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전에 써놨던 글에서 얘기했던 것들을 뮌헨이 제 생각보다 훨씬 잘했고 승리의 자격이 있는 팀이 올라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서 딱히 덧붙일 말은 없습니다. 오히려 덤덤하게 봤네요. 기왕이면 뮌헨이 우승해서 체면이라도 덜 구겼으면 하는데... 그거까진 될 진 모르겠네요. 그리고 플릭은 대단한 감독이 될 것 같은 자질을 갖고 있는 감독이 맞네요. 완벽하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바르셀로나의 약점을 꿰뚫고 있었고 그걸 선수들에게 잘 주입시켰습니다. 그걸 잘 이행한 뮌헨 선수들도 칭찬하고 싶구요.
슈테겐과 피케의 패스 길을 압박을 들어가면서 의도적으로 한 방향으로 몰아버리거나 롱볼로 처리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어버리면 후방에서 전방으로 길게 넘어가는 것말고는 방법이 없는데 이러면 전방에 필요한 유형의 선수들이 있습니다. 종으로 볼이 후방에서 전방으로 넘어올 때 측면과 중앙을 오가면서 필요하면 바로 대각선 (중앙에서 측면으로든 측면에서 중앙으로든) 으로 뛰어들어가서 수비수들이 자신을 놓치게 만드는 선수와 그 선수를 보조해줄 수 있는 선수가 있어야 하는데 바르셀로나엔 이런 유형의 선수들이 거의 없습니다. 그나마 알바랑 수아레즈인데 알바는 정지된 상황에선 이런 플레이를 잘하는 선수가 맞는데 수비수들이 자신을 놓치지 않고 따라붙을 수 있다고 했을 때는 위력이 확 죽어버리고 수아레즈는 이렇게 불확실하게 볼이 날아오면 포지셔닝 자체를 한 발 늦게 잡아요. 그만큼 몸이 둔해졌고 못 따라가는 겁니다. 이건 이미 16-17 시즌부터 이랬습니다. 더 말하기도 지칠 정도. 몇 골을 넣든 이 선수는 바르셀로나에 필요없습니다. 과정 속에서 아예 도움이 안 되는데 골이 무슨 소용입니까.
뮌헨 선수들이 아무렇지 않게 롱볼을 뺏어내고 다시 앞선으로 전진한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에요. 더 나아가서 부스케츠의 패스 방향까지 불확실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거나 방향을 의도적으로 유도해내는데 성공했어요. 이미 여기서부터 절대 이길 수 없는 수준까지 갔다고 보는데 부스케츠는 볼을 잡고 본인이 볼을 처리하기 편한 오른발로 대부분 오른쪽으로 내보내는 걸 정말 잘하는 선수인데 (이래서 세티엔이 부스케츠를 좋아하는 거고 측면의 메시를 계속 썼던 겁니다. 부스케츠가 볼을 많이 잡으면 잡을수록 메시도 볼을 많이 잡는다는 뜻이고 메시가 다음 동작을 이어가기 편하게 받는다는 소리니까) 오른쪽으로 처리하기 힘들게 볼을 받게하거나 오른발을 쓰기 힘들게 만들거나 아니면 미리 그 쪽을 차단하는 움직임을 뮌헨 선수들이 너무 잘 가져갔습니다.
측면에서의 원온원에서도 알바나 세메두가 힘을 못 썼고 바르셀로나의 측면은 고장났다는 게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거기서부터 나오는 경합 능력에서도 바르셀로나가 대부분 밀렸어요. 이건 누구를 쓰냐 안 쓰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선수 구성 상의 한계를 뮌헨이 정확하게 파악하고 잘 공략한 거에요. 그걸 인정하는 게 우선입니다. 다음 시즌에도 유지를 택하면 이 경기는 또 하나의 교본이 될 거에요.
한 가지 더 얘기하고 싶은 건 저번 시즌에도 계속 얘기했던 건데 안 하던 걸 하면 잘할 수가 없습니다. 바르셀로나에는 애초에 대형을 갖추고 상대의 공격에 수동적으로 대응하는 수비 자체를 잘할 요소가 없어요. 서로가 간격을 좁히고 공간을 좁히기 때문에 협력 수비를 잘할 거라고 생각하기 마련인데 호흡이 안 맞기 때문에 실책성 플레이가 나올 확률도 동시에 올라간다는 걸 생각할 필요가 있죠. 그래서 저번 시즌에도 계속 얘기했습니다. 몇몇 선수들이 잘 막아주니까 수비를 잘하는 거처럼 느껴지는 거라고. 오늘은 팀 자체가 대응이 안 되니까 이 꼴이 난 겁니다. 시즌 내내 이런 걸 준비해왔어도 뮌헨 정도의 팀을 만나면 잘 안 될텐데 비슷한 전력이나 상대적으로 더 강한 팀을 만났을 때만 수동적으로 하면 그게 잘 될 리가 있을까요. 그래서 지더라도 하던 걸 하면서 무엇이 문제인 지를 확인하고 다음 시즌에 그 부분을 채워나가는 게 더 낫다고 한 겁니다. 이렇게 하면 지든 이기든 의미가 퇴색될 수밖에 없어요.
무엇보다 가뜩이나 측면이 약한 팀이 수동적으로 두 줄을 갖추고 박스 근처에 진치고 있으면 측면 공간은 자연스럽게 열리는데 뮌헨이 그 쪽에서 편하게 볼을 잡고 올라오니까 더더욱 상대가 안 되는 겁니다. 측면에서 순간적으로 수적 우위 가져가는 장면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원래 별로 없는데 오늘은 평소보다 더 없었어요.
질 거면 차라리 제대로 작살나는 게 낫다고 얘기한 게 저고 우승은 기대도 안 하고 한계가 뚜렷하다고 얘기한 것도 저이긴 한데 팬으로서 막상 그런 걸 또 보니까 좀 씁쓸하긴 합니다. 개인적으로 바라는 건 이 패배가 많은 걸 느끼게 해주는 패배가 되기를 바랄 뿐이고 다음 시즌엔 다음 경기가 기다려지는 축구를 보고 싶네요. 전 과감하게 쓰임새가 떨어진 선수들을 내치면서 변화를 주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구요.
짱개 폐렴으로 인해 그 동안과 다르게 긴 시즌이었고 긴 호흡이었는데 고생들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