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을 가진 선수가 방향 전환이 좋다고 하는 건 결국 자연스럽게 자신이 갈 수 있는 방향을 좌우 어디로든 아니면 종횡 어디로든 볼을 다루면서 유연하게 가져가는 건데 이걸 가장 잘하는 선수가 메시입니다. 메시보다 이걸 잘하는 선수는 제가 축구 15년 넘게 보면서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음. 옛날 경기 찾아보던 시절에도 단 한 명도 못 봤습니다. 가끔가다가 어린 유망주가 뜨면 스탯으로 어린 시절 메시랑 비교하는 경우가 있는데 진심으로 엿먹으라고 하시면 됩니다. 메시는 처음부터 이런 부분을 포함해서 기술적으로 완성형에 근접하게 나온 선수였습니다. 어린 시절 메시와 비슷하거나 살짝 떨어지는 수준으로 하는데 스탯은 더 잘 찍는 게 아니면 어린 시절 메시와 비교하는 건 그냥 난 축구를 잘 모른다라고 광고하는 거랑 똑같은 거에요.
결국 어느 방향으로든 자유자재로 방향 전환이 되는데 무게 중심까지 낮으니까 이런 선수가 중앙에 있으면 상대 수비들이 중앙을 의식해서 수비 대형이 좁아지기 마련. 늙으면서 이런 방향 전환이 조금씩 떨어지고 본인의 포지셔닝의 범위 자체가 좁아져서 이제 이런 모습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상대하는 선수들은 메시를 굉장히 의식하고 있죠. 이런 메시의 장점이 가장 발휘되기 좋은 곳은? 왼발잡이면서 오른발도 어느 정도 쓰는 메시가 다지선다를 걸기 좋은 우측면 하프 스페이스와 우측면이지만 메시는 이제 우측면까지 활용하면서 뛰지는 않으니까 그건 패스.
이런 식으로요. 이게 11-12 시즌 코파 델 레이 8강에서 마드리드와의 경기로 기억하고 있는데 메시가 전성기 시절일 때는 저렇게 상대 수비들이 바르셀로나의 측면 선수들을 놓치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습니다. 지금도 저런 모습들이 종종 있죠? 팬들이 메알단이라 하는 그런 패턴. 이런 선수가 있을 때 측면 투자를 극으로 하고 측면 선수들이 개인 기술이 좋으면 볼 수 있는 이득은 바로 상대 수비가 메시만 의식할 수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상대 수비 대형이 횡으로 움직이는 비중이 높아지고 넓어지기 때문입니다. 이니에스타 (또는 네이마르) 와 메시가 컨디션이 멀쩡하면 바르셀로나는 무조건 챔피언스 리그를 우승했다는 건 그들의 축구를 완성시켜주는 선수가 결국 이 두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챠비는 이 둘을 가장 완벽하게 보조하는 선수이자 둘 중 한 명이 빠졌을 때 경기를 어떻게 풀어나가야할 지까지 아는 천재적인 선수였구요.
이런 메시의 하락과 시기상 겹쳐서 나타난 두 줄 수비의 장점은 측면에 있는 선수들을 맨투맨 (1대1, 2대1, 2대2) 으로 붙여서 놓치지 않으면서도 혹여나 놓치더라도 최대한 막아내고 측면 퀄리티가 후지면 박스 근처에 모여서 지역 방어로 틀어막으면 크로스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그 경합에서 지지만 않는다면 절대 지지는 않는다는 거에 있죠. 그럼 측면 퀄리티가 떨어져있을 때의 바르셀로나를 상대로 하는 가장 모범적인 대응책은? 메시가 최대한 볼을 우리 박스에서 먼 곳에서 받게하고 그 곳에서 원온원을 이기고 와도 2차 수비를 하던 선수가 시간을 벌어주면 대형을 갖출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최대한 대형을 좁게 가져가거나 적당한 간격을 유지했을 때 바르셀로나가 소유하고 있는 볼이 측면으로 가면 (유도하는 거지만) 1대1나 2대2를 강제하고 크로스를 유도하고 공중볼 경합에서 이겨서 볼을 뺏으면 바르셀로나의 빈 측면 공간을 파고 들어서 최대한 빠르게 박스 공략. 반복반복반복. 어? 하고 떠오르시지 않나요?
이런 시메오네의 대응책에 고전하던 바르셀로나에 부임해 루쵸가 제시한 해법은? 최대한 횡으로 흔들어서 수비 대형을 깨부수고 공략하거나 하프 스페이스나 측면 공간에서 최대한 개인의 기술로 박살을 내버린다였습니다. 그래서 MSN이 수비 부담이 최대한 안 가게하고 그들이 공간을 넓게 쓰게 하기 위해서 미드필드들까지 측면으로 밀어넣었죠. 반대로 펩은 뮌헨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한테 떨어질 때 로베리가 부상으로 없으니까 알면서도 시종일관 양 측면을 파면서 크로스를 계속 날렸죠. 레반도프스키나 뮐러 머리통에 닿기를 바라면서.
이런 시기 이후 사람들은 메시의 제로톱은 이제 끝났다고 하고 아직도 제로톱이니 측면 포워드니 어쩌니 하지만 정작 그 메시는 다시는 측면으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물론 당연히 지금 메시의 몸 상태가 훨씬 더 중요하게 작용하겠지만 제가 감독이라면 메시가 지금보다 다섯 살 어려져도 측면에 절대로 안 쓸 겁니다. 왜냐면 부상 위험이 높아지거든요. 측면에서 드리블을 하면 결국 방향이 어느 정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협력 수비로 붙어서 상대의 수비가 굉장히 거칠게 들어올 가능성이 높거든요. 흔히 말해서 담군다고 하죠? 특히 전성기 시절 메시처럼 볼을 오래 소유하고 긴 드리블이 가능한 선수들일 경우 더 당하기 쉽겠죠. 어렸을 때부터 델 오르노부터해서 담구려는 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게 그 증거.
뭐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지금 네이마르가 파리에서 두 시즌째 당하고 있는 것처럼 당한다고 보시면 될 듯 하네요. 투헬도 괜히 네이마르를 중앙에 살짝 걸쳐서 좌측면 하프 스페이스를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선수로 만드려고 하는 게 아니란 뜻입니다.
이런 면에서 로벤은 선수들이 담구려고 하는 것도 있었지만 그 뻔한 패턴 안에서도 동작을 작게 엄청 많이 가져가다보니까 근육이 못 버티는 경우인데 그럼에도 돌아오면 다시 잘하는 게 신기한 선수였는데 나이가 조금씩 먹으면서 서서히 내려오면서도 그 폭이 한 살 한 살 먹을 때마다 더 커지는 건 그만큼 측면 선수들은 근육 부상 한 번, 한 번이 쌓이는 게 크다는 뜻이구요. 아마 로벤이 조금 더 양 발을 자유자재로 쓰는 선수였다면 훨씬 더 좋은 선수가 되고 부상을 이겨내는 방법도 조금 더 다양하게 고민해볼 수 있었겠죠. 아무튼 메시는 어떤 예를 들어도 영원히 측면 포워드로 못 돌아갑니다.
결국 측면 퀄리티가 약하다는 건 횡적으로 수비 대형을 그만큼 흔들기 힘들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중앙에 판단력이 좋은 선수가 있고 미드필드들이 측면 플레이가 좋아도 한계가 있다는 뜻이죠. 그래서 펩이나 티토가 막히던 경기에서 주로 가져가던 전술 변화가 그거였죠. 수비가 의식해서 무조건 따라붙게 만드는 측면 선수를 교체로 넣어서 메시의 공간을 만들어준다. -> 그러면 메시는 골이나 어시스트로 100% 보답한다.
테요는 매크로질이라고 쌍욕을 먹으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잘 소화해내는 선수였습니다. 왼쪽에서 볼을 잡으면 최대한 엔드 라인으로 치고 달려서 크로스 or 박스 안이나 바깥에서 크로스 또는 슈팅 그게 아니면 우리 쪽 박스를 바라보면서 45도 대각선 백패스. (지금 뎀벨레가 오른쪽에서 뛰면 주로 하는 거랑 거의 유사합니다. 이래서 제한적인 역할만 한다는 뜻입니다.)
산체스는 그냥 오른쪽 측면을 기반으로 최대한 넓게 여기저기 뛰어댕기면서 수비를 최소 2명을 달고 다녔으니 그만큼 메시에게 가는 수비수가 적어진다는 의미니까 자연스럽게 메시에게 공간이 생기는 거였구요. (이것도 지금 수아레즈가 살짝 비슷하게 하고 있습니다만 지금 수아레즈는 실책이 너무 많습니다. 늘상 말하지만 다른 거 다 잘하는데 골은 못 넣는 그 시절 산체스 > 다른 거 다 못하는데 골은 어쩌다 넣는 지금의 수아레즈.)
네이마르가 합류하기 전이나 그의 비중이 늘기 전까지 이니에스타가 중앙 미드필드임에도 종종 포메이션상 그림에서 좌측면 포워드로 나오거나 그가 사실상 좌측면 포워드에 가깝게 뛴 것은 그가 종횡 어느 방향으로든 상대 수비를 자신에게 몰리게 하면서 그걸 벗겨내는 플레이가 아주 자연스러웠고 효율적이었기 때문입니다. 루쵸가 네이마르의 비중을 높이면서 시도한 것도 결국 이겁니다. 루쵸의 밑에서 네이마르가 제일 성장한 것도 이런 플레이를 더 높은 수준으로 하는데 적합한 선수가 됐다는 데에 있어요. 메시가 결국 언젠간 팀을 떠나게 됐을 때 네이마르가 이걸 좌측면 하프 스페이스를 기점으로 하고 있으면 다음에 영입할 놈은 메시의 역할을 메시만큼은 아니어도 의식할 수준으로 할 수 있는 놈을 데려오면 되는 거니까.
네이마르는 사실 이런 메시나 이니에스타와 비교할만큼 방향 전환이 자유자재로 되는 수준은 아닌데 퍼스트 터치가 워낙 좋고 판단력이 재빠르고 오프 더 볼이 워낙 좋아서 팀의 틀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기복이 거의 없어지는 편이죠. 포워드로서의 그릇 자체는 이니에스타보다 좋은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바르셀로나를 얘기할 때 자꾸 메시가 주로 공략하는 우측면 하프 스페이스가 아닌 좌측면 하프 스페이스를 쿠티뉴나 뎀벨레가 공략을 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지금 바르셀로나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이 한결 나아질 거라고 얘기하는 것이구요. 챠비가 쿠티뉴가 이니에스타와 스타일이 다르지만 그 자리에서 뛸 수 있는 선수라고 한 건 그가 이니에스타처럼 양 발을 어느 정도 쓰면서 그와는 다르게 킥력으로 이런 방향 전환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선수라는 게 컸다고 봅니다.
이렇게 볼을 달고 방향 전환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선수들을 우리는 흔히 크랙이라고 하는데 이런 선수들말고 발로 방향 전환을 잘 해내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이걸 잘하면 잘할수록 보조자로서의 그릇이 커지고 중요해지는 거죠. 그만큼 저런 선수들을 자연스럽게 지원해줄 수 있다는 의미니까. 과거 페드로가 바로 이런 선수였습니다. 양 발로 슈팅만 잘하는 게 아니라 패스도 할 수 있어서 스위칭이 어색하지 않은 선수 중 하나였죠. 펩이 주로 기용하거나 기회를 주던 측면이나 포워드로 뛰는 선수들이 바로 이렇게 양 발로 패스를 다 할 수 있는 선수들이었음.
즐라탄이 이상향에 가장 근접한 포워드라고 불렸던 건 장신으로서 경합에서 자연스레 우위를 가져가면서 머리로 골을 박는 것도 있겠지만 그런 띄우는 볼을 받고나서 발로 이런 좌우 전환 패스를 잘할 수 있는 선수였기 때문인데 생각보다 포지셔닝의 범위가 엄청 좁아서 발로 볼을 굴리는 데 있어서 속도가 안 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더 넓은 포지셔닝을 가져가는 메시가 이것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걸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볼을 띄우는 비중을 조금 줄이고 발로 볼을 최대한 굴리고 루즈볼 탈환을 더 적극적으로 시도하는 상황을 만들면 팀이 더 빨라질 거라 생각했고 그게 필드 위에서 실현된 게 10-11 시즌이죠.
그래서 전 쿠티뉴나 뎀벨레가 지금보다 최소 세네배는 더 잘하지 않으면 이번 시즌 후반기는 물론이고 다음 시즌도 위험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결국 지금 선수들로 저 좌측면 하프 스페이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수 없다면 메시를 보조하면서 우측면 하프 스페이스를 같이 공략할 수 있는 그리즈만이 팀에 가장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구요. 점점 팀적으로서의 완성도를 높여가면서 틀을 어느 정도 갖춰놔야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는 다른 팀들에게 대응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게 아니라면 늘상 말씀드렸던 것처럼 메시가 해주기를 바라는 것 말고는 없죠 뭐.
사실 지금처럼 메시 하나만 믿고 보조자들 데리고 메시 공간 어떻게든 만들어주고 최대한 수동적으로 대처하는 건 이제 한계에 거의 다 왔어요. 상대 팀들이 바보도 아니고 실제로 리가 몇몇 팀들한테도 만날 때마다 고전을 하거나 답답한 경기를 하거나 아니면 수동적으로 맞춤 전술 짜와서 넘어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죠. 개인적으로 다음 시즌에도 이런 축구를 한다면 아마 축구를 안 보거나 다른 팀 경기를 찾아보거나 할 것 같음. 너무 지나칠 정도로 메시에게 의존하고 있고 그 한계를 일찍이 인정해서 도전 정신도 없어졌어요. 굉장히 현실적인 축구죠. 물론 이해는 합니다만 제 취향과는 안 맞습니다. 전 정말 엘 클라시코만 07-08 처럼 4대1 대굴욕 당하고 그런 것만 아니면 제 취향에 맞는 축구 보는 게 더 좋음.
물론 성적도 같이 챙겼으면 하시는 분들도 있으시겠지만 적어도 지금 축구를 보시는 바르셀로나 팬분들 중 대다수는 빠심으로 보는 거지. 팬 아니었으면 안 봤을 거다 하시는 분들 많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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