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10년도 넘어간 옛날 이야기지만 노트북을 정리하면서 발견한 이미지를 보고 문득 생각이 들어서 끄적여보는 글. 야심차게 시도했던 판타스틱 4 는 판타스틱 1 으로 전락하고 팀이 망가지고 바닥으로 향해가고 있던 시기에 바르셀로나가 그냥 맛보기로만 접촉할 생각으로 무링요에게 접근을 했었는데 그는 당시 바르셀로나 감독이던 레이카르트보다 더 방대한 자료와 세부 사항 그리고 자신의 단기적인, 장기적인 플랜을 가지고 바르셀로나에 방문합니다. 심지어 감독 커리어 내내 바르셀로나와 6번 붙어본 게 다인 사람이 그랬다는 거 자체가 꽤나 충격적인 일이었죠.
당시 무링요의 요구는
- 세계 최고의 연봉
- 의료진 전원 교체와 자신이 원하는 바르셀로나 출신의 수석 코치 (펩 아니면 루쵸) 와 자신이 데리고 있는 스태프들을 일정 수준 이상의 연봉을 보장해주는 형태로 고용해줄 것
- 선수 영입과 방출에 대한 전권
하지만 바르셀로나는 그를 실력으로 최소 1~2년은 시험해볼 생각이었고 그가 언론과 마주하는 상황에서 절대적인 신사의 모습을 유지하는 것을 협상 불가의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무링요는 당연히 NO. 바르셀로나는 그가 포르투나 첼시 시절처럼 과한 언론 플레이로 언론과 상대팀들을 배려 없이 대하는 거나 적으로 돌리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 심지어 반 할의 밑에 있다가 바르셀로나를 떠날 때 스페인 언론들과의 사이가 좋지 않았기 때문에 이게 부정적으로 이어지는 것 또한 원치 않았다고 알려져있음. 당연히 바르셀로나도 무링요와 마찬가지로 이런 요구를 듣고 과한 요구라 판단하고 바로 거절을 했었음.
펩 과르디올라의 부임은 이미 한참 전에 결정난 일이었지만 크루이프의 계속되는 인터뷰도 소용 없을 정도로 걷잡을 수 없이 올라가던 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에 최적의 카드는 결국 검증된 명장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몇몇 보드진들은 무링요를 데리고 와야한다라고 계속해서 주장했었음) 잉글라는 따로 무링요와 접촉을 다시 가졌고 무링요의 계속 되는 과한 요구에 가뜩이나 부정적으로 보던 크루이프와 치키, 라포르타는 결국 최종적으로 NO 를 외치고 싸그리 엎어버리고 그대로 펩 과르디올라를 밀고 나갔죠.
위의 이미지는 무링요가 바라던 베스트 11. 신기한 건 이 당시 무링요는 뚜레와 챠비를 베스트 11 중 한 명이 아니라 전천후 로테이션 자원으로 분류했었음. 재밌는 건 그를 대신해 감독으로 온 펩 과르디올라와 마찬가지로 호나우딩요의 방출은 협상 불가의 조건이었습니다. 달랐던 건 무링요는 데코와 에투를 남기기를 원했고 반대로 앙리를 보내길 원했고 펩은 데코와 에투를 호나우딩요와 함께 프리시즌 프레젠테이션에서 자신의 계획에 없다고 폭탄 선언해버리고 앙리는 자신이 직접 설득해 바르셀로나에 잔류시켰습니다. 에투는 바르셀로나가 원하는 금액으로 데려가려는 팀이 없어서 결국 남았지만 말이죠.
그 당시 첼시에 있던 자신이 아끼던 선수들을 자신의 베스트 11 에 넣어놨던 것을 보면 첼시 1기에서 조금 더 공격적인 방향성이 갖춰진 팀을 그리던 게 아니었나란 생각이 듭니다.
선수들 (특히 메시나 이니에스타) 을 놓고 봐도, 바르셀로나만 놓고 봐도 결국 무링요가 오지 않은 게 바르셀로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 됐다고 보는 사람 중 한 명이지만 적어도 무링요만 놓고 본다면 바르셀로나 행은 그에게 그의 이미지를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자 압도적인 명성을 갖출 수 있는 기회가 됐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트로피는 물론이고 자신의 명분과 실리를 다 챙기고 도망가기 가장 좋은 시기이자 가장 좋은 팀이 그 시기의 바르셀로나가 아니었나란 생각.
알려진 것과 다르게 무링요는 바르셀로나의 철학에 영향을 굉장히 많이 받은 감독 중 한 명이고 그의 트레이닝론 또한 바르셀로나를 거쳐간 명장들과 굉장히 닮아있습니다. 그의 그 수비적인 방향성의 전술에도 바르셀로나의 전술 방향성이 담겨져있을 정도. 펩 과르디올라가 이 정도의 실력과 방향성을 갖고 있는 감독이 아니었다면 분명 무링요는 바르셀로나에 한 번은 왔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어쩌면 바르셀로나 팬들은 펩 과르디올라에게 단순히 좋은 축구와 많은 타이틀을 안겨줘서 고맙다는 것보다 더 큰 고마움을 느껴야하지 않을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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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당시에 무링요가 왔으면 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무링요빠 아닙니다. 마드리드 오면서부터 오히려 굉장히 싫어졌어요. 이 인간 때문에 의도치않게 커뮤니티 전쟁 비스무리하게 되면서 운영자하면서 악질 팬들에게 욕도 정말 많이 먹었음.) 진짜 경기 보는 게 너무 짜증날 정도였어서 그냥 이기는 게 더 소중하게 여겨졌던 것 같음.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그 당시 팬심도 무링요 > 펩이었음. 당시 꾸레코리아도 그랬을 정도니까요.
마드리드에서부터 단기적인 사이클의 상승 이후 더 치고 나가지를 못하는 걸 보면서 왔으면 진짜 휑해졌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왜 보드진이 신사적일 것을 협상 불가로 내걸었는 지에 관해서도 100% 이해할 수 있게 됐죠. 아마 이 때의 경험이 바르셀로나에겐 내부 인사를 조금 더 신뢰하게 되는 기점이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저도 펩 이후로 감독을 바라보는 관점이 많이 바뀌긴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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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좋은 감독이라는 대중의 평가와 다르게 저 같은 경우에는 무링요는 근래 모습을 보면 축구 내외적으로 현대 축구의 흐름을 전혀 못 쫒아가는 것 같은데 쉬면서 이러한 감각을 되찾지 못한다면 말년을 추하게 보내고 뒷길로 사라졌던 몇몇 명장들과 마찬가지의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음. 안첼로티도 살짝 이런 모습이 보이고 있던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