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언자가 없는 것도 큰 것 같음. 뭐 이건 루쵸도 마찬가지긴 했지만 루쵸는 감독으로서 로마를 겪어보기도 했고 선수 시절에도 바르셀로나뿐만 아니라 레알 마드리드라는 클럽에서 5년을 보냈던 선수였기 때문에 차이점이 크긴 하죠. 당시 루쵸가 뛰던 마드리드는 타이틀을 못 얻거나 리가에서 조금만 박아도 그냥 무조건 나가리 나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자리였습니다. 크루이프의 드림팀이 제일 큰 경쟁자긴 했지만 당시 리가 자체가 만만한 리그가 아니었음. 그나마 오래 살아남았던 게 같은 히혼 출신이었던 플로로랑 레전드였던 발다노였는데 발다노도 94-95 시즌 크루이프의 드림팀을 부쉈는데 95-96 시즌 말아먹으니까 그냥 얄짤도 없었죠.
현재 바르셀로나도 굉장히 부담스러운 자리일 수밖에 없는 게 성적을 내면서 새로운 사이클을 궤도에 올려야 하는 자리인데 레알 마드리드가 너무 잘 나가고 있죠. 상대적으로 초라해지면 초라해질수록 팬들은 불만이 더 크게 쌓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거. 그냥 잠깐 참는다 생각하고 시간을 주고 기다리면 되지 않냐고 할 수 있는데 그러기엔 레반도프스키의 시간도 그렇게 길지 않죠. 웬만한 선수들보다 관리에 있어서 프로페셔널하고 신체적인 리듬이 매우 좋은 선수고 그걸 경기수로 증명하고 있는 선수지만 당장 내년에 어떨지 확신할 수 없는 나이대임. 뮌헨에서보다 더 힘든 환경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이것 역시 배제할 수 없죠. 그만한 포워드가 월드컵 때 뚝딱 나와도 다른 팀들이 그거 데려가라고 손 놓고 있을 리도 없고 내년 여름이나 내후년 여름에 나온다는 보장도 없죠. 다 미지수인 상황에서 챠비니까 레전드니까 믿고 가야 한다만큼 헛소리도 없는 거임.
그래서 이렇게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상황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한데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게 분명히 티가 나고 있습니다. 이전 글에서 욕 먹는데는 일가견이 있는 데 부어 얘기를 했던 것도 혼자 다 받아내야 한다면 사실 그런 감독이 오는 게 어느 부분에선 더 나을 수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거든요. 전 챠비의 형이 전술적인 수준이 떨어져도 챠비가 믿을 수 있고 그의 멘탈리티에 도움이 되는 존재라면 상관없다고 보는데 (애초에 전술이 축구의 전부이거나 최우선 순위가 아니니까) 그런 인물이라는 느낌조차 못 받고 있음. 발베르데의 수석 코치였던 아스피아주의 반도 못하는 느낌이랄까.
라포르타가 현재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 지 모르겠지만 레이카르트 초창기랑 07-08 시즌에 팬들이 라포르타한테 협박을 하곤 했었습니다. 너 오늘 경기 봤냐고. 우리가 이딴 경기를 보려고 돈 주고 경기장 오는 줄 아냐고. 죽고 싶냐고. 03-04 시즌에는 보이소스 노이스도 그대로 있던 시기라서 살벌했죠. 심지어 얘네가 라포르타를 매우 싫어했던 페냐였어서 (라포르타가 의장 되자마자 해체시키려고 했었고 실제로 점차적으로 줄어들긴 했습니다.) 차를 가로막고 창문 열라 하고 협박하거나 벽에다가 락카로 라포르타 죽어. 죽여버리겠다. 적는 사람들도 있었음.
그럴 때마다 공개적으로 언론에 나오던 인물이 크루이프였습니다. 계속 경기는 비기거나 지고 이기는 경기들도 과정이 엉망인데 크루이프가 계속 레이카르트는 실력이 있는 감독이다 하면서 무한 쉴드를 쳤음. 결국 후반기 반등으로 그 무한 쉴드를 보답하고 바르셀로나가 궤도에 오르고 반등할 수 있었죠. 펩 때도 누만시아한테 지고 라싱한테 홈에서 패널티 얻어서 비긴 1무 1패 상황에서도 계속 나와서 인터뷰해서 성난 팬심을 잠재우던 인물은 다름 아닌 크루이프였음. 그때 거의 2~3주 간격으로 엘 페리오디코랑 라방과르디아에서 칼럼만 쓰던 양반이었는데 이례적으로 경기 전후에 계속 나와서 얘기를 했었습니다. 나머지는 다 무링요 데려왔어야 했다고 하고 있었죠.
라포르타는 어쩌면 레이카르트 때를 생각하면서 인내를 하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겨울 영입 얘기가 나오는 거 보면 현재로선 이쪽이 조금 더 맞는 것 같음) 전 이게 위험하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조언자의 부재도 부재지만 챠비가 현재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을 못하고 있다고 보는데 이게 뭐 중하위권 팀들한테 뜬금포로 당한 것도 아니고 리가와 챔스에서 마주하는 경쟁자들에게 비슷하게 당했는데도 이런다는 건 매우 심각한 문제라는 겁니다.
선수들의 심리적 요인이 계속 쌓인다는 것 자체가 현재 바르셀로나가 하고자 하는 축구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거고 챠비가 이걸 깨닫거나 뒤집을 능력이 없다는 게 이른 시기에 보인다면 감독을 바꾸는 게 가장 현명한 선택입니다. 현재로선 보이지 않고 있죠. 인테르랑 1무 1패 하고도 엘클이랑 뮌헨 전을 날렸는데 대체 누구한테 깨져야 깨달을까요.
유일하게 행복 회로가 돌아가는 게 전반기 트레이닝론을 매우 타이트하고 빡세게 굴려서 그 여파가 지금 나타나고 있는 거고 월드컵 이후 선수들이 조금씩 컨디션을 되찾아온다고 했을 때 좋은 리듬을 보일 수도 있다는 건데 말 그대로 희망이죠. 월드컵에서 발생하는 변수들은 어떤 감독도 통제할 수 없음. 카타르의 그 날씨가 선수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거구요. (이거 하나는 챠비가 잘 알겠네요.) 근데 이건 반대로 또 그만큼 위험하다는 겁니다. 월드컵 변수들이 부정적으로 나타나서 팀이 다시 꼬이면 챠비가 그걸 잘 풀어서 후반기를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당장 조별 예선도 못 뚫었는데요. 이 역시 현재로선 의문이죠. 이번 시즌 후반기는 그 어떤 시즌보다도 전반기 변수들을 많이 겪고 임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후반기가 될 거라고 봅니다.
필살기가 없고 외부인들은 바르셀로나로 올 때 보통 보장을 받길 원하는데 바르셀로나 보드진들은 한 놈도 안 빼놓고 먼저 증명하면 보장해주겠다고 하기 때문에 (반 할, 타타 빼면 크루이프 이후 선임된 외부인들은 사실 뭘 보장 받은 적이 없음. 타타는 선수들 사준다 해도 자기가 알아서 거절한 편에 가까웠고. 물론 선임된 외부인들 자체가 몇 명 안 되긴 합니다.) 보드진 입장에선 머리 아플 수 있는데 그래도 결단이 필요한 시기라고 봅니다. 라포르타도 과거 치키나 소리아노, 잉글라처럼 내부에서 본인 의견을 강하게 내는 인물이 없어서 더 자기 감으로만 판단하고 있다고 봅니다. 크루이프처럼 자주 만나서 조언해줄 인물도 없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