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적 요소들은 감독들이 얼마나 잘할 수 있냐를 결정짓는 요소들 중 하나임. 뭐 이번 시즌이야 이제 바르셀로나가 그렇게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다는 걸 보드진들도 느끼고 있고 의장인 라포르타도 결국 유의미한 반등과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메시 이후 바르셀로나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와 자랑스럽게 떠들던 것과 다르게 팬들과 메시의 아름다운 마무리를 결국 만들어 내지 못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동시에 받으면서 물러날 수밖에 없으니 챠비를 압박할 수밖에 없는 거죠.
아무래도 겹쳐 보이고 대표적으로 재밌는 예시가 될 수 있는 건 레이카르트일 수밖에 없는데 라포르타는 본인이 레이카르트를 데려와서 믿은 게 아니라 (원래 벵거나 스콜라리 데려오고 싶어 했음) 자신보다 앞서있던 후보자의 역대급 뻘짓거리들을 잘 받아먹고 그가 나가리 나면서 운이 좋게 함께 했던 크루이프가 추천한 인물이었고 그런 크루이프가 공개적인 석상에 나가서 계속 혼자 쉴드를 쳐줘서 믿고 기다려준 거임.
펩 2년 차부터는 엘 페리오디코에서 칼럼만 2주-1달 간격으로 쓰던 사람이 펩 1년 차까지는 바르셀로나에 죽치고 살면서 틈만 나면 공개 석상에 나와서 레이카르트, 펩을 쉴드 쳐줬던 게 크루이프임. 펩도 누만시아 전 끝나고 진짜 살벌했는데 크루이프가 갑자기 등판해 줬고 그 후 라싱 전까지 비기니 무링요 오는 게 맞았잖아!!! 라는 살벌한 지역 언론들, 팬들 반응에 유일하게 맞서던 것도 크루이프 단 한 명이었음.
2000년대 초중반 바르셀로나 관련 영상들이나 다큐멘터리 찾아보시면 아시겠지만 보이소스 노이스가 경기 끝나고 선수들 차나 라포르타를 비롯한 보드진들 차 나오는 거 기다렸다가 빠따로 창문 툭툭치고 그랬음.
너네 오늘 경기가 얼마나 쓰레기 같았는지 알아? 우리가 이딴 걸 돈 주고 보면서 기다려야 돼? 하면서 겁주고 그랬죠. 훈련장에도 죽치고 있다가 못하는 애들 오면 걔네한테 가서 너 때문에 졌잖아 하면서 욕 박던 게 그 시절 팬들임.
라포르타는 지금처럼 뒤에 숨어있고 도망가려 했지만 걸리면 그때마다 기다려 달라했죠. 피구 다큐에도 나오지만 00년대 초중반까지 바르셀로나 팬들은 보이소스 노이스의 비중이 적지 않았고 모든 팬들이 늘 화나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격한 팬들이었음. 피구가 탄 마드리드 원정 버스도 오토바이 타고 쫓아다니던 도라이들이었죠.
03-04 시즌에 전반기 말라가 원정 가서 5대1로 썰렸을 때는 8윈가 9윈가 그랬고 전반기 엘클 졌을 때는 정확하게 기억하는데 11위였음. 마드리드는 1위였죠. 암흑기였음을 감안해도 두 팀의 차이는 10점 이상의 어마어마한 차이였고 받아들이기 힘든 거였음.
레이카르트도 계속 결과는 안 나오는데 언론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로테르담을 말아먹은 감독이 바르셀로나도 말아먹으려고 환장을 했다면서 죽이려고 들고 강성 팬들은 빠따 들고 경기 후에 욕하려고 기다리고 있고 훈련장 가는 길, 경기장에선 욕, 야유만 하고 있으니 뭐라도 하려고 1승이라도 더 하려고 별에별 전술전략을 다 썼죠.
근데도 고집스럽게 클루이베르트는 계속 쓰고 당시에는 분명히 더 나았던 사비올라를 살려 쓸 생각을 안 하고 있었음. 딩요가 부상당하니 이게 더 심해졌었죠. 전형적인 짤리기 직전의 감독의 모습을 하고 있었음.
근데 크루이프가 계속 실력 있는 감독이다. 믿어줘야 한다. 그러니 크루이프와 한 배를 탄 라포르타는 그런 그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다비즈를 임대로 데려오고 (정상적인 보드진이었음 당시 다비즈를 노렸을 리 없음) 레이카르트는 다비즈의 존재가 반드시 필요했던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계속 자신의 관점에서 옳다고 느껴지던 클루이베르트 기용을 포기하기 시작하고 호나우딩요의 동선 정리를 비롯 쓰리톱을 재정비하고 3 미드필드의 동선 정리를 이끌어 내며 반등에 성공했죠.
레이카르트는 실력 있는 감독이 맞았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주변 인물들이 그렇게 같이 얻어맞아 주지 않았다면 레이카르트는 바르셀로나에서 절대 성공 못했을 거라는 거임.
챠비는 제가 역주행을 했든 라이브로 봤든 본 것들에 한해서 누구보다도 바르셀로나 감독으로서 이런 보호를 많이 받고 무지성 믿음이 깔린 감독임. 어려울 때 팀을 구하기 위해 자신이 진행하던 길을 포기하고 돈을 포기하고 와준 레전드였고 라포르타가 야심차게 내민 필살기였고. 펩 이후 팀의 모든 것을 겪어본 또 다른 인물이었고. 그의 전성기를 본 팬들이 바닥을 깔아줬으니.
계속 팀을 만들고 있다는 변명을 하는 것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수 있겠지만 적정선의 비판만 하면서 자신을 압박하지 말고 팀을 바라봐달라라는 그의 요구겠죠.
챠비는 보드진뿐만 아니라 언론들, 팬들에게도 과한 믿음을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본인이 필드 위에서 그 믿음을 줄만한 모습을 못 보여주고 있는 거뿐임. 물론 챠비가 그렇게 본인이 요청하는 것처럼. 레이카르트처럼 반드시 필요하다고 얘기한 선수들을 사준다고 갑자기 확 변해서 잘할 수 있냐 역시 의문 부호가 붙기에 현 시점까지 온 거임. 물론 사줘 봐야 알겠죠. 까보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건 맞음.
이럴 때 크루이프 정도 되는 인물이 챠비는 옳은 길을 가고 있고 실력이 있다. 라고 한다면? 지로나한테 졌는데 잘하고 있다. 라고 한다면? 저번 시즌 조별 예선 떨어졌을 때랑 맨유한테 떨어졌을 때 조급함이 망쳤으니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고 얘기한다면?
누군가는 믿겠죠. 챠비한테도 그게 힘이 될 수도 있고. 이 정도의 인물이 이렇게 고집스럽게 얘기하는 건 이유가 있을 테니까. 언론들도 잠깐은 비판을 멈출 수도 있는 거고. 저같은 현재 상황을 비판하는 사람들도 뭔가 생각해 볼 수 있는 거고. 이런 것들이 바로 환경적 요소의 일부라는 거임.
근데 그런 인물도 없고 진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게 명백하니 계속 스스로 정신 차려야 한다고 얘기하는 거고 이건 단순히 제 관점에 입각한 비판이 아님. 지금의 환경적 요소들은 챠비가 스스로 만든 거고 그것을 극복하는 것도 결국 챠비가 알아서 해내야 한다는 거죠.
텐 하흐도 진정한 위기가 오니깐 그렇게 안 쓰던 바란을 결국 썼는데 고집스럽게 자신이 옳다고 믿던 기용 방식과 원칙을 일부 꺾었다고 볼 수도 있을 만큼의 선택이었다 생각함. 한편으론 웃긴 거죠. 진짜 위기가 오니 이걸 꺾어? 가 되니까.
얘도 아약스에서 잘할 때 좋은 감독이라고 했던 것과 그가 바르셀로나에 온다면 과연 잘할 것이냐에 대답한 적이 있는데 좋은 감독이지만 바르셀로나에 오면 크루이프 같은 사람이 없으면 못할 것이다라고 했었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가서 결국 아무도 받쳐주지 않고 보호를 안 해주니 한번 꼬이기 시작하니 그걸 풀 줄도 모르고 못하고 있죠.
스스로 어떤 선을 두고 환경적인 요소들을 유연하게 대응하고 차단하고 그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정해둔 모든 것들을 독단적으로 본인의 관점에서 진행하니 어쩔 수 없는 거임. 아약스와 다르게 맨유, 바르셀로나 같은 클럽들은 환경 자체가 의외성이 넘치고 유동적이고 때론 매우 이질적이니까. (바르셀로나는 지역적 특성이 더해져서 유독 더 심함)
퍼거슨이 나서야 한다고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퍼거슨이 나서지 않는 건 본인 자체가 이런 요소들을 위험할 때마다 실력과 트로피로 극복한 케이스니 다른 감독들도 오래 살아남으려면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보기 때문이겠죠. 누가 관여해서 연명시켜 줘도 결국 스스로 극복 못하면 짤리니까.
텐 하흐가 실력이 없는 감독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만큼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고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니 현재의 상황까지 왔다는 걸 얘기하고 싶은 거임. 단순히 전술전략이 부족해서 이 정도까지 오지 않는다는 거임.
왜 유독 바르셀로나, 아약스, 네덜란드 감독들만 이런 공통적인 모습을 보일까가 중요한데 이들이 수많은 곳에서 감독을 배우고 하는 사람들보다 더 심하고 철저한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선수들과 때론 지나칠 정도로 거리를 두고 때론 엄한 모습들을 유지하고 그것을 정답처럼 배우기 때문임.
그것을 따르는 선수들이 주는 신뢰와 힘, 주변 사람들의 믿음이 바탕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이게 어긋나는 순간 이들은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함. 무링요도 바르셀로나와 반 할의 코칭 철학, 이론 등을 통역관, 코치 신분으로 거의 5년을 배운 사람이라 과정이나 방식만 다르지. 이거랑 진짜 놀라울 정도로 똑같은 감독 중 한 명.
어쩌면 맨유는 반 할 이후 무링요를 선임한 게 여기서 유사성을 봤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생각한 적이 있는데 그럼에도 너무 차이점이 심했다 생각함. 이건 여기서 할 얘긴 아니니 넘기고.
전술전략이 아무리 좋은 감독이어도 이런 환경적인 요소들을 극복하지 못하면 성공 못함.
전술전략을 자주 짚는 사람이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늘 얘기하는 건 그들이 실행하는 모든 것들이 그렇게 이론적인 것들에만 딱딱 입각해서 이뤄지지 않는 걸 알기 때문임. 반대로 이런 환경이 잘 맞아떨어져서 능력 이상의 모습을 보여 성공하는 감독들도 있죠. 텐 하흐도 어쩌면 그중 한 명이었을 수도 있고.
전 맨유의 문제를 외적인 걸로 퉁친 건 선수들 일부랑 텐 하흐가 갈라섰으니 뭘 얘기해도 필드 위에 있는 전원이나 더 나아가 스쿼드 전체가 성실하게 따라줄 가능성이 없다고 보기 때문임. 이건 시대가 변해도 바뀌지 않음.
그래서 보드진들이 축구를 잘 아냐 모르냐가 그만큼 중요한 거고 필요할 때 나댈 줄도 알아야 한다는 거임. 바르셀로나는 축구도 모르는 애들이 늘 자리를 하나씩 먹고 있지만 감독 선임은 이렇게 하는 건 성공을 해온 케이스들이 딱 정해져 있으니 몰라도 이렇게 해야 성공한다 정도는 아는 거죠. 그리고 자기들 업적 쌓고 작품 만드려면 이런 선임이 최고임.
또 재밌는 건 타타는 이들과 반대로 바르셀로나에 왔을 때 이런 요소들을 최대한 내주지 않고 본인의 능력을 보여주려 했음.
선수를 사준다 해도 싫다 했고. 그 외에도 뭔가 요구 사항이 있다면 다 맞춰주겠다 했지만 싫다 했죠. 만약에 자신이 누군가를 데려오든 무언가를 들여오든 뭔가를 했을 때 그게 표적이 되면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알았기 때문. 이방인이라는 자신의 존재를 누구보다도 크게 인식한 케이스였죠.
실제로 부임하자마자 화제가 된 맨투맨 시스템을 시즌 중반에 뒤엎고 전체적인 훈련 과정을 바꾸자마자 언론들이 바로 그걸 표적으로 삼아서 공격했고 떨어진 선수들을 지적하고 자신을 비롯한 코칭스태프들의 무능함을 얘기하니 자기 보호만 하려다가 자멸했죠.
다른 면을 봐도 에인세를 되살린 뉴웰스에서의 뛰어난 관리도 의미가 없을 정도로 푸욜은 회복은 커녕 더 심하게 망가져 은퇴를 했고 선수들은 경기를 치르면 치를수록 리듬은 떨어져. 부상은 당해. 안 당해도 위험성은 올라가. 진짜 심했음.
결과론적으로 보면 텐 하흐는 적정선에서 본인 요구를 했어야 했고. 챠비는 자신의 문제점을 빨리 인식하고 정신 차렸어야 했겠죠. 한쪽은 너무 빠르게 자신의 입맛에 맞춰 환경적 요소들로 인해 생기는 변수들을 일부분 죽이고 자신의 팀을 만드려다 얻어맞은 거고. 또 다른 한쪽은 그 이상의 믿음으로 밀어줬는데 애초에 접근 방식부터 틀려먹은 거임.
맨유 보드진들은 제가 느끼기엔 반 할 때부터 자신들이 덜 일해도 또는 일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감독을 찾고 싶었다고 생각함. 알아서 얻어맞아주고 자기가 알아서 하고 위기일 땐 스스로 극복하고 해결하고. 퍼거슨은 그 요구를 다 이행하고 맨유를 늘 우승 후보로 다시 올리고 유지시킨 인물이었으니. 그런 사람을 또 찾진 못해도 근접한 사람을 찾고 싶어 했다가 제일 그럴듯해 보임.
반대로 바르셀로나는 공은 자신들한테 주면서 함께 할 감독을 찾는 거구요. 이러나저러나 둘 다 클났음. 맨유 보고 웃을 때가 아님.
Football/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