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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tball/Writing

증언과 현실

by 다스다스 2025. 2. 7.







바르셀로나 감독 시절 펩이 떠나냐 마냐로 슬슬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던 11-12 시즌 중반 (결과론적으로 이미 이때 떠나기로 결정한 거 맞았죠...) 에 라니에리가 뜬금없이 이탈리아 언론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음. 당시 발언은 나름 펩의 향후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살짝의 힌트를 제공하기도 했었죠.








당시 발언은 이랬음.


라니에리


펩과 얼마 전에 얘기를 나눴었는데 펩은 나에게 자신은 세리에에선 바르셀로나처럼 하는 게 불가능하단 얘기를 했었어.


그 이유는 바르셀로나는 수십 년 넘게 이어져 온 전통이 있고 아래 카테고리 팀들이 퍼스트 팀하고 같은 스타일로 플레이 한다고 했거든. 펩은 자신이 바르셀로나를 떠나 어디로 가든 이런 철학과 관념을 실현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었어.





실제로 펩은 가족들을 위해 그리고 에너지와 동기 부여를 잃어버린 자신을 위해 안식년을 택하고 바이에른 뮌헨을 선택했는데 그 이유는 마르티 페라르나우 책에도 나오지만 전통과 철학이 있고 바르셀로나를 제외하고 자신의 이상론을 실현하는데 가장 가까운 팀이었기 때문.





그리고 무엇보다 바르셀로나와는 정반대의 환경인 선수 출신들이 보드진 자리를 다 먹고 있는 곳...





바르셀로나에 질리다 못해 정내미가 떨어진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리를 두기 시작했던 펩의 행보를 보면 뮌헨 행은 반드시 일어났을 일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펩은 선수 시절에는 바르셀로나와는 다른 환경들을 가진 곳들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선수였는데 그건 본인이 바르셀로나에서 10년 좀 안 되게 뛰면서 다른 환경을 거쳐 이곳에 온 선수들이 처참하게 망하는 케이스들을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죠.





유명한 코드로부터 하지, 포페스쿠, 뒤가리, 레돈도와 함께 테네리페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피찌, 물론 마드리드에서도 실패했지만 리가 경험이 꽤 쌓였던 프로시네치키, 같은 이베리아 반도 출신임에도 피구를 제외하면 하나 같이 다 적응을 못하던 포르투갈 출신들, 파벌 논란에 질려 바르셀로나를 저주하던 쁘띠 등등등...





감독이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바르셀로나처럼 지역색이 강한 팀들을 언젠가는 갈 거처럼 말을 했었죠. 올드 트래포드에 에스티아르테랑 같이 경기 보러 갔을 때 이곳에서 감독을 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라고 했던 것도 유명한 일화 중 하나임.





안식년-뮌헨-시티로 이어지기까지 펩을 제일 원한 팀은 첼시였음. 로만은 유명한 펩 팬이었고 펩 따라쟁이들을 제일 많이 데려다 쓴 구단주였죠. 펩 따라쟁이 중 향후 잠재력 원탑이라 불리던 보아스 (이 소리한 애들은 제정신이 아닌 놈들임) 를 거리낌 없이 갖다 쓴 것도 그가 얼마나 펩을 원했는지 알 수 있는 사실. 결국엔 그게 현 시점 펩 따라쟁이 중 제일 잘 풀린 투헬까지 갔죠.





하지만 펩이 안 간 이유는 첼시가 매력적이지 않아서가 아니라 겉으로 보기에 첼시는 구단주와의 마찰이 잦은 곳이고 팬들이 그런 것들에 공개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강하게 드러내는 곳이 아니기에 감독이 언제든지 위험해질 수 있다는 게 제일 컸겠죠. 펩 입장에선 못할 때 오히려 깜노우 팬들이 뭐 하냐고 욕하던 레이카르트가 보였겠죠.





시티를 택한 이유가 소리아노와 치키 등이 있었기 때문도 있지만 여러 가지였을 거라 생각함. 자신을 믿고 기다려 줄 수 있는 시간적 여유도 있던 팀이고 본인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쌓아가야 한다는 강한 동기 부여를 이끌어 낼 수 있는 팀이기도 했죠. 그리고 무엇보다 철학과 관념을 만드려 했으니까.





펩이 유스를 안 쓴다는 비판을 국내외 가리지 않고 듣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음. 허나 그는 숱하게 망해온 유망주들을 선수 시절부터 봐왔고 크루이프의 이론을 그대로 따라가는 사람이기에 과감한 유망주 기용은 언제나 멀리 하는 사람임. 크루이프는 항상 어린 선수들이 경기에 무조건 많이 뛰는 게 좋은 건 아니다. 를 입에 달고 살던 사람.





본인이 선수 말년이 도핑 논란으로 꼬인 걸 떠나 새로운 환경들에서 헤매면서 꼬인 것도 알기에 선수들이 본인과 같은 모습을 갖게 되는 걸 원치 않는 것도 있을 거라 생각하구요. 그러니 출장 기회로 불만을 던지면 고민도 안 하고 떠나도 좋다 하는 거죠. 펩은 고쳐쓰기 위해 설득을 안 하는 거뿐임.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자신의 방식에 너무 물들어버리면 다른 곳에 가서 적응하기 힘들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임. 자신의 동료들도 그랬고 본인도 그랬고. 시티 선수들도 그런 선수들 있죠. 스털링이나 라포르테 같은 애들. 특히 바르셀로나는 이게 제일 심한 팀이니까. 가능하면 선수들이 그러기 전에 미래를 찾아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생각하는 거죠.





무엇보다 바르셀로나는 분명히 달랐음. 메시와 챠비, 알베스는 항상 뛸 수 있는 선수들이었고 (물론 챠비는 본인 고집이 절반 이상이었지만) 그들이 버텨주고 이미 많은 표본이 쌓여 적응기가 짧은 꼬맹이들이라는 명확함이 있었기 때문에 끌어 쓴 거였죠.





근데 이 와중에도 펩은 본인의 철저한 원칙이 있었는데 그 케이스가 세르지임.





11-12 시즌 팜플로나 원정에 가서 오사수나한테 3대2 로 진 적이 있는데 그때 지역 언론들이 꼬맹이였던 세르지를 패배의 원흉으로 지목하고 난타를 했죠. 리가 경쟁이 너무 치열하고 무링요가 하루가 멀다 하고 긁어댔으니 지역 언론들이 화가 너무 많던 시기.





이 경기 이후로 펩은 리가에서 챠비, 부스케츠, 이니에스타를 셋 다 빼버리는 경기를 한 번도 하질 않았고 지역 언론들이 더 이상 타겟으로 삼지 않던 티아고를 빼곤 미드필드나 후방 자원으로 분류되던 꼬맹이들의 기용 빈도를 현저히 낮추거나 안 썼죠. 물론 세르지가 재앙이었던 건 부정하지 않겠음. 분명히 재앙이었음.





카드 관리가 너무 안 되던 알베스의 배터리였던 몬토야나 깔짝 쓴 정도였음. 결국 막바지에 그 화살은 다시 또 다른 꼬맹이인 테요에게로 갔구요.





펩은 멘탈리티를 많이 신경 쓰는 사람임. 그가 베테랑을 존중하는 것도 뛰면서 쌓인 통찰력과 건강한 멘탈리티는 경기를 만들어 내는 하나의 요소라 생각하기 때문이고.





앞으로도 펩은 선수 기용 방식은 때로는 과감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조심스럽게 가져갈 거라 봅니다. 그렇다고 그게 시티 유스들 중 펩 마음에 드는 선수가 없거나 재능의 크기가 딸리니 담금질해볼 생각도 안 하냐는 아니라는 거임. 그냥 조심스럽게 다가가는 거죠. 유스는 그렇게 다뤄야 한다는 펩의 원칙 중 하나라는 거임.





그리고 유스는 뛴다고 다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한 세대가 성공작이 되기 위해선 표본이 쌓이고 시스템이 완성되는 게 우선이라 봅니다. 바르셀로나는 90년대 초부터 그 작업을 시행했고 그것이 빛을 보기 시작한 건 90년대 후반부터 담금질하기 시작했던 선수들임. 챠비, 푸욜 이런 선수들이죠.





바르셀로나는 이걸 위해 크루이프를 썼고 렉사흐는 수없이 머리를 굴렸고 바르셀로나가 명장을 데려온 적이 없던 클럽은 아니지만 처음으로 명장 (반 할) 을 데려오려고 똥꼬쇼를 하고 빳빳한 모가지를 숙였음.





펩이 유스를 거의 안 쓰고 있지만 아래 카테고리에 앞으로도 쭉 이어질 무언가는 반드시 남기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그것이 빛을 보는 날은 펩의 마지막일 수도 있고 이후일 수도 있겠죠. 보다 보면 시티가 길게 본 이것은 분명히 뚜렷하게 결과물로 나올 거라 봅니다.





보통 3-4년이면 한 사이클이 끝이 난다고 생각하는데 펩은 그것을 더 길게 유지하면서 시티에서 10년을 넘게 감독을 하는 걸 택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만든 팀, 자신이 무언가를 남기고 가야 하는 팀이란 걸 생각하고 있다 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로비츠란 에이전트와 펩이 몇 년 전에 동행을 그만뒀는데 가장 큰 이유는 옮길 이유를 못 느껴서겠죠. 인맥 넓은 에이전시를 보험으로 둘 필요도 없고 머리 큰 사람을 옆에 둘 필요도 없고 본인 의견 100% 그대로 따라가 줄 에이전시가 필요하니까.





펩을 오래 지켜본 사람으로서 전 그가 때론 엄청 감정적인 사람이지만 적어도 결정은 감정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이란 걸 알고 있음.





뭐 이번 시즌은 펩 기준 제일 못하고 있지만 챔스만 가면 된다 생각하고 보고 있는 중. 설마 하는 일은 안 벌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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