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옛날 경기 포함해서 80년대 중후반부터 본 바르셀로나 선수들 중 이런저런 이유를 다 들어서 아쉬운 선수 여섯 명을 꼽아보라고 하면 이렇게 꼽고 싶음. 굳이 여섯 명인 이유는 모바일로 쓰는데 딱 생각나는 선수가 여섯 명이라서... 싫어하는 선수, 좋아하는 선수 이런 건 이전에 했으니 검색으로 찾아보시면 될 것 같구요.
1. 호마리우
진짜 1년 뛰고 간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잘했습니다. 글이나 댓글에서도 언급했던 적이 있는데 메시 제외하면 80년대 이후로 본 선수들 중 가장 충격적인 선수였어요. 양 발도 잘 썼고 포지셔닝도 귀신같은 선수였고 판단력도 천재라고 말할 정도였음. 왜 저기 있지 싶은데 이후 장면들 보면 오호?? 싶은 것도 있었고. 슈팅 스킬이나 이런 건 말할 것도 없었고. 종종 사생활 문제나 언행 등으로 인해서 자기 관리가 지적되곤 했는데 그런 거 치곤 생각보다 기복도 덜했습니다. 당시엔 어떻게 느껴졌는 지 모르겠지만...
바르셀로나에서 더 오래 뛰었으면 아마 지금보다 사람들 사이에서 얘기도 더 오고갔을 거고 평가도 더 좋았을 거에요. 개인적으로 많이 과소평가 받는 선수라고 생각하고 잘하긴 진짜 잘했습니다.
2. 루이스 피구
팬인 입장에서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놈이지만 (그 시기에 팬이셨던 분들은 정말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후에 접하고도 이 정도인데요.) 잘하긴 또 더럽게 잘했습니다. 경기가 안 풀리면 하프 라인 전후 지점까지 내려와서 볼을 잡고 올라가면서 풀어줬고 경기가 뭔가 답답하다가 풀리는 것 같으면 피구는 대부분 거기에 껴있었음. 인테르 시절이나 게임 때문에 좋은 킥력으로 크로스 위주로 뛰던 전통적인 윙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선수가 아니라 팀의 경기력을 지탱하는 핵심 중 하나였고 압도적인 기본기와 킥력 등을 활용한 측면 포워드에 가까운 선수였습니다.
반 할 1기 시절 에이스가 히바우두냐 피구냐 종종 얘기가 오고가는데 이건 어디에 가치를 두고 어떤 축구관을 가지고 바라보냐에 따라 조금 갈리는 문제라고 생각하구요. 양분했다고 보셨던 분들도 계시고 히바우두다. 피구다. 하셨던 분들도 계셨음. 스포트라이트는 분명히 히밥이 대부분 다 가져가긴 했지만 히밥이 피구보다 기복의 폭은 훨씬 컸다고 보고 개인적으로 피구라고 꼽아도 상관 없다고 봅니다. 그렇게 평가해도 무방할 정도로 잘하기도 했구요.
지금 시대로 와서 뛰어도 피구보다 기복의 폭이 적은 선수 꼽아보라고 하면 열 명도 안 될 거라고 볼 정도로 기량 자체가 너무 높은 수준이었어요. 왜 그렇게 팬들이 좋아했고 마드리드로 가자마자 죽도록 미워했는 지는 피구 경기 다섯 경기만 봐도 이해가 가능할 거에요. 유로 2000 이랑 마드리드로 넘어간 00-01 시즌만 봐도 기가 맥히게 합니다. 99-00 시즌 챔피언스 리그에서도 대부분의 경기에서 자기 몫 이상을 했고. 4강에서 발렌시아한테 떨어지고나서 펩하고 같이 기자회견장 나와서 인터뷰하던 것도 기억나고. (파벌 논란 터지면서 성적은 곤두박질 치고 결국 반 할부터 누네스까지 싹 다 날라갑니다. 이러고 쁘띠 오고 한 번 더 터진다는 건 함정.)
사람을 떠나서 선수로선 플레이 자체가 되게 매력적이었습니다. 쭉 남았으면 지금쯤 히바우두랑 같이 호나우딩요 이전을 이끈 초특급슈퍼레전드로 기억에 남았을 듯... 어쩌면 호나우딩요가 안 왔을 수도 있구요. 피구가 안 나갔으면 바르셀로나가 그 정도로 작살은 안 났을 테고 그 이후 이뤄졌던 수 많은 영입들도 다른 방향으로 이뤄졌을테니까요.
3. 티에리 앙리
의외의 픽이라고 느껴질만한 선수인데 전 08-09 시즌 경기들 볼 때 앙리가 한 2~3년만 일찍 왔으면 정말 좋았겠다란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이미 바르셀로나로 올 땐 몸이 많이 고장난 시점이었고 (당시 바르셀로나 의료진 피셜 : 등이 왜 이러냐... 이걸 어떻게 미리 알고 있던 소리아노는 신급 협상 (아직도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24m 유로인데 첫 해 건너뛰고 이후 2년 분할) 으로 데려와버림) 하필 이적한 시기에 앙리 개인사 + 팀 개핵폭망 (전설의 판타스틱 4 로 시작해 3위 같지도 않은 3위에 판타스틱 1 으로 전락한 07-08 시즌...) 이 겹치면서 안 좋기도 했고.
앙리도 골이나 어시스트 능력 그리고 당시 아스날의 스피디한 축구 때문에 저평가 받는 부분들이 있는데 공수 양면에서의 포지셔닝과 측면 이해도, 동료들의 움직임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그런 것들이 천부적이라 느껴질 정도로 잘했습니다. 사실 바르셀로나 시절은 신체 능력은 거의 작살 직전이었고 재능빨로 해냈고 버텼다고 보는 게 옳은 시선이라고 봅니다.
몸이 안 따라주다보니 아스날과 바르셀로나의 비슷하면서도 다른 종과 횡의 활용 방식에서도 굉장히 헤맨 편이었고. 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쌩쌩할 때 왔으면 뭐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재다능하잖아? 라고 느껴질만한 선수였습니다.
4. 야야 뚜레
진짜 이대로 팀이 망하나 싶은 시즌에 (초기엔 다 기대했습니다. 06-07 시즌 충격이 워낙 컸고 그 이후 행보가 이번엔 다르나? 생각할만했기 때문에) 와서 부상 달고 뛰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멘탈리티와 바르셀로나를 향한 애정을 보이면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은 선수였습니다. 안 믿기시겠지만 진짜임... 이 시즌에 메시랑 보얀하고 같이 야유 안 먹은 선수 중 하나였음. 너무 열받은 팬들이 그 이니에스타한테도 야유하던 시즌이었는데... 보얀이랑 똑같이 유망주였던 지도산도 야유 먹었었음.
펩 부임 이후 단순 피보테로 그치지 않고 포리바렌테로서의 가능성을 전방, 후방을 가리지 않고 증명했는데 08-09 시즌 대성공 이후 바르셀로나는 더 높은 지점에서 핵심적으로 볼을 내보내는 틀을 만들어나가고 있었고 그러기 위해선 뚜레는 철저한 보조자가 되어야했는데 본인이 싫어했죠. 센터백도 08-09 코파 델 레이 결승전이나 챔스 4강 보면 볼도 잘 차고 포지셔닝도 되게 좋았어요. 그냥 본인이 그런 보조적인 역할에 그치는 걸 납득을 못한 것뿐이죠.
아마 이것만 됐으면 어느 정도 선 이상의 대우를 받으면서 레전드 중 하나로 남았을 겁니다. 셀룩의 언플은 뚜레의 의견이 반영된 거였기 때문에 펩은 철저하게 뚜레를 외면했던 거고. 결과적으로 바르셀로나는 당시 뚜레 가치에 준하는 (어쩌면 그 이상의) 이적료를 받았고 뚜레는 시티 가서 하고 싶은 데로 뛰었으니 괜찮았다고 보지만 떠나는 거 자체가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런 입지를 받아들이고 남았으면 출장 빈도도 자연스레 꽤 올라갔을 거고 여러 방면으로 높은 수준으로 기여를 했을 가능성이 높았거든요.
5.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넓게 움직이면서 뭐든지 다 할 것 같았던 선수가 와서 뚜껑 까보니까 아니었다.’ 이거 하나로 설명이 가능한 선수.
전반기엔 분명히 잘했습니다. 엘클에서 천금같은 골로 승리에 기여하기도 했고 그 이외의 경기들에서도 순도높은 골과 메시의 부진한 흐름을 책임져주는 선수였어요. 얘기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새는데 이 때 전반기에 메시가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저번 시즌 올림픽 참가부터해서 처음으로 긴 시즌의 흐름을 이전 시즌들보다 적은 부상으로 소화해서 그런지 플레이 자체가 시야도 무지 좁고 체력 리듬도 완전 엉망이었어요.
인테르와의 챔피언스 리그 조별 예선 1차전도 보면 펩 첫 시즌 개막전 누만시아 전 생각날 정도로 쓸데없이 중앙에 머물러있고 시야도 엄청 좁아져서 메시답지 않은 플레이를 엄청나게 했습니다. 그런 흐름이 계속 이어지는 와중에 (거기다 이니에스타까지 정상이 아니었는데) 이론적으로 이상향이라고 여긴 장신 포워드가 어떻게든 꾸역꾸역 승점을 쌓아줬으니 기대할만했지만...
리가 심판들의 콜은 어째 더 빡빡해졌고 상대의 대응 방식이 발전해오니까 즐라탄의 횡적인 움직임이 생각보다 훨씬 별로구나라는 게 간파당해버렸고 (더해서 오프 더 볼 자체가 별로였습니다.) 동시에 기본적인 숏 패스 자체도 생각보다 안 좋았습니다.
이론은 이론일 뿐이다를 가르쳐준 선수긴 했지만 종횡을 넓게 움직이면서 신체적 우위를 살려서 뭐로든 지원해줄 수 있다는 걸 다시금 보고 싶단 생각은 들게 해줬죠. 전후로 따지면 클루이베르트, 라르손, 수아레즈가 이런 쪽으로 가장 근접했던 것 같아요.
이니에스타-메시가 좌우를 나눠먹고 메시의 중앙화가 필연적으로 바르셀로나가 가야할 길이고 그것밖에 없다는 걸 깨닫게 해줬기도 했고. 근데 즐라탄이 조금 더 이타적이고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고 자신의 신체 능력을 잘 쓸 수 있는 선수였다면 펩이랑 외적으로 잘 안 맞았어도 펩이 1년은 어찌저찌 더 함께 가려고 했을 것 같아요. 뭔가 될 듯 말 듯한 그 정점의 축구가 계속 생각이 났을 테니... 그래서 뭔가 포기하기 아쉬운 선수였음. 떠날 때 팬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도 많았고.
무엇보다 오기 전부터 안 맞는 선수라고 무조건 실패할 거라고 확신하던 사키의 혜안에 감탄했던 기억도 나고. 원래부터 조금 보는 시선이 특이하긴 했지만 이 때를 기점으로 축구를 보는 시선이 굉장히 달라졌습니다.
6. 세스크 파브레가스
‘기복을 줄이고 전술의 완성을 주도할 선수로 데려왔지만 사실 그런 선수가 아니었다.’
골 넣으라고 데려온 선수도 아니었는데 이상하게 스탯은 잘 쌓았죠. 별로 안 뛰는 것 같은데 뛰긴 또 엄청 뛰었음. 그만큼 적응을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고. 백날 말하는 건데 스탯 잘 쌓는 것보다 얼마나 틀의 일부가 되어서 (더 나아가면 중심이나 그에 근접하는 수준이겠죠.) 팀의 경기력에 기여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세스크는 그런 쪽으로 아예 못해줬어요. 기대한 거에 절반도 못하고 3년 까먹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
메시 의존도를 줄이면서 좌중우 방향을 가리지 않고 원터치나 투터치로 빠르게 패스를 내보내는 미드필드가 세스크에게 기대하던 모습 중 가장 큰 부분이었다고 보는데 되게 아쉬웠습니다. 부상 빈도가 적을 때 (몸이 덜 고장났을 때) 넘어왔으면 정말 그 꿈을 이뤄줄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솔직히 비슷한 시기에 루머가 나던 모드리치가 왔었어도 쓰리백의 완성은 아마 보기 힘들었을 건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모드리치는 어땠을까란 생각이 안 들 수가 없게 되버렸죠. 피를로도 마찬가지고.
크루이프나 반 할도 그렇고 펩도 궁극의 쓰리백 도전은 성공적이지 않았고 그 지분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세스크가 되게 컸고. 자빠지는 경기들도 많았고 기복의 폭도 무지 컸지만 11-12 시즌을 되게 재밌게 봤던 사람으로서 세스크가 정말정말 아쉬웠음.
7. 사실 다비즈, 벨레티, 라르손, 마르케즈, 산체스 등등등 막 이런저런 선수들도 기억나긴 하는데 쓰다보면 끝이 없어서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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