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은 경험이 쌓이면서 본인이나 본인의 팀에 대한 믿음은 점점 더 옅어지는 것 같아요. 이게 어떤 때에는 유연해졌다는 평가를 만들어내기도 하는데 정작 중요한 순간에 이래버리면 유연하다는 평가보다는 스스로나 선수들을 못 믿는다는 평가를 만들어내기도 하는 셈이죠. 삶의 측면에서 보면 이미 답이 나와있는데 확신을 못하고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지는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은데.
필요한 순간엔 어떤 감독보다도 경직된 기용 방식을 선보이는 감독이었는데 (하던 거 그대로 하는 그런) 그게 변수가 되서 떨어지는 걸 몇 번 겪다보니까 (특히 뮌헨 시절이겠죠.) 토너먼트만 오면 자꾸 뭔가를 더 하려고 합니다. 이런 거 보면 압박을 받는 걸 기존보다 더 과하게 느끼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본인이 추구하는 축구 자체가 최대한 상대가 가져갈 수 있는 변수를 없애고 측면을 꽉 잡고 볼을 최대한 높은 지점에서 핵심적으로 소유해야하는 축구인데 때론 그걸 포기하는 선택들이 역으로 상대에게 더 많은 변수와 기회를 주고 있달까요.
아마 시티 팬분들도 동의하실 건데 그냥 원래 가져가던 기용 방식에 하던 거 그대로 했으면 안 떨어졌을 거에요. 승부에 절대란 없고 그대로 했어도 시티가 질 수도 있는 거지만 시티와 리옹은 그 정도의 차이가 있었다는 뜻이구요.
무링요는 흐름을 못 따라간 느낌이라면 펩은 흐름은 따라가는데 순간순간 흔들리는 게 너무 큰 느낌. 이번 경기 후 인터뷰에서도 장점보단 단점을 의식했단 얘기를 하던데 아마 이게 계속 보강을 외치는 이유일 거에요. 스스로 확신할 수 있는 요소를 늘리기 위함이겠죠. 안 좋게 보는 팬들은 선수빨에 관리로만 먹고 사는 감독이라고 보기 마련이고.
펩이 정말 시티에서 계속 하고 싶다면 스스로 이런 부분들을 극복하려고 노력해야할 거에요. 그 동안은 심각한 문제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리옹 전을 보니 (전 1대1 되자마자 농구 보러가서 다 보진 못했습니다.) 심각한 문제라고 느껴지네요.
나이를 먹어가고 경험이 쌓이면 유연해지면서 더 자신의 뜻을 잘 펼치는 감독이 될 거라고 봤는데 가면 갈수록 의식하고 있는 것들도 많아지고 나약해진다는 느낌도 조금 있습니다. 반드시 성공해야한다는 압박감이 이렇게 만든 걸수도 있고 이유야 다양하겠지만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할 시기인 것 같습니다.
어쩌다보니 바르셀로나도 그렇고 펩도 그렇고 한 번 변해야하는 지점에 서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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