펩은 사실 지원이 제대로 들어가는 팀만 가려고 하는 게 본인이 추구하는 관념이 그렇게 해야만 이뤄진다는 게 제일 클 거에요. 단순히 선수 영입. 하고자 하는 축구의 완성도 이런 것만 얘기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내외적인 부분들 전부 다요. 그리고 지금은 좀 덜하긴 하지만 그럼에도 상상 이상으로 원칙주의자스러운 면을 지나칠 정도로 갖추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구요. 삶을 살아가는 부분이다보니 이해를 못하는 사람들은 가끔씩 도라이 같다고 보는 경우도 있죠.
뮌헨을 골랐던 이유. 뮌헨을 떠나려고 했던 이유 그리고 시티를 선택했던 이유. 그 전에 바르셀로나를 떠나려고 했던 이유. 바르셀로나를 떠나고나서 로셀파들과 선을 확실하게 그어버린 이유. 이런 것들을 종합해보면 펩이 제일 우선시하는 건 본인이 본인의 뜻을 원하는 데로 펼칠 수 있는 환경과 그걸 지원해줄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조력자들의 존재를 되게 중요시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굳이 상대적 약팀을 간다고 하면 본인의 감독 커리어 첫 출발점인 바르셀로나 B 처럼 아무 것도 없는 선수들을 가지고 본인이 선수들에게 무언가를 심어줄 수 있는 그런 환경을 원하겠죠. 부담도 덜하고 누군가와 부딪힐 일도 없을 테고 선수들이 하루하루 성장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아예 백지부터 시작하니까 자신이 원하는 걸 그대로 다 때려박을 수 있겠죠?
솔직히 근래 왜 그런 인터뷰들을 했는 지는 모르겠는데 개인적인 견해를 밝혀보면 팀이 너무 공격을 받고 있으니 본인이 욕을 다 먹으려는 게 어느 정도 있긴 할 것 같단 느낌? 이런 거 과거 무링요가 자주하던 건데 아무래도 이러면 지금 시티의 문제 (FFP 나 돈 관련 문제들이겠죠?) 보다는 펩의 발언에 관한 질문들이 더 많이 나오긴 하니까요. 실제로 그러고 있고. 솔직히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싶기도 하고 그 동안 보여온 펩의 모습과는 좀 동떨어져있는 모습이라 좀 놀랍긴 한데 감독으로서 원칙적인 모습은 좀 많이 옅어졌단 생각은 듭니다. 뭔가 축구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이 깨졌을 때 막 고뇌하고 스트레스 받아하고 이런 건 뮌헨 두 번째 시즌부턴 잘 안 보이는 것 같아요. 그리고 시티에서 조금 더 하고 싶다는 게 거짓말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만큼 본인이 감독으로서 생각하는 이상적인 환경이 갖춰진 팀이란 뜻이기도 하겠죠.
제 관점에서 봤을 때 이번 시즌은 펩이 나름 승부수를 던진 시즌이라고 봤는데 잘 안 풀렸죠. 그 이유야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을 테고. 바르셀로나 시절 펩이었으면 기용 방식이 경직되거나 고집을 부리다가 크게 당하는 경우가 분명히 여러 차례 있었을 거에요. 이번 시즌에도 그런 모습이 중간에 보이긴 했는데 어느 순간 어떻게든 주어진 자원들을 갖고 극복하려는 모습을 보였고 일정 부분 극복을 했죠. 또 반대로 이건 뮌헨 시절 (특히 1년차) 이었으면 끝도 모르고 계속 뭔가를 하다가 망쳤을 건데 적정선은 잘 유지했고. 펩이 그 원칙주의자적인 성격을 조금이라도 못 버렸으면 시티 팬들은 이번 시즌 내내 엄청 답답했을 거에요. 만약에 이것도 답답했다면 더 답답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음.
솔직히 뮌헨 갈 때만 해도 진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스트레스 덜 받고 훨씬 잘 되겠구나 했는데 그 정도는 안 된 거 보면 익숙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과 새로운 환경들을 접하면서 자신의 뜻을 펼치는 건 굉장히 다른 거고 어렵다는 걸 알 수 있죠. 그래서 개인적으로 클롭을 조금 더 좋아하고 지금 바르셀로나에 가장 잘 맞을 거라고 보는 거기도 해요. 뮌헨 다음 행선지로 시티를 고른 것도 철저하게 본인의 이익을 생각했다고 보구요.
선수 보는 눈이야 원래 이상했어요. 바르셀로나에서도 펩이 무조건 사달라고 했던 선수들은 대부분 다 망했어요. 카세레스, 흘렙, 치그린스키, 즐라탄 등등... 알베스 정도만 성공했죠. 세스크야 펩뿐만 아니라 그냥 팀 자체가 미쳐있던 선수였고. 입성하기 전 이유나 팬들이 저 선수들을 보면서 왜 루머가 났을까를 예측한 것들을 보면 다 타당했는데 뭔가 뚜껑까보니까 바르셀로나랑 다 안 맞았죠. 이런 거 보면 외부에 있는 어떤 한 선수를 볼 때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조금 특이하다고 볼 수도 있는 거고. 아니면 지나치게 고평가하는 걸수도 있겠죠. 근데 그걸 만회해준 게 치키였어요. 저 실패하는 선수들 사이사이에 성공적으로 정착하거나 활약을 한 선수들은 다 치키가 뽑아준 선수들이었음. 갑자기 선 넘고 케이리손, 엔리케를 질러서 빡돌게 만들어서 치키가 빡세게 일을 한 걸수도 있겠지만 뭐... 즐라탄 딜에 막스웰 껴온 것도 치키였는데 무링요한테 오프사이드 트랩도 못 맞춘다고 혼났다는 기사 뜬 거 보고 뭐 저딴 놈을 데려오지 했는데 펩이 엄청 쏠쏠하게 써먹었죠. 09-10 시즌은 막스웰이 갑자기 안 튀어나왔으면 마드리드한테 리가 뺏겼을 거임. 시티 고른 이유 중에 못해도 20%는 치키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란 게 있었을 거라고 봅니다.
언론 기사들 보면 펩 얘기엔 항상 치키가 따라오는 것도 이래서에요. 에스티아르테 (이 사람 생각보다 대단한 사람이에요. 수구계의 마라도나라고 불렸던 전설적인 선수임... 굉장히 냉철하고 칼같고 펩의 조언자 역할도 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바르셀로나 시절엔 펩의 언론대응도 이 사람이 대부분 다 조언해줬음. 지금도 그러는 지는 모르겠네요.) 도 처음에는 그냥 펩의 친구이자 우리나라로 치면 매니저?? 비서?? 같은 인물이었는데 6관왕 이후 재계약 때 바르셀로나의 완전한 내부 관계자로 계약하는 걸 재계약 조건 중 하나로 삼기도 했었죠. 그러면서 더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했고. 뮌헨이나 시티로 갈 땐 아예 펩 사단의 일부로 같이 갔고 아직도 같이 다니고 있고.
이런 거 보면 알 수 있듯이 본인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과 일을 하는 걸 되게 중요시하고 본인이 모르는 부분들이나 실수할 수 있는 부분들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편이라는 걸 알 수 있죠. 유독 펩이 코칭스태프의 변화가 적은 이유 중 하나기도 합니다. 웬만한 명장들과 비교했을 때 진짜 거의 변화가 없는 편에 속하는 감독 중 하나에요. 시티에 남고 싶단 얘기를 공개적으로 그렇게 한 것도 아마 진짜 본인이 일하는 환경 자체가 편해서일 거에요. 그게 위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뮌헨 떠날 때 시티를 선택한 이유일테고. 계속해보니까 더 마음에 드니까 공개적으로 더 있고 싶다는 얘기를 하는 거겠죠.
어쩌다보니까 옛날 얘기를 해버렸는데 그냥 펩은 본인이 세워둔 원칙을 벗어나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자신의 원칙과 어긋나는 사람이면 아예 상대를 안 하려고 하는 사람이에요. 그러다가 절제를 못하면 한 번씩 터지는 거고. 이런 걸 이해 못하면 강팀만 골라가는 사람으로 느껴지기 마련이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감정이 메마른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는 거고. 이건 바르셀로나 팬들 사이에서도 그랬음. 지금 시티 팬들 사이에서도 그럴 거구요. 뮌헨 팬들은 아마 제일 심하겠죠. 뮌헨에선 터진 걸 한 번 봤으니까.
언젠간 시티를 떠나는 날도 올 건데 이런 내외적인 것들을 펩한테 맞춰주는 팀이 없다면 아마 은퇴를 택하거나 (예전엔 감독직 그만두면 기술진하고 싶다했는데 지금은 뭐하고 싶어할 지 모르겠네요.) 국가대표팀 지휘하려고 할 것도 같아요. 물론 시티에서 지금보다 더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장기적인 관점과 타이틀 두 가지에 다 목말라있는 팀들은 펩한테 다시 달려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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