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소리 185 (에스파뇰 전)

 

 

 

 

양 쪽 한 명씩 퇴장당한 이후는 뭐 딱히 이렇다 저렇다 얘기할만한 것들이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이전만 얘기해볼까 합니다. 개인적으로 파티의 투입 이후 변화를 보면 세티엔이 전반전을 어떻게 판단했고 그의 생각이 어땠는 지를 명확하게 볼 수 있을 거라고 봤는데 그게 좀 아쉽긴 하네요.

 

 

 

일단 이전 경기들과 오늘 경기를 놓고 봤을 때 동일하게 지적해야 되는 사항은 공간 활용이 전혀 안 된다는 것이겠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선수들끼리 동선이 겹친다거나 볼을 소유하고 있는 선수를 기준으로 삼았을 때 수적 우위에 밀려서 원투터치로 볼을 빠르게 굴리려 하는데도 이상하게 볼은 뒤로 돈다거나...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이번 시즌 최하위권인 에스파뇰 같은 팀도 무난한 대응 방식을 들고 나왔다는 걸 생각해본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한준희 해설이 에스파뇰의 이번 시즌 모습은 오늘 경기하고는 조금 다르다고 말씀하시던데 그거까지 감안해본다면 더더욱. 거기다 세티엔 아래에서 꽤나 경기를 치렀는데도 부임 초기와 변한 게 없다는 소리기도 할테구요. 위치만 다르고 상대의 대응 방식이 조금 더 수준이 떨어졌을 뿐이지. 바르셀로나만 봤을 때는 처참했던 발렌시아 전하고 다를 게 없었어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 일단 첫 번째로 들고 나온 게 그리즈만의 동선을 조정한 거라고 보는데 세티엔이 무언가를 지시했다는 느낌보다는 그리즈만이 알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지원한다는 느낌이 강해서 이게 과연 맞는 건가란 생각만 들었습니다. 그렇게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던 저이기도 한데 막상 보니까 진짜 너무 조잡하다고 해야하나.

 

 

 

상대 박스 근처에 볼이 있을 땐 수아레즈 근처나 종적으로 움직이는 미드필드들이나 메시와 원투를 받기 좋은 포지셔닝을 잡거나 후방에서 볼이 올라올 땐 측면으로 빠져서 수비수들의 시선을 끌거나 피하거나. 그러면서 수적 우위에 필요한 순간에 맞춰서 중앙으로 다시 들어갔다가 나오기도 하고. 근데 정작 알바랑 세르지는 겹쳐있고 볼은 거기서 제일 많이 도는데 아무짝에도 위협도 안 되고 쓸데도 없는 짓만 주구장창 하고 있는데 쿨링 브레이크 이후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습니다. 결국 아무것도 안 되니까 세티엔의 필살기가 다시 나왔죠. 메시가 좌우를 다 관여하고 측면에서 볼을 잡기 시작하는 그 모습. 이제 이거 조마조마해서 경기를 못 보겠음. 오늘 전반전 막바지에도 부상당할 것 같은 위험한 태클이 나왔는데 계속 측면 공간에서 뛰는 시간이 많아지면 큰일 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좌 - 알바 전반전 패스맵, 우 - 세르지 전반전 패스맵. 둘이서 지역 방어에 아무 것도 못하고 쑈를 하고 있었다.)

 

 

 

알바는 누누이 얘기하는데 원래 이런 선수에요. 주변 동료들이 자신을 계속 써먹어야 하고 다양한 동선을 가져가 주면서 수비수들의 시선을 뺏어줘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뻔해집니다. 세티엔 부임 이후 팬들이 흔히 말하는 메알단도 잘 안 나오는 게 메시가 볼을 받는 지점이 상대 박스랑 너무 머니까 상대 수비수들이 메시를 쳐다보면서 동시에 시선을 다 뺏기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오늘도 똑같은 장면이 계속 나왔죠. 1차 수비가 스탠딩으로 막고 뒤에 세 명이 메시가 어느 방향으로 가든 대처가 가능하게 미리 자리를 잡고 있는 그 수비 방식.

 

 

 

세르지는 조금 다르긴 한데 볼을 소유하는 팀의 미드필드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수비 밀도가 높은 지역에서 볼을 많이 만지게 되거나 상대 수비가 자신에게 바로 붙을 수 있을 때 또는 상대 대형이 이미 갖춰져 있을 때 볼을 받기 전에 다음을 미리 판단하고 동작으로 빠르게 행하는 게 아예 안 됩니다. 볼을 받기 전후에 어느 정도의 공간이 보장되어있어야 하고 여유가 있어야 중앙 지역에서 자신의 영향력이 나오는 선수에 가까워요. 그러니까 볼을 불안하게 받게 되거나 본인에게 여유가 없을 때 볼을 빠르게 처리해도 죄다 횡패스나 백패스 아니면 메시 같은 선수들에게 무책임하게 돌아가는 패스가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게 되는 거죠. 그래서 공간이 상대적으로 더 나는 후방과 측면에선 덜해 보이는 겁니다. 앞으로 달릴 공간이 없으면 세르지의 가치는 급속도로 떨어지는 셈이죠. 미드필드로 나와도 이상하게 측면 공간에 위치하는 모습이 많은 것도 이래서입니다.

 

 

 

후반전 시작하자마자 파티의 투입이 바로 이런 동선 겹침을 해소하고 무의미한 볼 점유를 깨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보는데 이른 퇴장으로 뭐 해볼 겨를도 없이 경기 양상이 뒤집어졌으니 더 얘기할 건 없겠죠. 세티엔의 바르셀로나는 보면 볼수록 불안함만 커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 불안함의 요소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일 큰 건 메시겠죠.

 

 

(좌 - 메시 패스맵. 우 - 메시 히트맵. 초록색 - 패스 성공, 빨간색 - 패스 미스. 매 경기 이렇게 뛰고 있는데 경기 보는 팬들 입장에선 불안할 수밖에...)

 

 

 

이미 제 기준에선 더 볼 것도 없긴 한데 (애초에 이 감독에게 기대도 안 했습니다.) 축구를 조금 희망찬 마인드로 보시는 분들에겐 데 용, 비달, 그리즈만이 다 나왔을 때가 마지노선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번 시즌 내에 그 라인업이 가능할 지 모르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