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돈도의 이야기들.
1. 레돈도는 아르헨티나에 있을 때부터 뛰어난 재능으로 주목받던 선수였는데 그런 자국에서의 기대감으로 90 월드컵 출전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는데 출전이 이뤄지지 않은 건 본인이 직접 참가하지 않겠다 거부해서였음.
이유가 재밌는데 아르헨티나는 70년대부터 메노티즘과 빌라르디즘이 충돌하는 나라였음. 전자는 공격적인 방향성을 추구해서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챙기자는 쪽이었고 후자는 어떤 축구를 하든 이기면 그만이란 쪽이었고.
레돈도는 어렸을 때부터 공격적인 방향성의 축구를 좋아했고 본인이 하고 싶어해서 빌라르도의 차출에 응하지 않고 거부함.
그럴듯한 이유가 필요했던 레돈도는 대학교 시험 기간이 그때와 겹쳐서 참가할 수 없다 했는데 언론들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레돈도를 매국노라고 표현하면서 기사를 마구 찍어냄. 86 월드컵 우승 이후 87, 89 코파 아메리카에서의 부진으로 화가 잔뜩 나있던 아르헨티나 국민들 역시 들고 일어서며 레돈도는 자국에서 설 자리를 잃어버림.
80년대 아르헨티나 명문팀이었던 아르헨티노스 주니오스 출신이었던 레돈도는 이 사건으로 인해 유럽 이적을 알아봤는데 손길을 내민 팀이 당시 호르헤 솔라리 (인디펜디엔테 감독을 하다가 넘어간 거라 당시 아르헨티나 유망주들을 잘 알고 있었음) 가 이끌던 테네리페였음.
그래서 테네리페로 간 거. 테네리페는 재정이 좋은 팀이 아니었는데도 솔라리의 안목과 레돈도의 재능을 믿고 당시 꽤 큰 돈을 들여서 데려왔던 거죠.
2. 이러고 레돈도는 2년 동안의 담금질 과정에서 자신의 기량을 증명하며 빌라르도의 후임 감독이었던 바실레의 마음에 들어 국가대표팀 선수로 차출됐고 자국민들의 분노도 실력으로 잠재우면서 솔라리의 후임으로 토탈 풋볼과 메노티, 사키, 크루이프를 신봉하던 발다노를 만난 거임.
그리고 93 코파 아메리카에서 조별 예선에서 퇴장으로 8강 브라질과의 경기에서 출장을 못하면서 다시 매국노가 되나 했는데 레돈도의 부재를 어떻게든 메워 승부차기로 끌고 가서 이기고 살아남으면서 결승까지 준수한 활약으로 아르헨티나의 코파 아메리카 우승에 기여했죠.
그리고 94 월드컵에서 스토이치코프랑 하지한테 놀아나면서 탈락... 마라도나의 마지막 월드컵이었는데 아르헨티나한테는 여러 의미로 얼룩진 월드컵이었음. 바실레는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본인 책임이라며 사임.
3. 후임 감독은 아르헨티나의 또 다른 축구 영웅이었던 파사레야. 파사레야는 부임하자마자 기존 국대 선수들과 차후 뽑힐 선수들에게 공통된 규율을 내놓았는데 바로 두발 규제 및 장신구 착용 금지.
당시는 감독의 말이 곧 법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시기라 다 바로 머리를 짤라왔는데 레돈도와 90, 94 월드컵 마라도나와 함께 뛰었던 포워드 카니지아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거부함.

레돈도는 머리 길이와 실력은 아무 상관이 없고 그런 것들은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거고 감독이 이래라저래라 할 문제가 아니라고 얘기했음. 카니지아 역시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파사레야는 독재자라며 비판했고.
당연히 논란이 됐는데 파사레야는 레돈도가 단발령을 거부한 게 아니라 본인을 왼쪽 미드필드 겸 포워드로 쓰겠다는 자신의 얘기를 듣자마자 더 이상 뛰지 않겠다 거부한 거라 했음. (카니지아와 다르게 레돈도는 90 월드컵 빌라르도와의 일화가 있었으니 파사레야가 본인에게 비판적인 여론을 되돌리기 위해 한 인터뷰였음)
레돈도는 이 얘기를 듣자마자 마드리드 지역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머리를 짜르기 싫은데 짜르라 해서 거부한 거고 그게 다다. 라고 인터뷰.
결국 하도 욕을 먹은 파사레야는 레돈도와 카니지아에게 절충안을 내놨는데 그건 머리를 묶어라였음. 레돈도는 그마저도 내가 알아서 할 일이다. 라고 거부하고 카니지아는 받아들이고 뛰었음.

4. 이로 인해 레돈도는 98 월드컵까지 국대 경력이 뚝 끊김. 후임 감독이었던 비엘사는 마드리드에서 챔스 우승 주역 중 하나가 되며 슈퍼 스타가 된 레돈도를 뽑으라는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뽑았으나 레돈도는 본인이 원하는 피보테가 아니어서 잠깐 썼다가 이후 더 이상 뽑지 않음.
역시 99 코파 아메리카에도 참가하지 못하고 국가대표팀과는 완전히 끝남.
5. 이게 레돈도의 국가대표팀 커리어가 초라한 배경들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