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 평가를 제대로 할 수가 없는 거.
챠비 얘기할 때마다 항상 유로 08 이후만 쳐주는데 챠비는 반 할 1기 시절 푸욜보다 담금질을 더 빡세게 받은 유망주였고 펩, 쁘띠, 코쿠 등과의 주전 경쟁이 있었던 00-01 시즌을 지나 (펩은 이 시즌을 끝으로 새로운 도전을 외치며 떠남) 01-02 부터 바르셀로나의 확고한 주전이었으며 임대 전설 다비즈의 보조 아래 드디어 따까리짓에서 해방된 03-04 시즌 후반기부턴 반박할 수 없는 클래스의 선수였음.
챠비, 코쿠, 루쵸 없으면 실점은 어마어마하게 하고 박살 나던 게 00년대 초반 바르셀로나임. 그래서 다비즈 오기 전부터 챠비 고평가 하던 사람들도 국내외로 꽤 많았던 편이었고.
챠비가 커리어 초기 포리바렌테로 대다수의 팬들이 분류하는 수중공미를 넘어서 측면 미드필드까지 다 뛰어본 선수라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태반일 거임.
사실 챠비 전성기를 제대로 본 사람이 이제 주류 커뮤니티들에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겠지만 챠비는 그렇게 전성기가 짧은 선수가 아니었음. 애초에 꼬맹이 시절 때도 99년에 U-20 월드컵 우승 주역 중 하나였고 U-21 을 20경기 이상을 뛴 자기 차례를 기다리던 유망주였고 00 올림픽도 전 경기 풀타임을 뛴 선수였죠.
담금질을 오래 하던 당시 바르셀로나나 스페인 특성상 가늘고 길게 가면서 결국엔 살아남은 거처럼 느껴지는 거지. 사실 탄탄대로를 타던 슈퍼 유망주 중 하나였단 소리임.
유로 08 이 평가를 싹 뒤집는 기점이 된 건 당시 리가를 자주 접하기 어려웠던 팬들한테 심어진 이미지를 뒤바뀐 계기가 됐기 때문이지. 챠비는 이미 그전부터 반박할 수 없는 바르셀로나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음.
챠비가 원래 패스 성공률만 높게 나오고 막상 경기를 휘어잡고 뒤집는 그런 건 부족하다는 이미지가 강했었죠. 막상 경기 보면 챠비는 그전부터 할 거 다 했음.
데코 영입 당시 바르셀로나 팬들이 좋아하지 않았던 것도 챠비의 공격 본능이 이제 터지기 시작하고 만능형의 선수가 되어갈 때쯤 딩요와의 공존도 걱정되는데 챠비와의 공존도 걱정해야 할 미드필드가 들어온다는 게 컸었죠. 챠비는 이런 우려도 아무렇지 않게 넘어간 뛰어난 호환성을 갖고 있는 미드필드였죠. 아무도 이런 얘기는 안 함.
게다가 챠비의 부재가 치명적일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던 05-06 후반기는 이니에스타가 드디어 담금질이 끝났나 싶은 퍼포먼스를 선보이면서 메워버려서 챠비의 가치가 사실 그 정도는 아닌 건가? 란 의문을 사기 충분하기도 했었구요. 그러고 다음 시즌 되자마자 딩요는 시즈모드 하기 시작했고 데코-챠비가 묶이는 경기가 많아지기도 했죠.
개인적으론 이게 컸다 생각하긴 함. 이때도 항상 바르셀로나 팬들은 챠비만 고생한다 하고 챠비는 잘한다 했으니까.
사실 90년대 막바지부터 10년대 초중반까지면 커리어가 긴 편인데 챠비는 본인 스스로 자기 선수 생활을 최소 2-3년은 깎아먹었음. 펩 2년 차부터 아킬레스건 문제로 프루나가 1주일 1경기를 권유했지만 본인이 그걸 거절하고 계속 뛰면서 티토 때부터 슬슬 맛이 가기 시작했죠.
뭐 그렇다고 티아고를 빨리 땡겨쓰고 세스크에게 더 많은 역할을 줬어야 했다는 건 아닌데 바르셀로나를 위해 본인 몸을 다 갖다 바친 건 푸욜뿐만 아니라 챠비도 마찬가지였음.
챠비의 평가를 확 바꿔버린 건 아라고네스와 펩이란 두 감독의 존재가 제일 컸지만 챠비는 그전에도 최고의 미드필드 중 하나였고. 이 둘로 인해 빛난 건 챠비의 유도를 바탕으로 한 플레이 메이킹 방식이 정점을 찍었고 자신이 더 이상 보조자나 일시적인 옵션으로 그치지 않고 전술적 중심이나 다음 가는 비중의 선수로서도 충분하다는 걸 증명했기 때문.
이 둘이 챠비를 만들어서가 아니라는 거임. 챠비는 원래 그런 선수였음.
아마 세계관이 뒤틀려 07-08 이후로 챠비가 진짜 맨유 행을 추진해 맨유로 갔다면 바르셀로나는 세스크 이상으로 배 아파 죽었을 거임.
세부적인 내용들은 예전에 유도 설명하면서 다룬 글들에 챠비 얘기가 많으니 그것들 참고하시면 좋을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