따라쟁이들이 실패한 사례들도 잘 보면 전술전략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실패한 경우들도 있지만 지나친 원칙 강요와 선긋기로 선수들과 융화가 아니라 선긋기, 싸움으로 간 경우들이 적지 않음. 첼시 같은 경우는 보아스가 대표적이죠. 투헬도 사람 다루는 것만 보면 어디가서든 문제 생기는 게 사람으로서의 문제지. 이론적인 영역이 아닌 것처럼요.
심플한 게 마냥 나쁘지 않다고 종종 말씀드리는 것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문제를 중재하고 선수들의 에고를 하나로 모으는 방식은 다양하니까요.
옛날에는 바르셀로나나 아약스를 비롯한 몇몇 네덜란드 클럽들이 그냥 독보적으로 이질적이었다고 친다면 이제는 나름대로 그것들이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고 변형이나 응용이 되면서 여러 갈래로 갈라지는 쪽으로 조금은 변했다고 봐도 될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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