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크루이프로 이어지는 아약스와 바르셀로나의 철학이 어린 선수들에게 무한한 경쟁 속에서 그들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을 수 있게 수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크루이프는 어린 선수들에게 기회를 주는 건 당연한 일이며 그런 선수들이 필드 위에서 뛰는 모습은 즐거운 일이라고 얘기하면서도 늘 그 어린 선수들을 넓은 시각으로 바라봐야하며 그들을 소중하게 다뤄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크루이프가 감독으로 있던 시절에 바르셀로나에는 이반 데 라 페냐라는 좋은 재능의 선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50년에 한 번 나올만한 재능이라고 불렸던 선수였고 14살인가 15살 때 마드리드와의 영입 경쟁에서 승리해서 데려온 재능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루이프는 그를 조심스럽게 다루는 데에 집중했죠.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린 선수가 마주할 부담감을 덜어낼 필요성이 있었고 한 번의 활약상이 팬들에게 이상한 기대감을 심어버려서 혹여나 성장 방향이 틀어지거나 겉멋이 들어서 선수가 잘못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당시에 언론들이 데 라 페냐를 적극적으로 기용하지 않던 크루이프에게 굉장한 비판을 가하고 데 라 페냐와 크루이프의 불화설을 언급하면서 그보다 뛰어나지도 않으면서 먼저 데뷔하고 퍼스트 팀에 자리 잡은 요르디 크루이프의 얘기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크루이프는 그러한 루머에 대응하지 않으면서 부담감이 데 라 페냐에게 가지 않게 최선을 다했다고 하죠.
크루이프가 떠나고 나서 롭슨이 새로운 감독으로 오면서 환경의 변화를 맞이했던 바르셀로나였고 같은 시기에 바르셀로나에 온 호나우두가 그가 마주하는 부담감을 덜어내주기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알려져있는데 마찬가지로 금세 팀을 떠나버리고 반 할을 거치면서 데 라 페냐는 잦은 부상과 제한된 출전 기회로 인해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떠나게 됩니다. 바르셀로나에 다시 한 번 돌아오지만 마찬가지로 재능을 꽃피우지는 못했죠. 크루이프는 이후에도 데 라 페냐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할 때마다 그의 나이는 고작 18살이었고 그런 나이에 마주해야할 부담감과 어려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문제였다고 얘기하기도 했습니다.
데 라 페냐와는 인연이 없었지만 챠비, 푸욜, 이니에스타의 데뷔를 이끌었던 반 할도 비슷했습니다. 그는 어린 선수들에게 절대로 결과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지 말고 그냥 늘 해오던 그대로 해올 것을 주문하며 필드 위에서 그냥 경기를 뛰는 거 자체를 즐기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합니다. 챠비도 그렇고 이니에스타도 그렇고 어린 시절 반 할에 대한 기억을 얘기할 때마다 언급하는 부분이죠. 그리고 어린 선수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나이나 국적에 따른 파벌이 생기지 않게 다른 국적의 베테랑과 호텔에서 같은 방을 쓰게 한다거나 여러 가지 방법들을 썼다고 알려져있죠. (그런 양반이 네덜란드 커넥션 파벌로 떠나다니 신기합니다.)
마찬가지로 비슷한 케이스로 보얀이 있었죠. 07-08 시즌 바르셀로나는 이미 후반기가 얼마 지나지도 않은 시점에 리가 우승에 대한 가능성은 없어진 상태였고 그나마 남아있던 챔피언스 리그도 사실 그 당시 팬들의 반응을 떠올려보자면 우승에 대한 기대감은 거의 없었습니다. 리가에서 무나 패가 거듭되는데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망신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가 일반적이었죠. 레이카르트는 핵심 선수들의 부상이나 기타 이유로 인한 이탈을 메우기 위해 이미 미래의 키로 자리 잡은 메시와 어린 선수들 (보얀, 지도산) 을 적극 기용하고 그들은 팬들에게 다음 시즌에 대한 희망을 심어줍니다. 특히 보얀은 카탈란이었고 골도 곧 넣으면서 팬들은 메시에 이어서 바르셀로나를 10년도 넘게 이끌어갈 재능이 나타났다고 좋아했지만 보얀은 그러한 부담감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고 실제로 그 시기에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본인이 몇 개월 전에 직접 밝히기도 했었죠.
푸욜과 앙리, 아라고네스가 그를 보호하려고 노력을 했다고 알려져있고 펩 역시 그를 신중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고 하는데 언론들은 그들의 말을 하나하나 가만두지 않았고 늘 헤드 라인으로 이용해먹었죠.
제가 늘 어린 선수들에 관한 얘기를 할 때 자주 써먹는 게 이니에스타와 세스크인데 이니에스타는 묵묵히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어느 자리에서든 때로는 팬들의 야유도 먹어가면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서 노력했고 세스크는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대단하다고 생각했던 이니에스타도 저러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바르셀로나에서 자신이 자리잡을 수 있는 지에 대한 불안감과 혹여나 자리를 못 잡게 되면 어떡하지란 자기 자신의 미래에 대한 우려가 컸다고 하죠.
완성된 재능은 시대를 막론하고 자연스럽게 팀의 중심축으로 나이를 가리지 않고 올라옵니다. 그런 재능을 무시하는 감독은 본 적이 없어요. 허나 그런 선수들은 절대로 예시가 될 수 없어요. 특별하다는 건 자주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특별하다는 걸 우리는 잊어선 안 됩니다. 사실 바르셀로나가 그 동안 끊임없이 행해온 방법론이 정답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 오랜 시간이 세스크뿐만 아니라 피케도 그렇고 다른 재능들을 떠나게 하는 경우도 있었으니까요. 우리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지만 그보다 뛰어난 대기만성의 가능성을 가진 재능이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허나 그 시절보다 더 성적에 대한 부담감과 과정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이 시기에 어린 선수들은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제한적인 기회 안에서 알아서 살아남는 게 결국 최선일 수밖에 없죠. 벵거의 손을 거치면서 망가진 선수들을 보면 더더욱 생각이 굳어지기도 하구요.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아레냐나 푸츠가 사실 어느 정도로 성장할 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퍼포먼스가 그의 미래를 보장하는 게 아니고 퍼스트 팀에서 그가 어린 시절 해오던 걸 그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리고 보얀을 보면서 축구 내적인 것만으로 어린 선수를 판단하는 건 올바른 판단이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됐거든요. 사실 그런 면에서 제가 데 리흐트나 데 용에 관한 언급을 잘 안 하거나 그들이 바르셀로나로 왔을 때 100% 성공할 거란 생각을 안 가지는 이유기도 합니다. 원체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관해서 얘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기도 하구요.
바르셀로나가 이런 어린 선수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임대에 대한 관념도 많이 바꿔보려고 근 몇 년간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하피냐를 제외하고는 별 다른 성과가 없는 거 보면 여전히 바르셀로나하면 임대는 떠나는 것이다란 공식이 유효한 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 다른 문화나 다른 훈련 방법을 경험하는 게 그 시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죠. 축구 내외적으로 어려운 문제지만 결국 해결책은 조심스러운 접근이 가장 정답에 근접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결국 팬들이 원하는 건 당장 즐길 수 있는 축구와 성적이니까요.
크루이프 曰 (2010년 엘 페리오디코에 기고한 칼럼 중 일부분)
어린 선수들은 경기에 뛰면서 선수로서 성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특정한 목표를 가지고 말이지. 물론 이런 게 무조건적으로 좋다고 얘기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에 그 어린 선수가 정신적으로 크게 성숙하지 않다면 슬럼프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하며 그를 조심스럽게 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어린 선수들은 이러한 외부적인 것들을 고려하지 않고 빅클럽으로 가려고 한다. 아무도 그들의 옆에서 조금 더 완벽한 시기에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도록 도와주지 않는다. 어린 선수들의 열망은 이해하지만 그들은 아직 미숙하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점들을 생각하지 않는다.
에이전트들은 오로지 이런 어린 선수들을 빅클럽에 보내려고만 하는 것뿐이다. 정신적으로 단련이 되어있건 그렇지 않건, 그들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상관없이 돈을 위해서 어린 선수들의 재능을 파는 것이다.
오늘날 마드리드와의 경쟁은 바르셀로나가 어린 선수들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시험하지 못하게 한다. 몇몇 예외가 있지만 말 그대로 예외다. 메시는 예외가 된 선수지만 그를 성공의 잣대로 두고서 다른 선수들을 바라봐선 안 된다. 메시는 너무나도 특별한 재능을 가진 선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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