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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Writing

주저리주저리

by 다스다스 2024. 6. 7.

 
 
 

(펩은 확 늙었던 전적이 있는지 요즘은 늙는 속도는 좀 느려진 듯함.)

 
 
농구 보다가 뜬금없이 펩이 나오길래 생각났는데 펩이랑 마줄라랑 꽤 친분이 있는 것 같더군요.





개인적으로 셀틱스도 오래 봐왔고 농구 이론들을 뭐 축구만큼 잘 알거나 농구 자체를 축구만큼 진지하고 까다롭게 보는 편은 아닌데 (그냥 빠르고 시원해서 보는 거고 딱히 깊게 알고 싶지도 않음...) 펩은 마줄라 보면서 초창기 본인이 하던 실수를 안 하는? 고집을 안 부리는? 초짜 감독 티가 전혀 안 나고 오히려 깊이가 있다는 점에서 배울 점이 있다고 보지 않았을까 싶음.





마줄라야 뭐 펩이 모든 스포츠 통틀어 세계 최고라고 대놓고 찬양하는데 당연히 내외적으로 배울 점이 있다고 보고 있을 거고.
 
 
 
 

뭐 거창한 얘기를 하려는 건 아니고 농구와 축구의 접점을 나름대로 생각해 본 적이 몇 번 있었음.





펩은 바르셀로나 시절에 굉장히 극단적으로 나아가던 사람이었음. 외적인 것도 그렇지만 내적으로도 점유율은 점점 높아지면서 선수들에게 중거리나 뽀록성 플레이는 철저하게 자제시켰죠. (4년의 흐름을 보면 점점 중거리를 안 차고 숏패스는 올라가면서 챠비와 알베스의 패스 시도 수는 점점 많아짐. 오죽하면 팬들이 비기거나 질 때마다 중거리 좀 차고 헤딩 좀 하라고 전 세계적으로 욕하던 팀)





측면에서 승부가 안 나거나 측면에서 강제로 공간을 열어젖힐 방법이 없으면 메시 활용을 극단적으로 늘렸음. 결국 바르셀로나가 막힐 때 해결책은 챠비의 패스가 (아니면 가끔씩 다른 누군가의 패스가) 메시에게 상대의 대응책보다 얼마나 빠르게 들어가냐가 전부였음.
 
 
 
 

들어가면 상대는 골을 내주는 순간부터 메시란 중앙 자원이 가진 다지선다에 빠져 자멸하는 건데 안 내주거나 어떻게든 막아내면 바르셀로나는 점점 초조해지는 거임.





이래서 당시 바르셀로나는 중앙지향적이란 오해를 샀고 토너먼트에선 이미지와 다르게 막강한 팀이 아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 전혀 중앙지향적인 팀이 아니었음.





일단 비야가 장거리 드리블은 커녕 은근히 2대1을 잘 못했고. 페드로랑 보얀은 온 더 볼을 길게 가져갈 줄을 몰랐고 산체스는 짝발러라 방향을 막아버리면 주변 동료들도 못 봐서 그래 보였던 거뿐.





그래서 나온 메시 대응책이 한 명이 일단 무조건 맨투맨으로 붙되 나머지 선수들은 메시가 드리블을 치는 경로를 몸으로 막아서 부딪히거나 다리를 깊게 넣어 스탭을 꼬이게 만들어 밸런스를 깨는 거였음. 네버 다이브 영상이 수 없이 나온 게 이렇게 수비를 하는 데도 안 넘어지고 다 제끼니까 나온 거.
 
 

 
 
더해서 이니에스타가 멀쩡할 때 팀이 기계적인 면과 창의적인 면이 공존할 수 있었던 건 그만큼 얘가 한쪽으로 아예 빠져서 2인분을 해줬기 때문.





근데 이니에스타는 기본적으로 기복이 있는 선수였기도 하고. 상대 팀들이 이제 이니에스타 하나 막자고 여러 명 들러붙으면 제일 중요한 메시와 챠비에 대한 대응이 안 되는 걸 아니까 대응책을 바꾸기 시작했던 거고. 그걸 다시 한번 깨부수기 위한 게 챠비-이니에스타-메시의 삼각형 사이 공간에 위치하는 원 터치 패스와 짧은 로빙쓰루의 장인이었던 세스크 (+ 경합의 신, 오프 더 볼 장인 산체스) 였던 거.
 
 
 
 
펩이 떠나고 티토 바르셀로나 잘 나갈 때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이해를 못하고 있으니 무적의 팀이라 착각하고 있었던 거임.





결국 뮌헨한테 참교육 당했던 건 측면 싸움에서 아무런 힘도 못 쓰고 졌기 때문. 메시가 있었어도 졌을 거임. 조금이라도 비비거나 처참함까진 안 느꼈을 수 있겠지만 그 시즌 바르셀로나 구성으론 하인케스 뮌헨은 때려죽여도 못 이겼음. 비야랑 페드로가 고장 났고 알바는 경합 과정에서 답도 없는 수준이었고 세스크랑 산체스는 병풍이었고 팀은 기어 다니고 있었으니까.
 
 
 
 

다시 돌아와서... 결국 세스크가 해결책이 되지 못하니 그가 오기 전이나 그가 오고 나서 막힐 때 하는 게 알베스를 이용한 페너트레이션 (하프 라인을 넘어가는 빌드업의 과정을 넘어서서 아예 알베스가 박스 근처까지 가서 측면에서 안으로 (정확히는 바이탈 존이나 ZONE 14 근처까지 들어가 주는 거임) 이나 케이타 넣어서 수비 강화하면서 횡패스, 백패스 죽을 때까지 돌리기. (실점은 안 함. 약간 다른 방식의 잠그기. 마지막 시즌엔 이것도 거의 안 썼음)





그것도 아니면 바르셀로나 마지막 시즌에만 쓰던 양 측면 포워드들을 윙어의 개념 (테요, 쿠엔카, 알베스) 처럼 직선 질주로 상대 수비를 끌어오거나 안 끌려오면 크로스-최대한 메시 근처로 떨어지게 만드는 루즈볼 싸움밖에 없었죠.
 
 
 
 

이게 농구로 치면 제일 가까운 게 모리볼이라 불리는 하든, 폴이 있던 휴스턴임. 효율성이 떨어지고 한 번 들어갈 것 같음 선수들이 평정심을 잃어버리는 중거리와 롱패스를 비롯한 변수가 많은 시도들을 자제시키던 펩 바르셀로나와 제일 유사한 형태.





수비 달고 롱2 나 미드레인지를 쏠 바에는 3점을 쏘거나 더 확실한 골밑으로 들어가서 넣어라는 확률적으로 접근을 하는 이론인 거죠. 농구는 3점이 들어가기만 하면 되니 멀리서 쏘니까 축구와 매치가 잘 안 되는 거뿐. 측면에서 어떻게든 공간을 열어 최대한 바이탈 존으로 들어가는 것에 목숨을 걸던 바르셀로나처럼 철저하게 확률에 근거해 접근하는 건 똑같았음. 그래서 볼 소유도 온 더 볼이 좋거나 소유하는 과정 자체가 뭔가가 나오는 선수 (폴, 하든) 가 최대한 오래 붙잡고 있었죠.
 
 
 
 

셀틱스는 이 부분에서 좀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르다고 보임. 일단 한두 명의 핸들러에게 의존하지 않으니까 공격 전개의 다양성을 갖고 있고 요즘 말로는 리드 앤 리액트란 말로 뭉뚱그려 표현하던데...





상대 수비 대형이 갖춰지지 않았을 땐 최대한 빨리 가는 것에 집중하고 (해설자도 오늘 얘기했죠. 빨리 넘어오니까 지공하고 있어도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고) 그렇지 않을 땐 본인들이 가진 것들의 우위를 활용하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써먹는 거죠. 후자가 지공의 기본임. 느리게 공격하는 게 지공이 아니라.. 여러 차례 얘기하지만 더딜 지를 맨 처음에 쓴 사람이 누군지 몰라도 해석 자체가 아주 거지 같은 거임.
 
 
 
 
예전에 시티의 축구나 펩 얘기할 때 펩이 많이 신경 쓰는 것들에 관해서 얘기를 한 적이 있음. ( 가장 최근 글은 이 글인 듯? 클릭하시면 됩니다. ) 펩 스스로도 자신이 할 일은 박스 근처까지 빨리 가는 거고 그 이후는 선수들 몫이라 하는 것도 거기까지 빨리 가는 건 약속된 플레이들로 해낼 수 있는데 그 이후는 선수들 개개인의 능력에 달린 일이니 그 창의성들을 극대화하기 위한 발판이란 거죠.
 
 
 
 
이러니 펩의 축구를 보면 박스 근처까지 가는 게 대부분 느리니까 꼭 느리다는 얘기를 하죠.





보통 이런 전진의 개념에서 속도를 찾곤 하니까. 근데 막상 전문가들 인터뷰들 보면 펩의 팀은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얘기를 가끔 하고 그런 인터뷰들 보는 사람들은 뭔 소린지 이해를 못 함.





이게 속도에 대한 개념이 다른 거임. 얘네들이 말하는 속도라는 건 횡패스와 백패스가 돌아가는 패스 흐름 속에서 순간적으로 만들어진 빠른 패스 흐름이 얼마나 빠르냐는 것. 그게 매우 빠르고 자주 나오면 속도가 빠른 거고 경기력도 좋을 테고. 그게 아니면 느리고 경기력도 후진 거죠. 같은 속도를 얘기해도 이런 차이점이 있다는 거임.
 
 
 
 

아주 좋은 예로 사키가 펩이 즐라탄 데리고 인테르한테 떨어졌을 때 대놓고 속도가 느리다 했는데 박스 근처까지 가는 게 느린 걸 얘기한 게 아니라 그전 시즌 첼시 전 예시 (왜냐면 이 경기도 똑같이 박스 근처까지 가는 건 느렸음) 로 들면서 특정 부분에서 매우 느렸다고 지적했었죠. 그땐 이만큼 느리지 않았다고.





이 의미는 즐라탄이 속도가 살만한 과정에서도 다 끼어들어서 흐름을 싹 다 죽이고 있었다는 소리임. 포든도 이번 시즌 내내 칭찬 퍼레이드에 끼어들지 않은 건 대부분의 경우에서 이런 속도를 본인이 먼저 내주면서 골까지 넣어주는 게 아니니까 그랬던 거뿐임. 그게 되어야 데 브라이너 다음 타자가 되는 거.





이 단계를 뚫어내지 못하면서 결국 넣어줘야 할 때 못 넣어주면 팬들은 얘한테 필요 이상의 비판과 요구를 하게 될 뿐. 홀란드도 똑같죠. 스탯은 선수의 가치를 보여주지 않으니 그걸 얘기하지 않는 거뿐임. 걔 덕에 비길 경기 이기고 아슬아슬하게 이길 경기 크게 이긴 거 몰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셀틱스도 이런 사소한 것들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보면 마냥 느린 팀이란 인식이 지워질 겁니다. 오늘도 점수차 벌릴 때 바로바로 던져버렸죠. 제 개인적으로 느낄 때 펩은 근래 농구 보면서는 경기장을 어떻게 더 넓게 쓸 수 있을까 (어차피 시티 접근 방식이 바뀌었으니. 데 브라이너 대신할 놈이 당장 나오지도 않을 테고) 와 그 안에서 선수들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가를 연구하지 않을까 싶음.






가진 게 많은 선수들이나 영리한 선수들은 더 넓게 움직이게 만들고 자신이 가진 것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깨닫게 하는 것도 이 일환이라 생각하구요.
 
 
 
 

챔스 떨어지거나 기대치에 근접한 모습을 못 보이면 그릴리쉬 욕하면 된다 했던 것도 결국 시즌 초반부터 펩이 데 브라이너의 부재를 고려해 짜낸 생각 중 가장 노골적으로 보여준 건 베르나르도 실바와 로드리의 존재감을 바탕으로 그릴리쉬가 어떻게 속도를 내주고 빠른 패스 흐름의 시발점이 되어주냐였음.





그가 중요할 때 골을 못 넣어주고 어시스트를 못했냐 이런 것보다 가장 중요한 사이에 끼었어야 할 선수 중 한 명이 그 역할을 시즌 내내 한 번도 못해서 톱니바퀴가 돌아가지 않고 일부 선수들이 리듬이 더 빨리 꺾였으니 당연히 1순위 비판 대상인 게 정상.
 
 
 
 

토탈 풋볼의 이론에서 장신의 센터 포워드가 이상향으로 얘기되는 것도 이런 선수가 중앙에 있을 때 양 측면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선수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면서 온 몸을 쓰고 양 발을 쓰면서 패스 루트의 다변화를 바탕으로 속도를 살려주고 본인의 능력을 극대화하는 최적의 역할을 해낼 수 있기 때문.





물론 이 이론을 실전으로 제일 완벽에 가깝게 증명해 낸 선수는 다름 아닌 메시라는 놀라운 사실. 메시의 중앙화는 메시 본인에게도 펩이란 감독에게도 생각 이상으로 뛰어난 면모이자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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