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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Writing

신기한 사람

by 다스다스 2024. 2. 19.




(펩은 자신의 몸을 바치고 실력을 얻은 거 같기도. 이때도 이미 좀 진행됐을 때인데 처음 감독할 때부터 쭉 보면 노화 속도가 그냥 미친 수준임)





챠비가 신기한 사람이긴 함. 선수 시절부터 쭉 봐왔지만 요즘 감독 하는 거 보면 같은 사람인가 싶은 것도 있지만 말과 행동이 이렇게 안 맞는구나도 잘 보여주고 있어서 신기함.




크루이프가 00년대 초중반에 미천한 선수 경력을 가진 감독들이 치고 올라오고 이론가들이 슬슬 치고 나오던 시기에 큰 흐름상 이런 방향성이 옳지 않다는 식으로 비판한 적이 있었음.




뭐 어쩌면 올드스쿨한 마인드일 수도 있고. 자신이 미헬스와 함께 토탈 풋볼이란 이론을 어느 정도 완성시키고 업적을 이룩하고 그래왔으니 그렇게 얘기한 걸 수도 있고. 정확한 이유야 모르지만 저들을 비판하려는 목적보단 축구가 정형화되고 획일화 되어가는 현상을 우려한 비판에 가까웠죠. 뭐 어떻게 보면 미래를 예견한 것 같기도 한데 아무튼.




선수 시절의 경험들이 사실상 감독으로서 많은 것들을 결정짓는 핵심이고 그런 감독들이 늘어나야 축구가 더 재밌어지고 발전한다는 식으로 얘기했었는데 사실 그런 거치면 챠비는 부족할 일은 없는 사람.




크루이프가 자신의 관점에서 뽑은 맛보기 꼬맹이들 (펩 포함) 을 제외하면 제대로 뿌리내린 시스템 안에서 자리 잡은 1세대 선수 중 한 명이 챠비고.




지금이야 기술이 강조되고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엔 그렇지 않았고. 따지고 보면 챠비는 지금 보편화되고 정형화된 트레이닝론을 20년 전부터 배운 거나 다름 없는 건데도 이 부분에서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음.




이 성장 과정에서 운이 좋게 반 할한테 담금질을 당하고 내외부 선수들을 다루는 방식을 몸으로 겪은 선수 중 한 명이기도 함. 사이가 안 좋고 국적이 다른 선수들끼리 묶어서 2인 1실로 합숙을 시키던 반 할의 원칙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게 바로 챠비. 펩이나 루쵸는 이때 반 할의 방식들을 많이 배웠다고 밝혔고 아직도 그들의 감독 철학에는 반 할의 아이디어들이 일부분 남아있음.




그리고 세티엔 이전 최고의 쓰레기 감독 밑에서 시간 낭비도 해봤고. 레전드가 나서서 욕을 다 먹어주면서 시간을 벌어주는 것도 경험해 봤음. 그러고 완전한 주전이 된 이후 반 할을 다시 만나는 행운을 겪기도 했죠. 챠비 본인도 반 할한테 늘 감사를 표하곤 했음. 푸욜도 그렇고 발데스도 그랬고 이니에스타도 그랬죠.




이후에도 레이카르트, 펩, 티토, 타타, 루쵸를 겪으면서 사실 바르셀로나에서만 유럽 커리어를 보낸 거치곤 생각보단 꽤 다양한 경험을 했죠.




그러면서 챠비는 아약스나 네덜란드 출신도 아니고 스페인 빅 클럽들도 아닌 다른 곳에서 온 선수들이 어떻게 이렇게 축구를 할 수 있는가를 계속 고민해 온 선수였죠.




스페인 대표팀에서만 그런 게 아니라 바르셀로나에서도 그랬고 떠나서도 그랬음. 적응을 잘하면 그걸 신기해했고 못하면 왜 못하는 지도 신기해했고. 산체스가 한창 골을 못 넣을 때도 그가 있어서 우리가 이러한 축구를 할 수 있는 거다란 쉴드를 치던 것도 티토가 아닌 챠비였음.




DNA 가 되게 오만한 표현일 수도 있지만 이질적인 훈련 방식으로 누구는 끝을 모를 정도로 망해가고 누구는 한 단계, 두 단계 진화하면서 완성형에 가까워지고. 그런 것들을 보면 그 차이점을 설명하는 단어로는 어쩌면 적합한 표현이라고 느꼈을 거임. 실제로 챠비가 선수로서 보내던 시기에 바르셀로나에서 임대 나가면 라파 알칸타라 빼면 그 꼬맹이들도 대부분 다 망했음.




그러고 알 사드에서 감독하면서 그런 부분들을 조금은 고민을 하는구나 싶었는데 바르셀로나 오면서 이 모든 것들이 송두리째 사라졌음. 발베르데야 항상 자신을 성적으로 증명해야 하는 입지가 좁고 옅은 바르셀로나 출신이었고 사실상 외부 인사로 봐도 무방한 인물이었지만 챠비는 그게 아님에도 늘 뭔가 쫓기고 있었죠.




너무 빨리 와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준비가 되어있었음. 이건 솔직히 어떻게 봐도 핑계인 게 사단도 꾸리고 있었고 솔직히 다른 감독들보다 준비할 시간도 많았죠.




단지 차이점은 자신에게 맞춰지고 익숙한 환경이 아닌 정반대의 환경이나 자신이 늘 무언가를 증명하고 검증받아야 하는 환경은 겪어보지 못했다는 거겠죠. 이게 수준 차이와 객관성에서 문제가 컸다 생각함.




개인적으로 딱 여기서 현실적인 부분들을 많이 생각했다고 봅니다. 자신이 알던 감독의 역할이 생각 이상의 범위라는 것을 깨달았고. 아마 속으론 펩이나 루쵸가 왜 그렇게 빨리 늙어갔고. 늘 무언가에 쫓기듯이 살아왔고. 반 할이 성격이 왜 정신병자 같았는지 느꼈겠죠.




바르셀로나가 생각보다 어려운 순간에 있어서 성적은 어느 정도 바탕이 깔려서 그 아래로는 절대 내려가면 안 된다는 부담감까지 자리 잡히니 자신이 생각하고 그리던 모든 그림이 다 깨져버린 거죠. 지금도 어떻게든 이기는 것만 고민하고 단기적인 관점에만 빠져있는 게 이걸 너무 잘 보여주고 있다고 봅니다.




그리고 알 사드에서도 찾지 못했던 코칭 철학의 답을 바르셀로나에서는 더더욱 찾을 가능성이 없다고 봤으니 이미 몸에 익은 유스 출신이나 비슷한 영향력 아래에서 기량이 완성되거나 전성기를 보내고 베테랑이 된 선수들의 조화에 더 힘을 쓰는 쪽으로 노선을 바꾼 거겠죠.




솔직히 자기 형이 사단에서 주요한 직책으로 있고 가족들이 욕먹는 거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고 있으니 공개적으로 자기 사단에 관한 생각을 다 밝히지 못하는 거지. 몇 명은 대놓고 무능한 거 본인도 다 알 겁니다. 특히 피지컬 트레이너의 능력이 딸리면 선수단이 어떻게 되는지는 펩 그만두고 부에나벤추라 나가면서 챠비는 몸으로 겪어본 선수인데 모를 수가 없다고 봅니다. 그때도 의사는 프루나였음.




개인적으로 아직도 아쉬운 건 그냥 어디라도 딱 1년이라도 거쳐보고 왔으면 그래도 지금보단 낫지 않았을까 싶은 거임. 단순히 유럽의 물을 먹어봤다 이런 것보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에서 감독직을 해보면서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을까란 생각. 사단의 능력들도 점검할 수 있었을 테구요.




전 루쵸도 로마에서 실패를 했기 때문에 바르셀로나 오면 무조건 성공한다 생각했던 건데 만약에 루쵸가 B팀에서 존버 타다가 티토 대신 후임 자리를 먹었다면 티토보단 잘했을지 몰라도 14-15 시즌 정도의 성공은 없었을 거라고 봅니다. 아마 세스크도 쳐낼 생각을 안 했겠죠.




결국 떠나는 사람이고 아마 높은 확률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데 댓글들로도 자주 말씀드렸던 거 같은데 어디든 다시 감독한다면 자기 사단은 일단 해체하거나 하다못해 유지 보수라도 하고 움직였음 합니다.




마무리를 잘하든 못하든 그거야 능력에 달린 일이니 뭐 딱히 바라진 않고 바라는 게 있다면 챠비 감독 하는 거 보니까 이니에스타는 감독 안 했으면 좋겠다. 정도... 혹여나 했는데 사람들이 이재앙 이러면서 욕하면 같이 멘탈 터질 듯. 아마 그러면 진짜 축구 끊을 수도 있을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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