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물론 네덜란드 감독이라고 다 아약스나 토탈 풋볼의 관념을 지나치게 심지는 않습니다. 보통 아약스 거치면 변하긴 함) 감독들이나 좁게는 아약스, 바르셀로나 출신 감독들 (코치나 영감을 많이 받은 감독들도 종종 그럴 때가 있음) 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는데
매우 극단적인 전술 변화를 잘 가져가는 것 같은데 또 그게 독이 되기도 하고 잘 풀릴 땐 그러지 않아도 이길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독이 될 때가 있음.
반 할도 전반전-후반전 아예 다른 경기 많았던 편인데 (교체 안 하냐고 욕 먹다가도 본인이 봤을 때 하나도 마음에 안 들면 하프 타임에 교체 카드 다 써버리는 과감한 선택을 하기도 했음) 뮌헨에서도 로베리의 위치를 그렇게 활용해서 퍼거슨의 맨유도 잡고 챔스 결승도 갔던 거고. 90년대 아약스나 바르셀로나에서도 극단적인 전술 변화가 득이 되기도 하고 독이 되기도 했음. 레이카르트도 라르손-이니에스타를 활용해 딩요와 에투의 동선을 더 간결하고 효율적으로 조정해 이득을 많이 보는 감독이었구요.
또 반대로 오늘 텐 하흐처럼 잘 풀리니깐 계속 쓰다가 호되게 혼난 적 역시 많죠. 레이카르트는 세 명의 센터백을 쓰는 쓰리백 쓰다가 한동안 경기력 작살났던 적이 있고 반 할 역시 대패의 역사가 적은 감독은 아님.
반 바스텐도 좋은 감독은 아니었지만 극단적으로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혼난 경우가 있던 감독이었고 쿠만은 반 할의 변태같은 기용 방식을 그대로 배운 감독 중 한 명이기도 하죠. 히딩크처럼 토탈 풋볼을 정석이 아닌 스스로의 관점으로 해석한 실리적인 모습도 취할 줄 아는 네덜란드 감독들보단 그렇지 않고 이상한데서 확 꽂혀서 공격적인 감독들이 많은 게 네덜란드 감독들의 특징임. 그래서 리그 자체도 공격력은 늘 뻥튀기 되어 있음.
이런 게 보통 문제로 이어지는 경우는 크게 나눠보면 두 가진데
- 플랜 A 가 너무 잘 먹힌다.
- 증명이 필요한 경기들에서 선수들의 장점들이 바탕이 돼서 이겼다.
정도겠죠.
텐 하흐로 가보면 크게 조정을 하지 않아도 바르셀로나를 잡아냈으니 자신감을 얻을 근거는 충분했을 테고 리버풀의 약점은 너무 명확함.
피르미누도 모자라서 헨더슨까지 빵꾸나면서 살라-아놀드와 상호 작용하면서 때론 오른쪽 윙어나 풀백의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지속적으로 상대가 중앙-왼쪽을 의식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해주면서 (엘리엇에게 이걸 기대하고 있다고 봅니다.) 동시에 압박에서 늘 +1 을 해주고 프리맨이 생기는 걸 본능적으로 알아채 늘 대응해주는 선수의 부재가 아놀드가 가진 부족한 수비 스킬을 메워준다는 거였는데 그게 아직까지 완전히 극복했다고 보여질만한 경기가 없었으니까요.
거기다 학포와 누네즈의 공존 문제는 꽤 심각했던 문제로 보여졌는데 누네즈가 유사 시에 오른쪽으로 빠져주면서 학포가 왼쪽이나 왼쪽 하프 스페이스에서 열린 공간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들어준 게 컸다고 봅니다. 첫 골도 보면 누네즈가 학포의 열린 공간에 같이 썰어들어갈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센터백들 달고 오른쪽으로 슬금슬금 움직이죠.
맨유의 문제는 저런 리버풀의 공격 방식에 대응하는 세부적인 수비에서 다 보여졌다고 보는데요. 경기 초반부터 계속 보였는데 맨유 선수들의 온 더 볼 수비는 습관도 있을 거고 (무링요-솔샤르 거쳤으니. 무링요가 이런 걸 매우 잘 가르침) 애초에 텐 하흐가 압박을 선호하고 그러다보면 간격과 대형을 유지하는 것 역시 중요시하기 때문에 선수들이 순간적으로 간격과 대형을 부수고 알아서 수비를 해야하는 그 타이밍을 잊어버리는 게 아니라 아예 인지를 못하게 되는 거죠.
온 더 볼 수비라는 게 단순히 모두가 볼을 쳐다보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맨유 선수들은 특히 이게 심하기에 예전에 지적했던 거임) 볼이 흐르는 방향을 단편적으로 생각하고 상대 선수들의 오프 더 볼, 다지선다를 아예 못 읽어낸다는 겁니다.
프레드가 맨유 팬들한테 욕을 많이 먹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얘 수비할 때 잘 보시면 두리번거리고 그 다음에 수비를 해도 상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일 지는 커녕 어디로 패스할 지를 미리 읽어내질 못합니다. 볼이 움직이면 그제서야 그 방향으로 움직이죠. 프레드가 제일 눈에 띄어서 그렇지. 달롯, 바란 등 맨유 선수들이 다 이럽니다. (바란 맨유 합류를 남들보다 높게 안 봤던 이유 중 하나) 달롯도 보면 간격 유지를 해야할 지 본인이 알아서 판단해서 누네즈나 학포를 따라가야할 지 판단 자체를 못하죠.
이러면 박스 안에서 다 같이 막는 게 아니면 자연스레 한 발 늦거나 놓치겠죠. 누네즈 같이 계속 측면에서 스타트하면서 (도망다니기도 하지만 어쨌든) 공간만 보이면 달리거나 슬금슬금 움직이는 선수들이 맨유한테 상대적으로 더 위협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반 다이크가 반대로 잘 보여줬는데 반 다이크는 모든 수비 상황에 관여하는 것보다 본능적으로 볼과 상관 없는 방향으로 가거나 (다른 선수들이 이미 볼 주변에 있으면 모든 선수들을 보면서 다음 상황을 예측하기도 하고) 아니면 특정 선수의 움직임을 미리 파악하고 그 선수의 움직임을 따라가려고 간격을 부숴버리고 같이 뛰고 있거나 하는 장면들이 자주 잡히죠. 애초에 제껴지는 장면이 적은 걸 강조하는 게 아니라 그런 상황을 최소한으로 만들고 대응한다는 겁니다.
리산드로 마르티네즈는 이런 면에서 왼발잡이고 볼을 잘 찬다는 표면적인 면을 포함해 한 발 앞서서 수비를 하거나 갑자기 달려오면서 아니면 달려가면서 수비를 하는 선수니까 (몇 경기 안 봐서 아닐 수도 있음) 현재 맨유에 적합하다고 봤을 가능성이 높겠죠. 그만큼 상대 선수들이 박스로 위협적으로 들어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지연시켜주고 막아줄 수비를 순간적으로 동료들을 생각하지 않고 판단해서 할 수 있으니까.
데 용을 아직도 원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가 전진성이 좋고 미드필드로서 다재다능한 게 제일 크겠지만 이런 영리한 수비를 보조해줄 수 있는 선수가 흔치 않아서라고 봅니다. 보통 센터백들이 저러니까 센터백들만 보지만 풀백이나 미드필드들이 저런 본능에 가까운 (또는 어떻게 표현해야할 지 모를) 수비에 기여할 수 있다는 건 분명히 큰 가치를 갖고 있으니까요. 오늘도 보면 결국 이런 수비 방식을 메워주거나 바꿔줄 선수가 없으니 중앙이 비거나 자연스레 측면이 4대3 구조가 되니까 리버풀이 원하는 양상으로 가버린 거죠.
오만해서 공격적으로 나왔다기보단 최대한 앞에서 막으면서 안토니가 박스 근처까지 전진하면서 볼 소유를 해주든 브루노가 측면에서 킥으로 다지선다를 주면서 상대 수비수들을 헷길리게 하면서 루즈볼을 만들든 하는 게 제일 낫다고 봤을 확률이 높았을 거라고 봅니다. 이렇게 자신감이 붙은 상황에서 라인 최대로 내리고 대응하는 게 마냥 좋은 건 아니니까요.
어떤 선수를 영입해야할 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는 경기가 될 수도 있고 강팀들을 마주할 때 어느 선에서 타협을 가져가야할 지 역시 알 수 있는 경기기에 나아질 수 있다고 인터뷰 했을 거라고 보고. 리버풀을 분석을 안 했다기보단 선수들이 바르셀로나를 잡아냈던 것처럼 자신감이 기반이 되고 어느 정도만 먹히면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을 거라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무링요가 야심차게 마드리드로 넘어와서 연전연승 하다가 5대0 으로 개박살났을 때랑 느낌이 겹쳐보였는데 (무링요도 첼시 1기 시절에 자신의 축구 철학은 바르셀로나에서 배운 게 절반이라 했었음. 발린 것도 보면 온 더 볼 수비로 인해 탈탈 털린 게 비슷함) 텐 하흐는 반 할처럼 EPL 에서도 고집이 심했던 편은 아니라는 얘기를 들으니까 발전할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Football/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