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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Writing

펩??

by 다스다스 2023. 10. 20.

 
 
 
전 늘 펩의 감독직 기한은 에스티아르테한테 달려있다고 생각함. 어딜 가든 이 사람 없으면 펩의 원칙주의자 겸 완벽주의자 성격 그리고 감정 등이 잘 조절될 거라 생각하지 않아서 이 사람이 있냐 없냐는 전 생각 이상으로 중요하다고 봅니다. 여러 차례 말씀드린 부분이고. 물론 없어도 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길게는 못할 거라 생각함.




6관왕 이후 재계약 요구 사항 1순위가 이 사람을 내부자로 만드는 거였는데 아직도 이 사람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은 매우 적다고 생각함. 에스티아르테 얘기가 나오면서 기사가 나온 건 아닌 거 같아서 시티가 감독직 마지막이 되지는 않을 것 같긴 한데 시티를 떠나냐 마냐는 펩 본인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가 제일 중요한 요소가 아닐까 싶네요.
 
 
 
 
바르셀로나 떠날 때도 사실 그 당시엔 펩이 모든 정보들을 다 숨기고 살았고 노화, 탈모로 스트레스가 엄청 심하구나 (4년 동안 펩이 변하지 않은 건 수트 핏뿐임. 늙어가는 속도는 행보관을 초월하는 빛의 속도였음) 를 보여주긴 했지만 그럼에도 4년을 했던 건 이상론에 근접해 가는 팀의 모습 하나 때문이었다고 봅니다. 딱 두 가지 (측면 강화, 세스크 영입으로 전원 미드필드화 완성) 만 잘 해내면 그 그림이 완성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러고 그게 잘 안 되면서 (측면은 붕괴됐고 관리 실패로 선수들 리듬은 무너졌고 세스크는 스탯 사기꾼이 됐음) 많은 사람들은 이대로 끝내기엔 아쉬울 테니 1년은 더 하겠다 했지만 (저도 당시엔 이렇게 봤음) 펩은 그냥 떠난다고 했죠.
 
 
 
 
뮌헨은 바르셀로나랑 정반대의 환경을 가진 본인이 가장 알맞다 생각하고 바르셀로나와의 차이점을 느끼기 가장 좋은 환경이었지만 사실 변수라는 측면을 넓게 봤을 때 뮌헨은 그건 바르셀로나보다 더 안 좋았던 것 같음. 특히 3년 동안 다른 무엇보다도 의료진 문제는 펩에게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거라고 생각하구요. (펩이 옳았다는 뜻이 아님)




물론 감독을 믿어주고 힘을 실어주고 이런 건 정치판이나 다름없는 바르셀로나랑은 비교 자체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바르셀로나는 이런 거 한해서는 역사적으로 그냥 쓰레기임. 팬이지만 반박할 수 없음) 축구 내적인 면들은 확실히 바르셀로나보다 문제가 많았다고 봅니다. 개인적으로 느꼈던 건 애초에 재계약 생각도 없었던 거 같지만 뮌헨에선 그 당시보다 더 좋은 스쿼드를 줬어도 결국엔 정점은 못 찍었을 거 같음. 본인도 그걸 알기에 첫 계약만 했다 생각하구요.
 
 
 
 
시티는 애초에 펩을 어떻게든 앉히겠다고 마음을 먹은 팀이었음. 펩이 예전에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에 라니에리한테 본인이 세리에로는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이유는 환경이었음.




바르셀로나는 바르셀로나만의 관념이 있고 그것을 어린 선수들에게도 어렸을 때부터 심어놓고 그들이 일부 자리 잡아 뛰는 팀이지만 세리에는 그런 철학을 펼치기 마땅한 환경의 팀도 없거니와 시간도 부족할 거라고 했다고 하죠. 시티는 펩한테 그런 어떤 하나의 관념을 추구하는 것을 바란 팀이었으니 삶의 측면에서는 몰라도 축구만 놓고 보면 현재 펩이 갈 수 있는 최고의 팀이란 생각은 변함이 없음. 앞으로도 이런 팀은 펩이 30년을 더 감독직 한다 해도 안 나올 가능성이 높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믿을 수 있는 사람들하고만 일하는 원칙적이고 완벽주의 성격을 맞춰주는 사람들이 다 있는데 이 이상의 팀이 있을까요. 전 없다고 봅니다.




결국 펩의 감독직 요소를 가르는 건 전 크게 두 가지라고 보는데 스쿼드가 다시 한번 이상에 가까워져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냐 (동기 부여의 측면) 와 본인의 이론에 익숙해진 선수단이 계속 이 원칙을 유지하고 버텨나갈 수 있냐겠죠.




스쿼드를 계속 바꿔나가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함. 당연히 원칙적으로 봤을 때 전년도 대비 효용성이 떨어지는 선수는 빠르게 나가야 하지만 반대로 그 효용성을 대체할 또 다른 누군가가 늘 시기적절하게 들어올 수 있냐가 말이 안 되기 때문. 적응기 역시 선수들마다 다르고 선수가 본인의 실력을 완전히 다 발휘하는 요소들이 전술전략에만 있지 않기도 하구요.




결국 어느 정도 자리 잡은 스쿼드는 몇 년 동안 펩의 지도 아래에서 뛰어오고 있고 성과를 이룩하고 있고 정점도 한번 찍었으니 이들에게도 환경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내부적인 변화의 필요성은 때로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죠. 때로는 그게 감독의 성격이나 방향성이 되기도 함.




거기다 아직도 펩의 축구를 지공으로 퉁치는 사람들이 많은데 저번 시즌의 성공은 펩이 그동안 끊임없이 추구해 오던 이상론에 근접한 모습을 살짝 벗어나 이뤄낸 성공이기에 본인에게 더 의미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펩이 항상 중요시해오던 건 사람들이 지공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정반대로 속도임. 사람이 빨라야 속도가 난다고 하지만 펩은 언제나 볼의 속도를 중요시했고 그 속도를 조절하는 핵심 중의 하나가 볼 소유기 때문에 볼 소유를 강조하는 거죠.




저번 시즌 시티의 성공은 그동안 최대한 윗선에서 볼 소유를 하면서 순간적으로 빨라지는 패스 속도나 강제로 공간을 열어 부수는 패턴을 벗어나서 측면 포워드들은 때로는 전통적인 풀백처럼. 풀백은 완전한 센터백이 되고. 센터백들은 미드필드처럼 기능하는 변형을 자유자재로 가져가며 반대로 미드필드들은 센터백이 되기도 하며 수비적인 단단함을 갖추고 선수들의 동선을 싸그리 정리해서 패스 두 번에 박스로 볼을 투입해 공략하는 데 있었죠.




숏 카운터에 갇혀있었던 펩이 선수들의 이해도와 쓰임새, 성장세 등을 완벽하게 이해하면서 그것을 따지고 보면 과정을 바꾸고 더 넣어서 실행에 옮겨 성공한 거라는 거임. 펩의 축구는 지공이라고 표현하기보다는 상대의 미스를 어떤 특정한 방식들로 이끌어 내 그것을 최대한 빠르게 공략한다에 더 가까움. 볼 소유는 그것을 이뤄내는 수단 중 하나고 비중이 높고 중요한 거지. 그게 본질이 아님.




어떻게가 달라지고 빠르게 공략한다가 달라졌으니 저번 시즌 축구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었다는 거고. 이제 그 선수단도 아니고 체력은 무한대가 아니기에 다음 시즌엔 못 쓴다고 애초에 못 박았던 거임.

 
 
 
그리고 펩은 항상 돈이 우선인 사람이 아니었음. 선수 시절 때도 자신은 바르셀로나랑 네덜란드의 토탈 풋볼만 배워왔으니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 (말디니, 바지오 등등. 첫 챔스 우승도 로마에서 펼쳐져서 이 우승을 이탈리아 레전드이자 원클럽맨인 말디니에게 바친다고 하기도 했음) 이 있고 자신과 다른 유형의 선수들이 다수가 자리 잡고 전혀 다른 철학과 관념으로 성공한 감독에게 배우기 위해 세리에로 간 사람.




바르셀로나에서도 단년 계약만 했던 건 오로지 본인과 선수단의 동기 부여를 위해서였고. 돈 때문에 계약이 늦어진 적은 없음.




시티에서 펩이 할 일이 뭐가 남았을까를 생각해 본다면 분명히 그렇게 많지 않은 건 확실하다고 생각해서 저번에 연장 계약을 받아들인 것도 정말 시티에서 일하는 게 행복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던 거임. 정말 오래 봐온 사람으로서 이것도 전 정말 이례적인 일이었다고 생각함. 시티 팬들이 보드진을 수 차례는 칭찬해야 할 일 중 하나.




펩이 떠나면 시티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봐도 여기 보드진들은 바보가 아닌 것 같아서 바르셀로나처럼 선수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짓은 안 할 것 같음. 전 구트만의 3년 차 법칙과 원칙주의자에 익숙한 선수단이 심플하고 자유로운 후임 감독을 만나 해내는 성공은 매우 타당한 접근 방식이라 생각해서 후임 감독은 막말로 숟가락만 얹는 감독이 오는 게 더 나을 거라고 봅니다.




펩만 놓고 보면 비엘사처럼 아무것도 없는 곳 가서 본인의 이론을 가르쳐 한 세대를 길러내 월드컵 가는 것도 펩이라면 충분히 꿈꿀 것 같기도 함. 이게 B팀 감독 펩이 성공 가도를 달리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란 걸 보여준 요소 중 하나기도 했으니까요.




근데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워커 홀릭이고 가족들도 그걸 계속 보는 게 어떨지는 안 봐도 훤해서 요소들이 메리트가 떨어진다면 펩은 언제든지 감독은 그만둘 것 같음. 국대 감독해도 이 사람은 분명히 일에 미쳐 살 거임.




아직 이번 시즌 시티 경기 한 번도 안 봤지만 분명히 펩은 그다음을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함. 바르셀로나 팬으로서 펩이 떠나고 난 뒤 제일 아쉬웠던 건 다음 시즌은 어떨까에서 기대감이란 게 아예 없어졌던 거였음. 주제넘은 소리일 지도 모르겠지만 펩이 있는 동안 그것을 즐긴다면 시티 팬들에겐 정말 즐거운 한 시기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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