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의 축구를 볼 때 많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그가 오로지 점유율과 지배를 바탕으로 지공을 추구하는 감독이라는 시선으로 그를 본다는 거임.
사실 지공은 그런 게 아님. 기술적 우위를 극대화 시켜 원온원의 효율이나 특정 선수의 효율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공격 방식이 지공의 일부인 거지. 단순히 느리게 공격한다. 가 지공이 아니라는 거임.
더딜 지를 쓰고 반대말로 속공을 갖다 놓고 이분법적으로 구분을 해놓고 뜻을 이래 정해버리니 사람들이 지공이라 하면 그냥 일단 느리다는 고정관념을 깔고 가죠.
농구도 볼을 최대한 소유하면서 공수를 다 해내는 걸 지공이라고 하지. 느린 걸 죄다 지공이라고 하지 않죠. 그런 건 그냥 공격을 할 줄 모르니 막힌 거고 공격이 안 되는 거임. 24초를 똑같이 써도 어떻게 쓰냐에 따라 공수는 차원이 다르다는 거죠. 퀄리티 차이로 퉁칠 수도 있지만 보통은 접근 방식의 차이가 더 우선이라고 봅니다.
일단 여기서 첫 번째 오류가 나타남.
시티는 느리지가 않음. 템포 자체가 느려 보이지만 순간적으로 빠른 패스 흐름이 만들어져 볼이 돌아갈 땐 세계에서 제일 빨리 볼을 돌리고 전개 속도가 빠른 팀.
여기서 지공이란 인식이 생기는 건 이 빠른 흐름을 찾기 위해서 볼을 소유해야 하고 그 볼을 소유하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사람들은 이 부분에서 고정관념이 생기는 거죠. 이건 말 그대로 이 빠른 패스 흐름을 대부분의 경기에서 완성시키기 위한 전제 조건 중 하나이자 상대의 방식을 어느 정도 고정시키기 위한 또 다른 수비 전술전략의 일환임.
펩이 선수들에게 자리를 잡고 주변 선수들을 인식하고 간격과 대형을 유지하는 걸 중요시하는 이유 중 하나.
그리고 볼을 돌리다가 이 흐름을 파악한 선수를 기점으로 속도가 확 살아나거나 루즈볼을 먹거나 상대와의 경합에서 이겨서 그냥 냅다 달리거나 빠른 패스 흐름이 시작되면 상대 선수들도 급해지기 때문.
펩은 항상 이것을 의식하고 사람들이 역습으로 분류하는 카운터에 신경을 많이 쓰는 감독이었음. 바르셀로나 때부터 늘. 펩 바르셀로나를 극한의 지공의 팀으로 인식하지만 실상은 카운터의 스피드가 매우 빠르고 그걸 메시 중앙화로 절정으로 완성시킨 팀. 사키가 제일 칭찬한 게 바로 이런 개념의 속도.
뭔가 부족할 때마다 지적했던 건 이런 속도의 문제였고 즐라탄이 바르셀로나에 어울리지 않는다 지적했던 것도 속도의 문제였고. 펩이 4년 동안 과하게 집착하고 끊임없이 변화를 줬던 것도 이런 속도의 문제였음.
보통 역습이란 걸 우리 진영에서 상대 진영까지 최소한의 터치와 빠른 속도로 빨리 마무리하고 극복하는 것만 생각하는데 카운터도 종류가 많죠. 숏 카운터도 카운터의 일부고. 순간적으로 느린 흐름에서 빠른 흐름으로 뒤바뀌는 것 역시 보통은 수비 대형을 부수는 과정이 많고 템포만 인식하지만 때로는 카운터의 일부라고 볼 수 있음. 물론 분류하는 사람들 기준에 따라 차이점이 있을 순 있겠죠.
여기서 두 번째 오류.
이거 때문에 가끔씩 전술적 중심이나 2,3 옵션을 잃거나 선수들의 체력 리듬이 박살 난 시기에 펩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해 부진한 흐름에 빠져있을 땐 답답한 축구를 하는 감독이란 이상한 선입견이 생겨버림.
이건 반대로 빠른 패스 흐름을 만들어 주는 선수들이 빠졌을 때 생기는 문제나 그것을 대체해주지 못하는 선수들을 지적해야지. 펩이 그런 감독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는 거임. 당연히 펩은 여기서 안정적인 볼 소유가 가능한 자원들을 상대적으로 더 선호할 수밖에 없음. 어차피 빠른 패스 흐름을 만들 수 없다면 어거지로 이기려면 볼 소유가 중요하니까.
펩이 시티에 와서 유해졌다고 얘기하는 건 외적으로도 사람이 많이 변했지만 내적으로 이런 승리 공식을 만드는 과정을 본인의 기준에 맞추기보단 현 선수단에 맞추기 시작하는 모습들이 보였기 때문. 아직도 가장 컸다고 느끼는 건 칸셀로가 읽힌 것과 그릴리쉬가 뚜껑 까보니 전혀 다른 선수였다는 것. 이 두 개가 제일 컸다 생각함. 그전으로 가면 리옹 전. 개인적으로 당시 선수들을 못 믿는구나란 감정이 제일 크게 들었던 경기.
요즘 파우사라는 말을 팬들이 참 많이 쓰던데 개인적으로 과하게 의미 부여를 많이 한다고 생각하는 편임. 옛날에 바르셀로나 팬들이 틈만 나면 티키타카 얘기하던 그 모습과 유사하다는 인상을 받기도 하구요.
펩이야 언론들에게 공개적으로 말을 하는 입장에서 팬들을 아리까리하게 만들고 본인의 의도를 들키지 않아야 하는 직업에 있고 언론들은 또 팬들이 기사를 보게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 있으니 그런 식으로 얘기할 수 있다고 보지만 팬들은 그것에 빠져 정작 중요한 것들을 못 보고 있다고 생각함.
중요한 건 본인의 위치에서 본인의 역할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냐임.
예를 들어 데 브라이너처럼 본인에게 주어진 역할이 빠른 패스 흐름을 적극적으로 살리고 박스 근처에서 창의성을 최대로 발휘하는 거라면 그걸 최대치로 이끌어 내면 그만임. 그거 이상 해주는 데 브라이너가 대단한 거죠.
펩은 그에 맞춰서 점점 데 브라이너의 동선을 하프 라인 아래로는 최대한 안 빠지게 만들었죠. 포든한테 펩이 만족을 못하는 건 그렇게 맞춰주면서 하라고 하는데 못하니 그러려면 더 좋은 선수가 되려면 다양성을 갖춰야 한다는 얘기를 하는 걸테구요. 이건 그렇게 얘기하는 파우사가 있냐 없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쉽게 말하면 상황을 읽어야 한다는 거죠.
개인적으로도 포든한테 뭐가 안 보인다는 건 본인이 상황을 읽을 줄 몰라서 일단 부딪혀봐야 안다는 거임. 비어 있는 공간에 찾아 들어가도 동료들이 주지 않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계속 달라 하다가 막상 주면 상대 선수들한테 둘러싸이는 각이 돼서 재빨리 뒤로 돌리거나 볼을 돌리고 본인은 뒤로 빠져버리죠. 이런 건 그렇게 얘기하는 파우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음. 주변을 읽지 못하니 판단이 늦는 거뿐.
자신이 될 때 안 될 때를 본능적으로 알지를 못하는 게 문제지. 그걸 왜 파우사가 있냐 없냐로 구분을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음. 펩이 템포 얘기를 덧붙이니 여기서 혼란이 오는 것 같은데 포든의 문제는 뭐든지 빠름빠름에만 있는 게 아님.
물론 포든이 순간적으로 빠른 패스 흐름을 만들어 내고 가끔씩 그걸 골이나 슈팅까지 가져가는 과정은 시킨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아무나 갖지 못하는 능력이지만 그걸 90분 동안 어떻게 활용하냐는 솔직히 50점도 아깝다고 봅니다. 그바르디올도 그렇지만 얘도 본인이 가진 것들, 배운 것들을 참 제대로 못 쓴다 생각함. 그바르디올은 1년 차란 쉴드라도 있으니 좋아지고 있다고 하는 거지. 얜 그것도 없으니 혹평하는 거뿐.
아직도 종종 저번 시즌 시티에 관한 얘기들을 커뮤니티에서 볼 때가 있음. 뭐 무당이 아닌 데도 무당처럼 얘기했고 결승전은 제 예상과 다르게 가긴 했지만 어쨌든 뻔해 보이는 팀에서 남들보다 먼저 가능성을 보고 성공을 확신했던 건 이런 접근 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결론이 컸다고 봅니다. 셰필드와의 경기를 보면서 든 생각들은 저런 것들이지만 뭐 앞으로 더 풀어쓸 기회가 있겠죠.
이번 시즌 펩이 가진 아이디어는 무엇일지는 이제 데 브라이너가 돌아오는 경기들을 보면서 생각을 해봐야겠지만 분명한 건 저번 시즌 전술전략은 못 씀.
귄도간이 없어서도 있지만 상대가 데 브라이너를 일시적으로 양 측면 포워드로 만들어 빠른 패스 흐름을 만드는 걸 인지하고 있는 와중에 귄도간처럼 여기서 또 다른 효용성을 발휘할 자원이 있냐가 의문이기 때문. 있어도 귄도간과 모든 게 같을 리도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다시 보기 하면서도 느낀 게 크로스를 의도적으로 줄이면서 (할만한데도 잘 안 하더군요.) 선수들에게 중앙 활용을 많이 강조한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구나 싶긴 합니다. 아니면 뭐 제가 과도하게 느낀 걸 수도 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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