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엘사는 좋은 감독이 맞으면서도 또 후유증이 엄청 쎈 감독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아하는 감독이긴 한데 남미에서 비엘사의 아이들로 등장했을 때부터 충격적이었음에도 커리어에 빅 클럽 경력 한 줄도 추가 못한 건 순전히 그의 성향이라고 볼 수 있음. 아주 원칙적이면서 이미 답이 정해져있기에 고집도 그냥 기가 막힌 수준으로 쎔. 선수 기용하는 것도 자기가 답이 나온 선수들은 무조건 쓰지만 한 번 눈밖에 난 선수들은 진짜 선수가 아예 없어서, 뛸 선수가 없어서 같은 막을 수 없는 변수들이 찾아오지 않는 한 절대로 쓰지 않을 정도. 제자들이 이상할 정도로 어떤 면들에선 유한 모습이 보이는 것도 스승의 이런 모습들이 한계를 드러냈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기용 방식도 좀 많이 닮아있음. 실패를 잘 인정하지 않는 그런 모습들도 닮아있고. 보통 같이 지내고 배우다보면 성향을 닮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거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듯.
펩도 초창기에 기용 방식으로 몇몇 선수들과 트러블이 있었던 걸 보면 이런 비엘사나 사키와 많이 닮은 면들이 있음. 크루이프는 선수 시절 경험을 살려서 선수들의 자존심을 툭툭 건드는 경우도 있었는데 (호마리우 일화도 있고. 레이카르트도 종종 선수들한테 오늘은 니 앞에 이 선수가 나올 것 같은데 어때? 뚫을 수 있겠어? (막을 수 있겠어?) 이런 얘기들을 자주 했다고 알려져 있죠.) 펩은 이런 쪽과는 거리가 먼 철저한 원칙주의자죠.
타타도 그렇고 포체티노도 그렇고 중소 클럽이나 이제 막 빅 클럽으로 들어갈만한 클럽들에선 평판이 올라가다가 빅 클럽 오면 고꾸라지는 것도 비엘사 제자들이 보여주는 공통점이라고 볼 수 있겠죠. 시메오네가 이런 면에선 타협점을 정말 잘 찾은 편이긴 합니다. 거기다 비엘사의 직속 제자들은 어떤 지 모르겠는데 비엘사, 사키, 펩은 공통점이 그 나라의 언어를 쓰라는 거죠. 흘렙이 스페인어 안 배워서 바로 펩이랑 티토 눈밖에 나서 못 뛴 건 아주 유명한 일화. 아비달이 카탈루냐어 배운다했을 때 책까지 선물해줬을 정도로 이런 원칙을 중요시여겼던 사람.
아무래도 표면적으로 비춰지는 모습들 때문에 비엘사를 사키나 크루이프와 비슷한 노선의 감독으로 보시는 분들이 많은데 비엘사의 축구는 토탈 풋볼과 세부적인 면은 조금 다르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엘사는 언제나 선수들에게 체력을 1순위로 강조했고 (물론 네덜란드, 바르셀로나, 밀란, 아약스 등과 같은 유명했던 토탈 풋볼 팀들도 다 체력이 1순위긴 했지만 더 강조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음) 볼이 사람보다 빠르다는 이론을 갖고 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그는 선수들에게 일단 뛰라고 강조했죠. 체력이 좋으면 다른 것들이 딸려도 가르쳐보려고 했던 게 비엘사라고 할 수 있음. 근데 복잡하게 뛰면 애들이 이해를 못하고 지속이 안 되니까 맨투맨 수비 방식을 적극적으로 채용한 거라고 볼 수 있음. (이런 것들도 보면 시메오네와 포체티노의 특성이 살짝씩 보이죠? 둘 다 의외로 포워드들의 장점들을 발견하고 기술을 향상시키는데는 탁월한 편이구요. 타타도 다 죽어가던 노장들 트레이닝으로 살리고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놈들 데려와서 터뜨려서 남미에서 흥한 거임. 그가 무슨 신적인 전술가로 유명해진 게 아님. 바르셀로나에서 욕을 뒤지게 먹은 것도 그런 사람이 뒤집어라 엎어라 하듯이 관리를 막 하니까 선수단이 전체로 거북이가 되버려서가 첫 번째.)
이런 방식을 스타 선수들에게 주입시키면 스타 선수들과 트러블이 일어나니까 (애초에 예외없이 성실하게 많이 뛰는 게 기본 베이스니까. 90년대 뉴웰스에서도 성실하지 못하거나 자신과 성향이 맞지 않는 이름값 있는 선수들은 싹 다 내보냈음) 본인이 1부터 10까지 다 만질 수 있는 팀을 선호하는 거고 이런 압도적인 체력을 바탕으로 해야 경기를 이길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는 감독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아주 독특한 트레이닝론을 가지고 있음.
강도 높은 체력 훈련들은 물론이고 필드 위에서 볼이 없는 상태로 선수들끼리의 호흡을 개선하기 위해 움직이게 한다던가 (동료들을 잘 보거나 오프 더 볼이 좋은 선수들이 비엘사 아래에서 자주 나오는 이유 중 하나) 상황을 재현해서 이때는 이렇게 움직이고 저땐 저렇게 움직이고 포지셔닝 개선 훈련들도 있고 트레이닝 방식이 정말 다양한 편입니다. 펩이 만나는 팀에 따라서 훈련 방식이 늘 다르다고 했었는데 이런 것들이 비엘사의 영향을 받은 것도 일부분 있죠. 사키도 간격 유지와 포지셔닝을 위해서 선수들을 밧줄로 묶거나 손을 못 쓰게 하거나 볼 없이 트레이닝을 하거나 등등 다양한 트레이닝론을 도입했던 선구자였음. 당시에 염탐하러 온 상대 팀 스카우터가 본 걸 그대로 말했더니 정신 나간 소리 하지말라고 욕했다는 썰도 있었죠.
근데 이렇게 축구를 배우고 나면 전혀 다른 방식의 팀으로 가면 적응을 못하거나 습관이 너무 강하게 베어있어서 애를 먹기 마련이죠. 산체스 같은 경우도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 축구를 다시 배우고 있다고 몇 차례나 인터뷰를 했을 정도였죠. 훈련할 때도 움직이는 게 습관이 되어있다보니까 (왜냐면 항상 앞에서부터 많이 뛰면서 압박하고 내가 마킹하고 있는 애가 어디에 있고 동료들이 어디에 있고 그 동료들과 간격이 어느 정도인지 바로 찾아야 하니까) 펩이 가만히 기다렸다가 볼을 받으라고 여러 차례 지적했다고도 알려져 있구요. 하비 마르티네즈도 너무 유명한 일화구요. 비달도 습관적으로 상대 선수들한테 붙어있거나 의식하거나 그래서 후방에서 뛸 땐 포지셔닝이 이상한 경우가 너무 많았죠.
크루이프가 1번이나 2번의 터치 안에 볼을 순환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도 볼을 받기 전후에 미리 상황을 다 파악하고 가만히 서있으라는 건데 비엘사 축구를 배운 선수들은 일단 움직이거나 상대 선수한테 바로 붙어버리는 게 바로 튀어나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되어있죠. 패스 앤 무브가 자연스러운 선수들이 많음. 특히 비엘사 아래에서 측면에서 뛴 선수들은 종으로 움직이는 것도 그렇고 연계라고 볼만한 플레이들을 잘하죠.
종종 칼럼니스트들이 현대 축구를 얘기하면서 비엘사를 많이 언급하거나 칭찬하는 경우들은 보통 비엘사는 애초부터 기술적이며 체력적으로 강인한 선수들을 키워내고 선호하는데 능했다는 걸 얘기하는 겁니다. 실제로 현재 축구 흐름은 그런 선수들을 노골적으로 원하고 있으니까요. 미묘한 차이점이 있다면 현대 축구는 이제 전방위적으로 그런 흐름으로 가고 있다는 것 정도?
워낙 열정적인 사람이라 아직 한 번은 더 도전할 것 같은데 (나이 생각하면 찐막일 듯?) 리즈는 승격이 계속 걸려있던 팀이라 분명히 시간적으로 딸리는 면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보면 이번엔 그 중도를 찾으려고 하지 않을까 싶음. 가능성과 한계를 둘 다 보여줬기에 관심을 가질만한 팀은 있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제일 아쉬운 건 제자들 중 비엘사 느낌나는 미치광이가 한 명도 없다는 거. 그런 감독 하나 나왔으면 어느 정도 뒷배경이 있어서 인기는 진짜 많았을 건데 오히려 스승을 보고 배워서 효율적인 축구를 완성에 가깝게 보여준 시메오네가 나온 건 아이러니함 중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