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긴 함.
축구가 트레이닝론이 정형화되고 효율성을 극단적으로 추구하기 시작하면서 버스 세우기 (아우토부스) 라고 비아냥 거리던 게 이젠 로우 블록이라 불리고 있고. 라인을 유동적으로 가져가는 게 쫄보 짓이라 불리던 시절을 지나 이젠 그게 기본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
그런 상황에서 세트피스 활용도를 높이는 건 어떤 면에선 매우 합리적인 접근일 수 있음.
사실 토탈 풋볼의 극한에서 세트피스는 중요하지 않음. 적은 확률을 노리는 것이고 혹시? 싶은 기회를 상대에게 제공할 수 있기에 차라리 짧게 주거나 확실한 선택지를 가져가는 게 훨씬 더 합리적이고 확률상으로도 좋은 선택지임.
가끔 가다 보면 중거리를 왜 이렇게 안 차냐고 화내시는 분들을 볼 때가 있는데 대부분의 빅 클럽 감독들이 중거리를 지시하지 않는 건 그게 골로 이어질 확률이 적은 건 물론이고 보통 쎄게 갈기는 볼이 루즈볼이 될 때 어디로 튈 지 모르기에 자제시키는 거임.
그래서 좋은 중거리 슛 찬스는 보통 상대 선수들 전원이 볼보다 뒤에 있을 때죠. 문제는 그럴 땐 찰만한 공간과 여유가 거의 나오지 않음. 그러니 볼을 돌려버리는 거임.
이렇기에 축구에서 속도라는 개념을 선수가 빠르게 달리는 게 아니라 패스가 얼마나 빠르냐로 이해해야 하는 거고. 무작정 빠른 패스보단 느리게 돌아가는 와중에 패스를 갑자기 빠르게 돌려버리는 능력을 가진 선수들이 중요한 존재가 되는 거임.
적은 터치로 갑자기 패스 속도를 올릴 수 있냐.
본인이 달리면서 패스 속도를 올릴 수 있냐.
대형을 깨면서 (깨지게 만들면서) 패스 속도를 올릴 수 있냐.
패스 앤 무브로 동료들을 이용하면서 패스 속도를 올릴 수 있냐. 등등을 보는 거죠.
문제는 이런 건 가르쳐서 되는 영역과는 거리가 너무 멈. 그런 순간순간을 1-2초 만에 읽어내고 실행에 옮기는 건 재능의 영역이고. 아니면 몇 수 앞을 보고 하는 거 역시 이해와 재능의 영역임. 그렇기에 다른 거 다 할 줄 몰라도 양 방향 패싱을 할 줄 알면 쓸모가 있는 게 현재의 축구.
그래서 어림도 없는 크로스가 자주 나오는 거기도 함. 어차피 상대가 버스를 세웠으면 루즈볼 싸움은 볼을 가지고 상대 진영을 공략하는 쪽이 유리하지. 막는 쪽이 유리하지 않으니까. 이게 반대로 신체 조건을 많이 보는 이유가 된 거임.
사이즈로 찍어 눌러 버려서 애초에 루즈볼 싸움을 못하게 하고 우리가 약속되어 있는 것만 있으면 여기서 찬스가 나오니까.
이런 점에서 상대적으로 느슨하고 관대하게 상황을 판단하는 흐름을 이용해 (특히 주심 성향) 세트피스 상황을 통제하려는 팀들이 있는 건 합리적인 접근이라 볼 수 있다는 거죠. 순간적으로 상황을 통제할 수 있고 어디로 찰지 약속이 된 상태라면 딱 그것만 노리면 되는 거니까.
격투기에서도 반칙으로 불리기 전까지 야비하게, 치사하게 하면 그건 잘하는 거라고 칭찬받는 거처럼. 비슷한 결이라고 봅니다.
백패스 금지 룰이 나온 이유가 대부분의 팀들이 그걸 활용해 극단적으로 안정성을 챙기고 (조금만 위험하면 키퍼한테 줘서 손으로 잡게 했으니) 효율을 논하기 시작해서였으니 이런 세트피스의 접근 방식 역시 슬슬 논의가 오고 갈 거라 봅니다. 아니면 이미 하고 있을 수도 있구요.
결국 모든 부분에서 효율성부터 따지고 보는 현재의 흐름을 얼마나 뒤집을 수 있냐가 중요하겠죠.
Football/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