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제가 발베르데 미친 듯이 깔 때 한 분이 이런 뉘앙스의 질문을 하셨었음.
'지금 발베르데 대신에 감독으로 가면 더 잘하실 수 있나요?'
전 바로 아니요 라고 대답했었는데 분명 누군가는 내가 더 잘할 수 있다고 얘기했었을 거에요. 저 선수들 가지고 왜 저것밖에 못해란 생각이 들긴 했으니까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감독이 있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내가 더 잘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크게 봤을 때 두 가지를 놓치고 계신 겁니다.
첫째는 감독이라는 직업을 이해해야 합니다. 전 감독이라는 직업을 아주 쉽게 정의하면 여러 이해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사이에서 그 교집합을 찾는 유일한 사람이라고 봅니다.
보드진, 선수들, 자신과 함께 일하는 코칭 스태프들, 팬들, 언론 등등 이 사이에서 어느 누구하고도 어긋나지않고 팀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죠. 어긋나더라도 어느 정도 선을 지켜야합니다. 안 그러면 짤리니까요. 사실 이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감독은 이 세상에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감독 선임할 때 어떤 감독을 데려오냐에 따라서 반응이 다 다르죠. (전술가를 데려오면 팬들이 좋아하고 적정선을 잘 지키는 달변가를 데려오면 높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화가 많은 다혈질을 데려오면 언론들이 좋아하고 등등)
발베르데 같은 경우는 보드진은 진짜 좋아했지만 팬들은 점점 싫어했고 (전 이미 첫 시즌 후반기부터 이 사람은 타협을 해도 너무 했다고 느껴서 좋게 볼 여지가 없었음) 언론들은 처음부터 뭐 이렇다저렇다 느낄 게 없었습니다. 기사를 쓸려고 자극적인 질문을 던져도 늘 무표정으로 형식적인 대답만 하고 끝내버렸으니까요.
결국 보드진을 제외한 그 누구도 만족시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좀 지나자마자 발베르데는 경질 당했죠. 다음 주자로 온 세티엔은 교집합은 커녕 단 하나의 집단도 잠시라도 만족시킨 적이 없는 허접한 감독이었구요.
둘째는 모든 걸 다 전술적인 요소로만 판단한다는 겁니다. 어떤 스포츠든 마찬가지겠지만 전술이 전부가 아닙니다.
때론 각자의 캐릭터를 하나로 모으는 게 더 중요할 수도 있고 때론 선수단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 심플하게 하는 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물론 반대로 이미 배울 건 다 배웠는데 그걸 제대로 써먹을 줄 모르는 애들에게 (전술적으로) 더 디테일하게 잡아주는 경우도 있긴 하겠죠.
이론이나 전술적인 요소는 감독이 갖춰야하는 부분 중 하나겠지만 그게 늘 우선적인 요소는 아니란 뜻입니다. 순간순간 그것보다 중요한 것들이 있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앞서 말했듯이 반대로 전술적인 요소들이 중요한 순간도 있겠죠. 그런 걸 시기에 알맞게 잘 파악하고 선수들에게 지시하는 게 감독의 일이라는 겁니다. (3연패 시절 마드리드의 감독이었던 지단을 유독 고평가했던 이유 중 하나)
솔샤르가 이번에 재계약을 했는데 전 맨유 보드진이 나름 판단이 서서 재계약을 했을 거라고 봅니다.
좀 과거로 가보면 반 할을 선임한 건 팀 체질 개선과 향후 미래가 될만한 선수들에게 올바른 성장 방향을 잡아줄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컸을 건데 반 할이 맨유에선 이런 부분들을 만족을 못 시켰죠. 이 실패의 이유는 굉장히 복합적일 겁니다.
근데 맨유 보드진은 이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갑자기 단기적인 관점으로 무링요를 뽑았습니다. 반 할에게 배운 제자기도 하지만 (아마 이래서 비슷한 부분을 생각하고 뽑았을 것 같음) 무링요는 모든 면에서 더 극단적이고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 사람이죠.
결국 까보니 기껏 반 할이 심어놓은 걸 다 엎어버리고 자신의 방식을 새로 가르치니까 기존에 있던 몇몇 선수들은 부진했고 (어린 선수들은 헤매기 시작함. 갑자기 새로운 방식을 익혀야했으니까. 그것도 능동적으로 뛰는 게 무엇인가를 배우던 차에 갑자기 수동적으로 뛰라하니) 새로 온 몇몇 선수들은 의아해했죠.
결국 라커룸이 붕괴됐고 무링요가 나가고 솔샤르가 와서 라커룸을 빠르게 다잡았습니다. 전술도 굉장히 심플했죠.
'1~3명만 여러 가지를 소화하고 나머지는 잘할 수 있는 것만 해라.'
그리고 어린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고 중심이 되는 선수들을 갈아마시긴 했지만 그들이 라커룸의 중심이 될 수 있도록 유도했죠. (인터뷰로 칭찬한다던가 등등)
그가 전술적으로 어떠냐도 중요한 판단 요소겠지만 감독으로서 여러 부분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여준 게 계약 연장의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 성적으로 증명하는 일만 남은 거겠죠. 그래서 지원을 아끼지 않는 거구요.
여전히 이 심플한 전술 기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에 우려하시는 팬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고 보긴 합니다만 좋은 선수들이 오면 이 기조를 벗어나서 더 좋은 축구를 보여줄 능력이 있는 감독이라고 봅니다. 때론 좋은 선수들이 모여있을 때 큰 틀만 잡아주고 심플하게 이끄는 게 잘 먹히는 경우도 있구요. (그만큼 하날 던져주면 열을 아는 선수들이니까요. 이런 걸 종종 선수빨이라고들 하죠.)
투헬도 파리에서 첫 번째 시즌에 선수들이 이해를 못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로 너무 이론적, 전술적으로 치우쳐있었는데 두 번째 시즌은 그런 모습을 조금 벗어났고 첼시에선 그런 면들을 더 많이 내려놨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게 결과로까지 이어진 거구요. 더 좋은 감독이 됐단 뜻이기도 하죠.
중하위권이나 변방 리그에서 전술적으로 화제가 되던 감독들이 빅 클럽 오면 대부분 실패하는 건 이런 환경을 극복 못해서 압박감에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또는 그 수준을 뛰어넘는 선수들을 데리고 있어서 과대평가 됐을 수도 있고. 다른 이유들도 물론 있습니다.) 한두 단계 수준 낮은 저 사람들도 그러는데 제3자인 저희가 봤을 때 쉬워보여도 절대 쉬운 일이 아니란 뜻이구요. (최상위 클럽들 감독들은 폭삭 늙어가거나 인상이 사나워지는 이유가 있음)
레이카르트가 07-08 시즌에 딩요는 여자 끼고 술 마시고 훈련 빠지는 게 더 당연해지고 데코는 감독인 자기를 무시하기 시작하고 에드미우손은 예정에도 없던 인터뷰에서 검은양이 있다란 소릴 했을 때 다 자기 잘못이라고 인터뷰하면서 (지역 언론들이 매 경기 전후 인터뷰에서 폭격했음) 경기 중에는 한숨 쉬면서 땅만 보고 있었던 적이 있음. 그렇게 어려울 때 아무도 그의 곁에 없었죠. 감독이란 그런 직업입니다. (라포르타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
실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지만 그 실력을 판단하는 건 전술이 전부가 아님. 때론 다른 시선으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의 감독을 바라본다면 긍정적인, 부정적인 요소들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럼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구나란 게 느껴지기도 하구요.
이런 면들도 가끔 바라보시면 이해 안 되는 것들이 이해가 되실 겁니다. 물론 여러 가지 면으로 봐도 이해가 안 되는 일은 있기 마련입니다.
Football/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