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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Writing

잡소리 272

by 다스다스 2021. 9. 16.




1. 남아공 월드컵이 개인적으로 아주 역겨운 대회로 기억 속에 남아있는데 그 이유는 조별 예선부터 시작해서 대회가 끝날 때까지 양상이 다 똑같았음.



한쪽이 작정하고 수비하거나

아님 둘 다 작정하고 수비하고 (방식만 차이가 있을 뿐. 큰 의도는 똑같은 그런) 들어오는 거 막고 역습할 생각만 하거나



왜 이런 양상이 나타났냐를 보려면 이전으로 돌아가서 두 가지 큰 흐름을 봐야하는데


퍼거슨이 바르셀로나의 단점들을 아주 면밀하게 분석해서 들고 나온 선수비-후역습 (전 이 때부터 에투는 바르셀로나에 알맞은 선수가 아니란 걸 개인적으로 확신함. 레이카르트가 왜 클루이베르트-사비올라에서 클루이베르트를 선호했고 파비아누-에투-클로제 얘기가 나올 때 클로제를 제일 선호했는 지 역시 이 때 다 이해했어요. 이후 펩 부임하고 아데바요르 얘기 나올 때부터 이들의 축구를 그 전과는 아예 다른 방식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던 거 같음.)

무링요가 인테르로 가면서 지역 방어와 맨투맨의 혼합으로 볼 흐름을 죽이는 수비적인 방향성의 축구를 두 시즌에 걸쳐서 가다듬으면서 풀백들의 직선적인 전진-한 명의 미드필드의 창의성-포워드들의 마무리로 이어지는 루트를 완성



이런 것들을 약팀들 (바르셀로나 기준으로 보면 샤흐타르, 루빈 카잔 같이 네임밸류가 떨어짐에도 바르셀로나를 고생하게 만든 팀들을 떠올리시면 될 것 같음) 이 조금씩 가져다가 쓰기 시작하는데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니까 이게 월드컵이란 대회에서 조별 예선부터 노골적으로 양상이 고정되기 시작했죠.



이미지 찾을라다가 못 찾았는데 남아공 월드컵 조별 예선 골 분포도가 아주 역겨운 수준으로 박스 안에서만 나왔습니다. 토너먼트로 가도 큰 차이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축구 보면서 제일 재미없었던 시기고 저 흐름이 4년 더 이어졌으면 전 축구 깔끔하게 안 봤을 거에요.



솔직히 이 흐름이 독일에서 다시 공격적인 방향성의 축구가 트렌드를 이끌어나가기 시작하면서 꺾였는데 시메오네가 그 흐름을 다시 되찾아왔을 때 좀 걱정했음. 다 따라할 게 너무 뻔히 보여서.. 뭐 지금 많이 따라하고 있지만 저 때 정도는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랄까.



전력을 떠나서 한 팀이 작정하고 수비적인 방향성의 경기를 펼치면 팬들 입장에선 경기를 봐야할 이유가 사라집니다. 일반적으로 대다수의 팬들이 말하는 재밌는 축구라는 건 서로 앞으로 튀어나가고 달려나가고 상대방의 골대를 공략하려는 축구임. 절대 부정할 수 없어요. 흔히 말하는 창과 방패라는 표현도 방패가 방패를 들고 앞으로 나가야 재밌는 거지. 방패를 들고 뒤에만 있으면 그건 일방적인 경기라고 볼 수밖에 없죠. 유로 2000 네덜란드 대 이탈리아를 보는 거랑 2010 남아공 스위스 대 스페인을 보는 거랑 느껴지는 재미가 차원이 다른 게 이래서죠.



측면이 과거보다 더 중요해진 가장 큰 이유는 이런 수비적인 방향성의 축구의 발전과 효율성의 강조에서 온 겁니다. 수비적인 방향성을 가진 팀들이 몇 번 오지 않는 찬스들 중에서 골을 만드려는 의도와 그 과정에서 최대한 효율적인 움직임만 가져가면서 다시 수비를 하려는 의도를 보일 때 역으로 빠르게 그 공간을 공략하는데 가장 좋은 공간이니까요.



이 뜻은 지금의 흐름에서 순간적으로 상대 박스 근처까지 빠르게 갈 수 없는 팀은 절대로 높은 수준에서 경쟁력을 보일 수 없단 뜻입니다. 혹여나 보여도 한계가 딱 보이겠죠. 조별 예선. 16강. 8강. 리그로 치면 전반기에는 순항해도 후반기에는 간파당하는 팀. 홈, 원정의 차이가 크게 나는 팀 등등 이런 식으로.



재미없는 축구들 보면 이상하게 경기의 대부분을 중앙에서 보내는 경우가 많아요. (늘 말씀드리지만 일반적인 경우입니다. 이렇지 않은 경우도 늘 있어요. 이분화해서 볼 필요 없음) 흔히 말하는 U자형 볼 돌리기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축구는 대부분의 경기에서 드러나는 특징이 있는데 측면에 위치하는 선수들이 그냥 생각도 안 하고 바로 횡패스나 백패스를 해버림), 지나칠 정도로 중앙지향적인 공격 루트, 측면에서 하프 스페이스로 들어가는 과정과 크로스가 섞이기보단 크로스만 그냥 무차별적으로 갈기는 양상 등등... 세티엔의 바르셀로나 첫 경기 보자마자 혹평을 하고 더 볼 것도 없다고 했던 것도 첫 경기부터 핵심이 무엇인지를 아예 모르고 있다는 게 이런 디테일함에서 너무 뻔하게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자기가 그 동안 가져왔던 선수단과 차원이 다른 퀄리티를 가진 선수단을 갖게 되니까 선수빨로 축구하려는 의도밖에 안 보였다는 거죠.



현재 좋은 평가를 받는 선수들은 이런 중앙과 측면을 나누지 않는 높은 범용성을 보이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란 것 역시 간과해선 안 될 요소죠. 감독 역시 마찬가지임. 선수들에게 왜 이렇게 움직여야 하며 왜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있어야 하는지를 이해시키는 감독이 좋은 감독입니다.



더 들어가서 디테일한 면이 있으면 좋은 부분도 있겠지만 하나를 가르쳐주면 열을 아는 선수들에겐 때론 심플한 게 좋은 법도 있는 거고 이런 것들도 다 장단점이 있어요. 뭐든지 세세하고 전술적인 면이 뛰어난 게 정답이 아님.



그래서 이런 면들을 고려하고 선수를 바라볼 때 유형으로 보는 게 현재의 흐름엔 더 알맞다고 말씀드렸던 겁니다. 수비수여도 측면과 중앙을 오가면서 다양한 수비 방식을 스스로 판단해서 할 수 있는 선수가 대세가 되어가고 있고 미드필드는 종횡을 넓게 커버하는 선수가 팀의 엔진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온 더 볼이 더 좋냐 오프 더 볼이 더 좋냐의 차이로 팀의 세부적인 면이 달라지는 것뿐이죠. 포워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간이 좁고 박스 안에는 수비 밀도가 높기 때문에 공간을 찾아들어가든 만들어가든 모든 건 다 측면이나 후방과 연계되고 있죠.



이렇듯 모든 건 다 복합적인 거. 전 그래서 늘 이런 생각을 갖고 축구를 봅니다. 이길 자격이 있는 팀이 이겨야 하고 팬들을 끌어모으는 축구를 하는 팀은 그 시즌이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어가요.



단기적으로 한 경기, 한 경기를 어떻게든 이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응원하는 팀의 과정이 시간이 아깝지 않다면 승패는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생각하고 그것만으로도 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이건 지금 바르셀로나를 가지고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축구 자체에 대한 얘기. 전 지금 바르셀로나는 팬심이 엄청 큰 게 아니었으면 발베르데 1년차 후반기 때부터 안 봤을 거에요.



보통 이렇게 장단기적인 관점을 골고루 갖추고 보다보면 감이 옴. '아. 이번 시즌은 잘 될 것 같다.' '이번 시즌은 개망했다.' 이런 거. 근래엔 그런 느낌이랑 제 축구 관점이 아다리가 잘 맞아서 제가 얘기했던 것처럼 가는 경우가 꽤 나타났던 거뿐입니다.




2. 조금 짧게짧게 감상평을 덧붙여보려고 합니다. 사실 바빠서 제대로 보지도 못해서 자세하게 쓸 상황도 아니긴 합니다.



바르셀로나는 라인의 유동이 일어났을 때 대처가 안 된다는 걸 감안하고 그런 축구를 한 게 제일 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부스케츠를 집중적으로 공략했을 때 일어나는 대표적인 현상인데 부스케츠가 볼의 흐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넓게 움직이기 시작할 때 공략하면 대형이랑 간격이 순식간에 확 깨지는 경우가 발생하는데 그 순간적으로 발생하는 넓어진 간격과 깨진 대형을 공략할 수 있는 팀을 만났을 땐 이길 수가 없습니다. 뮌헨 같은 경우는 감독이 바뀌었어도 앞에 측면 공간이 열려있거나 측면이 아니더라도 뒷공간이 열려있어서 직선으로 쭉 달릴 수 있다고 했을 때 그걸 잘 활용할 수 있는 선수들이 즐비한 팀이고 고려를 안 할 수가 없던 부분이라고 봐요.



결국 현재 딜레마는

부스케츠가 오른쪽으로 원활하게 볼을 내보내줄 수 있는 패스 루트를 최소 2개 이상 뚫어줄 수 있냐 (오른쪽을 봐야하는데 상대가 못 보게 강제하는 것과 오른쪽에 볼을 내줬을 때 볼을 지키거나 다음 과정으로 이어나갈 선수들의 부재) 와

부스케츠가 아닌 다른 선수가 빠르게 전방이나 좌우 측면으로 볼을 내보내고 아래에서 혼자서 수적 우위를 잡아주는 포지셔닝을 해줄 수 있냐 (혼자서 그걸 해줘야 좌우에 위치하는 두 명이 더 높은 지점으로 전진할 수 있으니까. 그럼 자연스럽게 하프 라인 전후 지점에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수적 우위를 점하는 경우가 많아지겠죠.) 가 제일 크겠죠.



분명히 간파된 전술인데 쓰리백을 계속 쓰려하고 고민하고 있는 건 저 두 가지 딜레마를 현재 구성으로 극복을 못하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메시도 없는 와중에 고정적으로 박스 근처나 하프 라인을 넘어서는 지점까지 속도를 내줄 수 있는 자원을 후방에 내리는 건 알아서 자멸하는 거기 때문에 데 용을 최후방에 기용하는 건 쿠만 머릿 속에선 가장 앞선 순위에 있는 선택지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구요. 쿠티뉴나 파티, 데스트 등등이 어떤 면들을 해결해줄 수 있을 지가 앞으로 되게 중요할 것 같네요.



파리 같은 경우는 그냥 포체티노의 시스템에 선수들이 적응을 못하고 있음. 전임 감독이 세부적인 면을 강조하던 시즌과 이런 세부적인 면을 포기하고 심플하게 가던 시즌을 한 번씩 겪었고 그 과정에서 선수들이 몸에 익은 것들이 있을 텐데 갑자기 전혀 다른 방식으로 팀을 이끄는 감독이 와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제일 크다고 봅니다. 컨디션 문제는 어차피 전반기에는 웬만한 빅 클럽들은 다 겪는 문제기 때문에 리듬이 서서히 올라오면 자연스레 해결될 문제기 때문에 지금 문제 삼을 게 아님.



혹여나 저게 해결되면 나아질 거란 생각을 갖고 저걸 가장 큰 문제로 보고 있다면 앞으로 더더욱 힘든 경기들이 많아지겠죠.



맨투맨과 지역 방어는 별 차이 없어보이지만 막상 습관이 되버린 선수들이 다시 배우려고 할 땐 굉장히 큰 문제가 됩니다. 단순히 수비에서만 의식할 부분이 아님. 모든 포지셔닝이 저런 세부적인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거니까요. 심지어 요즘은 이걸 혼합해서 쓰는 감독들이 많아지는 추세인데 이 중 무엇을 더 선호하냐에 따라서 나타나는 차이도 있기 때문에 꽤 부침이 있을 것 같네요.



비엘사나 시메오네를 겪은 선수들이 타 팀으로 갔을 때 엄청 헤매는 것도 똑같은 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바빠서 댓글들은 거의 못 봐서 시간날 때 달아드리겠습니다. 이전 글들에 달린 댓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글도 이전에 써둔 걸 마저 써서 완성시키고 살짝 덧붙인 글이라 뭔가 요약됐다는 느낌이 드실 수 있습니다.



항상 짱개 폐렴 조심하시고 명절 전인데 기분 좋게 맞이할 수 있는 한 주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방문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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