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 차례 얘기했었던 거 같은데 펩은 항상 재계약은 미리 해두고 사항을 조절하는 관계자들 외에 에스티아르테 빼면 아무한테도 말 안 하고 있거나 아니면 미루고 미루다가 뜬금 없는 시기에 하는 사람임.
보통 확신이 들거나 아니면 새로운 동력이 생겼거나 자신의 재계약이 팀이나 선수들에게 영향을 주지 않을 때 했던 것 같음. 바르셀로나 마지막 시즌 때도 선수들은 챔스 4강 떨어지기 전까지 펩이 떠나는 걸 몰랐음. 그래서 저 포함 대다수의 팬들도 당연히 궁극의 쓰리백을 완성시키기 위해 1년 더 하는 줄 알았고.
클럽에 한해선 펩 본인이 눈을 낮추는 게 아닌 이상 어딜 가도 시티만 한 곳 못 찾을 거라 떠난다면 또다시 정점을 찍으러 가는 것보단 뭔가 다른 이유가 있겠죠.
전 아직도 펩이 그렇게 오래 할 거란 생각은 안 하긴 함. 알려진 허리뿐만 아니라 건강 아마 엄청 안 좋을 걸요. 행복해 보인다고 했던 것도 바르셀로나 땐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밥도 안 먹고 물배 채우던 사람이어서 늘 표정이 썩어있었는데 그런 게 거의 안 보임. 뮌헨 때도 늘 뭔가 불만이 있는 사람이었고.
경기 중에도 예전처럼 물을 심하게 많이 마시지도 않구요. 그래서 그런가 노화 속도도 많이 느려졌죠.
2. 시티 커리어 초중반을 제외하면 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생각함. 기본적으로 컴팩트한 스쿼드를 유지하는 건 선수단 관리 + 잡음 방지 + 본인의 원칙주의적이고 완벽주의자의 성격이 제일 크겠지만 선수들도 시티 행이 항상 행복한 꽃길만 걸을 수 있는 건 아니란 걸 알아서 그럼.
사실 펩이 아무리 바르셀로나 출신인 거 치고도 이런저런 환경들 다 겪어보고 정반대인 세리에도 겪어보고 했다지만 이 사람 자체가 이질적이고 과하게 엄한 편이라 잘못됐을 때를 가정하면 선수들이 무작정 시티 행을 선호하는 것도 전 말이 안 된다고 보는 편임.
본인이 선수인데 다양한 선택지를 고를 수 있다 하면 보통은 전성기에 근접했거나 완전 어리거나 이 두 시기를 가장 선호할 거에요. 초창기면 최고의 감독에게 최고의 이론과 그것을 실전에 적용할 수 있는 바탕을 배울 수 있을 거고. 전성기면 선수를 효율적으로 만들어 줄 테니.
펩은 바르셀로나처럼 극단적으로 발에 치중된 훈련을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얼마 전에 잠 안 와서 시티 다큐 3편인가까지만 봤는데 세트피스 훈련도 하더군요. 바르셀로나에선 세트피스 훈련도 안 했음) 모든 훈련의 의도가 명확하고 본인의 계획에 아무런 쓸모가 없는 훈련이나 개인이 추가적으로 하는 훈련 (즐라탄이 이러다가 눈밖에 났음) 등을 고려하지 않아서 펩의 방식에 극단적으로 익숙해졌을 때 떠나면 이게 반대로 엄청 큰 부작용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당장 칸셀로도 본인이 계속 투헬, 바르셀로나처럼 관념이 어느 정도 겹치는 곳만 가려는 게 다양한 팀을 겪어봤으니 너무 다른 환경으로 가면 본인도 본인이 못할 걸 아는 거죠.
필립스는 이미 1년 차에 적응에 실패했는데 본인을 찾는 팀들이 너무 다른 환경이니 또 적응 실패하고 있구요. 마테우스 누네스도 솔직히 나갔으면 하는 선수 중 하나지만 (아직도 왜 있는 지도, 왜 왔는 지도 모르겠음) 얘 개인만 보면 지금 떠나면 커리어 망할 거에요.
이런 건 단순히 전술전략의 카테고리가 아니라 훈련을 비롯한 감독의 이론 자체가 익숙해지는 과정이라 이게 애매하게 몸에 남아있거나 너무 과하게 입혀져서 나타나는 부작용이라고 보는 게 맞겠죠.
다큐 보신 분들은 펩이 훈련 때마다 이상하게 칭찬을 엄청 많이 한다고 느끼셨을 건데 이런 것도 펩이 선수들이 필드 위에서 얼빵한 짓 못하게 하려고 자주 하는 하나의 행동임. 뒤지게 못할 땐 얼음장이 되고 애매하게 못할 땐 칭찬하고 애매하게 잘할 땐 까고 뒤지게 잘해야 칭찬하는 것도 크루이프가 자주 쓰던 방식이고.
3. 그래서 팀을 한 번 크게 엎으면 더할 가능성이 높고 팀을 유지하면 떠날 수도 있다란 예상을 했던 거임.
스쿼드가 이제 급변하지 않는 시점에 접어들고 유지가 안정적인 선택이 되는 시기가 됐고. 선수들이 연차가 쌓여가고 있으니 펩이 여기서 더 줄 수 있는 게 있을까. 과연 펩이 이 안에서 새로운 동력을 찾을 수 있을까가 의문이 들었기 때문. 물론 이건 펩이란 사람 자체가 예전에 비하면 많이 변했으니 그동안의 모습들을 토대로 한 가벼운 예측이긴 하겠죠.
근데 선수들도 새로운 도전을 원하는 선수가 슬슬 나올 거라고 보긴 함. 맨체스터 생활이 마음에 들고 조용한 생활을 좋아하는 선수들이야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환경적으로 변화를 원하거나 내적으로 자신의 그릇을 더 크게 보고 있는 선수들은 슬슬 고민해 볼 시기겠죠.
4. 바르셀로나도 피지컬 트레이너들을 좀 지나치게 많이 고용했다고 보는데 죄다 스페니쉬들만 뽑은 게 이런 관점으로 보면 이해가 쉽죠.
피지컬을 활용하는 방식이 바르셀로나는 늘 달랐던 편이라 그 부분에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인물들을 뽑을 거면 웬만하면 스페니쉬들이나 비엘사처럼 극단적으로 쏠린 감독들과 일해본 전적이 있는 외부 인사들이 당연히 우선 순위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데코가 다른 건 몰라도 챠비 사단의 문제점들은 명확하게 읽었다 생각합니다.
티아고한테 단기직 준 것도 전 꼬맹이들 쓰고 성장 방향 잡는데 도움 받으려고 한 게 제일 크지 않을까 싶음. 보통 올라올 때까지 선수들을 크게 건드리지 않고 올라와서 성장 방향성 잡는 게 바르셀로나의 방식이라 이 부분에서 도움 받으려면 내부를 겪어본 인물이 필요하긴 했겠죠.
Football/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