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거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토탈 풋볼의 토대라고 한다면 공간을 찾으면서 볼을 전진시키면서 대형이 전체적으로 올라가는 거라고 볼 수 있는데 (그러니까 상대 골키퍼를 향해 달려 나가는 그 사소한 움직임이 압박의 시발점이라고 얘기하는 거죠. 대형을 유지하면서 높은 라인을 유지해야 하니깐) 그래서 크루이프가 늘 오프 더 볼로 측면 공간을 만들고 찾아서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었죠. 결국 피보테로 서는 선수는 어떤 관념을 가지고 경기를 풀어나가냐의 문제라고 볼 수 있는데 현대 축구로 들어오면서 바르셀로나의 피보테가 제일 변하면서 중요한 사항으로 작용한 건 빠르고 정확하게 볼을 처리하면서 앞이나 옆으로 내주고 본인은 최대한 센터백이나 풀백과 동일 선상을 유지하면서 대형을 유지시켜주는 거라고 볼 수 있음. 제일 좋은 수비는 먼저 차단하는 움직임을 만들면서 다시 앞으로 볼을 내주면서 대형을 유지하고 점유를 이어나가는 거니깐.
옛날에 펩이나 코쿠, 마르케즈, 에드미우손 등등이 피보테로 나오던 바르셀로나 경기들 보면 하프 라인도 안 넘었는데 틈만나면 롱패스를 엄청나게 갈겨댔음. 당장 08-09 만 해도 마르케즈랑 푸욜 (또는 피케) 자리를 바꿔서 롱패스로 앙리나 에투의 장점들을 적극 활용하기도 했었구요. 이게 시원시원하고 보는 맛도 있죠. 근데 지금은 이렇게 볼이 핵심적으로 나가는 지점이 낮으면 상대를 공략할 수가 없죠. 대다수의 팀들은 나오질 않으니까요. 이미 자리 다 잡고 있는데 측면에서 볼을 자유롭게 잡아봤자 결국 또 강제로 공간을 열어야 함. 못 열면 비기거나 재수 없게 지겠죠. 심지어 옛날 경기들 보면 공간이 이상하게 엄청 나있는 경기들이 있는데 지금은 그런 경기들 보기 힘듬.
예전에 사키가 갈락티코 1기를 어마무시할 정도로 비판했던 거나 (근데 즐라탄 까는 것보단 덜 깠던 것 같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즐라탄이랑 원수였나 싶기도 하고) 크루이프가 4-2-3-1 을 비판했던 것도 분업화가 너무 지나치게 이뤄지니까 특정 선수들에게 이상한 관념을 심어버린다는 거였음. 무링요가 주류 레벨에서 계속 실패했던 것도 이런 분업화가 이상하게 이뤄진 측면이 없을 수가 없죠. (물론 4-2-3-1 도 아주 영리하게 동선 정리를 해서 잘 쓰는 감독들도 있음) 예를 들어 사키는 마케렐레가 특정 임무만 받아서 뛰는 게 이상한 거라고 지적했죠. 언뜻 보면 개성있어보이고 그게 어떻게 보면 마케렐레라는 선수를 정의하는 모습 중 하나가 되긴 했지만 그게 팀적으로서 이뤄지는 무언가가 아니니까 전혀 좋은 게 아니었다는 거죠.
바르셀로나에 온 감독들이 데 용을 피보테로 안 쓰는 건 그가 가진 것들이 너무 다재다능해서 위에서 올려써봐야겠다라는 관점이 매우 강하게 자리잡혀 있겠지만 동시에 빠르게 볼을 순환시키면서 최대한 많은 인원을 집어넣어서 양 측면을 쓴다는 개념에서 피보테가 매우 넓은 종횡 범위를 가져가면서 볼 소유 시간이 매우 긴 축구를 한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음. 전술이라는 게 1명이 움직이면 아무리 못해도 5명이 그 선수의 움직임에 맞춰서 움직여주는 건데 그럴 거면 피보테로 쓸 필요가 없는 거죠. 어차피 얘는 위에 무조건 올라가야하는 선수인데요. 그리고 저렇게 돌린다고 했을 때 데 용이 있는 동안에는 팀이 제대로 돌아가겠죠. 그걸 몰라서 얘기하는 게 아니고 혹여나 이 선수가 빠지는 순간 팀의 기복은 매우 커지겠죠. 아약스랑 네덜란드랑 바르셀로나의 환경은 엄연히 다릅니다. 국대랑 클럽은 또 아예 다른 거고 자꾸 그걸 들이밀면 얘기가 안 되는 거죠. 감독들이 바보여서 데 용을 자꾸 위에다 시험하는 게 아니란 뜻이구요. 그런 거였음 네덜란드에서 데 용을 쓰던 쿠만이 정작 바르셀로나에 와선 왜 그렇게 썼을까요.
부스케츠를 대체한다는 건 그와 비슷한 역할을 소화해낼 수 있는 선수가 온다는 것보다 후방 선수들과 어떠한 상호 작용을 하면서 앞선에 있는 선수들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보조해낼 수 있느냐가 올바른 접근법이라고 봅니다. 부스케츠 역할을 안 해도 된다는 거임. 실제로 라키티치가 부스케츠 대신 피보테로 뛸 때를 생각해보면 라키티치는 부스케츠랑은 아예 다른 역할을 했어요. 결국 구성이 뻔하면 뻔할수록 부스케츠가 나올 수밖에 없는 거고 그 이유 또한 명확하다는 겁니다. 볼이 앞에서 돌아야지. 뒤에서 돌면 안 되니까요.
센터백들 두 명이 볼을 너무 잘 차면 이 둘이 조금 더 올라가면서 피보테가 횡으로 넓게 돌아다니면서 이들의 위치를 바꿔가면서 움직일 수도 있는 거고 풀백들이 들어왔다 나갔다가 자연스러우면 마찬가지로 위치를 바꿔가면서 측면으로 공간을 내면서 전진할 수도 있는 거고 등등. 이런 스위칭을 감독이 가르쳐서 어느 정도는 될 수 있어도 애초에 안 되는 선수들은 몇 번을 때려박아도 안 됩니다. 예를 들어 바르셀로나가 60% 이상의 점유율을 대부분의 경기에서 유지할 수 있다고 했을 때 패스 속도가 빠르고 상대 박스 근처까지는 어느 정도 갈 수 있다고 한다면 페드리와 데 용, 레반도프스키 등이 중심이 되서 많은 패스를 주고 받으면서 결정적인 기회들을 만들어낼 수 있겠죠. 실제로 레반도프스키가 없던 저번 시즌도 전방에서 다양성을 불어넣어준 건 이 둘과 이 둘의 포지셔닝에 맞추거나 또는 자기가 직접 올라가던 부스케츠와 그나마 가비였음.
실책성 플레이가 많아지니까 당연히 더 앞에서 압박을 해야하니까 최대한 미드필드를 많이 둘 수 있는 걸 선호했던 거고 성실하게 뛸 수 있는 포워드들을 칭찬했던 거고 그게 필드 위에서 드러났죠. 볼을 많이 만지는 선수들의 동선이 후방으로 기울어져 있으면 볼이 굴러가는 속도 자체가 죽어서 똑같은 60% 이상의 점유율이어도 똥같은 경기가 나오는 겁니다. 많이 보셨잖아요? 흔히 말하는 U자 형태의 점유율 축구라던가 그런 것들.
이런 거임. 지금 바르셀로나가 데 용에게 원하는 건 조금 더 상대 박스에 가까운 곳에서 펼쳐줄 다재다능함이고 그 안에서 볼을 많이 만지고 중심축 중 한 명이 되면서 주변 선수들을 활용하는 겁니다. 페드리가 하는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는 거죠. 페드리가 우측면에서도 다양한 각을 볼 수 있고 데 용이 이 역할에 적응해내면 바르셀로나는 어마무시한 미드필드 두 명을 가질 수 있는 거임. 직접 이런 바르셀로나의 방식이 변해가는 과정을 겪은 챠비라면 더더욱 욕심이 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부스케츠 쓰려고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임.
부스케츠의 역할을 일부라도 대체할 선수를 찾으려면 지금 라 마시아에서 양 발을 제일 잘 쓰는 미드필드 (누군지는 모름. 꼬맹이들 경기를 안 본지 오래 되서..) 를 테스트 하거나 밖에서 찾아야겠죠. 그게 아니라면 어떤 식으로든 영리한 포지셔닝을 가져가면서 동료들을 보조해줄 수 있는 선수를 찾으면 된다고 봅니다. 대신 그 전에 부스케츠가 없어도 후방에서 전방으로 볼을 빠르게 넘길 수 있는 조건을 여러 개 갖출 필요가 있다는 거구요. 예를 들어 피케-아라우호가 같이 나올 때 피케는 변형 쓰리백 구조에서 가운데나 왼쪽에만 위치하는데 이러면 피케가 볼을 가졌을 때 다양한 선택지를 가져갈 수 있죠. 쿤데가 온다고 하면 똑같이 센터백 두 명이 나왔을 뿐인데 위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상대에게 어떤 의도를 갖고 볼을 굴리는 지를 생각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처럼요. 에릭 가르시아나 크리스텐센을 챠비가 선호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특히 에릭은 수비수로서의 면모가 많이 떨어져서 그렇지. 볼 차는 것만 놓고 보면 생각 이상임.
볼과 사람의 관점 차이에서 오는 차이도 있는 거고. 그건 예전에 몇 번 글로 썼으니 그것들로 대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