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시느라 전반전만 보고 뻗었는데 솔직히 더 봤다고 생각이 달라지거나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짤막하게 씁니다.
당장 이기는 것도 중요한데 멀리 봤을 때 (또는 토너먼트나 강팀들을 많이 만나는 시즌 막바지로 가면 갈수록) 팀을 어떻게 만들어가느냐가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보는데 그런 면에서 보면 세티엔은 0점입니다. 발베르데에 대한 갑론을박이 한창 오고 갔을 때 이 블로그에도 세티엔이 바르셀로나의 스타일을 가진 감독이다라는 댓글이나 반응들이 있었는데 전 그 당시에도 전혀 그렇지 않다고 주장했었고 부임 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다. 이대로 계속 가면 장담하는데 개작살납니다. 발베르데 때보다 더... 심하게...
볼을 소유하려하고 미드필드들에게 바라는 게 많으니까 겉으로 보기엔 세티엔이 추구하는 방향이 비슷해보일 수 있겠죠. 거기다 그가 이전에 있던 팀들에서 보여줬던 모습들도 바르셀로나를 따라하려한다고 느껴졌을 수도 있고. 근데 세티엔을 보면 세부적으로 바라봤을 때 그는 바르셀로나 입성 후 하프 라인 전후 지점에서까지 포워드 의존도 (정확히는 메시 의존도) 가 상당히 높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미드필드들을 싹 다 보조자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짱개 폐렴으로 시즌이 멈추기 전에도 지적했는데 오늘 경기도 똑같았어요. 아니 어쩌면 더 심하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4대0 으로 이겼다. 뭘 그리 따지냐 할 수 있는데 전 이번 경기를 우려스럽게 바라봐야한다고 보고 몇 가지를 짚어보면
- 부스케츠 하나로 안 되니까 미드필드 세 명의 동선이 종적으로 굉장히 길어지고 있으며 (왼쪽에 서는 미드필드나 포워드는 메시가 없어서 횡으로도 움직여야하니까 무조건 백프로 과부하에 걸립니다.)
- 메시가 볼을 받는 지점 자체가 측면으로 몰리거나 박스에서 한참 동떨어져 있으며 (이거 하나로도 세티엔은 이미 실격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라 점점 몸 상태가 떨어져가는 메시를 생각했을 때 이거 진짜 위험한 거에요.)
- 메시가 볼을 받는 지점 자체가 대부분 상대 박스와 멀리 떨어져있으니 그만큼 볼을 소유하는 지점도 뒤로 밀려나있다는 소리고 의미 없는 점유도 많다는 소립니다.
- 당연히 메시는 기존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발베르데 때보다) 훨씬 더 적은 선택지를 가지고 뛰게 됩니다. 여기서부터 효율이 팍 죽어버리는 거에요.
- 그럼 측면이나 중앙에서 볼을 잡았을 때 순간적으로 속도가 빠르거나 전환이 빨라서 상대가 대형을 갖추기 전에 뭐가 되냐? 대부분의 시간 동안 안 되니까 이상하게 치고박는 경기가 나옵니다. 어쩌면 더 얻어맞을 수도 있고.
- 그래서 나타나기 시작하는 문제가 있죠. 부스케츠의 패스가 길어지고 있습니다. 하프 라인 전후 지점에서 길게 나가는 패스가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메시는 갈리긴 미친 듯이 갈리는데 효율은 작살이 날 겁니다.
대부분의 선수들에게 이렇게 종적으로 긴 동선을 지시할 거라면 차라리 조금 더 실책이 늘어나고 점유율이 줄어들더라도 더 많이 뛸 것을 요구하면서 더 빠르게 볼을 처리하라고 지시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근데 그렇게 하면 기복의 폭이 장난이 아니겠죠. 일단 바르셀로나에서 그런 양상의 게임을 매 경기 소화해낼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도 그리즈만, 데 용, 세메두, 세르지 정도 빼면 없기도 하구요.
전 세티엔이 정답에 근접하려면 선수들의 특성과 장단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체적으로 다 뜯어고쳐야한다고 봅니다. 메시가 있는 한 메시를 살리려는 노력은 바르셀로나에 어떤 감독이 와도 절대적으로 이행해야할 조건 중 하나라고 보는데 이런 면에서 보면 세티엔은 지금껏 바르셀로나를 거쳐간 그 어떤 감독보다도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보구요. 저번 글에서도 한 번 살짝 얘기했는데 만약에 그가 앞으로 선택하는 방법론이 지금의 어설픈 틀 안에서 수아레즈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무언가라면 더 볼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르셀로나의 수준에 걸맞는 전술적 역량은 없다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거라고 봐도 무방하거든요.
'Football > Writing'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잡소리 180 (세비야 전) (39) | 2020.06.20 |
---|---|
잡소리 179 (36) | 2020.06.16 |
잡소리 177 (정말 긴 잡소리) (51) | 2020.06.04 |
잡소리 176 (+ 잡담) (40) | 2020.05.31 |
잡소리 175 (24) | 2020.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