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선수의 성장 방향을 팀에서 잡아줄 때 물론 세부 사항들이나 그 시기의 팀의 상황도 중요하겠지만 크게 나눠봤을 때는 딱 두 가지로 나눠볼 수 있거든요.
- 선수의 장점을 필드 위에서 최대치까지 끌어낼 수 있도록 선수의 본연의 능력을 살려주는 것
- 이 선수가 가지지 못한 것을 심어주거나 단점을 메우는 쪽으로 발전해야할 부분을 가르쳐주는 것
이미 퍼스트 팀이나 최고 수준의 무대에 올라올 때부터 기량 자체가 완성형에 근접해있던 선수 (메시) 나 성장 방향성 자체가 내외부를 가리지 않고 이런 수준에 올라오기 전부터 절대 바뀔 수 없다고 판단되어 확고하게 잡혀있고 그렇게 뛰어오던 선수들은 당연히 여기서 제외될테구요.
세르지는 이런 면에서 사실 어렸을 때 어느 부분에도 해당되는 사항이 없는 선수였습니다. 실제로 펩 과르디올라의 밑에서 퍼스트 팀 데뷔했던 선수였는데 기술이 안 좋은 편은 아니었음에도 포지셔닝을 굉장히 못 잡는 편이었고 훈련을 거듭해도 나아지는 모습이 거의 없던 선수였습니다. 심지어 짧은 횡패스 미스도 굉장히 잦아서 나올 때마다 민폐가 되거나 패배의 원인으로 지목되서 욕 먹는 경우도 있었구요. 그렇다고 그걸 다 쌩깔만큼 어떤 장점이 있어서 교체로 들어와서 팀에게 무언가를 안겨줄만한 가능성 (그 시절 비슷한 나이대의 선수로 치면 테요가 좋은 예시가 될 수 있겠네요.) 이 있던 것도 아니고 오히려 안 좋게 말하면 무색무취에 가까웠어요. 그냥 뜀박질만 잘하는?
측면이 중앙 지원을 하고 중앙은 측면을 지원하는 이렇게 측면을 기반으로 해서 미드필드를 지원하고 그게 바탕이 되는 펩 과르디올라의 축구의 조각으로서의 가치는 거의 바닥이었던 선수죠. 실제로 티아고나 조도산을 더 중용할만큼 펩은 실력제에서 세르지의 가치를 엄청 낮게 봤던 편이구요. 펩의 연장선이 아닌 다른 방향성을 추구할 거라 했던 티토였지만 결국 연장선으로 시즌을 이어간 티토의 바르셀로나에서 중용될 가능성은 낮았고 실제로 그랬습니다.
헌데 타타가 감독으로 오고서 프리시즌에서 세르지가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팀이 요구하는 바에 맞게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만 정확하게 소화해내는 제한된 역할 겸 포리바렌테의 성향을 잘 드러냈죠. 선수가 그 동안 보여주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달까. 게다가 미드필드에서 많이 뛰는 선수를 극도로 선호하는 타타였기에 당연히 중용을 받을 것이란 시즌 전 예상이 나왔고 생각했던 것만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의 출장 시간을 보장받았었죠.
루쵸가 부임한 이후에 세르지의 이런 포리바렌테 성향은 더더욱 강조되는데 양 측면 풀백, 양 측면 포워드, 미드필드 세 군데를 다 뛰어봅니다. 다 합치면 필드 위에서 7가지 포지션을 경험해본 셈이죠. 뭐 단순 땜빵이든 아니면 90분 내내 필드 위에서 그 역할을 소화했든 다 떠나서 말이죠. 이후 루쵸는 주발로 날리는 크로스의 정확도가 괜찮았고 (당시 통계적으로도 우월한 수준이었습니다.) 팀이 잘 돌아갈 때 공간이 상대적으로 더 나는 측면에 알맞은 선수라고 판단해 세르지에게 알베스의 뒤를 이어서 오른쪽 측면 풀백으로 뛰어볼 것을 제안하게 되고 내키지 않아하던 세르지는 결국 루쵸에게 설득 당해 이것을 수락하고 고정적인 포지션을 찾게 됩니다. 물론 여전히 미드필드에서 뛰는 경기가 있긴 하지만 그건 로테이션을 기반으로 한 끼워맞추기지. 이 선수의 고정적인 포지션이라고 보긴 어렵죠.
세르지의 케이스는 사실 이 두 가지가 결국 다 이뤄진 케이스라는 얘기입니다. 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무언가가 없었던 선수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익히면서 팀에서 가치를 인정 받았고 결국 그게 기반이 되서 자신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포지션에서 자리를 잡았다.
이게 제가 어린 선수들에 관한 얘기를 잘 안 하는 이유기도 하고 아래 카테고리의 경기를 잘 안 보는 이유기도 합니다. 이론적, 전술적인 거에 재미를 느끼는 타입인데 그 동안 잡혀있던 고정 관념을 깨버리는 선수가 나와버려서 축구를 조금 더 넓은 시점으로 그리고 긴 시간을 들여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달까. 펩 시절 바르셀로나의 축구를 보셨던 분들이 세르지가 지금 이러한 방향으로 성장할 거라고 예측하셨던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실까요? 단언코 없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타타 이후면 모를까 그 이전에는 오히려 제일 먼저 나갈 선수라고 예상했을 가능성이 높으면 높았겠죠.
이 얘기는 선수가 가진 재능이나 장점만큼 그 시기 팀의 상황과 스쿼드 구성 그리고 퍼스트 팀 감독이 어떠한 방향성과 틀을 가지고 있는 지도 엄청 중요하단 뜻이죠. 바르셀로나가 펩 과르디올라 시절을 제외하고 베스트 11 에서 넓게는 퍼스트 팀 스쿼드에서 유스의 비중이 그렇게 높지 않았던 편이었던 건 그 시기에 필요한 유형의 선수와 실제로 그 시기에 차근차근 단계를 밟고 올라오는 선수들의 유형이 겹치는 빈도 수가 낮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구요. 빈도 수가 높다면 당연히 그만큼 운이 좋고 아다리가 잘 맞았다는 거겠지만 그건 말 그대로 우연일 뿐.
어린 선수들이 스쿼드의 상황과 상관 없이 알아서 살아남아야한다는 것도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보시면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물론 지금 발베르데는 다른 감독들보다 훨씬 빡세다는 건 인정합니다.
전 그래서 메시 같이 이미 완성형이 되어서 올라와서 조금만 가다듬어도 팀의 중심이 될 거라고 확신이 가는 선수나 이니에스타, 티아고처럼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완성이 되어있는 상태로 올라온 선수가 아닌 이상 어린 선수들에 대한 평가나 가능성은 직접 경기를 보고 장점이나 가능성이 보일 때나 어느 정도는 있겠다라고 얘기하는 편이고 무언가 그 선수의 재능의 크기를 판단하거나 제 주관에 의해서 이런 어린 선수들의 평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박혀버릴만한 얘기는 거의 안 하는 편입니다. 한 번 그 선수에 대한 이미지가 박혀버리는 게 은근히 크거든요. 물론 제가 국내 바르셀로나 팬덤에서 그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만......
당연히 챠비나 푸욜 같은 경우는 제가 축구를 안 보던 시기에 자리를 이미 잡아버린 선수들이니까 제외구요. 이 글 역시 세르지가 굉장한 재능을 가졌다는 얘기가 아니라 오히려 재능의 크기가 굉장히 작아보였던 이 선수의 성장 과정이 독특하고 여러 감독들을 거치면서 변하는 과정이 신기했고 결국 자리를 잡았다는 걸 얘기하고 싶었던 거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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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 이런 미완의 시스템 자체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아서 아래 카테고리 경기까지 다 챙겨보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그런 분들은 당연히 그만큼 다양한 카테고리에서 다양한 선수들을 접하니까 카테고리를 넘나들면서 변하는 선수 개개인의 평가와 여러 선수들의 잠재력과 성장 방향성을 보는 재미가 당연히 늘어날 터. 재미를 느끼는 부분 자체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거기서 완성형에 근접한 선수를 발견한다면 그 재미도 당연히 클테고 자신이 찍었던 선수가 성공을 거둔다면 뿌듯하기도 하겠죠.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마찬가지로 조금 더 넓은 관점으로 축구를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과 자신에게 맞는 재미가 무엇인 지를 조금 더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글 정도? 축구의 재미란 참으로 다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