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인테르의 경기를 단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콘테란 감독을 그 동안 봐왔고 그가 얼마나 플랜 A 를 지독하게 고집하는 감독인 지를 알기에 오히려 쉽게 갈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했는데 쉽지는 않은 경기였습니다. 사실 발베르데가 다른 건 몰라도 플랜 A 에 미쳐가지고 그것만 고집하고 경기 중 대응이나 변수에 발빠르게 대처를 못하는 감독들에겐 맞춤 대응책으로 잘 잡아내는 편이거든요. 본인이 그런 감독이라 취약점을 잘 아는 걸수도 있고... 근데 라인업 보고 수아레즈가 있길래 당연히 능동적, 수동적을 오가는 맞춤 대응책으로 잡고 가겠단 심보구나 했는데 바르셀로나가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온 게 좀 충격이었습니다. 이제야 이런 선수들을 데리고 뭘 해야하는 지 그리고 여기선 뭘 해야하는 지를 안 것 같음.
물론 잘하진 않았어요.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하고자 했다는 거고 의도가 중요하기에 나쁘지 않게 봅니다. 압박을 적극적으로 했지만 좋은 압박이라기보단 일단 막고 보자란 마인드의 압박에 가까웠고 후퇴를 막으면서 동시에 자연스럽게 앞으로 가면서 속도를 잘 낸 것도 아니었구요. 확실히 별로였습니다만 바르셀로나는 이렇게 하는 게 맞아요. 오히려 이렇게 하면서 필드 위에 있는 선수들의 장점을 최대한 녹여낼 수 있는 방법론이 무엇인 지를 찾아내야 뒤로 가면 갈수록 더 나아지고 더 잘할 거라고 봅니다.
문제는 수아레즈와 메시를 동시에 필드 위에 세워두면 필연적으로 마주하는 문제가 바로 간격과 대형입니다. 오늘 압박이 분명 계속 앞으로 나가려고 적극적으로 뛰어들었음에도 효과적이라기보단 끌려다닌다는 인상을 줬던 건 간격과 대형이 깨지는 경우가 되게 잦았고 그래서 볼을 다시 뺏겼을 때 재빠르게 다시 탈환해오지 못하면 센터백들이나 부스케츠가 자리를 잡기도 전에 상대가 이미 하프 라인을 넘어오고 있었다는 게 되게 컸을 거에요. 어차피 프리시즌을 망쳤고 이런 과정을 몇 경기 치르면서 계속 가져간 게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감안은 하고 봤어야한다고 보기에 그렇게 비판적으로 보고 싶진 않습니다. 오히려 틀을 만드는 작업을 포기하지 않을 거라는 의지라고 봐도 된다고 보고 결과를 떠나서 이런 방향성의 축구를 발베르데도 할 수 있고, 하려는 걸 볼 수 있어서 시간이 아깝진 않았어요. 부스케츠는 이런 양상의 경기에선 웬만한 중위권 피보테들보다 못해요. 볼을 더 소유하고 더 상대의 라인을 지배하는 경기를 해야 빛을 보는 선수입니다. 지금 바르셀로나가 그게 조금이라도 되려면 수아레즈가 필연적으로 빠져야하는데 둘 중 하나를 빼면 부스케츠를 빼니까요.
계속 앵무새처럼 짖어대는 게 조금씩 필드 위에서 보이고 있는 것 같아서 어쩌면 다행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발베르데가 여기서 한두가지만 더 과감하게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바르셀로나는 저번 시즌보다 확연하게 나아진 과정을 보여주는 축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 얘기는 전반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이 총 3가지였는데
- 데 용과 아르투르가 주로 움직이는 위치가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것. (데 용의 장점이 아르투르의 장점보다 이런 상황에서 더 유효할 거란 생각)
- 그러면서 동시에 왼쪽에 최대한 양적으로 때려박아서 인테르가 그 쪽을 의식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 (메시 의존증이 아니라 필드 위에 메시가 있는 걸 살려라)
- 세르지가 횡으로도 움직이면서 메시가 아예 우측면 하프 스페이스에만 짱박혀있었으면 했던 것. (메시의 동선 낭비를 최소화하라)
정도였는데 발베르데가 비스무리하게 들고 왔어요.
일단 데 용과 아르투르의 자리가 바뀌어야한다고 생각했던 건 아르투르의 패스 방향과 그의 위치가 바르셀로나가 속도가 안 나고 인테르의 수비 대형이 이미 자리를 잡아둔 상태가 되버리면서 뻔해졌다는 데 있습니다. 볼 소유 시간은 분명 길어지는데 횡으로 그 정도의 퀄리티를 가진 수비 대형을 흔들만한 패싱 능력과 판단력이 없으며 그 많은 수비수들이 진치고 있는 곳에 본인의 힘으로 수비 세네명은 끌고 다니면서 측면과 중앙을 오갈 여력은 없는 선수기 때문에 그렇다면 횡패스를 조금이라도 더 빠르고 더 유의미하게 처리할 수 있는 오른쪽으로 가는 게 맞다고 봤기 때문이고.
그런 아르투르의 배치 덕에 데 용이 오른쪽에 위치함으로 인해서 데 용이 가진 장점이 전혀 안 살고 있다는 것도 컸습니다. 왼쪽을 중심으로 종횡을 넓게 움직이면서 팀에 기여하는 데 용하고 오른쪽을 중심으로 종횡을 넓게 움직이면서 팀에 기여하는 데 용은 아예 다른 선수에요. 초장부터 아예 데 용-부스케츠-아르투르 이런 식으로 자리까지 정해버려서 주장했던 것 역시 데 용이 가진 장점이 왼쪽을 겸하면서 움직일 수 있을 때 아주 크게 나타난다는 게 저한테는 되게 크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결국 후반전의 핵심은 송영주 해설이 얘기하던 인테르가 지침으로 인해서 바르셀로나가 여유가 생겨서가 아니라 횡으로 수비 대형이 흔들리고 메시가 전반전보다 높은 지점이나 상대 수비가 흔들리는 과정 속에서 볼을 잡고 움직이는 비중이 늘어났기 때문이지. 다른 게 아닙니다.
미묘하지만 작은 차이가 어디서부터 발생했는 지 그림으로 한 번 봅시다.
(전반전 아르투르 패스맵 (좌), 전반전 아르투르 히트맵 (우). 초록색 - 패스 성공, 빨간색 - 패스 미스)
어디서 많이 본 패스맵 같죠? 알바랑 유사합니다. 아무짝에도 위협이 되지 않는 양상이죠. 그리즈만이랑 아르투르랑 저 자리에서 번갈아가면서 계속 저러고 있었어요. 왜 그랬냐. 한 명은 리턴을 빨리 줘도 수아레즈나 아르투르가 돌려주질 않거나 소유권을 잃었고 아르투르는 볼은 어떻게든 오래 소유하는데 판단이 느리고 팀 자체가 속도가 안 나니까 그만큼 줄 곳이 없었고 본인의 힘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렇다고 패싱을 할 때도 전환에 능한 선수는 아니니까 계속 횡패스나 좌측면으로 짧게 내주는 패스말곤 할 게 없었습니다.
(전반전 데 용 패스맵 (좌), 전반전 데 용 히트맵 (우). 초록색 - 패스 성공, 빨간색 - 패스 미스)
데 용도 비슷했습니다. 둘 다 히트맵 보면 측면에 되게 치우쳐져있죠? 왜 그랬을까요? 인테르가 중앙에서 한 방에 못 넘어갈 때는 무조건 측면을 거쳐간다는 걸 알았기에 조기에 저기 가있거나 최대한 저 지점에 오래 머물러있었던 겁니다. 심지어 전반전에 좌우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공략했거든요. 바르셀로나를 상대하는 팀들은 하프 라인을 넘어가는 방식은 대부분 비슷해요. 차이점은 홈과 원정에서 나타나는 변수들의 차이와 저들이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고, 호흡이 잘 맞냐죠. 그래서 늘상 경기를 보고 나면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늘 똑같은 얘기를 합니다. 측면은 현대 축구의 전부이자 승부처라고.
발베르데는 후반전에 비달 교체를 시점으로 비달을 통해 선수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필드 위에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그 전부터 그런 기미는 보였어요.
(후반전 아르투르 패스맵 (좌), 후반전 아르투르 히트맵 (우). 초록색 - 패스 성공, 빨간색 - 패스 미스)
그림으로 봐도 이 차이점이 보이시나요? 아르투르가 오른쪽 측면에 조금 더 가까운 중앙에서 움직이면서 세르지와 메시가 내려오는 걸 아르투르가 중심이 되고 비달과 나머지가 보조해줌을 바탕으로 방지해줬고 동시에 그가 오른발을 쓰기 편해지면서 패스가 나가는 방향 자체가 제한적이라기보단 좌우를 가리지 않고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그만큼 볼도 빠르게 돌았습니다.
이 덕을 보기 시작하면서 후반전에 달라지기 시작한 게 바로 데 용과 세르지, 메시였습니다.
(후반전 데 용 패스맵 (좌), 후반전 데 용 히트맵 (우). 초록색 - 패스 성공, 빨간색 - 패스 미스)
마찬가지로 사소한 차이인 것 같지만 달라졌습니다. 조금 더 박스에 가까운 곳에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조금 더 본인이 넓게 움직일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의미 없는 패스처럼 보이는 패스들만 하던 전반전과 다르게 박스 근처에서 짧든 길든 계속 횡패스와 대각선 패스를 시도했고 수비진은 조금씩 흔들렸습니다. 물론 데 용이 그간 잘하던 경기들과 다르게 패스의 방향이 그렇게 다양하진 않았습니다만 반대편에 메시가 있었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럼 메시와 세르지는 어떤 식으로 달라졌냐?
(전반전 세르지 히트맵 (좌), 후반전 세르지 히트맵 (우).)
종으로만 움직이던 세르지가 후반전 들어서 갑자기 횡으로 꺾어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아예 저 지점에서 패스를 받는 모습도 보였고 볼을 내보내는 모습도 보였습니다. 물론 그런 세르지의 움직임은 뒤에서 아르투르가 받쳐주고 있었고 언제든지 비달이 수적 우위를 점할 수 있게 뛰어올 준비가 되어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전반전에 분명 팀에서 가장 위협적이었지만 상대 박스와 뭔가 멀어보였고 뭔가 부족해보였던 메시가 조금 더 본인의 역할에 집중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가고 있었다는 소립니다.
(전반전 메시 히트맵 (좌), 후반전 메시 히트맵 (우).)
하프 스페이스에서 집중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메시는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습니다. 본인이 다지선다를 걸고 동료들이 적재적소에서 횡패스나 대각선 패스를 뿌려주는 순간이 많아지기 시작하면서 인테르가 흔들리기 시작한 거죠.
(전반전 메시 패스맵 (좌), 후반전 메시 패스맵 (우). 초록색 - 패스 성공, 빨간색 - 패스 미스, 노란색 - 어시스트 및 키패스)
메시의 효율과 장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저 우측면 하프 스페이스와 중앙에서 메시가 공간을 스스로 만들거나 동료들의 도움으로 여유가 생겼을 때 그 어떤 선수들보다 많은 다지선다를 걸면서 상대를 공략할 수 있다는 것. 순간적으로 많은 수비수들이 메시의 온 더 볼에 시선을 다 뺏겨버리기 때문에 아무리 오프 더 볼 위주로 수비를 해도 누군가는 프리가 되고 누군가는 본인이 막아야 될 선수를 놓칩니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니까요.
오늘 이 모든 걸 가능하게 했던 장본인은 다름 아닌 비달이었습니다. 그가 들어오고부터 경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사실 저번에 교체로 나왔을 때 패널티 킥을 내줬다는 것보다 몸이 너무 안 좋아보여서 걱정했는데 비달도 이제 조금씩 올라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행입니다. 이번 경기를 통해서 발베르데는 분명 이번 여름에 라키티치를 내보내고 싶어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 더 들었네요.
(비달 패스맵 (좌), 비달 히트맵 (우). 초록색 - 패스 성공, 빨간색 - 패스 미스, 노란색 - 어시스트 및 키패스)
좌측면에 가까운 중앙에서부터 횡으로 최대한 넓게 움직이면서 바르셀로나가 수적 우위에서 밀리는 상황을 최대한 안 만들어줬고 적극적으로 볼을 처리하면서 다른 선수들이 그만큼 더 높은 지점에서 볼을 처리하고 유의미한 상황을 만들 수 있었어요. 여기에 우측면에서 저렇게 움직이는 게 그리즈만이었다면 정말 재밌는 그림이 나왔을 것 같음.
이 경기까지가 발베르데의 바르셀로나를 차분하게 지켜볼 시기라고 봤는데 흐름은 솔직히 나쁘지 않습니다. 몇 가지만 고치고 선수들 컨디션이 올라오는 시기가 조금만 당겨질 수 있다면 한 번 달려볼만한 시즌이라고 생각해요. 뭘 장담하지는 못하겠는데 발베르데가 방향은 잘 잡았습니다. 칭찬까진 아니고 뭘 해야할 지는 알고 있다 정도?
오늘 2골을 기록한 수아레즈는 세탁을 잘했고 뎀벨레는 어쩌면 좋을 지 모르겠네요. 왼쪽 실험은 사실 한 번쯤은 다시 마주해야할 문제기도 했고 의도 자체는 마찬가지로 정말 좋다고 봅니다만 뎀벨레 자체가 그냥 별로에요. 부상이 잦아서 컨디션이 바닥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야하는 게 맞는 거긴 한데 경기 보면서 양 발 잡이는 절대 아닌 것 같은데란 생각이 꽤 여러 차례 들었네요. 앞으로도 어떨 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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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보려고 택시비만 27,100원 썼음... 댓글, 공감 부탁드립니다.
추가로 미리 말씀드리는 건데 세비야 전 후기는 없습니다. 월요일 새벽 4시 경기는 제가 아무리 덕후여도 못 보거든요. 저도 이젠 생업이 있고 먹고 살아야하는 입장이니까요... 한 번 본 경기나 라이브로 못 본 경기는 다시는 안 봐서 아마 이후에도 세비야 전은 없을 거에요. A매치 주간이라 너무 지루하면 쓸 수도 있겠지만 기대는 마세요.
항상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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