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어떻게 생각하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임. 포지션으로 인한 선입견과 평가가 자리 잡혀 있을 가능성이 높기에 그것을 어느 정도 파헤쳐 보는 글이지. 제가 로드리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글임을 미리 밝힙니다. 전 어차피 versus, 줄 세우기 선수 평가는 안 함.
일단 시티에서의 로드리는 일반적인 피보테로 분류하기엔 오류가 있음. 자꾸 비교 대상으로 언급되는 부스케츠와는 전혀 다른 팀의 플레이 메이커 겸 보조자로서 기능하고 있고. (전 이런 식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런 표현들을 쓰는 거뿐. 어쨌든 부스케츠는 발베르데 2년 차부터 플레이 메이커로 분류할 수 있지. 그전까진 절대 아님)
시티가 아닌 다른 곳에서의 평가나 주류에서의 평가가 상대적으로 박한 것 같다라는 인상은 피보테여서 오는 게 아니라 펩의 팀에서 플레이 메이커로서 받는 보조가 로드리 본인이 보여준 활약상보다 더 크다고 보는 게 저평가가 자리 잡는 가장 큰 원인일 확률이 높겠죠.
쉽게 말하면 알맹이보다 바탕이 더 커서 그런 활약이 왔다라고 보는 건데 (온실 속의 화초처럼. 너 딴 데 가선 그렇게 못하잖아. 로드리의 알맹이가 엄청 커서 바탕을 깔아줬다기보단 일단 바탕이 엄청 커서 로드리의 알맹이가 빛나는 그런 순서) 오히려 이런 면에서 보면 유로 08 이전까지 이상하게 저평가받던 챠비와 궤가 비슷하다고 보는 게 옳겠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가끔씩 로드리와 부스케츠를 비교하는 글들을 커뮤니티 반응들 살피다가 몇 번 본 적이 있는데 제 기준에선 이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논쟁임. 둘은 포지션만 같은 거지. 필드 위에서 수행하는 역할, 유형을 살펴봤을 때 아예 다른 선수. 뭐 같은 국적이고 이제 로드리가 부스케츠의 자리를 이어받아 확고한 주전이니 계속 비교하겠지만 진짜 허접한 비교라고 단언할 수 있음.
잠깐 언급할 게 있다면 전 저번 시즌 중반부터의 시티랑 그전까지의 시티는 아예 다른 팀이라고 보는데 가장 큰 이유는 필드를 활용하는 방식이 많이 바뀌었음.
그 전에는 너 내가 어떻게든 가둬놓고 90분 내내 패줄게. 가 가장 큰 목표였죠. 그래서 양 측면 싸움과 제압에 목숨을 걸었음. 여기서 지면 바로 지는 거니까.
근데 저번 시즌 중반부터는 야 쳐봐. 근데 너 제대로 못 때리면 나한테 배로 맞는다. 로 바뀌었죠. 그래서 양 방향 패싱과 좌우에서 직선 루트만 가능하면 뭐가 됐든 상관없음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변하니 필드는 더 넓게 쓰게 됐고 선수들 개개인에 대한 요구치, 활동 범위, 기량, 이해도, 판단력 등은 다른 방향으로 높아졌는데 그러면서 생긴 장점 중 하나는 늘 중요한 순간이나 토너먼트 같이 시간 제한이 있는 대회에서 한 끗이 부족하고 융통성이 없어서 넘어지던 모습은 줄어들었다는 거임. 애초에 시티한테 승리가 아니라 무승부를 기본 베이스로 깔고 수동적이고 수비적인 방향성을 지나치게 들이미는 팀들은 여전히 많으니 그 케이스들은 제외하구요.
결국 볼을 중요시하는 그 특성은 조금 내려놓고 선수 개개인의 기지와 필요하면 진흙탕 축구도 하면서 오는 이점이 트레블 이룩에 꽤 컸고 이번 시즌 아슬아슬한 행보를 이어가는 데도 컸다는 거임.
이건 선수들 기량이 몇몇은 유의미하게 변한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고 반대로 몇몇은 약점이 뚜렷하게 보이는 이유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죠.
당연히 이건 팀적으로도 장단점이 있음. 이렇게 하는 건 그만큼 변수 차단이나 대응이 안 되고 체력 소모가 상대적으로 더 심해서 컴팩트한 스쿼드로 한 시즌을 굴린다 했을 때 톱니 바퀴가 하나 어긋나면 그대로 골로 가는데 반대로 그동안 해오던 건 장기 레이스에선 상대적으로 더 유리하고 일반적인 변수 차단이나 대응에도 더 용이하고 선수들 기용하는 것도 훨씬 더 편하다는 장점이 있음. 진짜 엄청 못하는 선수 아닌 이상 티가 안 나는데 저번 시즌 중반부터는 못하는 애들은 그냥 눈에 확 들어오죠.
이건 자신이 이끌던 바르셀로나처럼 할 수 있는 곳은 없고. 데 브라이너와 함께 다양하게 기능해 줄 측면 포워드는 물론이고 메시나 레반도프스키 같은 포워드 역시 당분간은 찾을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렸으니 계속된 실패와 좌절 끝에 선수단을 조금씩 변화하고 가르치고 이해시키면서 펩이 유연성을 갖추고 지금에 온 거라고 보거든요.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칸셀로와 그릴리쉬가 생각하던 모습에 근접한 모습을 보이면서 계속 향상됐다면 펩은 여전히 이상주의자였을 거라고 봅니다.
아무튼. 다시 로드리 얘기로 넘어오면 로드리는 평상시에는 센터백들과 자신과 동일 선상에 서는 변형 피보테나 더블 피보테의 일원과 간격과 대형을 유지하면서 피보테로서 기능하지만 본인이 상황을 읽고 필요한 순간에는 라인을 깨고, 간격을 깨고, 대형을 바꾸면서 동료들의 보조를 역으로 받아서 플레이 메이킹을 하는 미드필드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일반적인 피보테는 이런 식으로 플레이 메이킹을 하지 않죠. 본인만 움직이든. 선수들만 움직이든. 아니면 멈춰 서서 하든 하는데 로드리는 일단 그 무엇보다도 상황 판단이 우선이라는 거임.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거죠.
물론 로드리가 엄청난 성장을 한 건 맞고. 저번 시즌 중반에 그런 급성장이 오기 전까지는 시티에선 오래 못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도 맞고. 이젠 시티에서 대체 불가하고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이 된 것 역시 맞지만 현재 로드리가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오로지 로드리한테서만 오는 게 아니라 마찬가지로 세계 최고 수준의 보조자들이 바탕을 깔아줘서 오는 게 어쩌면 엄청 크지 않을까란 평가 역시 타당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는 거임.
로드리가 이런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상호 작용이 원활한 시티의 센터백들 그리고 전방에 있지만 사실상 후방 플레이어처럼 볼 소유를 가져가주는 베르나르도 실바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사실 역시 반박을 할 수가 없기 때문. 물론 이걸 그만큼 잘 활용하고 경기력과 결과로 바꿔내는 로드리를 부정할 수 없음. 시티 팬들의 불만은 여기서 오겠죠. 결과물이 있는데 왜 저평가 하냐.
몇 가지 장면들로 살펴보죠.
이렇게 로드리의 플레이 기반은 로드리를 포함한 시티 선수들의 이해도가 꽤 높은 수준으로 바탕이 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되게 복잡한 전술전략 아래에서 그것을 혼자만의 판단으로 본인의 활약상을 이끌어 낸다는 고평가의 요소가 될 수 있겠죠. 실제로 로드리가 빠지면 시티 팬들은 그 빈자리를 엄청 크게 느낄 테고. 경기 양상은 물론 가끔씩 경기 결과도 소폭 변하는데요. 반대로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이건 시티에서만 가능하다는 결론 역시 가능하다는 거죠.
개인적으로 로드리는 사이즈에 비해 동작이 빠르고 그게 어느 정도 드리블이 되는 기반이 된다고 보기에 경험이 쌓이면서 이런 활약을 앞으로도 계속 보여준다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기에 알아서 평가는 정상적으로 자리 잡을 거라고 봅니다.
스페인에서의 활약 역시 장기적으로 선수 평가의 표본 중 하나로서 자리 잡겠죠. 챠비를 비롯해 이니에스타, 부스케츠 등이 결국 고평가가 자리 잡은 건 그게 클럽에서의 활약으로 그치지 않았다는 것도 있기에 로드리도 비슷하게 평가받을 수밖에 없을 겁니다.
결론 - 피보테라서 저평가 받은 게 아니라 펩의 팀에서의 플레이 메이커로서 오로지 스스로의 능력으로 팀을 이끌어 나간다는 인상이 강하기보단 동료들과의 상호 작용, 펩이 깔아둔 전술전략의 바탕 등 복합적인 영향력이 현재의 활약을 이끌어 내고 있다고 보는 시선이 꽤 있을 거라고 본다.
결국 이것을 뒤집는 건 꾸준한 활약과 다른 환경에서 비슷한 수준의 활약상이 필요한데 후자는 몰라도 (데 라 푸엔테 같은 쓰레기가 감독이라서 확언 못함) 전자는 앞으로 가능할 거라고 봐서 크게 걱정할 일 없지 않을까 싶다.
투표 내역까진 안 뒤져봤는데 직접 상대해본 애들이나 동료들, 펩의 축구를 해석하는 방향이 비슷한 쪽은 로드리의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있을 거라고 본다. 어쩌면 엄청 높게 보고 있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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