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명 (당시 의장이었던 엔릭 마르티 카레토와 그의 심복이었던 조안 부스케츠) 의 행동이
스스로 부패해서 애초에 영입할 생각은 없었고 그냥 자기들이 돈 먹고 나를 생각이었냐
정말로 어떤 압력이나 프랑코의 압력에 의해 첩자 노릇을 해서 마드리드 행을 이끌어 내기 위한 작업이었냐 인데
바르셀로나의 사람들은 후자라 생각하고 마드리드의 사람들은 전자라 생각하는 게 크죠.
무엇이 진실인지는 아직도 아무도 모르고 그들에게 들을 수도 없음. 다 죽은 사람들이고. 죽기 전까지도 단 한 명도 진실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이걸 입막음 당했다 생각하고 마드리드 사람들은 부패한 인물들이 자기 실책을 말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언론들 칼럼이나 기사들도 다 주장이 다르죠.
어디는 프랑코의 압력에 의해 그랬다. 어디는 바르셀로나가 왜 그런지는 미스테리다. 어디는 마드리드도 똑같이 피해를 봤다. 등등... 독재자들과 연관된 축구 얘기를 자주 다루던 가디언, BBC 를 비롯한 뻥글, 스페인, 남미 어느 언론들 칼럼이나 기사를 봐도 통일된 내용은 진행 과정 정도밖에 없음. 결론들은 다 사견에 가깝죠.
바르셀로나가 먼저 접근한 것은 맞습니다. 당시 쿠발라가 장기 부상을 입어서 그를 대체할 즉시 전력이자 전술적 중심이 필요했고 때마침 디 스테파노는 콜롬비아의 미요나리오스에서 더 이상 뛰기 싫어했고 (그래서 미요나리오스는 디 스테파노 갖고 돈을 최대한 뜯어내는 게 목적이었음) 아르헨티나 리그는 경제적, 정치적 문제로 돈 문제가 심각했던 시기라 그 역시 안정적으로 뛸 수 있는 곳이 필요했죠.
마드리드는 디 스테파노라는 선수는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이적 가능성이 없다고 봤었는데 후에 쿠발라-디 스테파노가 갖춰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접근했죠. 디 스테파노 논쟁은 라몬 트리아스 파르가스라는 카탈루냐 출신 변호사가 자신의 회고록과 몇 년, 몇십년이 지난 이후 인터뷰들에서 언급한 게 제일 사실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왜냐면 바르셀로나 측 협상단이었고 당시 디 스테파노와 엮여있었던 리베르플라테, 미요나리오스 양 측과 다 협상을 한 유일한 인물이었기 때문.
프랑코의 독재 아래 증명된 이유가 없으면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 수가 없는 상태였는데 저 축구와 일절 관련 없는 파르가스는 아버지가 내전을 피해서 콜롬비아로 이주한 상태였고 또 늘 카탈루냐를 그리워하는 진성 카탈란이었고 디 스테파노의 영입 가능성이 보이자마자 바르셀로나 측에 이 사실을 알려준 인물.
당시 바르셀로나는 단순한 일반 축구 클럽이 아니었고 깜노우는 억압받는 시민들이 분노를 푸는 공간이자 카탈루냐어를 원하는 데로 쓰면서 하나로 뭉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성장하던 시기.
이것을 알고 있던 파르가스의 아버지는 디 스테파노란 선수가 바르셀로나에 엄청난 것들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확신. 문제는 디 스테파노를 아무도 모르게 (특히 경쟁자인 마드리드) 협상해서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바르셀로나 인물들 중 그게 가능한 인물이 없었던 찰나에 아버지를 보러간다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으며 당시 직업 중 하나가 콜롬비아 주재였기 때문에 마드리드의 의심을 받지 않으면서 정부의 불필요한 개입의 영향을 안 받을 유일한 인물이 바로 파르가스였습니다.
당시 의장이었던 카레토는 파르가스에게 디 스테파노 협상의 모든 과정을 맡아줄 것을 제안하고 파르가스는 본인 역시 카탈란이니 이걸 고민도 하지 않고 받아들임. 보수는 0.
그러고 콜롬비아 대사관 일을 하는 척하면서 미요나리오스, 디 스테파노와 협상을 하고 콜롬비아에서 가족들까지 다 빼내오는 게 파르가스의 첫 번째 미션이었으나 카레토의 심복이자 바르셀로나 남미 관련 모든 일들을 담당하던 조안 부스케츠가 갑자기 콜롬비아로 날아와서 디 스테파노에게 바르셀로나의 선수가 됐고 가족들 전부 다 스페인으로 이주 시켜주겠다라는 말을 하고 스페인으로 가버리는 일이 벌어짐.
이때가 1953년 5월. 문제는 이 일을 해결할 사람은 파르가스였고 카레토와 얘기가 된 거였는데 그의 심복이 갑자기 날아와서 뻘짓을 하는 바람에 모든 정보와 과정이 마르카를 통해 나가게 됩니다. (아스는 이때 없었음)
파르가스는 여기서 1차 의심을 했다고 하죠. '내가 할 일을 왜 얘가?' 그리고 '자기들이 움직이면 들통나니까 나한테 분명히 권한을 위임하고 움직여달라 했는데?'
조안 부스케츠는 이후 파르가스에게 미요나리오스와 리베르 플라테 두 클럽 모두와 협상을 해야한다고 얘기하죠. 알고보니 협상이 되지도 않았는데 디 스테파노를 데려간 거였음. 결국 파르가스는 둘 모두와 협상을 하는데 리베르 플라테는 어차피 나라 전체가 틈만나면 파업이었고 심각한 경제, 정치 문제가 잔재했기 때문에 돈 (약 3만 달러의 이적료) 과 시간만 강조했음. 7월 말까지 디 스테파노 계약을 모두 마무리 짓고 모든 법적인 절차를 다 밟아야 한다고 강조했고 다른 세부적인 사항은 없었다고 하죠.
파르가스는 이걸 언론에다 뻥카를 갈겨버림. 사실상 리베르 플라테와 문제가 일어날 여지가 없었다고 봤기 때문인지 협상이 완료됐다라고 뿌리면서 바르셀로나 팬들은 디 스테파노의 합류에 기대감을 품기 시작하고 파르가스는 미요나리오스와의 최종 협상을 하러 다시 콜롬비아 행.
문제는 결국 미요나리오스였음. 디 스테파노를 임대로 쓰고 있었지만 장기간 임대였고 권한 역시 위임받은 상태였기 때문에 이들과도 해결했어야 했는데 이들은 디 스테파노를 임대로 쓰면서 연봉 외에 추가적인 돈을 더 주고 있었기에 그 보상금을 포함한 이적료로 약 4만 5천 달러를 넘는 돈을 요구함. 페세타 기준 약 700만 페세타.
파르가스는 이 딜을 반드시 성사시켜야겠다는 일념 하에 그들과 끊임없는 협상을 벌이고 이 와중에 바르셀로나는 베네수엘라로 친선 경기를 펼치러 옴. 파르가스는 이때 반드시 끝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카레토와 연락을 하죠.
1차 제안 - 약 4만 5천 달러의 이적료 (미요나리오스가 디 스테파노에게 추가적으로 지급한 보상금 포함)
=> 카레토는 1만 달러의 이적료가 아니면 미요나리오스와의 합의는 없다고 거절.
2차 제안 - 약 1만 5천 달러의 이적료 (1만 달러의 이적료를 승인하는 대신 디 스테파노한테 준 꽁돈은 반드시 받아야겠다.)
=> 카레토는 1만 달러의 이적료가 아니면 미요나리오스와의 합의는 없다고 거절.
3차 제안 => 모든 원정 비용은 미요나리오스가 부담하는 조건 아래 자기들 홈에서 3번의 친선 경기를 하고 (시기는 조율) 한번의 친선 경기마다 1만 달러라 가정하고 3만 달러의 이적료로 해결하기로 합의
=> 카레토는 1만 달러의 이적료가 아니면 미요나리오스와의 합의는 없다고 거절.
파르가스와 바르셀로나의 사람들이 디 스테파노의 이적이 프랑코 정부의 압력 아래 마드리드 행을 교묘하게 이끌어냈다라고 주장하는 핵심 사항이 바로 이것임. 리베르 플라테와는 합의가 된 상황에서 친선 경기 3번만 하면 디 스테파노를 큰 돈을 쓰지 않고도 데려올 수 있는데 1만 달러의 이적료가 아니면 어떠한 조건으로도 합의하지 않겠다는 카레토의 당시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
돈을 벌러 베네수엘라 원정까지 와서 친선 경기를 치르는 팀이 미요나리오스와의 3번의 친선 경기 역시 거절할 이유가 아예 없었음. 디 스테파노는 보상금 얘기를 꺼낸 미요나리오스로 인해 딜이 파토났다는 얘기를 듣고 마르카와 인터뷰를 가지고 바르셀로나 행을 승인하지 않으면 미요나리오스에서도 뛰지 않겠다고 선언.
파르가스는 이 시기에 더 이상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카레토의 연락을 받고 (역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고 함) 본인의 일을 하러 갑니다. 바르셀로나는 사실상 디 스테파노 딜은 끝났다고 판단했죠.
바르셀로나가 이렇게 자신만만 할 수 있었던 건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규정이었음. 미요나리오스와 협상을 하는 것은 불법으로 간주될 확률이 높은 문제였고 바르셀로나는 다시 리베르 플라테에게 접근해 바로 3만 달러 (약 450만 페세타) 를 지급하고 기존에 했던 구두 합의를 완전하게 해버리고 디 스테파노를 바르셀로나 선수로 만드는데 성공합니다.
근데 이때 스페인 축구 협회가 개입하면서 외국인 영입 전면 금지를 하죠. 2차적으로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의심하는 지점입니다. 왜 갑자기?
근데 이건 정확한 사실은 프랑코의 개입이 아니라 미요나리오스의 강한 주장에 의해 일어난 일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디 스테파노에 대한 권리가 있음에도 우리 동의 없이 바르셀로나 이적이 이뤄졌다고 주장했고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했죠.
바르셀로나는 바로 따지고 들고 마드리드는 이때 미요나리오스와 합의를 하죠. 서로 합의에 도달했으니 디 스테파노에 대한 권한은 자기들에게 있다는 주장이었죠. 문제는 국제법상 아르헨티나 축구 협회의 규정은 유효하나 이미 디 스테파노를 스페인으로 데려왔고 아르헨티나 리그로는 돌아갈 가능성이 없었던 디 스테파노의 행선지를 결정할 수 있었던 건 스페인 축구 협회였습니다.
그래서 나온 결론이 아시는 바와 같이 4년 동안 1년씩 번갈아가면서 소속 팀으로 뛰는 것으로 합의를 하나 카레토가 리베르 플라테에게 지급한 이적료 + 알파를 받고 완전한 마드리드의 선수가 되어버립니다.
카레토는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고 뛰었던 선수가 바르셀로나의 선수가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밝혔지만 갑자기 다 사퇴해버리는 일이 벌어지죠. 심복이었던 조안 부스케츠도 런을 쳐버립니다.
평생 해결할 수 없는 의문점들이 이것임.
1. 조안 부스케츠는 누구의 지시로 갑자기 콜롬비아로 날아가 디 스테파노와 그의 가족들을 바르셀로나로 데려온 건가. 카레토가 파르가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얼마 안 돼서 부스케츠에게 이것을 지시했다면 그것 역시 이상하다. 대체 부스케츠에게 그것을 지시한 인물은 누구?
2. 피파는 당시 바르셀로나의 디 스테파노 이적을 허용해줬다. 그럼에도 스페인 축구 협회가 외국인 선수 영입 금지라는 조항을 내세웠을 때 바르셀로나가 이것을 다시 역으로 국제법으로 끌고 가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3. 왜 바르셀로나는 미요나리오스와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을까? 파르가스의 증언대로라면 친선 경기 3번만 하면 됐는데 심지어 미요나리오스가 원정 비용도 다 부담해주겠다고 했다. 근데도 김두한의 4달러처럼 1만 달러만 외치면서 카레토는 딜을 부숴버렸다. 왜?
4. 1953년 9월 스페인 축구 협회가 제시한 합의안을 거절한 것은 거절한 건데 당시 카레토는 왜 이걸 보상금을 받고 계약을 파기시키는 행동을 한 걸까? 충분히 다른 방법들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정말 마드리드의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바르셀로나의 유니폼을 입는 게 자존심의 문제여서 거절한 건가?
5. 1953년 10월 열린 엘 클라시코에서 디 스테파노가 2골을 넣는 대활약에 5대0으로 썰리는 참사가 벌어지는데 그때 감정은 어땠을까. 디 스테파노의 합류를 이뤄내지 못한 걸 뼈저리게 후회했을까. 카레토는 12월에 돌연 도망쳤다. 마드리드가 준 보상금은 어디로 갔나?
바르셀로나 팬이지만 디 스테파노 이적에 프랑코의 개입이 명확하게 보이는 지점은 있지 않음. 굳이굳이 들이밀자면 카레토의 행동과 스페인 축구 협회의 돌발 행동인데 카레토는 잘 모르겠지만 찾아보면 저건 미요나리오스가 억울해 죽을 것 같은 행동을 한 게 컸음 더 컸지. 프랑코의 개입이 이유가 될 수가 없습니다. 파르가스 덕에 해외에서 협상을 하는 데도 프랑코의 지배는 충분히 벗어날 수 있었고 그의 증언들이 각 언론들 칼럼이나 기사에 남아있음. 이 글도 제 기억 (이런 거 엄청 봤어서 기억엔 꽤 남아있음) 과 예전에 봤었던 칼럼 중 하나인 BBC 칼럼만 다시 찾아보고 쓴 글임.
어제 라포르타의 발언이 감정적이라고 하는 건 카탈루냐의 오래된 감성을 앞세운 발언들이 나왔다는 것과 기자들의 질문에 종종 표정 관리가 안 되거나 발끈하는 듯한 행동이 보였던 것도 있음.
굳이 지저분한 얘기들 하고 싶지도 않고 엮이고 싶지도 않음. 타 팀 팬분들도 많이 보는 블로그에 제가 감정적으로 대응할 이유도 없구요.
네그레이라 사건은 그거만 그거대로 보면 되는 문제고 앞으로 더 명확하게 결론이 나겠죠. 기다리면 알아서 알게 될 수밖에 없는 거고 자꾸 그 이상을 들이밀면 어느 팀 팬이든 그들의 문제임. 스페인 내에서야 지역 감정을 유발하는 요소들도 뒤섞여서 심각할 수 있는데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음. 그냥 축구나 재밌게 보면 됩니다. 아무리 정치적인 요소가 많은 클럽이어도 이런 건 소시오나 카탈란이 아닌 이상 신경 쓸 문제가 아님. 그러니 언급을 하지 않는 거.