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어그로 지대로 끌어보는 글 한 번 써재낍니다. 전 A매치 거의 안 챙겨보는 사람이라 쓸 글도 없고. 메모장에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면서 시기에 맞춰서 글을 쓰려고 하는 편인데 사실 이 글이 지금 이 시점에 꺼내기 적합한 글은 분명히 아닌데 여유가 있을 때 글을 최대한 써두는 게 저도 그렇고 방문하시는 분들한테도 더 나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서 그냥 써봅니다.
마라도나와 메시의 비교가 메시의 커리어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도 여전히 끝나지 않는 이유와 그가 아르헨티나에서 마라도나의 위상에 근접하는 듯 하다가도 결국 넘어서지 못하는 건 마라도나의 성장 과정과 메시의 성장 과정이 굉장히 유사하기 때문입니다. 시기상 살짝 차이가 있을 뿐.
메시는 어린 시절 측면 포워드로 커리어를 시작해 점점 중앙에 치우친 메디아푼타에 가까운 선수로 발전해왔는데 마라도나도 똑같았다고 알려져있습니다. 대신 메시는 나이를 먹어가면 먹어갈수록 기이하고 특이한 포지셔닝을 가져가고 있죠. 적어도 제가 찾아본 마라도나의 경기들에 한해서 마라도나는 이렇게 어느 한 쪽 측면 하프 스페이스에 치우쳐있는 선수는 분명히 아니었습니다. 허나 둘 다 측면 포워드는 아닌데 공미도 아닌 포워드인 건 유사합니다.
그리고 둘 다 U-20 월드컵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끌면서 그걸 기점으로 세계에 이름을 아주아주 널리 알렸다는 것 역시 공통점 중 하나로 꼽히고 있죠.
마라도나의 나폴리를 보고 종종 꽤나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던 팀이었고 동료빨을 받았다는 평가가 있는데 사실 이런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보다는 마라도나가 나폴리에 합류함으로 인해서 스쿼드의 레벨이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했고 그 과정 속에서 그가 정점을 찍어줄 수 있는 선수로서의 가치를 증명했고 분명 모두가 의심스러워하던 상황에서 우승을 이뤄냈다는 평가가 더 적합하다고 보는 사람들이 훨씬 많습니다.
메시도 이런 마라도나와 살짝 유사합니다. 바르셀로나에서 자신이 챠비, 이니에스타, 알베스, 푸욜 등등을 제치고 압도적인 비중을 앞세워서 역대급 팀으로 꼽히고 있는 팀의 정점을 찍어줬고 우승을 차지했으니까요. 선수로서 드러낸 가치는 거의 비슷합니다. 차이가 있다면 마라도나는 언더독에 가까운 팀을 이끌고 그런 업적을 이뤄낸 거고 메시는 꽤나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던 빅 클럽에서 그런 업적을 이뤄냈다는 거겠죠? 허나 전 이 차이를 이유로 삼아서 마라도나가 클럽에서 해낸 게 메시보다 더 위라는 의견에는 절대로 동의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메시가 지금 당장 은퇴해도 클럽에서 이룩한 건 누가 와도 비빌 수 없다고 확신합니다.
결국 그럼 월드컵인데 재밌는 사실 중 하나는 86 월드컵에서 독보적인 세계 원탑으로 정점을 찍었던 마라도나 역시 82 월드컵에서 2차 예선에서 죽음의 조에 걸리면서 뭐 별로 해보지도 못하고 떨어졌단 사실. 물론 축구 외적인 요소 (포클랜드 전쟁) 가 있었고 그게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만 그럼에도 그들에겐 분명히 아쉬운 대회였다고 알려져있습니다. 허나 마라도나는 이 대회에서도 혼자 고군분투를 하며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고 평가를 받고 있죠.
마라도나가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끈 86 월드컵이 아직도 원맨 캐리의 상징적인 대회로서 언급되고 기억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전술적인 역사에 기인하고 있는데 당시 대세를 이루던 3-5-2 라는 포메이션의 흐름에 따라가는 듯 하면서 살짝 다른 팀이었던 당시 아르헨티나가 3-4-1-2 (또는 3-5-1-1, 4-3-1-2) 라는 1의 중요성을 더더욱 강조하는 마라도나 의존증이 굉장히 높은 축구를 들고 나왔고 그게 결국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나폴리에서와 90 월드컵에서도 마라도나는 이런 1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증명해냈으니 그의 평가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끝을 모르고 올라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82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했음에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했던 마라도나와 10 월드컵에서 좋은 활약을 했음에도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넘어서지 못했던 메시와 비교하면서 평행 이론을 주장하던 사람들도 있었지만 전 별로 동의하지 않는 게 14 월드컵은 86 월드컵과 비슷하다고 보지 않거든요. 분명히 14 월드컵에서 메시는 분명히 이런 원맨 캐리의 가치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명할 정도로 아르헨티나의 공수 분리 축구에서 빛나는 선수였지만 전 적어도 결과까지 놓고 보면 오히려 90 월드컵에 매치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90 월드컵도 86 월드컵과 별 차이 없이 마라도나가 혼자 다 한 거나 다름 없다고 평가받고 있는 대회 중 하나거든요.
86, 90 마라도나와 14 메시의 공통점은 이들에게 볼이 가는 게 곧 전술이었고 이들이 중앙을 기점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게 전부였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국가대표팀에 한정한다면 마라도나에게는 메시보다 더 좋은 보조자들이 있었습니다. 물론 메시 정도 되는 선수에게 이건 핑계가 될 수는 없다고 보긴 하지만요.
전 메시가 역대급 선수들과 뭘로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고 보고 제가 본 마라도나의 몇 경기들과 비교해도 제 개인적인 취향은 물론이고 사키나 퍼거슨 같은 감독들이 마라도나 or 메시? 하면 메시라고 하는 이유가 단박에 이해가 될 정도로 타당하다고 보지만 적어도 그가 월드컵 (또는 코파 아메리카) 을 얻지 못하고 커리어를 끝마친다면 좋지 않은 환경이나 익숙하지 못한 환경에서는 한계에 부딪혀서 극복을 하지 못한 선수로 기억될 가능성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봅니다.
펠레, 크루이프, 디 스테파노, 베켄바우어, 여기서 얘기하는 마라도나나 메시 등등 이런 선수들의 실력 차이가 정말 딱 와닿을 정도로 엄청나게 차이가 심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걸 정확하게 판단할만큼 각 시대의 축구들이 유사하지도 않고 포지션이 똑같지도 않고 비슷한 환경을 구축하고 있지도 않았구요. 단지 차이는 그거겠죠. 본인이 익숙한 환경이 아닌 또 다른 환경을 맞이했을 때 그걸 어떻게 극복을 해나갔고 그게 어떠한 결과로 이어졌을까. 메시에게 이걸 확인할 수 있는 건 오로지 아르헨티나밖에 없으니까 그에게 더 가혹한 기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그게 옳든 옳지 않든요. 심지어 이 중 자기와 가장 유사하게 매치할 수 있는 선수가 마라도나인데 그 마라도나는 같은 아르헨티나 사람인데 대표팀에서 정점을 찍어봤으니 메노티 말처럼 메시가 지고있는 짐은 어쩌면 상상 이상으로 클 수밖에 없겠죠.
전 적어도 아르헨티나에서의 메시와 아르헨티나 대표팀을 거쳐간 감독들을 생각하면 바르셀로나의 끝을 모르고 거두던 성공들이 분명히 독이 됐다고 확신합니다. 메시를 오래 쓸 수 있고 메시의 효율을 극으로 낼 수 있는 방법을 완성에 근접하게 이끌어내고 제시한 바르셀로나의 모습이 결국 아르헨티나에서는 도저히 갖출 수 없는 해결이 안 되는 문제 (측면 퀄리티, 메시에게 맞는 보조자들이라기보단 또 다른 보조를 요구하는 선수들) 였지만 메시를 보유하고 있는 팀이라면 그 방향을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는 거 역시 문제가 아니었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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