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를 좋아한 지 이제 15년도 넘었는데 처음 팬으로서 입문하고 국내 축구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니면서 8~90년대부터 쌓아온 지식들을 바탕으로 식견을 뽐내던 몇몇 헤비한 바르셀로나 팬들이나 그들의 의견을 중심으로 이뤄진 국내 바르셀로나 팬들을 처음 봤을 때나 제가 더 소식을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따로 스페인어를 배웠을 때나 축구 이론을 더 많이 배웠을 때 (지금도 시간이 나면 보고 배우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나 그리고 바르셀로나 팬 페이지의 운영자로서 실생활에도 지장이 갈 정도로 열심히 했을 때나 제각각 다른 시기 때도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 바르셀로나 팬들의 팬질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와 가장 큰 재미는 어느 상황에서든 발로 볼을 굴리면서 자신들만의 이론을 필드 위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습이었다고 보는데 요즘 보면 바르셀로나의 축구도 그렇고 국내 팬심도 그렇고 그런 쪽과는 많이 멀어진 것 같네요. 아쉬운 부분이랄까.
뭐 그들이 바르셀로나의 진짜 팬들이 아니다 이런 얘기가 아니라 성적에 민감해지기 시작하면서 팬심의 방향성 자체가 성적으로 평가하는 구조로 바뀌어가는 게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라고 얘기하고 싶음. 적어도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던 사람은 과정이 어찌됐든 결과로 다 퉁칠 수만 있으면 장땡이라고 생각하던 무링요 같은 사람이니까.
마드리드의 현지 팬들이 아무리 지랄맞고 틈만나면 야유를 해도 디 스테파노나 발다노 같은 레전드들이 그들의 의견에 동조하던 건 팀으로서의 개성과 틀을 제시하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고 그런 디 스테파노가 무링요의 마드리드의 수비적인 방향성을 비판하면서 바르셀로나를 공개적으로 칭찬하던 것도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들만의 정신을 가지고 경기를 하기 때문이라고 했던 것처럼.
펩 과르디올라가 우리의 기억에 남아있는 이유는 그가 성적을 잘 내서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가 바르셀로나 (크게는 네덜란드, 아약스가 바탕이 된 토탈 풋볼이) 가 추구하던 축구의 이상론을 필드 위에서 가장 근접하게 이뤄낸 감독이라는 게 큽니다. 물론 그런 펩의 축구마저도 미완에 그쳤지만 그의 그런 시도 자체는 성적을 떠나서 아름다운 도전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만큼 팬들을 푹 빠지게 만들기 차고 넘쳤죠.
물론 사이클이라는 건 그렇게 시기가 잘 맞아 내려올 줄 모르는 상승을 맞기도 하고 때로는 올라갈 줄 모르는 하락을 맞기도 하지만 적어도 바르셀로나는 그런 사이클의 영향력과 성적을 떠나서 이런 자신들의 방향성을 잃지 않으려는 시도를 하는 팀이었음.
사실 저같은 경우에는 바르셀로나가 마드리드에게 굴욕적으로 지는 게 아니라면 그들이 우승을 하든 못하든 그걸 우선시두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발베르데도 아마 재미난 축구를 하려는 시도라도 진득하게 했다면 한 번도 그를 까는 글을 쓰지 않았을 거라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루쵸도 마지막 시즌에 동기 부여를 잃어버린 듯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좋아했겠죠. 근데 내가 잠을 줄여가면서 아니면 밤을 새면서 그들의 경기를 보는 이유는 내가 졸음을 참아가면서 두 시간 이상의 투자를 하면서 볼만한 재미가 있고 그게 내 취미로서 다른 것들보다 우선시할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인데 요즘 바르셀로나를 보면서 느끼는 건 그 정도는 아니랄까. 사실 새벽에 경기 다 보고나면 왜 봤나 싶을 정도로 후회스러운 경기들이 지난 몇 년 사이에 급속도로 많아졌다는 생각을 단순히 저 혼자만 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분명 이 블로그를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팬이 줄어들고 헤비한 글들을 쏟아내던 바르셀로나 팬들이 하나둘씩 사라져가고 모든 바르셀로나 관련 커뮤니티나 블로그의 접속자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이를 증명하고 있고 실제로 발베르데의 바르셀로나 부임 이후 평균 관중도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죠.
바르셀로나뿐만 아니라 옛날 70년대 아약스, 90년대 사키의 밀란, 퍼거슨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갈락티코 레알 마드리드, 벵거의 아스날 그리고 하인케스의 바이에른 뮌헨, 클롭의 도르트문트 근래 리버풀이나 맨체스터 시티, 토트넘 등등등 완성도나 수준을 떠나서 어느 팀이든 공격적인 방향성을 갖고 의외성을 가진 플레이나 상대의 골문을 어떻게든 공략하려는 적극성이 들어간 경기들이 더 재밌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아공 월드컵을 지켜보던 전 세계의 사람들이 비판/비난을 일삼던 그 모습이나 첼시의 구단주인 로만이 계속해서 공격적인 방향성을 가진 감독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는 것이나 바이에른 뮌헨이 자신들의 프로젝트의 정점을 찍어줄 수 있는 적임자로 펩 과르디올라를 고려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대다수의 팬들은 이런 축구에 빠지고 열광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지 팬들이나 인터넷의 여론이 발베르데에게 좋지 않은 이유도 이러한 게 있겠죠. 스스로 한계를 인정하고 성적만을 바라보는 바르셀로나를 보는 건 분명히 익숙하지도 않고 받아들이기 힘든 문제일테니까. 제가 지금 바르셀로나의 축구에 재미를 못 느끼는 것처럼요.
오랜만에 있었던 엘 클라시코 연전에서 다 이겼다는 기쁨도 있지만 한 편으로는 시대적인 흐름에 더 이상 역행하지 않고 따라가려는 바르셀로나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쉬운 마음이 더 앞서네요.
아리고 사키 曰
꽤나 긴 시간동안 바르셀로나는 그들을 위대하게 만들었던, 그들을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우리는 이제 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보면서 주도적이고, 공격적이며, 열정이 가득찬 팀이라는 걸 느낄 수 없다. 이들은 지난 10년 동안 시대를 지배하는 팀이었고 그 어떤 상대를 만나도 훌륭한 경기력으로 축구 레슨을 시켜주는 팀이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메시조차 지금의 상황에서 상대들을 넘어설 수 없다. 왜냐면 바르셀로나는 팀으로서 기능하지 못하고 있거든. 늘 해오는 말이지만 성공이라는 걸 이룩하기 위해서는 모든 것이 조화를 이뤄야 하는 법이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길을 잃은 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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