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좋은 센터백을 얘기할 때 그냥 단순히 대인 수비력이 좋고 슬라이딩 태클이 좋거나 실책성 플레이가 그냥 경기를 봐도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선수들을 얘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물론 틀린 건 아니지만 점점 센터백에게도 공격 관여를 요구하는 현대 축구의 흐름 상 좋은 센터백이란 저런 의미보다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이탈리아가 점점 현대 축구의 흐름과 멀어지는 것도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죠.
제가 바르셀로나 경기들을 보면서 감상평이나 지적 사항을 얘기할 때 불확실한 볼이나 공중볼에 대한 경합에서 늘 이겨야 한다고 강조하는 건 한 방에 넘어오는 상대의 공격을 차단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우리가 라인을 내리지 않은 상태로, 스쿼드 전원이 하프 라인 아래로 내려오지 않은 상태로 다시 공격을 시도할 수 있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한 마디로 수비가 잘 되면 공격도 잘 된다는 뜻이죠. 왜 펩이 수비 훈련을 그렇게 많이 하고 (마르티 페라르나우의 책에 의하면 펩의 훈련은 7~80%가 수비 훈련이라고 합니다.) 선수들에게 슬라이딩을 최대한 하지말라고 지시하는 지 알 수 있습니다.
헌데 여기서 저 과정을 거치면서 후속 동작까지 완벽하게 가져가면서 볼을 내보낼 때의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아비달이고, 마르케즈고, 전성기 시절 피케입니다. 푸욜은 이런 선수들의 일어날 수 있는 실책성 플레이를 최소화 시켜주는 대인 수비와 판단력이 엄청 좋은 선수였기 때문에 이런 선수들의 짝꿍으로서 최고의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거구요.
물론 이런 최후방 자원들을 빼고 다른 선수들도 수비를 잘할 수 있다면 전방에서부터 이런 경합 과정에서의 실책이나 패배가 없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압박이 굉장히 잘 돌아가고 그만큼 공격이 시원시원하게 나간다는 게 눈으로 확 보일 겁니다. 펩 과르디올라의 바르셀로나나 루이스 엔리케의 바르셀로나는 떡대들을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잔뜩 세우고 박살내는 축구를 한 것도 아닌데 수비도 좋고 공격도 좋았던 건 포지션을 가리지 않고 이런 볼의 낙하 지점을 잘 잡는 포지셔닝과 그에 맞는 스탠딩 태클이 좋았던 팀이었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루즈볼 탈환이 잘 되서 단거리 역습과 하프 라인 위 지점에서 공격 작업이 잘 되던 팀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신체 능력이나 떡대들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활용해 필드를 더 폭 넓게 활용하면서 우위를 점한 게 12-13 하인케스의 바이에른 뮌헨이겠구요.
반대로 이게 잘 되지 않던 티토, 타타의 바르셀로나와 루이스 엔리케의 2년차 후반기, 3년차 바르셀로나는 이런 경합 과정에서 패하는 경우의 수가 많아졌는데 그와 동시에 롱패스와 크로스 시도 수는 올라갔는데 또 전방에서의 루즈볼 탈환이 거의 사라지면서 스쿼드 전원이 하프 라인을 기점으로 왔다갔다하는 경우의 수가 엄청 많아졌기 때문이었습니다. 발베르데는 저번 시즌에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러한 거북이 축구를 했던 거고 선수들이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다고 느껴지는 것도 이러한 부분에서 오는 문제였습니다. 이번 시즌에 문제를 드러냈던 부분들이나 계속 되는 실점도 이런 경합 과정에서의 패배가 많았기 때문이었죠.
바르셀로나에 강했던 포워드들은 이런 경합에서 바르셀로나의 센터백들이나 풀백들을 상대로 우위를 점하고 활약을 펼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를 선수는 단연 드록바와 만주키치, 전성기 벤제마 정도가 있겠네요.
이렇게 센터백이 늘상 해오던 역할에서 한 단계만 작업을 더 거치는 데도 팀의 공격에 관여할 수 있기 때문에 발이 좋고 신체 능력이 좋은 센터백을 찾는 것이죠. 가능하다면 양 발을 잘 쓰는 선수를 찾는 것도 이러한 맥락. 바르셀로나에서 피보테로 신체 능력이 좋고 양 발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선수가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것도 센터백이 좌우로 빠지면서 자연스레 세 번째 센터백 역할을 맡으면서 경합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면 그만큼 양 발 잡이가 패스 선택지를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챠비가 빠지게 될 미래의 바르셀로나를 고려했을 때 이런 선수가 피보테에 위치하는 게 답이라고 봤기 때문에 부스케츠를 가지고 있었던 펩과 티토도 이런 피보테를 찾았던 셈이죠.
마스체라노도 여기서 언급할만한 선수인데 마스체라노는 이런 면에서 볼의 낙하 지점에 대한 판단력이 끝까지 고쳐지지 않은 편이어서 포지셔닝 미스로 상대 공격수를 놓치는 빈도 수가 굉장히 높은 편에 속하는 선수였습니다. 허슬이나 신체 능력을 바탕으로 극복하는 느낌이 강했고 반사적으로 나가는 슬라이딩 태클은 이피엘에서 수비형 미드필드로 뛰어오면서 들어버린 습관인 탓에 거의 고질병인 수준이었죠. 오히려 이런 모습 때문에 푸욜하고 유사하다고 평가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푸욜하고 비교하기엔 푸욜한테 사과문을 작성해야할 정도로 마스체라노가 몇 수는 딸리는 선수였음. 게다가 수비 방식 자체가 리스크가 굉장히 큰 방식이었기 때문에 그 어떤 감독도 바르셀로나에서만큼은 마스체라노를 피보테로 기용하는 걸 꺼려한 거였습니다.
반면 야야 뚜레는 다 잘하는 선수였음. 자신이 공격적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는 거나 자신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욕심이 좀 적었다면 바르셀로나에서 어느 포지션으로든 최소 다섯 시즌은 더 뛰었을 선수. 자신의 입지나 역할에 만족했을 때는 에이전트도 입을 다물고 있었으니까요. 양 발을 잘 썼고, 센터백이나 피보테를 가리지 않고 포지셔닝 자체가 천부적이었던 선수였거든요. 이런 면을 보고 바르셀로나의 센터백의 영입이나 피보테의 영입을 바라보거나 다른 팀에 있는 좋은 센터백이 누군지를 바라본다면 전술적으로 보조를 잘한다는 개념이 어떠한 개념인지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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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 나름 클래스 있다고 하던 애들이 라 리가에만 오면 줄줄이 망하던 이유도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전 잠브로타, 튀랑, 칸나바로, 사무엘 같은 선수들이 나이를 떠나서 이런 능동적인 또는 공격적인 수비에 대한 전술적 부적응을 드러내는 걸 보면서 그 이후로 세리에산을 별로 믿지 않는 편. 실제로 그 이후에도 세리에산들이 성공한 케이스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구요. 물론 이런 공격적인 방향성을 드러내면서 수비 방식 자체가 다른 팀들은 예외입니다만 세리에는 그런 팀들이 별로 많지 않거든요. 한 손가락도 못 채운다고 확신함.
이런 면에서 본다면 라포르테가 맨체스터 시티에 가서 오랜 시간을 들이지 않고 잘 적응해서 뛰고 있는 것과 그를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기용하는 이유를 이해하기 쉬울 거구요.
반 다이크가 요즘 가장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동료 선수들의 실책성 플레이가 골로 이어지는 장면을 최소화시켜주면서 본인 자체가 이런 경합 과정에서 지는 경우의 수가 잘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팀의 수비를 한 단계 끌어올려준다는 평가를 받을만하고 그렇게 보이는 게 당연하다는 거죠. 쉽게 말해 나오면 일단 2인분은 하고 컨디션 좋으면 그 이상도 한다. 랄까요.
토디보도 단순히 경기를 뛰는 것도 분명 중요하겠지만 선수로서 이러한 부분들을 좋은 감독이나 코치들에게 코칭을 받으면서 뛰는 게 아마 더 중요하게 작용할 거구요. 피케도 생각해보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그렇게 많은 기회를 보장 받은 후에 바르셀로나로 넘어온 케이스는 아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