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안 하는 게 좋은 거임.
펩을 저평가하는 사람들이 종종 얘기하는 게 바르셀로나 초창기인데 펩이 오기 전 2~3년 사이에 어느 정도로 망해갔는지 모르는 사람들이나 그런 소리 하는 겁니다. 바르셀로나를 정상화시키고 궤도에 다시 올린 건 다른 누구도 아닌 펩이고 딩요, 에투, 데코 등으로 병들었던 라커룸을 겸손하고 축구에만 집중하는 선수들이 가득한 라커룸으로 바꾼 것도 펩임.
호나우딩요는 05-06 시즌 후반기부터 슬슬 고장 나는 기미가 보이던 선수였고 06-07 에는 시즈모드 딩요라고 불릴 만큼 움직이지 않고 로빙 쓰루로 많은 걸 해결하려던 선수였습니다.
그러면서 슬슬 체중 관리도 안 되기 시작하고 (딩돈 소리 듣기 시작할 때) 노는 것에 집중하죠. 지역 언론들이 그것을 저격하기 시작할 때부터 보드진은 딩요에게 덩달아 압박을 가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보호하려고만 했음. 06-07 시즌에 밀란과 이적설이 날 때도 보드진은 딩요를 팔려하지 않았고 레이카르트는 꾸준하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했죠. 욕은 레이카르트가 제일 많이 먹었음.
이런 레이카르트가 돌변해서 인터뷰로 딱 한 번 딩요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한 적이 있는데 07-08 시즌이었음.
계속 아프다고 하던 딩요가 검사를 받았는데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던 사건이었죠. 훈련도 빠지고 경기도 안 뛰고 놀기만 하던 애가 아프다니깐 다 배려해 줬는데 사실 아프지 않았던 거죠.
이런 일들이 계속 반복되니까 로셀파가 드디어 마음을 먹고 라포르타를 몰아낼 기회라 생각해서 나온 게 불신임 운동이었습니다. (로셀은 라포르타의 야망에 질려서 나갔을 때 더 이상 의장직이나 바르셀로나 관련 일에 욕심이 없다 했었음. 이때도 라포르타 같은 사람이 나가는 게 목적이지. 자신은 의장 계획이 없다 밝히고 불신임 운동을 추진함) 라포르타는 진짜 쫓겨나기 일보 직전까지 갔었습니다.
검은 양 인터뷰도 시기의 차이가 있을 뿐. 계기는 이것들이 쌓이고 쌓여서 터진 문제였음. 논란이 됐던 건 그걸 전반기에 터뜨렸다는 것과 그걸 말한 인물이 당시 나오기만 하면 경기를 망치던 에드미우손이었다는 거죠.
딩요, 데코가 라커룸에서 물을 흐리고 있었고 술 마시고 드럼 치러 다니고 훈련 빠지고. 마르케즈도 틈만 나면 마드리드로 놀러 가고. 에투는 지밖에 모르고. 실빙요가 떠날 때 메시를 부탁한다 해서 그것만 기억하지. 남아있을 때도 메시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었죠. 이게 그 당시 바르셀로나였음.
에투와 데코도 틈만 나면 감독을 무시하더니 절정을 찍은 게 후반기 엘 클라시코 결장이었죠. 경기 후 인터뷰에서 기자들이 단체로 몰려가서 카드를 받으면 엘클 결장하는 사실을 몰랐냐고 물어보니까 몰랐다고 했죠. 이후 이어진 레이카르트의 경기 후 인터뷰에서 폭탄 발언을 하죠. 경기 전에도 경기 중에도 너네 카드 받으면 엘 클라시코 못 뛴다 했는데 기어이 받은 거라고.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당시 한준희 해설의 멘트들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음. 그냥 주는 골이다. 와 메시에게 너무 많은 짐이 지어져 있다. 그만큼 바르셀로나는 엉망이었음. 챔스 4강도 대진빨 + 메시, 뚜레 갈아마신 대가로 올라간 거고 4강에서 퍼거슨의 맨유한테 메시 말고 아무것도 없는 팀이라는 거 그대로 뽀록나죠.
이 일들 외에도 수많은 사건사고가 2 시즌 동안 벌어지는 동안 욕을 제일 많이 먹은 건 레이카르트였음. 보드진은 비판을 피해 가려 애썼고 딩요와 데코, 에투를 파는 걸 고려하지 않았죠.
끝까지 레이카르트의 편에 섰던 사람은 크루이프 말고 아무도 없었음. (무링요 선임 얘기 나올 때도 그럴 바엔 레이카르트 1년 더 주자고 했던 게 크루이프)
오죽하면 사키가 레이카르트가 떠날 때 공개적으로 바르셀로나를 비판했죠. 그의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고. 아무도 감독이 감독의 일을 할 수 있게 지원해주지 않았다고. 이걸 한 방에 해결한 게 펩임. 그가 준비된 감독이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얘기해 오던 건 이런 바르셀로나의 본질적인 문제들을 간파하고 그것을 준비해 왔었기 때문.
레이카르트와의 인수인계 과정에서도 외적인 부분들은 하나도 인수인계받지 않았다고 밝혀졌을 정도로 펩은 보드진과도 어떤 싸움을 해야 하는지. 언론들과는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이었음. 언론 통제가 정상적으로 이뤄지고 기자들이 점점 소스를 얻기 어려워지기 시작한 것도 펩 때부터임.
그리고 펩은 프리시즌 프레젠테이션에서 딩요, 데코, 에투는 내 계획에 없다 선언하고 겸손하지 않은 선수들은 뛸 수 없다 했죠. 겸손은 모든 것의 위에 있으며 그것을 실천하는 선수만이 뛸 수 있다고 선언한 게 펩의 첫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그것을 증명하는 게 펩의 기용 방식이었고 그게 바르셀로나의 원동력 중 하나였죠.
이런 펩에게 초장부터 위기가 있었는데 시즌 개막전인 누만시아 전과 이어진 라싱 전이었죠. 분명히 좋았던 프리시즌이 무의미하게 느껴질 만큼 무기력한 경기력이었고 병들어있는 팀의 모습이 남아있다 느껴지는 경기들이었는데 펩은 그 의심을 거두는 데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음.
팬들의 의심을 확신으로 바꾼 건 전반기 12월 죽음의 4연전이었지만 이미 그전부터 팀은 바뀌고 있었죠. 무링요 선임만이 정답이다라는 인식이 가득하고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시험하고 있는 상황에서 펩은 그것을 과정으로 하나하나 증명하면서 트레블을 이룩한 거임.
시티에서의 성공 여부를 따지기 이전에 펩이 많은 상대적 강팀들의 관심을 받고 그를 데려오기 위해 노력했던 건 그가 전술전략의 마스터이기 때문이 아니라 팀을 바꾸고 문화를 만들고 그것을 이어나가는 방법론을 선수들에게 심어주는 감독이기 때문임.
바르셀로나에서 4년 동안 낸 성적만 기억하지만 4년 동안 팀은 계속 바뀌어 갔음. 성적은 비례해서 따라가지 못했지만 결국 4년 차에 이론적으로 가장 이상에 근접한 축구를 잠시나마 이뤄냈죠. 그게 전술전략이 좋아서란 하나의 이유로 가능했다 생각하는 거면 그 사람은 진짜 문제가 있는 겁니다.
남들 칭찬을 엄청 안 하기로 유명한 사키가 펩이 떠난 다음 시즌 제일 첫 번째로 지적한 바르셀로나의 문제점은 다름 아닌 펩 과르디올라의 부재였을 정도.
펩은 바르셀로나를 떠날 때 바르셀로나와는 다른 환경을 겪어보고 차이점을 느껴보고 싶다 했지만 동시에 본인을 믿어주고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해주는 팀을 가고 싶어 했던 사람임. 에스티아르테도 바르셀로나는 내부자로 받아들이기 싫어서 6관왕 후 펩이 재계약을 하기 전까지 말 그대로 펩의 개인 비서였음. 엄청 밀어준 거 같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펩은 바르셀로나에서 늘 시험받고 있었고 압박받고 있었죠.
펩이 나중에 대중들에게 어떤 감독으로 기억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가 바르셀로나여서 성공할 수 있었다는 말만큼 한심하고 멍청한 소리는 없음. 반대로 그때 펩이 감독을 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거임. 위대한 감독의 중요성을 알게 해 준 인물이죠.
펩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각자의 문제고 그거까지 하나하나 따질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그의 시작은 운이 아니라 오로지 그의 통찰력과 능력으로 이뤄낸 거임.
Football/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