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리그 우승은 사실상 레알 마드리드가 하게 됐습니다. 레알 마드리드가 이번 시즌 리그에서 보여준 모습은 챔피언이 되고도 남을 만큼 잘했다고 생각하고, 어제 있었던 엘 클라시코 경기 또한 아주 잘했습니다.
뭐 하고자 하는 얘기는 레알 마드리드 우승 축하글이 아니고. 바르셀로나에 관하여 몇 가지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1 - 펩
오늘 경기는 바르셀로나가 전체적으로 그냥 더럽게 못했다고 말해도 모든 게 설명이 가능할 정도로 바르셀로나가 못했지만, 굳이 나눠보자면 감독의 전술적 실책이 첫째요, 선수들의 체력 저하가 둘째요, 테요가 셋째요.
이전에 펩 본인이 리그 전반기 엘 클라시코를 앞두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 있다. 그의 말은 아래와 같았다.
"만약에 경기를 컨트롤 할 수 없다면 세 명의 수비수로 수비를 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 그리고 90분간 마드리드를 상대로 경기를 컨트롤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지구 반대편에서 작은 모니터 화면으로 보는 사람도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게 눈에 그냥 보일 정도로 선수들의 움직임과 패스 모든 게 심각했다. 바르셀로나의 축구는 체력을 밑바탕으로 시행되며, 그 중에서 3백 전술은 선수들에게 가장 많은 요구를 하는 전술이다. 지난 세 시즌에 비해서 로테이션이 얼마나 안 돌아갔는지 단 한 경기만으로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셋째로 선발 라인업에 테요가 나온 것. 펩이 어떤 생각으로 테요를 선발 라인업에 올렸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개인적으로 그가 왜 나온 건지 그가 교체 아웃되어 나가기 전까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의 스피드를 활용해 뒷공간 공략하기에는 마드리드의 최종 라인은 너무 낮았고, 그렇다고 사이드로 벌리기에는 그는 단 한 가지 패턴만 가지고 있었기에 아르벨로아가 속지 않았다. 산체스나 페드로가 선발에 있었어야 했다.
2 - 4년 전과 지나치게 겹쳐보이는 건 우연일까. 아니면 단순한 나의 기우일까.
마드리드에게 리그 경기에서 마지막으로 졌던 게 07-08 시즌 후반기 엘 클라시코였다. 판타스틱 4니 뭐니 우주 방위대니 뭐니 하면서 많은 기대를 쏟아냈던 시즌이었던 07-08 시즌이었지만 라이벌의 우승을 리그 중반에 허용해버렸으며, 후반기 엘 클라시코에선 너무나 많이 벌어진 승점차로 인해 파시오를 허용했다. 그것도 모자라 4-1로 대패를 하는 수모까지 당했다. 중위권 팀들에겐 시도때도 없이 두둘겨 맞았다.
3위, 챔피언스 리그 4강, 코파 델 레이 4강. 표면적으로 보면 실패한 시즌이라는 말보다는 쉬어가는 시즌이었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하락세를 걷던 2000년대 초반 이후 바르셀로나에겐 가장 치욕스러운 시즌이었다.
얘기하고자 하는 건 바르셀로나의 11-12 시즌이 07-08 시즌만큼 망했다는 게 아니다. 그 때 보였던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는 데에 있다. 한 소년에게, 한 청년에게 한 클럽의 모든 짐을 짊어지게 하고 있다는 거다. 07-08 시즌 바르셀로나는 뚜레도 있었고, 사비도 있었고, 이니에스타도, 앙리도 있었지만. 메시가 없으면 제대로 이기질 못하던 팀이었다. 11-12 시즌 바르셀로나도 마찬가지다. 산체스가 있고, 이니에스타가 있고, 세스크, 샤비, 페드로가 있는데도 메시가 없으면 팀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 그게 시즌이 거듭되면 될수록 더욱 더 심해지고 있다. 메시 의존도가 가뜩이나 높은 현 전술, 상황에서 차츰차츰 더 올라가 모든 게 메시가 기점이 되어버리고 있다는 말이다.
경기를 풀어주는 것도 메시요, 마무리를 짓는 것도 메시요, 연결 고리가 되어주는 것도 메시요. 메시가 제 몫을 해주지 못하면 그 누구도 제 몫을 해주지 못한다. 지친 메시가 쉬고 싶어도 계속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다.
3 - 긍정적인 면
펩 과르디올라의 계획이 처음으로 실패한 시즌이다. 그가 그렇게 원하던 세스크 파브레가스와 측면 포워드 산체스가 영입됐음에도 불구하고 시즌 초반부터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 실패와 장기 부상, 전술 실험 실패가 지속적으로 나타나면서 원활하게 시즌 운영을 하지 못했다. 후반기 피지컬 트레이닝은 말만 나왔을 뿐, 시행 조차 하지도 못했다.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했던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어찌됐건 팀을 트레블 근처까지 이끌어왔다.
말하고자 하는 바는 이와 같다. 그는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 3백 전술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다시 한 번 도전할만한 이유가 생겼고, 무엇보다 그는 바르셀로나를 지금 이 상태로 내쳐두고 떠날만한 무책임한 사람이 아니다. 과도기를 겪고있는 현 바르셀로나는 아직 펩의 지휘 하에 더 발전할 여지가 남아있는 팀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재계약 소식이 조만간 들려올 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벌써부터 그가 다음 시즌에 어떤 그림을 그려 팀을 이끌어 나갈지 기대 된다. 물론 가장 앞에 놓여있는 챔피언스 리그 4강 2차전 첼시 전도 기대가 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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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이 글 쓴 지 며칠 되지도 않아서 펩이 떠난다는 게 오피셜이 나버렸네요. 참... 뭐라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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