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패스 금지 규정 도입 이후 흔히 말하는 90년~00년대 초반 축구에서 볼을 하프 라인을 넘어선 지점에서 핵심적으로 소유한다는 것과 속도를 강조하는 게 덜했던 건 아예 웅크리고 흔히 버스를 세운다고 하는 아우토부스나 지금의 두 줄 수비와 비스무리한 전술을 구사하는 팀들이 거의 없었던 게 큽니다. 그 유명했던 카테나치오 조차도 그런 느낌은 아니었으니까요. 2004년 유로에서 우승했던 그리스가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던 이유기도 했죠. 측면의 중요성도 지금 현대 축구만큼 큰 시기는 아예 없었구요.
천천히라도 볼을 돌리면 상대는 볼을 보고 쫒는 게 대부분의 모습이었고 그래서 기술적으로 조금 떨어지더라도 최전방에 위치하는 선수들의 기술이 좋다면 결국에는 방점을 찍는 게 가능했죠. 그래서 유행했던 게 저런 상대의 움직임을 잘 포착해서 종으로 넘기는 패스나 양 측면을 바라보고 대각선 패스를 잘하거나 하프 라인 아래에서 이런 볼 순환의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선수들을 맨투맨이나 지역 방어로 조지는 거였습니다.
펩 과르디올라가 이런 하프 라인을 넘어선 지점에서의 볼 소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나서부터는 다릅니다. 그 시기에 맞춰서 공수 양면에서 측면의 중요성도 동시에 커지기 시작했고 그에 맞는 대응책들이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나왔기도 했구요. 결국 측면의 중요성은 점점 커지더니 이제는 그냥 전부나 다름 없습니다. 예전에는 미드필드나 수비수들이 아주 잠깐 관여하고 일반적으로는 4명 (양 측면 포워드, 풀백) 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곳이 양 측면이었다면 이제는 아무리 못해도 6명 (4-3-3 기준 양 측면 포워드, 풀백 + 중앙 미드필드 두 명) 이 양 측면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할 정도가 됐죠. 그래서 측면이 고장난 순간 상대의 대응책이 아무리 뻔해도 그 대응책을 극복을 못하는 경우가 엄청나게 많아졌습니다. 이 의미는 똑같은 점유율, 똑같은 패스 시도, 똑같은 패스 성공, 똑같은 경합 횟수여도 볼이 어떻게 도느냐에 따라서 다르다는 뜻이고 팬들은 그 부분을 알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그림 1 - 흔히 해외에서 U자로 볼이 돈다고 말하는 양상인데 이제 웬만한 팀들은 이렇게 볼이 돌 때 아예 반응을 하지 않거나 최대한 적은 인원이 움직인다.)
(그림 2 - 똑같이 U자로 볼이 돌고 있지만 정반대로 돌고 있는 건데 이건 이해를 하기 쉽게 그린 거고 정확히는 박스 근처와 안 그리고 양 측면, 하프 스페이스를 넘나들며 위협적인 지점에서 볼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에 가깝다. 당연히 볼이 돌아가는 그림을 보면 저렇게 그려지진 않는다. 약간 다르다.)
그림 1 처럼 볼이 돌면 상대방은 한두명만 움직이거나 아예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왜 그렇게 볼이 도는 지를 이제는 아주 간단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더 이상 예전처럼 대형이 횡으로 옮겨다니면서 따라다닐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측면이 약하고 측면이나 하프 스페이스에서 기술적인 우위를 가져갈만한 선수들이 적고 상대 박스에 가까워질수록 판단력이 재빠르지 못한 선수들이 더 많기 때문이고 결국 박스 근처나 안에서의 경합에서만 지지 않고 그나마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선수들에게 공간을 최대한 주지 않으면 골을 먹힐 확률이 굉장히 줄어들기 때문에 측면으로 볼이 굴러가게끔 유도하고 최대한 박스 안으로 선수들을 밀어넣어서 수적 우위로 버티는 겁니다.
바르셀로나가 고장난 것처럼 보일 때가 이러하고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스웨덴과 대한민국의 경기에서 스웨덴이 한국의 측면의 문제점과 크로스의 질을 간파하고 이렇게 대응했죠.
반대로 그림 2 처럼 볼이 돌거나 저렇게 비스무리하게 볼이 돌면 헤딩 되는 놈을 데려오라거나 중거리를 갈기라고 하거나 그런 걸 얘기할 필요도 없이 판단력이 재빠르면서도 볼이 그 순간에 어디에 있어야하는 지를 아는 선수들이 많다는 뜻이고 그렇다면 굳이 볼을 내보내거나 전환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될 때는 중거리를 갈겨야할 땐 갈길 거고 다른 걸 해야할 땐 하겠죠. 그럼 상대가 횡으로 흔들려서 수비 대형이 깨지는 경우가 생기거나 측면이나 하프 스페이스에서 계속 다지선다에 걸려서 흔들리겠죠? 아니면 이미 대형이 갖춰지기도 전에 먼저 박스 근처를 공략해서 농락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박스 근처와 안을 그리고 측면과 하프 스페이스를 막 왔다갔다한다는 거 자체가 원온원에서도 이기고 수비 대형이 계속 깨진다는 소리니까요.
헌데 이상적인 얘기입니다. 당연히 이걸 매 경기 완벽하게 할 수는 없어요. 근데 대다수의 경기에서 이게 가능할라면 챠비나 데코, 메시, 이니에스타, 네이마르, 알베스 등등 같은 선수들을 사이클이 내려가는 시기나 반등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판단될 때 바로바로 데려와야하는데 그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 바르셀로나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틀을 만들고 완성도를 높여서 그림 2 처럼 볼이 도는 걸 추구해야하는데 그러기 위해서 필요한 선수들은 종횡을 넓게 뛸 수 있는 선수들이나 측면 플레이나 측면 지원이 자연스러운 선수들이 제일 잘 어울릴 겁니다. 기술적인 부분이야 기술진이나 감독들이 애초에 제일 먼저 확인을 하고 들어가는 부분이니까 굳이 얘기할 필요는 없구요.
개인적으로 바르셀로나의 앞으로의 키워드를 다섯 가지로 요약해보면 측면, 체력, 공수 전환, 단거리 역습, 오프 더 볼 정도가 아닐까 싶네요.
그래서 이런 걸 토대로 지금 바르셀로나의 보강을 바라보면 단순히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거나 기존 선수들을 동일한 유형으로 대체해야한다는 느낌보다는 많이 뛰면서 볼이 굴러가는 본질을 알면서 종횡을 넓게 움직이거나 측면에서 움직이는 게 어색하지 않은 선수들을 최대한 찾으려고 한다는 느낌이 강해서 그렇게 비관적이진 않습니다. 똑같은 보조자여도 저런 선수들은 바르셀로나에 더 적응하기 쉬울 거고 가치를 드러내는 것도 더 높을 수밖에 없거든요. 크랙이면서 저런 거까지 가능한 선수들이면 바르셀로나가 찾아오던 선수들일테고. (근래의 네이마르처럼) 지금 스쿼드에서도 메시를 제외하고 발베르데의 사랑을 듬뿍 받는 (어거지로 쓰는 게 아니라 염통 터질 때까지 부려먹는) 선수들을 보면 대부분 요런 느낌을 부분적으로라도 가진 선수들이란 것도 아실 수 있으실 거고. 수아레즈까지 내보내고 이미 올 선수들과 추가로 또 다른 선수들이 왔을 때 팀이 어떻게 될 지 지켜보는 게 다음 시즌부터 바르셀로나를 바라보는 재미의 가장 큰 요소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유스를 바라볼 때도 자리를 가리지 않고 (특히 양 측면에 위치할 때) 양 발 사용 능력이 준수한 선수들이나 어느 상황에서든 체력적인 우위를 가져가는 게 자연스러운 선수 (빠르고 강인하고 등등) 가 더 성공할 확률이 높을 거에요. 기술적으로 높은 수준을 보여주는 선수들이야 근육계 부상이 고질적으로 따라오는 게 아닌 이상 올라오면서 다른 게 갖춰지기 시작하면 알아서 감독이 어떻게든 키워서 쓸테니까 말할 것도 없구요.
이번 시즌은 그냥 메시가 주요 경기들에서 늘 멱살 잡고 끌어올려주길 바라거나 쿠티뉴나 뎀벨레가 돈값을 최소 두세번씩은 해주길 바라거나 말고는 없습니다. 수아레즈는 예외입니다. 아예 계산 자체가 불가능한 (안 좋은 쪽으로) 특급 변수의 선수가 됐다고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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