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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Writing

잡소리 162

by 다스다스 2020. 3. 2.





클라시코 리뷰는 아니구요. 리뷰를 기다리시는 분들이 알게모르게 늘었고 방문자가 옛날처럼 100~200명씩 오던 그 때도 아니기 때문에 제가 무책임하게 블로그를 버려둘 수가 없어서 짤막하게나마 남겨둡니다. 코로나 때문에 제가 생업에 영향이 상당히 크게 가버려서 당분간 경기를 꾸준하게 챙겨볼 수가 없습니다. 글이 올라오는 빈도 자체가 들쑥날쑥할 거에요. 확진자가 계속 늘어나는 이 흐름이 어느 정도 꺾여야 여유가 생길 것 같은데 현재로선 언제가 될 지 감이 안 오네요. 아마 이 영향을 받으신 분들이 저말고도 많으실 거라고 보구요. 솔직히 지금 축구는 물론이고 농구에도 아예 관심이 안 갈 정도로 정신이 없네요.





클라시코는 전반만 보고 꺼버렸는데 전 요즘 경기를 볼 때 측면 퀄리티가 상대적으로 좋은 팀을 만나면 일단 질 거라고 아예 가정을 하고 보는 편인데 (그만큼 세티엔이 측면을 포기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마드리드는 마르셀로가 아예 맛탱이가 가버렸어도 기본적으로 바르셀로나보다 낫습니다. 지단이 워낙 선수들을 잘 가르쳐놓은 덕분에 기이한 대형으로 전진한다거나 경기 중 대응이 일어날 때 그에 맞게 움직일 줄 아는 선수들이 꽤 되기도 하구요. 기이한 대형인 것 같으면서 또 공간 배분이 잘 되어있는 모습이 보일 때도 있구요.





세티엔이 경기를 거듭하면서 노골적으로 보이고 있는 부분이 딱 한 가지 있는데 의도적으로 메시와 가까운 곳에서 볼이 최대한 굴러다니게끔 유도한다는 겁니다. 대신 필수 조건이 있죠. 메시는 측면으로 빠지거나 필요하면 하프 라인 아래 또는 전후 지점까지 내려온다는 것과 한 명은 반드시 이런 메시의 포지셔닝에 맞춰서 철저하게 커버를 들어가야한다는 것. 발베르데는 메시의 효율을 위해서 팀 자체를 메시에게 철저히 맞춰놨고 메시가 다른 선수들의 역할을 해야하는 경우를 하프 라인을 넘어선 지점까지만 어떻게든 조정을 하려고 노력했다면 (이게 안 되는 경기들도 꽤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기복이 심했고 과정과 결과 다 문제가 있었던 거고) 세티엔은 메시에게 범위를 가리지 않고 많은 걸 주문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메시는 본인의 장점이 가장 유효하게 발휘되는 지점에서 다지선다를 걸기 전부터 과부하에 걸려버리는 겁니다. 발베르데와 비슷하면서도 저번 시즌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 같지 않음에도 뭔가 다르다는 인상을 주는 건 이겁니다. 동시에 부상에 노출되는 위험도 증가하겠죠. 방향이 제한적인 공간에서 볼을 받는 경우가 많아지고 박스와 한참 멀리 있는 곳이나 측면에서 드리블을 해야하는 빈도도 발베르데의 바르셀로나 때보다 높아지고 있으니까.




선수들의 포지셔닝을 유심히 보시면 이게 의도한 거라고 생각이 들 수밖에 없을 정도로 더더욱 잘 보이는데 비달 (또는 라키티치) 은 종적인 동선을 무지하게 길게 잡으면서 메시에게 최대한 붙여놓고 아르투르 (또는 라키티치) 와 데 용은 횡으로 무지하게 넓게 커버하면서 둘 중 한 명에게는 좌측면에서의 역할까지 주문합니다. 부스케츠는 보통은 종적인 동선을 아주 길게 잡는데 필요하면 횡적인 동선까지 무지하게 넓게 커버하죠. 이렇게 미드필드를 네 명이나 깔아두면서 이들 모두에게 과한 주문을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건 제가 전반기에 리뷰를 쓰면서 다른 팀들에게 아주 좋은 표본이 될만한 경기라고 얘기했던 소시에다드 전과 마드리드 전을 세티엔도 봤기 때문이라고 보는데 지금 바르셀로나는 보조자들이 너무 많고 어느 정도 틀이 갖춰졌을 때 온 더 볼이 아닌 다른 걸로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선수들이 많은 편인데 정작 틀이 없습니다. 거의 모든 지점에서 메시에게 기대는 팀이기 때문에 메시만 어떻게 조져버리면 상대는 최소 절반은 해결할 수 있습니다. 소시에다드는 자신들의 장점을 살려서 아주 영리한 해결책을 내놨던 셈이었죠.




'바르셀로나의 약점은 양 측면과 잦은 전환. 헌데 최대한 바르셀로나의 왼쪽에서 볼을 굴러다니게 만들 수 있다면 메시의 영향력을 확 줄여버릴 수 있고 우리가 원하는 양상으로 역으로 끌어들일 수 있다.'




여기에 빨려들어가면 경기가 어떻게 되는 지는 발베르데가 수 차례나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세티엔은 이제 어줍잖게 좌우 밸런스 맞추겠다고 쑈는 안 하죠. 말 그대로 메시 몰빵을 하면서 그리즈만하고 데 용이라는 선수들이 가진 장점을 나름대로 살려보려고 이들의 역할을 계속 바꾸고 동선도 계속 바꿉니다. 이게 상대의 대응책에 따라서 계속 변하는 건지 아니면 세티엔이 그런 식으로 주문을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별로 보기 안 좋아요. 




그리즈만은 어떤 역할을 맡든 일단 볼을 만지는 횟수 자체가 적습니다. 메시에게 가까이 붙어도 적고 떨어지면 더 적어지고. 때로는 그냥 아예 측면에 짱박혀있고 때로는 센터포워드로서 횡적인 움직임만 넓게 가져가주면서 볼을 받고 바로 내주고 때로는 우측면에서 뭔가 하다가 좌측면으로 가서 뭔가하고 양 측면만 왔다갔다하는 경기도 있습니다. 데 용도 똑같아요. 그나마 데 용에게 있어서 긍정적인 요소는 이번 경기와 저번 경기에 아르투르가 나왔음에도 데 용을 좌측면 위주로 움직이게 뒀다는 건데 문제는 어느 날은 너무 전방에 쏠려있는 포지셔닝을 잡고 있고 어느 날은 좌측면에만 박혀있고 또 어느 날은 종적으로 무지하게 길어서 왔다리갔다리만 합니다. 그러면서 볼을 만지는 횟수도 이런 역할 변화에 따라 (쓸데없든 쓸데있든) 적어지거나 많아지거나 하죠.





지금 세티엔은 바르셀로나의 문제점을 의식해서 어설픈 대응책을 들고 나왔어요. 메시의 장점을 살리는 게 바르셀로나의 장점을 살리는 길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세티엔의 바르셀로나 아래에서 메시는 자신의 장점이 최대로 발휘되는 공간에서 움직이는 비중은 거의 없어져버렸습니다. 당연히 경기는 답답하죠. 전술적 중심인 메시가 그 공간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오히려 스스로 그 공간에서 움직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하는 역할을 맡았으니까요. 발베르데는 시즌 초반 데 용과 아르투르의 영향력을 조금씩 늘려나가면서 답을 찾으려다가 기복을 우려해서 뒤집어엎었다면 세티엔은 그냥 몇 경기 해보고 메시 갈아넣는 걸로 길을 선택한 겁니다. 과정과 결과가 다 신통치 않았는데 시간은 흐르고 있었고 중요한 시기는 다가오고 있었으니까요. 전 이 감독을 지켜본 적이 있었기에 메시 갈아넣는 걸 우려한 거구요.




앞으로 남은 기간 동안 마주할 팀들은 순위를 가리지 않고 더 짜임새있는 대응책을 들고 나올 확률이 높을 거고 세티엔이 계속 이대로 갈 지 아니면 다른 대응책을 들고 나올 지가 관건일텐데 솔직히 별로 기대가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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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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