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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Writing

옛날 펩은

by 다스다스 2024. 2. 20.

 
 
 

(좌 - 부임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우 - 바르셀로나에서의 마지막 시즌. 노화 속도가 부사관들보다 빠름. 시티에서 행복한 걸 알 수 있는 또 다른 이유가 이제 그렇게 극단적으로, 빠른 속도로 늙어가는 거 같진 않음. 뮌헨 때까진 사람이 늘 고통스러워하고 늙어가는 게 보였는데 지금은 그건 아님)

 


완벽주의자 겸 원칙주의자인데 그걸 단 하나도 용납을 못하는 사람 맞았음. 자신의 원칙이 어떤 한 변수로 어긋나는 것도 고통스러워하던 사람이었고. 그 변수들 중에서 막을 수 없는 변수들도 있을 건데 그걸 어떻게든 막고자 할 정도로 지독한 사람이었음.




선수들도 따라오지 못하거나 자신과 안 맞다는 확신이 들면 과감하게 그 선수랑은 말 한마디도 안 섞고 배제했죠.




그게 한 경기일 수도 있고. 뛰기도 전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시즌 도중에, 경기 도중에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진짜 사소한 대화 한두 번일 수도 있고.




예로 흘렙은 언어를 배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력과 상관 없이 그냥 시즌 중반에 플랜에서 배제했음. 잘 뛰던 선수들이 어떠한 이유들로 떠나는 게 아닌 이상 나간 선수들은 다 펩이 어느 순간부터 자기랑 말을 안 했다 했음. 즐라탄, 뚜레, 보얀 등이 대표적인 케이스일 뿐.




그리고 자신의 원칙 아래에서 선수들이 늘 동기 부여를 유지하고 긴장감을 갖고 있어야 했기에 선수들과도 거리를 엄청 뒀던 편.




가끔씩 따로 얘기를 해야 하는 경우에만 식사를 같이 하거나 개인적인 자리를 갖거나 했지. 그게 아니면 자신은 늘 훈련 시간 외에는 사무실에서 일만 하고 상대 팀 경기들 보거나 자기 선수들 더 향상시킬 수 있는 방법론 찾고 그랬죠.




펩이 유능한 스태프들을 둔 것도 맞지만 그거 이전에 본인이 상상 이상으로 미친 수준의 워커홀릭이라 본인이 믿을만한 사람이라 해도 본인 스스로도 알 수 있는 건 다 알려고 하는 사람이었고 제일 빨리 와서 제일 늦게 가는 사람이었음.


 

조나단 윌슨이란 칼럼니스트가 그 당시 펩을 보면서 그렇게 많이 우승했는데도 잠깐 좋아하지. 좀 지나있으면 항상 무언가를 걱정하고 다음을 우려하는 사람 같았다고 했죠.




제가 느꼈을 때도 08-09 가 유일하게 이런 모습이 안 보였던 시즌이었던 거 같음. 10-11 때도 챔스 우승한 사람이 맞나 싶었던 기억이 있고. 11-12 때는 본인이 생각한 그림이 시즌 초반부터 무너지니까 꼭 어디 아픈 사람이나 죄지은 사람이 하고 있는 표정을 진짜 많이 봤던 거 같음.




그래서 오히려 1년 더 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진작에 그만 둘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그 당시엔 좀 충격이었죠.



 
제가 저번 시즌인가 시티에서의 펩을 보면서 진짜 행복하니까 그렇게 재계약을 여러 번 하는 거다라고 했었던 적이 있는데 이젠 저 정도로 펩 오래 따라다닌 사람이 없을 건데 한 15년 넘게 따라다니면서 느낀 거지만 바르셀로나나 뮌헨에선 본 적도 없는 모습들을 많이 보긴 했음.




인터뷰 하는 것도 이슈는 기를 쓰고 피해 가고. 경기 내적으로도 힌트 하나를 안 주려고 맨날 우린 공격한다. 로 퉁쳐서 말하던 양반이 때론 기자들의 질문에 성실하게 답변해주기도 하고. 시티의 이슈들에 관해선 반대로 감정적으로 대응하기도 하고.




다른 팀들 얘기도 그냥 아예 시작조차 안 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젠 해도 될 것 같은 건 그냥 하고. 웃음도 많아졌죠. 펩이 진짜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웃질 않던 사람이었음.
 
 
 

펩의 10계명이야 보드진과 선을 긋기 위한 조건들도 있었고 처음에 보드진이 에스티아르테를 내부자로 들이는 건 들어주지 않아서 자신을 증명하고 이걸 다음 계약에 써먹기 위해서 확실하게 보장받으려는 것들도 있었음.




그러고 6관왕 달성하고 재계약할 때도 1년 연장만 할 것이며 에스티아르테를 자신의 개인 비서가 아닌 무조건 내부자로 들여달라고 조건을 걸었죠. 안 들어주면 재계약 안 한다했었음.




펩은 자신을 채찍질하고 동기 부여 하기 위해서 라포르타나 로셀이 제시한 5~6년짜리 장기 계약을 그냥 듣지도 않고 한 큐에 짤라버렸던 사람. 당시 마드리드 감독이자 전 바르셀로나 코치였던 무링요도 농담으로 나라면 10년을 줬을 거다 했지만 돈이나 기간은 당시 펩에게 고려 사항이 아니었음. 지금도 이건 마찬가지라 생각하구요.

 


선수단에게 내걸었던 원칙 및 규율들은 살벌했죠. 벌금 같은 것들은 당연한 거니 빼면 몇 가지 기억나는 것들이 있는데요.
 
 
 
 
제일 살벌했던 게 시즌 중에 밤에 전화 걸었는데 전화를 안 받거나 집에 없을 시 (선수 본인에게 확인이 안 되면 가족들한테 걸기도 했단 썰이 있었음) 바로 다음 경기 선발 제외.




그러고 훈련 도중에 딴 짓거리 못하게 식사도 무조건 최소 두 번은 다 같이 해야 했고 중간에 어디 나가는 건 물론이고 핸드폰 사용도 펩의 승인이나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불가능.
 
 
 
 
필요한 경우에 따라 홈 경기임에도 합숙을 실시해서 선수들의 긴장감 유지와 관리에 엄청 힘을 썼음. 모든 홈 경기에서 그런 건 아니고. 엘클, 카탈루냐 더비 등이나 챔스 토너먼트 홈 경기나 코파 델 레이 4강, 결승 같은 것들.




이건 사실 60년대의 엘레니오 에레라가 원조라고 봐야 하는데 그런 에레라의 관리법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미헬스가 원정 경기가 아닌 홈 경기에서 활용하면서 크루이프나 반 할 같은 감독들의 필살 관리 비법 중 하나로 발전했다고 알려져 있음.




반 할은 여기서 일부러 사이가 안 좋거나 말이 안 통하거나 성격이 정반대인 선수들은 2인 1실로 묶어서 넣고 지내게 했던 편.
 
 
 
 
이건 펩이 레이카르트의 바르셀로나가 무너진 이유 중 하나로 봤고. 선수들이 경기 전날에 컨디션 관리를 개판으로 하고 여자들이랑 놀러 다니고 하는 게 때론 부상의 이유가 되기도 했기에 아예 사전에 통제하려는 측면도 강했었음. 지금으로 치면 그릴리쉬나 워커, 포든 같은 애들 사전에 통제하는 느낌이라고 보시면 될 듯.
 
 
 
 
그리고 내부 출입 기자를 펩이 싹 다 없애버렸고 가족들도 못 들어오게 하고. 보드진도 경기 전이든 경기 후든 상관 없이 라커룸은 무조건 출입 금지.




그전까지는 보드진이 지역 언론들과 사이가 나빠지는 것을 원치 않아 부분적으로 허용해 줬는데 펩이 훈련장을 바꾸고 훈련 노하우 유출은 물론이고. 원칙과 규율들을 세우면서 기자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껀수를 주지 않기 위해 사전에 차단했죠.
 
 
 
 
그리고 본인이 제어가 가능한 인원들에 한해서 기자들에게 소스 주는 것은 물론이고 인터뷰도 펩이 승인하거나 꼭 해야 하는 것들 아니면 금지시켰음.




이때 장문의 개인 인터뷰들도 보면 다 스폰서 통한 인터뷰, 지역 언론들과의 주기적인 인터뷰, 어떤 수상 이후 인터뷰 등 이런 형식적인 인터뷰들 빼면 선수들 인터뷰가 그렇게 많지 않음. 펩은 무링요 오고 나선 언론들을 더 피해 다니기 시작했고.




즐라탄이랑 뚜레가 슬슬 눈밖에 나기 시작한 가장 큰 이유도 다른 무엇보다 이것. 라이올라랑 셀룩을 통해서 내부의 문제들을 유출시켜서 기사화시키고 기자회견장에서 펩을 곤란하게 만들었죠.
 
 
 
 
잡음을 방지하기 위해 몇 번을 질문해도 '그는 좋은 선수다. 뛰지 못하는 건 다른 누구누구가 잘하고 있기 때문이지.' 등과 같은 애매모호한 답변으로 넘어갔지만 이미 내부에선 말도 안 섞고 플랜에서 제외.




말을 섞지 않으니 방법이 없었다고 볼 수도 있지만 펩은 이런 에이전트 장난질을 되게 싫어했었던 기억이 남. 기네스 카르바할이라고 연봉 협상에선 저 둘 못지않은 쓰레기 에이전트가 하나 있었는데 이 사람이 고객으로 두고 있었던 핵심 선수들과는 별로 문제가 없었던 편.





그리고 언어 사용. 어떠한 상황에서든 스페인어 안 쓰고 자기들끼리 다른 언어로 소통하다 걸리면 벌금. 계속 그러면 당연히 플랜에서 제외. 그게 바로 앞서 말씀드린 흘렙. 바이에른 뮌헨 가선 본인도 독일어 썼고 시티 가선 영어 썼고. 안식년에도 언어 공부한 사람.




아비달을 유독 아꼈던 게 예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카탈란도 배우려 할 정도로 성실했던 선수라서 그런 거. 이건 본인이 파벌 논란을 2년 동안 선수로서 얻어맞은 경험이 있어서 더더욱 빡세게 통제했다고 봐야겠죠.
 
 
 
 
그러고 펩이 떠나면서 티토는 상대적으로 이 정도로 빡센 사람은 아니었고 선수들은 풀어지면서 이미 저게 몸에 익었고 습관화된 선수들만 폼을 유지하는데 성공.




물론 티토가 본인 욕심에 권한을 내놓지 않아 후반기 3개월 트레이닝이 없었던 것도 당시엔 크긴 했음.
 
 
 
 
부상을 달고 뛰거나 (챠비, 푸욜) 늘 한계까지 몰아붙이던 선수들도 펩 때는 펩도 세심한 관리를 하면서 뛰게 했지만 티토나 타타는 그러지 않았으니 그 2년 동안 하락이란 하락은 다 맞으면서 누군 은퇴를 하고. 누군 이제 회복할 수 없는 수준까지 기량이 내려가고 그랬음.




코쿠가 예전에 펩이 감독으로 이렇게 잘하고 있는 게 놀랍나? 란 질문에 '아니. 이미 펩은 한참 전부터 감독이었어.' 라고 대답했던 적이 있는데 그런 거 보면 표면적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전부터 준비를 많이 해왔던 것 같음.




사람이 계속 변해가는 것도 성공의 방법에는 꼭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란 걸 바르셀로나랑 뮌헨 거치면서 많이 느끼지 않았나 싶구요. 사실 축구 내적으론 예전의 펩이 더 취향이지만 외적으론 지금의 펩이 더 보기 좋음. 선수들하고도 이제 더 이상 부딪히지 않는 것 같구요.




전 이제 진짜 펩의 감독 커리어가 그렇게 많이 남진 않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언제까지 할지는 몰라도 그가 이끄는 팀의 경기를 보는 거 자체가 재밌는 거라 생각해서 시티 팬분들이 잘 즐기셨으면 좋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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